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교사가 휴가를 보내는 중에 우연히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게되었다. 한밤중 그는 배를 타고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물에 빠졌어요!" 하는 외침이었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매우 두려워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선교사는 자신의 침상에서 재빨리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의 브래컷 조명등을 들고 나와서 갑판에 있는 창문을 통해 빛이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그러나 선교사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에 선교사는 물에 빠진 사람이 배에서 비치는 작은 불빛하나 때문에 갑판을 볼 수 있었고 그래서 던져진 밧줄을 보고 움켜잡음으로써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잠시 아찔했었다. 그냥 무심코 흔들어댄 램프의 불빛이 정확히 제시간을 맞추어서 물에 빠진 사람의 생명을 구해 주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진리의 불빛이 항상 타오르게 해야 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도움의 요청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 빛을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암흑의 날에 유혹과 절망의 늪에 빠진 불쌍한 영혼을 구해주어야 한다.(J. W. W. Moerran)
당신은 성령안에서 진리의 빛을 세상에 비추고 있는가 ?
요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1. 이제 장마가 시작 되었습니다. 안전에 주의하시며 건강하게 사역과 생업을 감당하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이 하나님의 은혜속에 귀한 역사를 이루며 지경을 넓혀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목 : 행동하는 신앙인 성경 : 빌 4:4~9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6). 바울은 회심한 이후로 하나님과 사람에게 빚진 자라고 생각했다. 롬 1:14-15에 보면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고 말한다. 사람의 자기 생명을 알고 의무를 안다면 인생은 흐지부지 적당하게 살 수는 없다. 하나님과 교회에 대한 의무, 사회와 국가, 가정과 이웃에 대한 의무를 바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을 참 인격자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은 자기가 빚진 자라고 생각했는데 여기는 세 가지 의미가 있음을 보게된다. 첫째, 속죄하는 의미에서이다. 바울이 유대인으로 있을 때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예수를 핍박했으나 바로 알고 보니 자신이 너무나 미련했고 자기와 같은 어리석은 자들이 있을까 하여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인류 문화의 기원을 자랑하는 바벨론도 죄 값으로 망하였고, 나일강 언덕의 풍부함과 금자탑의 과학을 의뢰하던 애굽도 죄 값으로 망했다. 그리심산을 자랑하던 이스라엘도 여로보암의 죄 값으로 앗수르의 종이 되었고,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믿던 유대왕국도 느브갓네살의 말발굽 아래에 무너지고 말았으니 이는 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긴 죄 값이다. 70명의 제자를 파송하신 주님은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 할지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눅 10:5-6)고 말씀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나는 사람에게 평안을 빌어야 한다. 바울은 잘못된 신앙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영혼을 죽이며 오히려 하나님 나라를 파괴하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한 어리석음을 알고 빚을 갚으려고 했다. 모쪼록 우리 자신도 사도 바울처럼 속죄하는 심정으로 자신을 점검하며 생활하기 바란다. 둘째, 자유하기 위해서 이다. 자유란 법이 허락하는 테두리 안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인 것이다. 만일 어떤 시민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어긴다면 이미 그는 자유를 상실한 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도 그와 같은 권리를 가지게 하기 때문이다. 고후 8:9에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고 바울은 말했다. 자연 속에 자유롭게 사는 꿩은 열 걸음 찾아서 콩 한 톨을 주워 먹고, 백 걸음 걸어서 물 한 모금 먹을 지언정, 울안에 갇혀서 사람이 주는 모이를 먹고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롬 8:21에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고 했다. 빚진 죄인이란 말이 있듯이, 사람이 빚을 지면 부담을 느끼고 부자유하게 된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예수의 복음에 대해서 빚을 졌으므로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불안하여 살수 없음을 느꼈다. 신앙인이라면 어느 누구나를 막론하고 자기 생활에 대하여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하며 자기의 의무를 감당할 줄 알아야 한다. 「국민 생활의 자유는 가치 있고 종교의 자유는 귀하나 영적 자유를 지극히 값진 보배이다」라고 말한 스퍼젼 목사님의 말처럼, 영적 자유를 누리며 주님의 뜻을 이루는 자들이 되기 바란다. 셋째,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서 이다. 고후 6:1-2에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 말한 바울은 죽어 마땅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난 일이 감사 감격하여 그 은혜와 사랑에 대한 빚을 갚으려고 했던 것이다. 9절에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고 한다. 사람이 사람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다 사람이 아니라 사람다워야 하듯, 교인이 교인다워야 참된 교인이다. 사람이 자기의 사명을 모르면 동물적인 본능으로만 살아가는데 사명을 알면 성실하고 용감하고 헌신하고 위대하게 되는 것이다. 행동하는 신앙인은 자기의 사명을 알고 살아간 사람이기 때문에 삶의 흔적이 아름답고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게 된다. 이 땅위에 빛을 남긴 사람들처럼, 우리도 생산적이고 행동하는 신앙인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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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주님의 영광과 복음과 선교와 설교와 목회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도구로 쓰임받고 열매 맺게 하소서 샬롬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감사합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평안 장로님, 존재 목사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