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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때 사육신에 성삼문 (成三問)이 있다.
성삼문 아버지가 성승(成勝)인데, 수양대군이 성삼문을 설득시키려고 그 아버지를 잡아다 대궐 뜰에 옷을 벗겨놓고서 쇠로 만든 인두를 참숯불 같은 데 벌겋게 다려서 등짝서부터 장단지 이런 데를 그냥 막 지져댄다. 그러면 살댕이가 지글지글 타면서 연기가 풀풀 나고 고기 익는 냄새가 나고 그런다.“
자, 니가 항복을 하면 니 애비가 이런 악형을 안 당한다. 항복을 해라.”그런다. 허나 성삼문 이는 아버지가 그런 악형 당하는걸 보면서 참 안 됐지만 눈도 깜짝 안 한다. 아버지 성승이 그렇게 해서 죽었다.
항복을 안 하니까 종국적으로 성삼문의 서너 살먹은 아들을 잡아다가 성삼문이 보는 앞에서 자루에다 집어넣고 대뜰보 기둥에 깨트려 죽인다. 하니까 성삼문이 눈물을 주르르 흘린다. 수양대군 하는 소리가 ‘저런 역적 같은 놈 봐라, 지 애비는 인두로 지져도 눈도 깜짝 않더니 제 새끼를 죽이니까 눈물을 뵌다’고 한다. 그러니까 성삼문 이가 한 소리를 한다.
“ 우리 아버지는 왜 죽는 줄을 안다. 하지만 이 아이는 천지에 생생지리(生生之理)로써 생겨나서 세상에 왔다가 왜 죽는지를 모르고 죽는다. 그래서 비정한 그 불의에 분해서 내가 눈물을 흘렸다.”고.
가치관이라 하는 것이 그런 것이다. 가치관을 위해서 사육신도 되고 생육신도 된다. 사육신의 그 처절한 역사. 지나간 인류 역사라 하는 것은 그렇게 상극이 사배해서 피로 얼룩진 역사였다. 그러면서 성삼문이 죽으러 나가면서 이런 시를 읊는다.
“황천(黃泉)에 무주가(無酒家)하니 금야(今夜)에 숙수가(宿誰家)오.
”황천에는 술집이 없을 게다. 목 베여 죽어 황천에 가서도 술 한 잔 사먹고 싶을 텐데,
금야(今夜)에 숙수가(宿誰家)오.
’또 잘 집도 없을 테니 오늘 저녁에는 뉘 집에서 잘꼬.
죽는데 잠을 어디서 자나. 그냥 그렇게 읊은 소리다.
1455년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예방승지(禮房承旨)로서 아버지 성 승(勝)·박팽년 등과 같이 단종의 복위를 협의했으나 모의에 가담했던 김질의 밀고로 체포되어 친국(親鞫)을 받고 처형되었다.
성삼문의 아버지 성 승도 주모자의 한 사람으로 극형에 처해졌고, 아내와 자식은 끌려가서 자기 옛 동료의 종이 되었다. 집안의 구족九族이 무참하게 멸망한 신명은 그 원한이 절대로 풀리지 않는다.
성삼문의 삼빙(三聘)·삼고(三顧)·삼성(三省) 세 동생과, 맹첨(孟詹)·맹년(孟年)·맹종(孟終)과 갓난아기 등 네 아들도 모두 살해당했다. 그렇게 철천지한을 맺고 죽었다. 죽어서 귀신이 되어서도 그렇게 한 많은 세상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에만 해도 남 음해해서 죽이는 일들이 허다했다.
예를 들면, 당파싸움 하다가 상대방을 치기 위해, 남의 집 초상집에 조상弔喪 온 조문객들을 기록한 조객록弔客錄을 역적 모의한 물증이다 해서 갖다바쳤다. 그래서 그 날 죽은 사람 조상弔喪 간 사람들이 다 역적으로 몰려서 죽어버린 것이다. 그들은 죽으면서도 왜 죽는지도 모른다.
여러 천 년 내려오면서 남 음해해서 죽이고 한 적악가의 자손들은, 한마디로 남에게 못된 짓을 많이 한 사람, 남의 것 훔치기도 하고, 뺏기도 하고, 속이기도 하고, 남의 가정도 파괴하고, 그렇게 적악(積惡)을 많이 한 혈통들은 척(隻)에 걸려서 살아 남을 수가 없다. 그것이 바로 대자연의 이법이다.
이땅에 먼저 다녀간 선천 선인들이 이러한 천지의 이치를 알기 쉽게 “적덕지가(積德之家)에 필유여경(必有餘慶)이요. 적악지가(積惡之家)에 필유여악(必有餘惡)이라”는 말을 한 것이다.
그동안 종교에서 말해온 인간의 삶의 문제, 그 핵심이 무엇인가?
원죄나 업, 선과 악, 하지만 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 원寃과 한恨이다.
또 한분 남이장군의 억울한 죽음이 있다.
백두산석(白頭山石)은 마도진(磨刀盡)이요, 두만강수(豆滿江水)는 음마무(飮馬無)라.
남아이십(男兒二十)에 미평국(未平國)이면 후세수칭대장부(後世誰稱大丈夫)랴. 이 글을 지은 사람은 남이(南怡) 장군이다. 남이南怡장군이 28세에 병조판서를 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국방장관이다. 고금에 없는 영웅호걸이었다.
“백두산석(白頭山石)은 마도진(磨刀盡)이요.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서 다 했고,
두만강수(豆滿江水)는 음마무(飮馬無)라.
‘두만강 물은 말이 마셔서 다 말라버렸다.
남아이십(男兒二十)에 미평국(未平國)이면
사람이 스무 살 먹어서 나라를 평정하지 못 할 것 같으면
후세수칭대장부(後世誰稱大丈夫)랴.
후세에 누가 그 사람을 대장부라고 일컫겠느냐?”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때 유자광(柳子光)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유자광이 생각해보니까 남이라는 놈이 28세 먹은 게 벌써 국방장관이 되었으니, 자기 자신(自己自身)이 출세를 하는데 걸림돌이 되게 생겼다.
가만히 보니 죽일 기회를 포착을 했다. 그 글을 지어놓은 것을 ‘남아 이십(男兒二十)에 미평국(未平國)이면, 남아가 스무 살 먹어서 나라를 평정하지 못 하면’에서 ‘평할 평平’ 자를 ‘얻을 득(得)’ 자로 고쳐버렸다.
평할 평平 자, 평국(平國), 나라를 평정하면 만고충신이 되는 것이지만,
얻을 득(得) 자, 득국(得國), 나라를 얻으면이라고 하면 만고의 역적이 되는 것이다. 유자광이 그렇게 ‘득국得國’이라고 고쳐서 임금에게 고해 바쳤다. “저놈이 득국이라고 그랬습니다.” 하고. 임금이 듣고는 “하~ 그놈 참 역적놈이로고!” 했다. 역적 소리가 나면 이유 불문, 이유를 따질 것도 없다. 그건 죽지 않고는 못 배긴다.
만고충신인 남이장군이 글 한 수를 지었는데, 유자광이 얻을 득得 자 한 자로 모함을 해서 아무 죄도 없이 죽었다. 서울에 가면 남이장군의 사당이 있다. 지나간 세상은 인류역사가 그렇게 전부 피로 물들었다. 지나간 역사 과정이라 하는 것은 너무 너무 한 많은 세상이었다.
그 사람들은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 행위를 할 수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왔다가 자기 생각이 아닌 남의 생각, 남의 뜻, 남의 압력, 남의 방해, 음해에 의해서 자기 행위를 하지 못하고 그냥 죽어 버렸다. 너무 너무 원통하고 분해서, 그 원한이 억만 년이 지나도 풀리지를 않는다. 또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느냐? 나를 이렇게 해 놓고서 너는 잘 될 줄 아느냐?’ 하고 원수도 갚고 싶다.
이 원한의 속성은 무엇인가?
인간 생명의 꿈인 행복과 건강! 그것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인간에게는 원과 한이 맺힌다. 특히 외부의 억압이나 폭력, 전쟁과 같은 극히 강력한 파괴적인 수단에 의해 생명을 그르치게 되면, 인간은 원통함을 느낀다. 원寃은 남에게 일방적으로 당해서 가슴 아픈 걸 말한다.
또 세월이 흐르면서 그것이 가슴에 깊이 맺힐 때, 한恨이 남았다고 한다. 한恨은 ‘맺힐 한’ 자다. 내 가슴에 내 마음에 깊이 맺힌 덩어리, 병증病症이다. 원통한 것은 개별적이고 개인의 삶과 역사 환경에 따라, 자연 환경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한恨이라는 건 보편적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맺힌 게 있다.
민족이나 국가, 동서양을 떠나, 인류의 역사 속에서 정말로 잊혀질 수 없고 용서될 수 없는, 충격적인 원한을 깊이 맺고 죽어간 비극의 주인공들, 그 고통의 실상을 한번 더 들여다보자.
지난 4백 년 동안 유럽에서 노동력 차출이라는 미명으로, 아프리카 흑인을 잡아다 노예로 만들고 잡아죽인 숫자가 6천만이 넘는다.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아미스타드>란 영화를 보면, 아프리카에서 흑인이 백인의 앞잡이가 되어, 같은 흑인을 짐승 잡듯 잡아다가 노예로 팔아 넘긴다. 그러고 망망대해를 가다가, 그들이 병들거나 노동력을 상실하면 참담하게 죽인다.
이 흑인들의 하늘을 찢는 절규! 죽음의 순간에 외치는 처절한 외마디 비명소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천지 안을 떠돌고 있다.
이 원과 한도, 고통의 밀도에 따라 용서될 수 있는 게 있는가 하면,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깊고 깊은 게 있다. 이 원한의 실례는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이렇게 처절하게 죽어간 인간의 원한의 고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증폭된다. 여기에 인간의 증오의 문제가 있다! 여기에 보복의 문제가 있다! 그것을 한 글자로 척隻이라고 한다, 척!
“상말에 ‘무척 잘산다’ 이르나니 ‘척(隻)이 없어야 잘산다.’는 말이라.” “무척 잘산다.”에서 ‘무척’은 ‘대단히’라는 뜻으로 들리지만, 본래 그 속뜻은 ‘남과 척이 없다. 남으로부터 미움 사는 게 없다’는 거다. 남 잘 되는 것 못 보고 해코지를 하면, 반드시 그에 대한 악척을 받아 생을 좋게 마감할 수 없다.
선천 인류역사라는 것은 악척의 역사다. 피의 역사요! 보복의 역사요, 저주의 역사다. 문명사로 보면 전쟁의 역사다! 특히 종교전쟁의 역사를 보라. 얼마나 참혹한가.
예를 들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보면 피의 보복이다, 자살 특공대다, 그렇게 해서 원한을 풀겠다며 끊임없이 서로가 서로를 때린다. 그렇게 해서 원한이 풀어지는가?
오히려 구르면 구를수록 커지는 눈덩이처럼 ‘원한의 확대사(史)’가 진행되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원한의 엔트로피, 즉 원한의 살기가 비록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좁은 실내에 유독 가스가 가득 차면 나중에 어떻게 되는가.
결국 폭발을 일으켜서 건물도 날려버린다. 천지에 원한의 살기가 가득 들어차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른 경우는 다 놔두고도 그동안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엄마 뱃속에서 비명횡사한 낙태아들의 원한만 해도 너무도 크다. 인간의 원죄나 업장론에 매여 단순히 참회를 한다거나 해서 완전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심야자(心也者)는 일신지주(一身之主)라’, 마음은 내 몸의 주인이다. 내 몸은 영혼을 담는 그릇이다. 내 영혼은 내 몸의 주인이다. 그러면 산 사람과 죽은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사람은 내 몸이 있는 사람’이요, 신명(영혼)은‘ 내 몸이 없는 사람 ’이다. 천지신명은 육신만 없을 뿐이지 역시 똑같은 사람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육신은 없어졌지만 그 죽은 사람들의 신명(神明,영혼)은 육신이 없는 사람 노릇을 하고 있다. 내 몸은 살다가 생로병사에 의해 죽어지면 끝이 난다. 하지만 신명(영혼)은 그렇게 죽는 것이 아니다.
5천 년, 6천 년 내려오면서 사회 속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인류를 위해, 혹은 남을 위해 좋은 일 많이 한 사람 자손들은 살 기운이 있고, 조상이 대대로 내려오면서 못된 일 많이 한 사람, 남 음해하고 심술이나 부리고 남의 가정이나 파괴하고, 자기 하나 잘 되기 위해서 남 못 살게 한 조상의 자손들은, 이번에 절대로 살 수 없다.
이 세상은 윤리와 도덕이 다 매몰돼서 자식이 애비를 찔러 죽였다느니 또 부모가 새끼를 죽였다느니 하고 매거(枚擧)를 하는데, 이 세상은 갈 데까지 다 갔다. 또 성(性)이 문란해져서 눈도 코도 없는 세상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죽을 사람, 살 사람이 이미 정해져 있다. 진리를 파고 들어가 보면 그렇게 되어져 있다. 그저 쉽게 얘기해서 부정 탄 사람들, 그 사람들은 알캥이를 못 맺는다고 봐야 한다.
지금은 윤리와 도덕, 여러 가지로 해서 파탄 난 세상이다. 그런데 이번에 천지에서 사람농사 지은 걸 씨종자를 추린다.
사람은 5천 년, 6천 년 전에 처음 시조 할아버지가 다음 할아버지 또 그 다음 할아버지, 아들 손자 증손자 고손자 이렇게 해서 처음 조상 할아버지의 유전인자가 내게 와 있는 것이다. 이 씨종자라 하는 것은 절대로 바꿀 수가 없다. 억만 분지 1 퍼센트라도 바꿔질 것 같으면 그건 혈통이 바꿔진 것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백조일손(百祖一孫), 천조일손(千祖一孫), 할아버지는 백인데 손자는 하나다, 할아버지는 천인데 손자는 하나다.”라고 했다. 그저 씨종자만 남는다는 말이다. 이번에는 좋은 혈통만 살려서 후천 새 세상을 넘어가게 되어져 있다.
좋은 혈통은 조상들이 한 세상을 의롭게, 바르게 잘 산 자손들을 말한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해 붙이고, 속이고, 죽이고, 협잡질하고, 훔치고, 이렇게 해서 세상을 못 쓰게 산 자손들은 이번에 다 넘어가고, 남을 위해 봉사하고, 도와주고, 살려 주고, 덕을 베풀며 산 혈통이 좋은 혈통이다.
적악가의 자손은 여러 천 년 내려오면서 그 조상들이 나쁘게 살아서, 그 조상들한테 해를 당한 신명들이 “저런 저 나쁜 놈의 핏줄이 어떻게 열매를 맺으려고 하느냐? 그 좋은 자리를 어떻게 가냐?” 하고 방해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조상의 음덕으로 사는 길도 찾고 잘 살게 된다.
인류역사가 생겨나서 이런 세상이 백 번이 있었든지 만 번이 있었든지 간에 각자 개인에게는 자기 부모 조상이 지금의 나를 있게한 첫번째 하나님이다. 흑인종이 됐건 백인종이 됐건 황인종이 됐건, 어떤 종류의 인간이건 간에 사람은 자기 조상이 첫째 하나님이란 말이다.
왜 그러냐 하면 내 위치에서 생각을 해 볼 때, 이 대우주 천체권 내에서 가장 소중한 게 무엇인가?
대우주 천체권 내에서 가장 소중한 건 바로 나다. 그건 그럴 수밖에 없다. 내가 있음으로써, 국가도 있고 민족도 있고 사회도 있고, 하늘도 있고 땅도 있고, 미물곤충 비금주수 등 만유의 생명체가 있는 것이다. 내가 없는데 무엇이 있을 수가 있나, 세상에.
그러면 이렇게 가장 존귀한 나를 낳아준 사람은 누구인가?
나를 낳아준 그 존재, 그 뿌리가 무엇인가? 그건 내 부모,조상이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안 계셨더라면 나라는 존재가 있을 수가 없다. 사람은 여러 천 년 동안 자기 시조할아버지서부터 자자손손, 10대조 할아버지, 9대조 할아버지, 8대조 할아버지, 7대, 6대, 5대 이렇게 계계승승 유전인자를 내 몸뚱이까지 전해서, 육신을 받은 것이다.
어머니,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고조할아버지, 고조할머니, 10대조, 20대조, 제 조상이 자기의 뿌리다. 이것을 바르게 알아야 된다.
이번에는 사람도 제 뿌리, 제 조상을 찾아야 살 수가 있다. 제 조상을 망각하는 사람은 살 길을 찾을 도리가 없다. 인도(人道) 정의라 하는 것은 가정에 효도하고 국가에 충성하고 사회에 정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첫째로 자기 조상을 잘 받들어야 한다.
조상이 없이 자기가 어디서 태어났나? 조상이 바로 제 뿌리다. 또 자기 자신도 결혼을 해서 가정도 만들고 혈통도 지켜주고, 자자손손, 대를 이어야 한다.
자기 조상이 자기의 하나님이다. 자신의 뿌리, 부모 조상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을 찾는가.
탈렌트 이창훈씨가 호텔에서 본 영혼(魂)
1995년 늦은 봄, MBC 드라마 "전쟁과 사랑" 촬영차 국내 연기자들이 필리핀에 체류할 때다.
당시 주인공 역을 맡았던 이창훈씨는 유독 많은 대사를 외우기 위해 현지에서 독방을 썼다. 도착 이틀째 되던 날, 낮잠을 자던 이창훈씨는 이상한소리에 눈을 떴다.
그런데 자신을 향해 웃으며 얘길 나누는 두 소녀가 눈에 띄었다. 순간 그들을 도둑으로 생각한 이창훈씨는 침대 위에 놓여 있던 지갑 속의 돈을 확인하려 했다.
그런데, 돈을 셀 때마다 한 장씩 없어지는가 하면, 놀라서 지갑을 떨어뜨리자, 지갑이 사라져버렸다. 게다가 소녀들은 잠겨진 방문을 열지도 않고서 그냥 통과해 사라지는 게 아닌가!
밤이면 밤마다 소녀들의 혼령은 어김없이 출몰하여 이창훈씨를 괴롭혔다. 모습은 드러내지 않고서 목덜미에 불어대는 뜨거운 입김과 목소리만으로 그를 잠 못 들게 했다. 그러던 차에, 로비에 모인 연기자들도 귀신얘기로 술렁거리고 있었다.
탤런트 '전현'씨도 낮잠을 자다가 귀신을 보았다는 것. 잠을 자고 있는데 가위에 눌린 듯 숨을 쉴 수가 없어 눈을 떠보니, 웬 남자가 자신의 목을 마구 조르고 있더라는 것이다.
호텔 주인장에 따르면, 앞서 이 호텔 3층에서 웬 아버지와 딸이 묵었다가 어느 날 모두 비명횡사했다는 것이다. 그 후로 이들 혼령을 봤다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라고 한다. 출처: MBC 다큐멘터리 「이야기속으로」 중에서
[차길진법사의 영혼수첩]
과거 뉴저지 후암정사에서 올렸던 구명시식 때도 이런 일이 있었다.
미국의 한 유력 가문 며느리가 죽은 남편 영가를 천도하는 자리였다. 남편 영가가 오셨다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편 영가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당신이 죽은 다음에 내가 시아버지에게 얼마나 괄시를 받았는지 알아?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놔두고 그렇게 일찍 가면 어떡해?" 그러자 남편영가는 기가 차다는 듯 "아니, 그렇게 나를 사랑한다는 사람이 구명시식 3일 전에 다른 남자와 자고 와? 이런 자리에 올 때는 몸가짐을 좀 깨끗하게 해야 하는 거잖아."
참 전하기 민망한 말이지만 영가의 요청대로 그대로 적어서 부인에게 보여줬다. 그러자 아내는 놀라는 기색도 없이 당당하게 말했다.
"당신은 나 몰래 바람 많이 피웠잖아? 나는 당신 죽은 다음이고, 당신은 나 살아있을 때 바람 폈으니까, 쌤쌤으로 칩시다." 나는 이쪽편도 저쪽편도 들어줄 수 없어 그냥 웃고 말았는데.구명시식에서 얻는 웃음의 힘. 이런 일이 있기에 아마도 구명시식을 계속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사실 구명시식을 하다가 웃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엄숙한 자리라 속으로 웃음을 참다가 어떤 때는 배가 찢어지는 고통을 겪기도 한다.
돌아가신 영가님을 초혼하는 자리라 마냥 슬플 것 같지만 이렇게 희로애락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의식이 구명시식이다. 15년 전의 일이다.
시부모님 영가 구명시식을 올리는데, 의식이 시작되자마자 다짜고짜 며느리가 시부모님 영가에게 따졌다.
"어떻게 저희에게 이러실 수 있어요? 저희한테 재산 한 푼 남겨주신 것도 없으시잖아요! 시부모님 때문에 우리는 평생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구요. 아세요?"
아마 시부모가 며느리에게 경제적으로 섭섭하게 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약속 위반이었다.
애초에 시부모 영가를 좋은 곳으로 천도해 드린다고 해놓고 속사포처럼 영가님들을 공격하다니. 며느리는 보이지 않았겠지만 시부모 영가의 안색은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며느리가 부른다기에 힘들게 구명시식 자리까지 왔건만 오자마자 망신을 준다며 화를 내고 있었다.
영가의 말이 들리지 않는 며느리는 계속해서 인신공격을 했다. "입이 있으면 말씀을 해보세요. 자식들을 이렇게 힘들게 살게 해놓고 어쩌실 거예요!"
그때였다. 갑자기 영단에서 큼지막한 사과 하나가 공중에 붕 떠오르더니, 며느리 이마를 정통으로 가격했다. '딱!'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사람들은 기겁했다.
멀쩡한 사과가 공중으로 날아올라 며느리 이마를 때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고약한 것, 어디 어른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 너 같은 며느리가 들어왔으니 집안이 잘 될 리가 없지!" 참다못한 시부모 영가가 집어 던진 것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입 다물고 죄송하다며 바닥에 엎드렸을 텐데 이 며느리는 한술 더 떴다. "뭘 잘했다고 저를 때리세요? 아예 저기 있는 사과를 다 집어 던지시죠?"
다른 참관자들은 공포에 떨었지만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며느리는 사과를 다 집어 던지라고 난리를 치고, 또 화가 난 시부모 영가는 다른 영가들에게 원조를 요청하고.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구명시식을 정리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한(恨) 만큼 사람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업 만큼 큰 것도 없을 듯하다.
자신도 모르게 남을 한 맺히게 만들 경우, 그 업보가 자신 또는 자손에게 대대로 이어져 무고한 후손이 엉뚱한 피해를 당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당사자(후손)는 아무 죄도 짓지 않고 살아가는데 그런 일을 당하면 생을 포기할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약사인 Y씨가 바로 그랬다.
약대 졸업 후 서울 근교에서 10여 년간 자신의 약국을 운영해온 이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마흔이 넘도록 결혼을 못하고 있었다. 성실한 그에게 선도 숱하게 들어왔지만 마음이 끌리는 자리가 없었다. 이젠 그나마 간간이 들어오던 맞선자리마저 끊어진 지 오래였다.
Y씨는 ‘인연이 조금 늦게 나타나려나보다’고 마음을 느긋이 먹은 터였다.
오로지 열심히 일하며 차곡차곡 돈을 모을 분이었다. 그런 그에게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잘 아는 사람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었다. 당시 화폐로 무려 2억원이었다. 누구에게 얘기도 못한 채 끙끙 앓던 그는 그저 죽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그러다 필자의 책을 잃게 됐고 자기 집안에 자살, 사고사, 비명횡사한 친척이 많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래서 구명시식을 청한 것이다.
구명시식 현장에서 Y씨 집안 애증의 역사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전라도 갑부로 풍류를 즐기던 한량이었다. 풍류를 찾아 전국을 유람하던 할아버지는 삼례 근방에서 한 여자를 알게 됐고 그녀와 함께 춤과 노래와 사랑에 취해 몇 달을 지냈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온 할아버지를 삼례 여인이 임신 9개월의 몸으로 찾아왔다.
그러나 무슨 피치 못할 사연이 있었는지 할아버지는 그녀를 문전 박대했다.
피눈물을 흘리고 돌아선 그녀는 거리를 떠돌다 할아버지 집안을 저주하면서 굶어 죽었다. 물론 9개월 된 태아도 함께 죽었다. 바로 그 삼례 여인이 원혼이 돼, 할아버지 집안을 떠돌며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급기야 집안의 마지막 남은 남자인 Y씨까지도 자살로 몰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애증의 한(恨)이 모두 밝혀질 즈음 한 점 바람도 없는데 갑자기 구명시식 제단 위의 촛불이 꺼졌다.
몇 대를 거쳐 한(恨)을 뿌린 여인이 구명시식 영단에까지 와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었다. 몇 명을 죽음으로 이끌고 몇 억원을 사기 당하게 한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집안의 대마저 끊으려 드는 여인의 무서운 집념이었다.
세조에게 내린 현덕왕후의 저주
문종의 비(妃)이자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1418∼1441)는 1541년 단종을 출생하고 사흘만에 죽는다.
세조 즉위 후 단종의 생모라는 이유로 종묘에서 신주가 철폐되고 능은 파헤쳐져 물가로 옮겨지는 수난을 당한다. 그후 1513년(중종8년)에 복위되어 현릉 동쪽 언덕에 천장되고 신주가 종묘에 봉안된다. 이렇듯 현덕왕후는 살아있을 때보다 사후에 더 기구한 세월을 보내야 했다.
1457년(세조12년) 가을 어느 날이었다.
세조가 낮잠을 자고 있는데 꿈에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가 나타났다. 현덕왕후는 얼굴에 분노의 빛을 띠고 세조를 향하여 꾸짖었다.
“너는 참으로 악독하고 표독하구나. 내 아들 단종의 왕위를 빼앗고도 그래도 부족하여 벽지인 영월로 내쫓더니, 이제는 목숨까지 끊으려 하는구나. 네가 나와 무슨 원한이 그리 심하기에 이처럼 악착스러우냐. 이제 내가 네 자식을 살려두지 않겠다.” 그러면서 눈을 부릅뜨고 그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세조는 필사적으로 저항하여 한참 만에야 겨우 현덕왕후의 손을 뿌리칠 수 있었다. “지독한 놈! 그래도 살고는 싶은 게로구나!” 그러면서 현덕왕후는 세조의 몸에 침을 뱉고 사라졌다.
세조는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흐른 뒤였다.
세조는 반정 이후에 밤마다 잠자리가 좋지 않아 걱정하던 차에, 이런 꿈을 꾸고서 마음이 섬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얼마 후 동궁 내시가 달려와서 황급히 아뢰었다.
“전하, 동궁의 최내관이옵니다. 방금 전에 세자 마마께서 잠을 주무시다가 가위에 눌리셔서 매우 위중하시나이다.” 이 말을 듣고 난 세조가 급히 동궁에 행차해 보니 이미 세자는 목숨이 끊어져 있었다.
실로 약 한 첩 써볼 겨를도 없는 급변이었다.
세조는 맏아들의 죽음이 형수인 현덕왕후의 저주 때문이라고 여기고, 관리를 보내 현덕왕후의 능을 파헤쳐 평민의 무덤(墓)으로 만들라고 했다. 그러나 세조의 명을 받은 신하가 현덕왕후의 능을 파고 관을 꺼내려 했지만 웬일인지 관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글을 지어 제사를 지냈더니 그제야 관이 움직였다.
능에서 꺼내진 관은 34일 동안이나 그대로 방치당했다가 물가로 옮겨져 매장되었다.
한편, 그 이후 세조에게는 또 하나의 불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꿈속에서 현덕왕후가 뱉은 침을 맞은 곳에서 흉칙한 종기가 돋기 시작한 것이다.
종기는 차츰 온몸으로 퍼지더니 고름이 나면서 점점 악화되었다. 세조는 전국 방방곡곡의 명의를 불러모아 치료를 받아보았으나 신통치 않았고, 그 어떤 신약을 써 보아도 별 효험이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명산대찰을 찾아다니며 불공을 드려보기도 하지만 효험이 없었고, 결국 죽는 날까지 이 악성 피부병에 시달려야 했다.
세조의 맏아들 의경세자와 둘째아들 예종은 발이 썩는 질병으로 각각 20세에 요절한다(의경세자는 왕위에 오르지도 못한 채 급사하고, 예종은 왕위에 오른 지 1년 2개월 만에 사망).
세조의 손자인 성종 역시 소갈증을 심하게 앓다가 38세로 붕어한다. 세조의 맏아들이자 성종의 아버지인 의경세자(1438∼1457)는 단종이 붕어하기 한달 전인 1457년 9월에, 20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다.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 혼령의 살(殺)을 맞아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횡사하였다고 전한다. 그는 죽기 전에 늘 현덕왕후의 혼령에 시달렸으며, 그 때문에 병상에 누워 있을 때 21명의 승려가 경회루에서 공작재(孔雀齋)를 베풀기도 했다고 한다.
사람이 죽음의 질서에 들어가면
道典2편118장) 김송환(金松煥)이 사후(死後)의 일을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사람에게는 혼(魂)과 넋(魄)이 있어 혼은 하늘에 올라가 신(神)이 되어 제사를 받다가 4대가 지나면 영(靈)도 되고 혹 선(仙)도 되며 넋은 땅으로 돌아가 4대가 지나면 귀(鬼)가 되느니라.”
삼신과 서신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자손을 둔 신은 황천신(黃泉神)이니 삼신(三神)이 되어 하늘로부터 자손을 타 내리고 자손을 두지 못한 신은 중천신(中天神)이니 곧 서신(西神)이 되느니라.”
60년 공덕을 들이는 천상 선령신
道典2편119장)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무한한 공부를 들이나니 그러므로 모든 선령신(先靈神)들이 쓸 자손 하나씩 타내려고 60년 동안 공을 들여도 못 타내는 자도 많으니라. 이렇듯 어렵게 받아 난 몸으로 꿈결같이 쉬운 일생을 어찌 헛되이 보낼 수 있으랴.
너희는 선령신의 음덕을 중히 여기라. 선령신이 정성 들여 쓸 자손 하나 잘 타내면 좋아서 춤을 추느니라.
道典9편213장) “죽는 것도 때가 있나니 그 도수를 넘겨도 못쓰는 것이요, 너무 일러도 못쓰는 것이니라.... 각기 닦은 공덕에 따라 방망이로 뒷덜미를 쳐서 끌고 오는 사람도 있고, 가마에 태워서 모셔 오는 사람도 있느니라.
또 하늘에 가면 그 사람의 조상 가운데에서도 웃어른이 있어서 철부지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듯 새로 가르치나니 사람은 죽어 신명(神明)이 되어서도 공부를 계속하느니라. 죽었다고 당장 무엇이 되는 것은 아니니라.” 하시니라.
이치 없는 법은 없다
道典8편32장) 하루는 상제님께서 어느 마을을 지나시는데 한 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거늘 정작 제사 받는 신명은 마당을 겉돌고 다른 신명이 들어가 제사상을 받고 있는지라 상제님께서 그 신명을 부르시어 “저 사람의 날인데 어찌 네가 먹느냐?” 하시니
그가 답하기를 “저 사람이 살아생전에 저의 재산을 모두 탕진시킨 채 갚지 못하였는데 죽어서도 그 은혜를 갚지 아니하니 오늘은 비록 자기 날이라고 하나 저의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하니라. 후에 상제님께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세상에 이치 없는 법은 없느니라.” 하시니라.
자손 싸움이 선령신 싸움으로
道典4편122장) 사람들끼리 싸우면 천상에서 선령신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나니 천상 싸움이 끝난 뒤에 인간 싸움이 귀정(歸正)되느니라.
전쟁사(戰爭史)를 읽지 말라.
전쟁에서 승리한 자의 신명은 춤을 추되 패한 자의 신명은 이를 가나니 도가(道家)에서 글 읽는 소리에 신명이 응하는 까닭이니라.
道典2편26장)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부모를 경애하지 않으면 천지를 섬기기 어려우니라.
천지는 억조창생의 부모요, 부모는 자녀의 천지니라.
자손이 선령(先靈)을 박대하면 선령도 자손을 박대하느니라. 예수는 선령신들이 반대하므로 천지공정에 참여치 못하리라. 이제 인종 씨를 추리는 후천 가을운수를 맞아 선령신을 박대하는 자들은 모두 살아남기 어려우리라.”
道典2편26장) 사람이 조상에게서 몸을 받은 은혜로 조상 제사를 지내는 것은 천지의 덕에 합하느니라.” 하시니라.
道典7편19장)이제 모든 선령신들이 발동(發動)하여 그 선자선손(善子善孫)을 척신(隻神)의 손에서 건져 내어 새 운수의 길로 인도하려고 분주히 서두르나니 너희는 선령신의 음덕(蔭德)을 중히 여기라. 선령신은 그 자손줄을 타고 다시 태어나느니라.
죄를 짓고는 못 사는 것
道典8편38장) 사람이 죄를 짓고는 못 사느니라.
선천에는 죄를 지어도 삼대(三代)가 물러나면 받았으나 현세에는 그 당대로 받느니라.
죄악이 소멸되는 곳에 행복이 이르나니 너희는 모든 죄를 나에게 충심으로 고하라.
큰 죄와 작은 죄
道典9편102장)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창생이 큰 죄를 지으면 천벌(天罰)을 받고, 작은 죄를 지으면 신벌(神罰) 혹은 인벌(人罰)을 받느니라." 하시니라.
천벌 받아 구렁이로 태어난 인간
구릿골에 계실 때 하루는 성도들이 아뢰기를 "지금 마당에 큰 구렁이가 있는데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으나 이 왕뱀이 몸을 구부려 움츠리고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몸집과 길이가 세상에서 보기 드물게 큰 뱀으로 그 모습이 무엇인가 애원하는 듯합니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친히 밖으로 나가시어 구렁이를 한동안 바라보시더니 "빨리도 되었구나." 하시니라.
성도들이 아뢰기를 "저 구렁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이토록 애원하니 그 죄를 풀어 구하여 주소서." 하니 상제님께서 들으시고 "너희들의 말이 가상하도다."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죄는 제 스스로 짓고 내가 구해 주어야 하니 괴로운 일이로구나. 남의 천륜(天倫)을 상하게 하는 일이 가장 큰 죄니라." 하시거늘 이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그 구렁이가 기운을 얻은 듯이 즐거운 빛을 띠고 사라지더라.
한 성도가 여쭈기를 "사람이 큰 죄를 지으면 죽어서 구렁이가 됩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이르시기를 "하늘에 이러한 벌(罰)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道典1편42장) “이 세상을 살면서는 죄를 지어도 남 모르게만 하면 그만인 줄 알아도 죄진 사람은 천상에 가면 모든 게 다 드러난다. 죽으면 편할 줄 알고 ‘죽어, 죽어.’ 하지만 천상에 가면 모든 것이 다 무섭다. 믿으면서 지은 죄는 사하지도 못하느니라.” 하시니라.
道典2편95장) 근본을 모르는 종교 지도자들의 종말
세상 사람이 다 하고 싶어도 법(法)을 몰라서 못 하느니라.
이제 각 교 두목들이 저의 가족 살릴 방법도 없으면서 ‘살고 잘된다.’는 말을 하며 남을 속이니 어찌 잘되기를 바라리오.
공자가 알고 하였으나 원망자가 있고, 석가가 알고 하였으나 원억(寃抑)의 고를 풀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저도 모르는 놈이 세간에 사람을 모으는 것은 ‘저 죽을 땅을 제가 파는 일’이니라.
수운가사에 ‘기둥 없이 지은 집이 어이하여 장구하리. 성군취당(成群聚黨) 극성(極盛) 중에 허송세월 다 보낸다.’ 하였느니라. 속언에 ‘죄는 지은 데로 가고 공은 닦은 데로 간다.’는 말이 참으로 성담(聖談)이니 잘 기억하라.
천하에 무서운 죄
道典2편96장) 항우가 25세에 출세하였으면 성공하였을 것인데, 24세에 출세하였으므로 성공을 보지 못하였느니라.
대장부 출세하는 법이 대세를 모르면 봉사가 지팡이 잃은 것과 같으니 일찍 작파하여야지, 대세도 모르는 놈이 출세한다고 나서면 낮에 난 도깨비 같고
제가 알고 남을 가르쳐야지 저도 모르는 놈이 남을 속이고 사람을 모으다가는 제가 먼저 죽으리라.
천하에 무서운 죄는 저도 모르는 놈이 남을 모아 수하(手下) 중에 넣는 것이니 그 죄가 제일 크니라.
만고명장 전명숙의 공덕
道典4편11장) 전명숙(全明淑)이 도탄에 빠진 백성을 건지고 상민(常民)들의 천한 신분을 풀어 주고자 하여 모든 신명들이 이를 가상히 여겼느니라. 전명숙은 만고(萬古)의 명장(名將)이니라.
벼슬 없는 가난한 선비로 일어나 천하의 난을 동(動)케 한 자는 만고에 오직 전명숙 한 사람뿐이니라. 세상 사람이 전명숙의 힘을 많이 입었나니 1결(結) 80냥 하는 세금을 30냥으로 감하게 한 자가 전명숙이로다. 언론이라도 그의 이름을 해하지 말라.
우리 일은 남 잘되게 하는 공부
道典2편29장) 우리 일은 남 잘되게 하는 공부니 남이 잘되고 남은 것만 차지하여도 우리 일은 되느니라.
전명숙(全明淑)이 거사할 때에 상놈을 양반 만들어 주려는 마음을 두었으므로 죽어서 잘되어 조선 명부대왕(冥府大王)이 되었느니라.
동방 신교문화의 두 성인, 신농씨와 태공의 은혜
신농씨(神農氏)가 농사짓는 법과 의술로 천하 만세를 윤택하게 하였고 태공(太公)이 병법과 정치로써 천하 만세에 은혜를 주었나니 이제 하늘과 땅이 성공하는 가을철을 당하여 천지의 모든 신명들이 그들을 높이 받드느니라.
마테오 리치 대성사의 큰 공덕
道典2편30장) 이마두(利瑪竇)는 세계에 많은 공덕을 끼친 사람이라. 현 해원시대에 신명계의 주벽(主壁)이 되나니 이를 아는 자는 마땅히 경홀치 말지어다.
그러나 그 공덕을 은미(隱微) 중에 끼쳤으므로 세계는 이를 알지 못하느니라.
서양 사람 이마두가 동양에 와서 천국을 건설하려고 여러 가지 계획을 내었으나 쉽게 모든 적폐(積弊)를 고쳐 이상을 실현하기 어려우므로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만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틔워 예로부터 각기 지경(地境)을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들로 하여금 거침없이 넘나들게 하고
그가 죽은 뒤에는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돌아가서 다시 천국을 건설하려 하였나니 이로부터 지하신(地下神)이 천상에 올라가 모든 기묘한 법을 받아 내려 사람에게 ‘알음귀’를 열어 주어 세상의 모든 학술과 정교한 기계를 발명케 하여 천국의 모형을 본떴나니 이것이 바로 현대의 문명이라.
서양의 문명이기(文明利器)는 천상 문명을 본받은 것이니라.
하늘의 모든 신성과 부처와 보살이 하소연하므로
그러나 이 문명은 다만 물질과 사리(事理)에만 정통하였을 뿐이요, 도리어 인류의 교만과 잔포(殘暴)를 길러 내어 천지를 흔들며 자연을 정복하려는 기세로 모든 죄악을 꺼림 없이 범행하니
신도(神道)의 권위가 떨어지고 삼계(三界)가 혼란하여 천도와 인사가 도수를 어기는지라
이마두가 원시의 모든 신성(神聖)과 불타와 보살들과 더불어 인류와 신명계의 큰 겁액(劫厄)을 구천(九天)에 있는 나에게 하소연하므로 내가 서양 대법국 천개탑에 내려와 이마두를 데리고 삼계를 둘러보며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東土)에 그쳐
중 진표(眞表)가 석가모니의 당래불(當來佛) 찬탄설게(讚歎說偈)에 의거하여 당래의 소식을 깨닫고 지심기원(至心祈願)하여 오던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하여 30년을 지내면서
최수운(崔水雲)에게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하였더니
수운이 능히 유교의 테 밖에 벗어나 진법을 들춰내어 신도(神道)와 인문(人文)의 푯대를 지으며 대도의 참빛을 열지 못하므로 드디어 갑자(甲子 : 道紀前 7, 1864)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辛未 : 道紀 1, 1871)년에 스스로 이 세상에 내려왔나니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수운가사(水雲歌詞)에서 말하는 ‘상제’는 곧 나를 이름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