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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한 삶2-12. 코로나 팬데믹, 실패를 축하하라
1970년대, 세계 컴퓨터 산업을 주름잡던 기업가 중에 케네스 올센이라는 사람이 있다. 미국의 컴퓨터 회사인 디지털 이퀴프먼트를 설립했는데, 이 당시만 해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상업용 컴퓨터의 독점권은 이 디지털 이퀴프먼트가 갖고 있었다. 지금으로 치자면 빌 게이츠나 스티브잡스를 능가하는 영향력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케네스 올센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독자들에게도 디지털 이퀴프먼트라는 회사는 생소하게 들릴 것이다.
한창 때의 그는 미래를 다음과 같이 예견했다고 한다.
“다가올 미래에 절대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을 시장이 있다. 바로 PC(퍼스널 컴퓨터) 시장이다. 컴퓨터는 그 자체로 상업용이다. 개인이 컴퓨터를 가지고 있을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은가.”
지금 들으면 코웃음이 나는 어리석은 예측이다. 지금 우리는 집집마다 개인마다 컴퓨터 하나씩 소유한 세상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최고의 성공을 거둔 그가 이처럼 엉뚱한 예견을 내놓은 탓에 당대 최고의 기업이었던 디지털 이퀴프먼트는 역사 속으로 조용히 사라지고 말았다.
미래는 상상 이상의 속도로 변화한다. 그러나 그것을 민감하게 느끼고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스페인의 조르디 쿠아드박 교수와 미국 하버드대의 댄 길버트 교수는 미래 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연구했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지난 10년간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가?”, “또, 앞으로 다가올 10년 동안 세상이 얼마나 바뀔 것 같은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분석한 것이다.
모든 연령대에서 공통적으로 미래 10년간 다가올 변화가 지나온 10년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낮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역시 사람들은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습성이 있었나 보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변화를 특별히 싫어하는 부류가 존재했다. 나이가 많을수록, 가진 게 많을수록 그동안 큰 성공을 이룬 사람일수록 변화의 폭을 적게 예측한 것이다. 그들의 머릿속엔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아. 그러니 내 업적 또한 쉽게 변하지 않을 거야’라는 믿음이 강하게 자리 잡은 것이다.
연구 결과를 증명이라도 하듯 한 시대를 대표하는 성공 신화의 주인공들은 어이없는 미래를 당당하게 예견하곤 했다. 80년대의 빌 게이츠는 “640KB면 모든 사람에게 충분한 메모리 용량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고, 미국 특허청장 찰스 듀엘은 1989년에 “인간이 발명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발명되어 이제 더 이상 발명할 것이 없다.”라고 단언했다. 라디오 개발의 후견인이자 영국 체신부의 최고 엔지니어 윌리엄 프리스는 “수많은 하인들이 메신저 역할을 하는 영국에는 전화기가 필요하지 않다.”라고 자신 있게 밝혔다. 2000년대를 사는 우리로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러나 성공에 취해 바보 같은 대처를 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직전의 큰 성공은 미래를 과소평가 하게 마련이니까.
‘마지노선’이란 단어를 들어봤을 것이다. 절대 넘을 수 없는 마지막 선이란 의미로 일상에서 많이 쓰인다. 실제로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가 만든 요새를 말한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뼈아픈 패배를 경험한 독일군은 전쟁 후 강력한 탱크를 제작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그리고 그 탱크를 이용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압승을 거둔다. 그러나 1차 대전에서 성공을 거둔 유럽 연합군의 생각은 달랐다. 특히 독일과의 전투에서 전승을 거둔 프랑스의 장교들은 이렇게 예견하기까지 했다. “앞으로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탱크와 비행기는 무기로 사용되지 않을 것이다.”
그 예견에 따라 프랑스군은 탱크가 아닌 다른 것을 준비했다. 프랑스와 독일 국경선에 공사비만 160억 프랑이 넘는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로 요새를 세운 것이다. 이 콘크리트 덩어리의 이름이 바로 ‘마지노선’이다. 프랑스군은 이 마지노선이 그 누구도 넘지 못하는 완벽한 방어벽이라 자부했다. 하지만 결과는 싱겁고도 처참했다. 독일은 프랑스로 곧장 쳐들어오지 않고 벨기에를 거쳐 프랑스를 침공해 버린다. 마지노선을 우회하여 들어온 탓에 최후의 방어선은 무용지물로 전락한 것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막상 중요한 교훈은 성공이 아닌 실패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패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무시하곤 한다.
위대한 업적을 이룬 위인들의 이야기는 책으로 만들어지지만 실패한 이들에 대한 책은 찾을 수 없다. 서점에 가도 성공 스토리를 다룬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지만 실패 에피소드를 엮은 책은 보이질 않는다. SNS에도 잘 나가는 순간의 기록은 넘쳐난다. 그러나 실패한 이야기는 꽁꽁 숨긴다.
시카고대 부스 경영대학원 아옐렛 피시바흐 교수 연구진은 ‘실패’를 주제로 연구를 진행했다. 이들의 논문을 읽어보면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멀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글에 success라는 단어를 치면 12억 8천만 개의 결과가 나오지만 failure를 검색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5억 5천 3백만 개밖에 나오지 않았다.
부정적인 소식을 주로 다루는 신문이나 뉴스는 다르지 않을까? 그러나 뉴욕타임즈의 기사를 모두 조사해 보아도 성공에 관련된 소식이 실패 소식보다 거의 두 배 이상 많았다고 한다. 승자와 패자가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스포츠 섹션도 마찬가지. 이겼다는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왔으며 패배에 대한 기사는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살다 보면 성공은 어쩌다 한 번이고, 거의 대부분이 실패의 연속인데 어째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연구진은 이 비밀을 밝히기 위해 미스테리 상자라는 이름의 심리학 실험을 진행했다.
영국의 온라인 플랫폼인 프롤리픽을 통해 100명의 실험 참가자를 모집하고, 한 명씩 따로 만나 세 종류의 상자를 보여 주었다.
첫 번째 상자 안에는 80센트가 들어 있다. 이 상자를 고르면 참가자는 우리 돈으로 약 800원을 딸 수 있다. 두 번째 상자에는 20센트가 들어 있다. 고르는 즉시 200원을 갖게 되는 상자다. 마지막 상자는 반대로 1센트를 잃는 상자다. 그 상자를 선택하면 참가자는 10원을 잃게 된다.
연구진은 참가자에게 세 가지 상자를 보여 주고 그중에서 두 가지를 고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실험을 위해 첫 번째 상자는 미리 선택할 수 없게 조작을 해 두었다. 참가자가 어떤 상자를 고르든 200원을 벌거나 10원을 잃게 되는 일종의 몰래 카메라인 셈이다.
실험은 지금부터다. 상자를 고르고 결과를 확인한 참가자에게 연구자가 묻는다.
“다음 참가자가 유리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이 상자 중 하나의 위치를 알려 줄 수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상자를 알려 주시겠습니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20센트를 딸 수 있는 상자의 위치를 알려 주겠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이게 정말 최선의 선택일까? 1센트를 잃는 상자의 위치를 알려 주는 게 낫지 않을까? 그 위치를 알려 주면 다음 사람은 세 번째 상자를 선택에서 배제할 것이다. 그 덕에 80센트를 벌거나 20센트를 벌 수 있다. 하지만 20센트를 따는 상자 위치를 알려 주면 1센트 잃는 상자를 고를 수도 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실패에 해당하는 위치를 공유하는 게 이익인데도 사람들은 굳이 성공을 전달하고 싶어 했다.
실험은 계속되었다. 이번에는 당신이 제공한 정보로 인해 다음 참가자가 좋은 결과를 내면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20센트를 딴 상자 위치만 알려 주고자 했다. 이번에는 실험을 기다리는 다음 참가자에게 물었다. ‘어떤 상자의 위치를 알고 싶나요?’ 그들 역시 ‘20센트가 들어 있는 상자 위치’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는 성공과 실패에 대한 사람들의 명백한 심리를 읽을 수 있는 실험이다. 실패의 경험을 나누는 것이 분명한 이득임에도 정작 듣고 싶은 것은 화려한 성공 이야기다. 실패담은 경험한 사람도 알려 주기 싫고, 듣는 입장에서도 피하게 된다.
다시 제2차 세계대전 이야기를 해 보자. 영국군은 독일군과의 전투를 위해 100대의 전투기를 출격시켰다. 그중 50대 정도는 살아 돌아왔다. 물론 곳곳에 무수한 총탄 자국을 남긴 상태였다. 영국군은 다음 전투에 대비하여 총탄 구멍이 난 위치를 열심히 보완하고 강화했다. 꼼꼼히 재정비를 해서 내보냈음에도 다음 전투 역시 절반밖에 돌아오지 못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생각해 보자. 다시 돌아온 50대는 일정 부위에 총탄을 맞았는데도 멀쩡히 살아 돌아왔다. 그렇다면 그 부위는 굳이 보강할 필요가 없는 게 아니었을까? 돌아오지 못한 전투기가 어느 부위를 맞고 추락했는지가 중요한 것이었다.
영국군은 뒤늦게 격추된 비행기의 잔해를 수거하여 살펴보았다. 역시나 미처 발견하지 못한 치명적인 약점 부위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곳을 보강한 후에야 생환율을 높일 수 있었다. 실패는 성공보다 중요하다. 실패를 직면할 때 비로소 우리는 배울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유래 없는 팬데믹으로 모든 것이 실패했다고 고백한다. 꼼꼼하게 계획했던 것들은 수포로 돌아가고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덧없이 날려 버리기도 했다. 거리의 점포들이 문을 닫았고 오래 준비해 온 사업이 망했다. 많은 개인과 기업들이 미처 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감당하기 힘든 좌절을 경험하고 있다. 아프고 힘든 시절이다. 그리고 그만큼 많은 이들이 고민하고 질문한다.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을까?’
나는 이분들에게 감히 실패를 소중하게 받아들이라고 말씀 드린다. 뛰어난 바둑기사는 대국이 아닌 복기에서 결정된다. 잘못된 결과가 나온 후, 어떻게 기록하느냐가 이기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다. 큰 실패를 맞이했다면 주저하지 말고, 기다리지 말고, 지금 당장 기록으로 남기고, 비슷한 사례를 검색하여 공부하자.
아울러 당장 큰 성공을 거둔 사람에게 배우지 말라고 조언 드린다. 그보다는 실패를 경험한 이들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우연히 피해갔던 본질적 약점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누구나 실패도 하고 성공도 한다. 중요한 것은 성공은 ‘기술’하고 실패를 ‘설명’하는 태도다. 기술은 있는 그대로 열거하거나 기록하여 서술하는 것을 말한다. 설명은 상대방이 잘 알 수 있도록 밝혀 말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공 이야기를 들려줄 때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그때 내가 정말 열심히 노력했지. 잠도 안 자고 말이야.”라며 자랑이 시작된다. 반대로 실패담을 이야기할 때는 자기는 쏙 빠진다. “그때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로 시작하며 배경 요인을 탓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반대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좋은 스승이 될 것이다. 성공에 있어서는 “그때 내가 참 운이 좋았어.”라며 주변 요인을 ‘기술’하고 실패담에 앞서 “그때 내 문제가 뭐였나면 말이야…”라며 나를 주인공으로 삼아 깊이 있게 ‘설명’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겸손함이 아니라 원인과 결과를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의 차이다.
쓰라린 실패에 대해 누구나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 멋지게 나누고 축하할 수 있는 분위기, 상대의 실패를 조롱하거나 처벌하지 않고 소중한 경험으로 대우해 주는 지혜를 갖고 있는 조직이라면 분명 성장할 것이며 어느 순간 성공 또한 맞이할 것이다. 우리가 우러러 보는 누군가의 업적도 모두 지난날의 실패에서 시작되었다. 코로나 팬데믹, 지난 실패를 소중하게 바라보고 축하하는 기회로 삼으면 좋겠다. 실패는 우리의 데이터베이스다.
*위 글은 고려대학교 심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교에 심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인지심리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아트 마크먼 교수의 지도하에 인간의 판단, 의사결정, 문제해결 그리고 창의성에 관해 연구하였고, 현재는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면서 아주대학교 창의력연구센터장을 지냈고 게임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으면서 대학교 각종 교육기관, 기업에서 왕성하게 강연하고 있고, ‘어쩌다 어른’, ‘세바시’, ‘책 읽어 드립니다’, ‘나의 첫 사회생활’ 등 다수의 프로그램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게 있는 “김경일”교수의 저서 ‘적정한 삶’ 제2장 ‘비대면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들’ 중 일부를 옮겨본 것입니다. 그 외 저자의 저서로는 “지혜의 심리학”, “이끌지 말고 따르게 하라”, “어쩌면 우리가 거꾸로 해왔던 것들”, “십 대를 위한 공부사전” 등이 있고, 역서로는 “혁신의 도구”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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