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 / 하린 (시인)
43. 상상 테마42 - ‘A 안에 살던 C가 빠져 나갔다’ 문장 구조로 상상하며 시 쓰기
@ ‘A 안에 살던 C가 빠져나갔다’ 문장으로 상상을 적용할 때
‘A 안에 B가 살고 있다’라는 문장으로 앞쪽에서 이미 상상을 적용해 시를 쓴 적 있다. 이번엔 추가로 ‘A 안에 살던 C가 빠져나갔다’라는 문장으로 상상을 펼칠 것이다. A 안에 거주하던 C가 빠져나가면 C는 A의 속성과 자신의 속성을 동시에 갖게 된다. 그 C가 이번엔 D와 만나게 되면(살게 되면, 결합이 되면, 융합하게 되면) A, C, D의 속성을 전부 품게 된다. 그럴 때 A, C, D를 잘만 배치해도 나만의 상상이 적용된 시를 또 한 편 쓸 수 있다.
상상을 적용할 때엔 A와 C가 최대한 이질적인 존재가 되면 좋다. 예를 들어 짐승 속에 야성이(울음이, 발톱이, 야만이, 상처가) 살다가 빠져나가는 상상은 너무 뻔하니까, 짐승 속에 악천후가(구름이, 고독이, 진보가, 바닥이, 십자가가, 웅덩이가) 살다가 빠져나가는 상상을 적용해야 한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비약적인 것은 좋지 않다. 예를 들어, 짐승 속에 자전거가(의자가, 드릴이) 살다가 빠져나갔다고 하는 상상은 작위적인 느낌을 줘서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그러니 이질적인 것을 선택할 때에도 자연스럽게 연상 작용이 일어나는 단어를 선택해야 한다.
거기에 한발 더 나아가 빠져나간 후에 만나게 될 존재 D까지 상상을 통해 적용하면 더욱더 매력적인 자신만의 시를 창작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악천후는 배고픈 짐승 속에 살았다/ 짐승이 뒷골목 쓰레기통까지 뒤지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빠져나왔다/ 험악한 성질 탓에 갈 곳이 없었다/ 어느 날 먹구름이 말을 걸어왔다/ 내 안에 들어와 살지 않을래?/ 악천후는 망설일 필요 없었다”와 같은 구절이 들어간 시를 쓸 수 있다.
필자의 시를 바탕으로 그것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말해볼까, 이미 나를 빠져나간 것에 대해 / 하린
내 안에 살고 있던 그리움이 빠져나간 후 난 그늘만 사랑하는 사람 담장이 내민 그늘을 밟으며 허깨비만 살고 있는 집에 오른다 삭아 내리고 있는 건 시멘트 담장만은 아니라서 높아질수록 그늘의 맛이 까칠하다 내가 죽지 못해 산다니까 담 너머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오면 눈동자가 서걱거리는 소리까지 가둔다 새삼 담의 목적이 감옥이 아니라고 믿어본다 담 하나를 만들려고 낯선 물과 시멘트와 모래와 자갈이 만났을 텐데 난 나와 닮은 사람을 놓치고 후회했다 그럴듯하게 하나가 되어도 틈과 균열과 부식은 생긴다 설마 지금도 처음의 진정성이 마지막에도 존재한다고 믿는 거니? 담벼락이 내게 훈계를 하는 것 같다 지극히 사적인 푸념쯤 뒤에 남기고 조금 더 오른다 올라갈수록 파산이 선명해진다 사랑도 파산될 수 있는 걸 무너진 뒤에야 아는 건 나의 잘못이니까 빠져나간 그리움이 들어오려고 기웃거리는 걸 외면했다 드디어 소속도 책임도 목차도 없는 옥탑에 든다 건너편 사람이 인사를 한다 오늘도 잘 버텼다는 뜻인데 버티는 일엔 사상 따윈 없는데 우린 아주 빨리 쓸쓸해진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도시가 온통 납의 정원같다 불온한 노래가 불안하지 않게 자라는 생살이 썩어 나가도 모른 척하는 중독성 강한 불빛 나만 빼고 다 호황이니까 이젠 다짐이 있는 아침을 만날 수 없겠다 ― 《현대시》 2016년 6월호(개작)
1단계 - 스스로 점검하기 – 메시지 분명히 하기+내 시만의 장점 찾기
이 시에 적용된 상상은 ‘내 안에 살던 그리움이 빠져나갔다’이다. 연인과 헤어진 이후 그리움을 몸속에 키워왔던 화자. 어느 순간 그 그리움이 빠져나갔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특별한 다짐이나 대단한 각오가 찾아왔기 때문일 게다. 그로 인해 화자는 더 이상 기다림을 지속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느끼고 자신이 사는 옥탑방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 올라간다. 주변 사람들이 전부 화자의 암울한 심리 상태를 반영한다. 그런 사물들의 몸짓을 통해 화자는 자신이 강제로 그리움을 내보냈고, 그 그리움이 다시 몸속으로 들어오려고 한다는 것을 감지한다. 그러나 화자는 “이젠 다짐이 있는 아침조차 만날 수 없겠다”라고 말하며 끝내 부정적인 선택을 할 것임을 암시한다.
이 시는 이별 후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화자가 힘들게 그리움을 내보내는 과정을 담은 시다.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을 통해 심리적 맥락과 분위기가 점점 강화되는 양상을 띤다. 따라서 이 시의 장점은 화자의 심리 상태가 주변 사물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암시되고 있는 점이다.
2단계 - 객관적 상관물(현상)을 찾기+관찰과 조사 정밀하게 하기
이 시의 객관적 상관물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만난 그늘과 담장이다. 그늘은 화자의 착 가라앉아 있는 기분을 대변하고, “삭아 내리고 있는” “시멘트 담장”은 무너지기 쉬운 화자의 마음을 암시한다. 담장은 낯선 요소들이 모여 하나가 된 융합체이다. 그런데 지금은 틈과 균열, 부식을 안고 아주 천천히 와해되어 가고 있다.
그런 담장의 모습처럼 부러워하는 화자의 심리는 무엇일까? 아직은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담장이 자신보다 더 낫다’라는 생각이 개입되었을 거다. 버티지 못하고 옛사람과 쉽게 헤어졌기 때문에 화자는 담장을 보며 후회를 하고 있는 거다. “설마 지금도 처음의 진정성이/ 마지막에도 존재한다고 믿는 거니?”라고 담장이 질문을 한다. 잊을 건 빨리 잊으라고 충고를 한 것이다. “빠져나간 그리움이 들어오려고/ 기웃거리는” 것까지 막는 것 같아 화자는 완전히 잊겠다는 다짐을 더욱 굳히게 된다.
3단계 - 확장하기 – 상상적 체험을 섬세하게 극적으로 하기
이 시에 나타난 상상적 체험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진행되었다. 첫 번째 부분은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과정에서 겪는 체험이고, 두 번째 부분은 집에 도착하고 난 후에 겪는 체험이다. 첫 번째 체험은 앞에서 충분히 설명했기 때문에 집에 도착한 이후에 겪는 상상적 체험을 살펴보겠다. “빠져나간 그리움이 들어오려고/ 기웃거리는 걸 외면”하게 만든 담장의 충고를 지나 “소속도 책임도 목차도 없는 옥탑에” 든 화자. 건너편 옥탑에 사는 사람과 “오늘 잘 버텼냐”는 의미의 인사를 나누고 발 아래 도시를 내려다본다. 화자의 어두운 심리 상태를 대변하듯 “도시가 온통 납의 정원”인 것만 같다. “불온한 노래가 불안하지 않게 자라는/ 생살이 썩어 나가도 모른 척하는/ 중독성 강한 불빛”이 화려하게 밤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화자 자신만 빼고 전부 다 삶의 호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올라오는 내내 허무적인 감정이 따라다녔는데, 옥탑에서 내려다본 불빛들로 인해 허무는 극단적인 감정까지 불러온다. 그것이 마지막 행에 암시되어 있다.
* 또 다른 예문
키워드/ 최은묵
죽은 우물을 건져냈다
우물을 뒤집어 살을 바르는 동안 부식되지 않은 갈까마귀 떼가 땅으로 내려왔다
두레박으로 소문을 나눠 마신 자들이 전염병에 걸린 거목의 마을
레드우드 꼭대기로 안개가 핀다, 안개는 흰개미가 밤새 그린 지하의 지도
아이를 안은 채 굳은 여자의 왼발이 길의 끝이었다
끊긴 길마다 우물이 피어났다, 여자의 눈물을 성수라 믿는 사람들이 물통을 든 채 말라가고 있었다
앞 떨어진 계절마다 배설을 끝낸 평면들이 지하를 채워나갔다
부풀지 못한 뼈들을 눕혀 물길을 만들면 사람들의 발목에도 실뿌리가 자랄까
안개가 사라진다 흰개미가 우물 입구를 닫을 시간이다
우물은 떠나지 못한 자의 피부다 - 201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왼손의 유전 / 이미영
아이들이 기생수*라고 놀렸다 기초생활수급자를 줄인 말이라는 댓글도 달아주었다
그 이후로 왼손이 말을 걸어온다 깊이 생각하지 마 선생님은 비밀이 없고 친절하다 꼭 그렇게 다 말해야 합니까 오른손을 들고 항의하고 싶은데 왼손의 충고가 멈추지 않는다
얼굴을 씻고 문자를 찍는데도 손의 용도는 정해져 있고 아무도 오른손이 보낸 말들을 받지 않는다 도대체 행방불명된 말들은 어디에서 찾아야 합니까? 바지 주머니에서 왼손이 튀어나와 박장대소를 한다 해질녘, 교실 구석에서 뺨을 맞은 왼쪽이 서 있다
일기를 쓰다가 잠이 들면 그날의 기분을 왼손이 고쳐 쓴다 아버지, 왼손이 이상해요 나를 닮아서 그렇단다, 얘야 아버지는 프레스에 잘린 왼손을 내밀었다 의수를 뺀 아버지의 손목이 뭉툭하고 기생수다! 얼떨결에 튀어나온 말에 놀라, 그날 밤 나는 환지통을 앓았다
잘린 플라나리아는 없어진 몸통이 다시 자라난대요 아버지와 나는 밤마다 왼손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인다
* 기생수(奇生獸): 일본 애니메이션 - 『2020 경기문학』, 청색종이, 2020.
주술呪術 / 주영헌 다래끼가 난 눈썹 하나를 뽑아 돌 사이에 끼워두면 돌을 찬 사람이 다래끼를 가져간다는 속설이 있지 발로 찬다는 것은 멀리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 가까이 두는 주술呪術 작은 돌멩이 몇 개 발에 챈다 돌멩이 속에 영혼이 깃들어져 있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은하가 존재한다면 그 안의 모든 영혼들은 나와 한 몸이 되는 것일까 작은 돌멩이는 큰 바위의 흔적 영혼이나 우주가 저 돌멩이를 닮았다면 영혼도, 우주도 소멸할 수밖에 없겠다
소멸하는 몸뚱어리 속에 깃든 영혼들은 다시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주머니 속의 돌멩이 몇 개 쉬지 않고 달그락 거린다 맹렬히 껴안을 때 마다 딱딱 부딪치는 마음도 있다 - 『아이의 손톱을 깎아줄 때가 되었다』, 시인동네, 2016.
- 출처 : 『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 (더푸른, 2021.09)
* 하린 시인 1971년 전남 영광 출생.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 학위. 1998년 〈광주매일〉신춘문예 시 당선, 2008년 《시인세계》 등단. 시집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 『서민생존헌장』 『1초 동안의 긴 고백』. 연구서 『정진규 산문시 연구』 시 창작 안내서 『시클』 시 창작 제안서 『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 『이것만 알면 당신도 현대 시조를 쓸 수 있다』 청마문학상(2011), 송수권시문학상(2015), 한국해양문학상(2016),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2020) 수상. 현재 중앙대 문화예술대학원 전문가과정 시 창작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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