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팔 복 말씀 1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5:3-6)
① 한 바보가 '삶이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던 중 어느 날 시장을 돌아다니다가 눈이 번쩍 떠졌어요! 어느 음식점 문에 ‘삶은 돼지’라고 써있는 거예요! '삶이란 무엇인가?' 고민하고 있었는데 '삶은 돼지'라고 하니 진정 삶이란 돼지인가요!
② 여러분, 삶은 복이에요! 힘들고 어려워도 삶은 복이에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크리스찬이에요! 그런데 삶이 복이 아니라 고통이 되어가는 것은 다음 세 가지가 없어서예요! 정직과 온유와 연민! 정직하지 못하고 온유하지 못하고 연민을 갖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삶이 고통스러워지는 거예요! 모두가, 아니 과반수가 정직하고 온유하고 연민을 갖는다면 그 사회에서의 삶은 복인 거예요! 우리가 함께 기도할 내용이죠!
③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를 ‘산상수훈’이라고 해요! 산 위에서, 그렇다고 산꼭대기는 아니에요! 산 중턱에서 예수님이 회중들을 내려다보시면서 들려주신 교훈들이에요! 바로 그 산상수훈의 시작이 팔복 말씀이에요! 그런데 여덟 가지를 한번에 기억하기 어렵기 때문에 네 가지씩 두 번에 걸쳐서 말씀드리려고 해요!
④ 첫째,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5:3) 아멘! 여러분, 고기를 잘 구워서 맛있게 먹으려면 한쪽으로만 구워서는 안 되고 뒤집어서 다른 쪽도 잘 구워야 하잖아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맛있게 먹으려면 순서를 뒤집어서도 읽을 줄 알아야 해요! ‘천국을 소유하려면 심령이 가난해야 하고 결국 그가 복이 있도다!’ 아멘! 여기에서의 가난은 생활이 가난하다는 뜻만이 아니에요! 가난한 사람이라고 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이에요!
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도움으로만 살 수 있다고 고백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하며 의지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런 고백적인 자세는 실제로 가난한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가능하죠! 현실적으로 부자는 그러한 고백을 진지하게 하기가 매우 어려워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그렇게도 어렵다고 예수님도 말씀하셨죠!
⑥ 그래서 말씀인데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씀은 간단하게 말해서 ‘겸손’이에요! “나는 죄인입니다”를 고백하는 사람이에요! 아무리 잘 났어도 자기가 죄인임을 아는 사람은 겸손해요! 그런데 그 죄가 용서 받았어요! 그래서 또한 감사해요! 결국 겸손한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에요!
⑦ 한편 겸손이 진정 겸손으로 느껴지는 데에는 능력이 보여져야 해요! 아무 능력 없는 사람이 겸손해봐야 누가 그것을 겸손이라고 하겠어요!? 비굴이라고 할 거예요! 능력은 갖추되 자기의 죄인됨을 인정하고 또 그 죄가 용서 받았음을 믿고 감사하는 것이 겸손인 거예요! 그러면 그는 천국을 소유해요! 할렐루야!
⑧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이 있어요! 천국은 우리가 장차 가야할 곳이지만 현재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아름답고 눈부신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면 흔히들 하는 말 있죠! ‘여기가 천국이구나!’ 그런데 인간에게 있어서 최고의 만족감은 창조주 하나님 품 안에 있는 거예요! 할렐루야! 아기들에게 있어 최고의 만족감은 엄마의 품이듯이 말이죠!
⑨ 둘째,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5:4) 아멘! 위로는 애통하는 자에게 필요한 것이고 결국 위로 받는 자가 복이 있죠! 그런데 여기에서의 애통은 죄에 대한 회개의 슬픔이라고 해석하기도 하고 악의 세력에게 의인이 고난을 겪고 있는, 이 악한 세대에 대한 슬픔이라고도 해석하는데 둘 다 맞아요!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자기의 허물과 죄 때문에 애통해하고 또 부도덕한 이 사회에서 슬픔과 고통 가운데 살면서 애통해해요!
⑩ 그러나 그가 위로를 받는 것은 결국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 애통에 대해 위로를 받아요! 그래서 복이 있다는 거예요! 성경은 이 사실을 여러 곳에서 증거하고 있어요! 대표적으로 시편 37편과 73편을 말할 수 있어요!
⑪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시37:1-2) 아멘! “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하리니 악인의 미래는 끊어질 것이나 의인들의 구원은 여호와로부터 오나니 그는 환난 때에 그들의 요새이시로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도와 건지시되 악인들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까닭이로다.”(시37:38-40) 아멘!
⑫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시73:2-3.17-19) 아멘!
⑬ 한편 ‘위로하다’는 단순히 말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상황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구원하는 행위를 의미해요! 이렇게 역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상황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위로’의 약속은 예수님의 제자들로 하여금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게 했어요! 오히려 고난의 상황은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돼요! 할렐루야!
⑭ 저의 경우를 말씀드리자면 서울 강남에 있는 제법 큰 교회에서 부목사 사역을 하면서 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대구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IMF를 겪어가면서도 어렵게 교회를 붙들고 한 영혼이라도 사랑하며 기도하며 사역하면서 받은 은혜 그리고 먼 길을 달려와 청년 여러분을 만나서 군선교하며 받은 은혜를 비교해보면 하나님의 위로는 개척교회와 군선교에서 크게 받을 수 있었어요!
⑮ 잠깐 유머,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낀 두 노처녀가 돈을 모아 시골에 집을 마련하고 양계장을 운영하려고 축사도 준비했어요! 그리고 닭을 사러 가서 암탉 300마리와 수탉 300마리를 주문했어요! 그런데 닭 장수가 고개를 갸우뚱해하며 이렇게 말했어요! “양계장을 운영하시려는 모양인데 암탉은 그렇다 치더라도 수탉은 그렇게 많이 사실 필요 없어요!” 그러자 그 두 노처녀가 한 목소리로 말하기를 “우리는 짝 없이 혼자 산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잘 알고 있어요!”
⑯ 이제 세 번째와 네 번째 복을 말씀드릴텐데 셋째,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 아멘! 온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히브리어 ‘아나브’는 특히 시편에서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을 말할 때 자주 사용돼요! 그리고 하나님은 이 겸손한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세요! 아멘!
⑰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손에 잘 길들여진 후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어요! 그래서 말씀인데 ‘온유’는 하나님의 손에 잘 길들여졌을 때 주어지는 성품이에요! 결국 예수님을 가리키는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존엄한 권리를 포기하고 낮아져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이신 거예요! 그러자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셨어요!(빌2:9-11) 할렐루야!
⑱ 결국 하나님을 생각하며 잘 참는 자가 최종적으로 승리해요! 그런데 보세요! 현 세상의 가치관이 완전히 뒤바뀌는 축복이에요! 이 세상에서는 자기 권리를 포기하는 ‘온유한 사람’이 땅을 소유할 수 없어요! 없는 권리는 부정하게라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땅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이에요!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이웃을 위하여 자기 권리를 포기하는 그러한 사람만이 ‘땅’을 가져요! 그러므로 이 땅은 현세적인 토지를 의미하지 않아요! 온유한 사람에게 약속된 땅은 없어질 땅이 아니라 없어지지 않을 ‘새 땅’ 곧 천국이에요!
⑲ 넷째,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5:6) 아멘! 의롭게, 즉 하나님께 정직하고 사람에게 착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 걱정 없이 평안하고 만족하며 살게 돼요! 그래서 복이 있어요! 배부르다는 것은 잘 먹어서 또 소원 성취해서 얻게 되는 만족감이 아니에요! 그런 만족감은 또 배고파요!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 뭐 그런 유행 멘트가 있죠! 진정한 만족함은 하나님께 정직하고 사람에게 착하게 살고자 할 때 주어지는 복임을 잊지 말아야 해요!
⑳ 하늘로부터 오는 ‘구원’을 사모하는 사람은 감나무 아래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피동적인 사람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복종하는 의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기다림’과 ‘노력’은 서로 구분은 되지만 별개일 수는 없어요! 진정한 기다림은 성취를 희망하며 노력하는 자세예요! 의에 허기지고 목마른 사람은, 구원과 정의는 최종적으로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믿을 뿐만 아니라 그 믿음에 근거해서 이 세상에서 정의로운 질서와 권리를 관철하여 구원의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㉑ 그리고 진정한 배부름은 정의로운 사회에서만 가능해요! 빈부의 격차가 심한 불의한 사회에서는 상대적인 빈곤이 인간을 배고프게 해요!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평하게 분배하여 주신 하나님의 배려(출16장)가 정의로운 사회에서의 진정한 배부름이 무엇인지를 보여줘요! 믿음으로 의로운 자신과 사회 질서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이 참된 배부름이 주어질 거예요!
㉒ 이제 말씀을 정리하려고 해요! 그저 공짜로 많은 돈이 생겨서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옷도 사고 쾌락도 사게 되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들을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이 아니에요! 우선 자기의 죄인됨을 알고 겸손하고 또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애통해 하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잘 참아 온유함을 드러내고 하나님께는 정직하고 사람에게는 착하게 살아서 의를 드러낼 때 그가 바로 복이 있다고 말씀하세요!
㉓ 제가 아는 역대 별 넷 장군 중에 기독교인인 분들이 여럿 계시는데 그분들의 공통점은 첫째,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해요! 나 잘나서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있게 하셨다고 간증해요! 둘째, 기도를 꾸준히 해요! 새벽기도도 쉬지 않아요! 물론 예하 부대가 평안하기를, 아무 사고가 없기를 위해 기도할 수밖에 없겠죠! 그런데 그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는 것은 자기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지켜주심을 기도하는 거예요! 세째, 온유해보여요! 이미 자기의 한계와 죄성을 인정했어요! 그리고 애통해할 줄 알아요! 그러니 그 모습이 더욱 겸손해보이고 또 온유하게 비춰져요!
㉔ 이제 본문 말씀을 다시 읽고 설교를 마칠게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