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버지가 아들에게 "차 한 잔 마시고 싶으니 끓여 오너라"라고 하였다. 그래서 아들이 생각하기를 쓰디쓴 차보다는 시원한 배가 좋을 것 같아서 배 한 개를 사다가 드렸는데 아버지는 다시 차를 끓여 오라고 하였다. 아들은 또 다시 생각하기를 '맛있는 홍시는 좋아하실 것이야'하고 차보다 이 홍시가 더 좋으니 잡수어 보시라고 드렸다. 그러자 아버지는 노하여 말하기를 "내가 요구하는 것은 하여 주지 않고 원치 않는 것만 가져오느냐?" 하고 책망하였다.
이호빈 목사가 아가서 공부를 하려고 영무 교회에서 열린 이용도 목사집회에 참석했을 때였다. 하루는 새벽 한 시쯤 되었을까, "형님, 형님" 하고 이용도 목사가 이호빈 목사를 찾아왔다. 그래서 따라 나가니 이용도 목사가 묵묵히 앞서 가다가 바다 물결이 출렁이는 데까지 갔다. 그리고는 주저앉더니 자기를 위해서 기도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주객이 전도된 판이었다. 부흥목사에게 기도를 받으러 왔는데, 자기를 위해 기도를 해달라니! 그래 무슨 기도냐고 하니까 될 수만 있으면 부흥목사를 면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호빈 목사는 이용도 목사가 원하는 대로 기도를 해주었지만, 그때 느낀 것은 그가 부흥 목사가 된 것은 자의가 아니라 순종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당신은 하나님의 뜻과 명령에 순종하는 사역을 하고 계십니까?
눅 22:42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1. 이제 6월이 시작되었습니다. 한 해의 중반으로 들어갑니다. 주의 일과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을 다시 한번 점검해 주시기 바라며 위해 기도하며 나가시길 기원합니다.
2.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이 하나님의 은혜속에 잘 이루어지고 지경을 넓혀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목 :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는 삶 본문 : 고전9:27
고대 사회에서 종은 주인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일종의 도구와도 같았습니다. 그들의 권리는 법적으로도 주인에게 종속되어 있었으므로 주인의 명령에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명령 복종의 의무만이 주어져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묵묵히 해내야 합니다. 주의 직분을 맡은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하는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자신의 위치를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분이 나의 주인이 되신다면 나는 그분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주인의 뜻과 계획에 맞춰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주의 뜻과 일치할 때만이 입술의 고백이 가치가 있습니다. 이제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는 삶은 어떤 삶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자기를 쳐서 주께 복종시킴(삼상3:10)
1)자신의 의지를 굴복시킴 바울은 "내가 나를 쳐 주께 복종시킨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끊임없이 고개를 들려고 하는 자아를 쳐서 주의 뜻에 굴복시켰다는 말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중시합니다. 주의 뜻과 정면으로 배치되거나 일치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계속적으로 밀고 나갈 때가 많습니다. 신앙과 생활을 별개의 문제로 취급하는 것은 절대로 옳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독실한 신자이고 교회 밖에서는 철저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면 처세하기가 편할지는 몰라도 위선이나 가식을 용납지 않으시는 하나님께는 인정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흔하게 발견되는 이중성을 성도들은 과감히 청산해야 합니다. 자신의 의지를 주께 굴복시킬 때에 오직 한 길로 갈 수가 있습니다.
2)자신의 지식을 굴복시킴 사람이 얻은 지식과 주의 말씀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때에 주의 일꾼된 성도들이 취할 태도는 확고해야 합니다. 즉 선택의 여지가 없이 자신의 지식을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보편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지식이라 하더라도 주의 가르치심과 배치된다면 과감히 버리는 것이 주인의 뜻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요즘 우리의 아이들은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학교에서는 진화론을 가르치고 교회에서는 창조론을 가르치기 때문에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진화론이 합리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은 과감히 일축해 버려야 합니다. 성경은 성도의 가치 판단의 유일한 지침서이기 때문입니다.
2. 모든 판단과 결정의 기준으로 삼음(계1:3)
1)성경의 가르침을 좇음 성경은 주의 명령, 주의 뜻, 주의 계획 등을 완벽하게 담고 있는 책이므로 우리가 모든 판단과 결정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마땅합니다. 종이 성실하게 자신의 직무를 수행코자 할지라도 주인의 뜻을 모르면 시행착오를 범하듯이 성경을 가까이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도 이와 같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도 이와 같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읽기를 원하십니다(사34:16). 항상 그것을 가까이 두고 그 속에 있는 말씀들을 묵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야만 무슨 판단이나 결정을 하게 될 때에 오류를 범하지 않습니다. 주의 일꾼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것은 사람들의 의사보다는 주의 뜻입니다.
2)항상 그리스도와 상의함 사람들은 혼자서 해결하기 힘든 문제라든지 걱정거리가 생기면 그 분야의 전문가들을 찾아가서 상담합니다. 주의 일꾼들도 주의 뜻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고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망설일 때는 주저 말고 이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가 상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전문가가 누구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십니다. 이사야는 그분을 가리켜서 '모사'라 했습니다(사9:6). 우리의 상담자, 의논상대(Counsellor)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어떤 문제든지 그분과 상의할 수 있으며, 정확한 대담, 해결 방안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먼저 주께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보다 더 완벽한 전문가는 어디에도 없으며, 사람의 조언은 부분적인 도움밖에 될 수 없습니다.
3. 일체의 형식과 가식을 제하여 버림(렘17:10)
1)주께서 내면을 살펴 아심 사람들은 자기를 꾸미기를 좋아합니다. 특히 약점이 많을수록 이것을 감추고자 포장을 잘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외모로만 사람을 취하다가는 커다란 시행착오를 저지르게 마련입니다. 겉과 속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수없이 많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온순한 양인데 그 속은 이리와 같은 자들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지성인인데 속은 야만적인 자들도 허다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선과 가식이 하나님의 판단까지 흐리게 하지는 못합니다. 성경은 그분이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신다고 가르칩니다(잠16:2). 우리의 내면을 속속들이 살피시고 아신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진실하지 못한 자들의 외식과 꾸밈은 곧 밝혀지고 맙니다.
2)성실한 자가 인정받음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인정을 받는 길은 하나뿐입니다. 즉 성실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분이 무엇을 말씀하실 때에 그것의 분량이 크든지 작든지 그리고 그 일이 마음에 들든지 그렇지 않든지 최선을 다하면 그는 인정을 받습니다. 성경은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이 충성이라고 가르칩니다(고전4:2). 일을 맡기신 주님이 신용할 만한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있는 그대로 쓸모가 있고 가치가 있습니다. 구태여 꾸미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가면은 언젠가 벗겨지게 마련이므로 성도는 사람을 의식할 게 아니라 주를 의지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일꾼이 아니라 주의 직분을 맡은 천국의 일꾼입니다.
결론 주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자기 생각을 따라서 모든 일을 처리한다면 그는 주의 일꾼이 아닙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주의 뜻을 좇는 자라야 주의 일꾼인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처신해야 합니다. 또한 오늘날 우리의 교회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지나치게 사람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희망을 주지 못하고 능력도 없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그러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고 철저히 하나님 중심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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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충만한 가운데 주님의 영광과 복음과 선교와 설교와 목회와 치유와 상담과 지혜와 사랑과 성령의 도구로 쓰임받고 열매 맺게 하소서 샬롬
감사합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평안 장로님, 예수 사랑 목사님, 존재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