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창작 강의 / 박정규 (시인)
시론 9. / 시적 재료 오늘은 무엇을 쓸까에 대한 고민을 헤아려보고자 한다.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서 시인에게는, 쓰고자하는 그 ‘무엇’이 반드시 필요하다. 흔히 시인이 찾아 헤매는 그 ‘무엇’을 시적 재료(詩的 材料)라고 한다. 그러면 시적재료로서는 뭐가 좋을까. 어? 귀가 솔깃해지셨군?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내공이 깊은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다 보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겠다.
결론부터 먼저 말해주겠다. 어떤 상황, 사물,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현상들까지 다 시적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는 어떤 세계(앞에 놓인 상황과 사물, 즉 다시 말해서 대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발견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인식과 발견을 가장 합당하고 적절한 언어로 표현해 놓은 것이 詩다. ‘셀리’는 말하기를, ‘시는 세계의 감춰진 부분으로부터 베일을 벗겨내는 것이며, 눈에 익숙한 사물을 처음 보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고 했다. 이는 정말 대단한 통찰력이라고 여겨진다. 높은 경지(많은 경험, 思考의 훈련, 대상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깊은 인식)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말이라는 생각이다. 시 창작은 사물과 세계, 그리고 우주에 깃들여 있는 미지의 것들을 발견해내는 것이다. 그것을 자기만의 시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석된 인식을 자기만의 언어로 창조해내는 작업이다. 시인은 이 작업을 통해서 사물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시를 쓰면서 사물과 대상에 대한 자기만의 깊은 통찰력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그 결과로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이런 부분을 설명하는 말이 지금은 재미없고 어쩌면 이해하기에도 좀 어렵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집중하기를 권한다. 독서백독 부불통지(讀書百讀 無不通知)라고 했다. 백번 읽으면 통하지 않는 뜻이 없다는 말이다. 자꾸 읽다 보면 이 글을 쓰는 까닭을 알 수 있으리.) 우리는 사물의 세계가 끝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유한성은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인식작용 속에서는 마치 끝이 없는 것으로 보인단 뜻이다. 그렇게 본다면 사물이 지닌 미지의 부분도 끝이 없을 수밖에. 여기에 동의하시는가. 덧붙여보겠다. 여태껏 많은 시인이 있었다. 하지만 사물의 본질의 끝에 닿은 사람은 없어 보인다. 다만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한 사람만 있었을 뿐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시를 쓰기 위해서 어떤 사물을 관찰하며 거기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다고 하자. 그럴 때 인식 주체자인 시인과, 사물을 관찰하며 발견하게 된 새로운 의미(새로운 경험) 사이에는 서로 관계성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 관계성은 표현되어야 한다. 표현되는 언어가 가장 합당하고 적절한 것으로 나타났을 때 시가 된다는 말이다. 이 부분을 잘 이해했으리라고 믿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