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전례
도미니코 성인은 1170년 스페인 북부 지방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성덕을 쌓는 데 몰두하던 그는 사제가 되어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열정적인 설교로 사람들을 회개의 길로 이끌었다. 도미니코 사제는 1206년 설교와 종교 교육을 주로 담당하는 도미니코 수도회를 세우고 청빈한 삶과 설교로 복음의 진리에 대한 철저한 탐구를 강조하였다. 1221년에 선종한 그를 1234년 그레고리오 9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말씀의 초대
에제키엘 사제에게 주님의 말씀이 내리자, 그는 주님 영광의 형상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임금의 자녀들은 성전 세를 면제받지만 사람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그것은 주님 영광의 형상처럼 보였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1,2-5.24-28ㄷ
제삼십년 넷째 달 2 초닷샛날, 곧 여호야킨 임금의 유배 제오년에,
3 주님의 말씀이 칼데아인들의 땅 크바르 강 가에 있는,
부즈의 아들 에제키엘 사제에게 내리고,
주님의 손이 그곳에서 그에게 내리셨다.
4 그때 내가 바라보니, 북쪽에서 폭풍이 불어오면서,
광채로 둘러싸인 큰 구름과 번쩍거리는 불이 밀려드는데,
그 광채 한가운데에는 불 속에서 빛나는 금붙이 같은 것이 보였다.
5 또 그 한가운데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모습은 이러하였다.
그들은 사람의 형상과 같았다.
24 그들이 나아갈 때에는 날갯소리가 들리는데,
마치 큰 물이 밀려오는 소리 같고
전능하신 분의 천둥소리 같았으며,
군중의 고함 소리, 진영의 고함 소리 같았다.
그러다가 멈출 때에는 날개를 접었다.
25 그들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서도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다가 멈출 때에는 날개를 접었다.
26 그들의 머리 위 궁창 위에는 청옥처럼 보이는 어좌 형상이 있고,
그 어좌 형상 위에는 사람처럼 보이는 형상이 앉아 있었다.
27 내가 또 바라보니, 그의 허리처럼 보이는 부분의 위쪽은
빛나는 금붙이와 같고, 사방이 불로 둘러싸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허리처럼 보이는 부분의 아래쪽은 불처럼 보였는데,
사방이 광채로 둘러싸여 있었다.
28 사방으로 뻗은 광채의 모습은,
비 오는 날 구름에 나타나는 무지개처럼 보였다.
그것은 주님 영광의 형상처럼 보였다.
그것을 보고 나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복음
<사람의 아들은 죽었다가 되살아날 것이다.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받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7,22-27
제자들이 22 갈릴래아에 모여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슬퍼하였다.
24 그들이 카파르나움으로 갔을 때, 성전 세를 거두는 이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었다.
25 베드로가 “내십니다.” 하고는 집에 들어갔더니
예수님께서 먼저, “시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서 관세나 세금을 거두느냐?
자기 자녀들에게서냐, 아니면 남들에게서냐?” 하고 물으셨다.
26 베드로가 “남들에게서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그렇다면 자녀들은 면제받는 것이다.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일반 전시실에서 그림 한 점이 없어졌습니다. 난리가 났지만 그림의 행방을 알 수는 없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서야 범인이 잡혔습니다. 이탈리아 사람으로 그는 이렇게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이 그림의 화가는 이탈리아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 그림은 이탈리아의 것이다.”
이 도난 사건으로 인해 되찾은 그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대단해졌습니다. 그래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이 그림이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입니다. 이 사건 전에는 그렇게 관심이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눈썹도 없는 여인의 초상화, 그러나 여기에 스토리가 생기면서 사람들은 이 그림을 다시 보게 되었고, 의미를 찾게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남을 쫓아가며 사는 것 역시 스토리라고 할 수 있지만 이는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남과 다른 나만의 멋진 스토리가 이 세상을 사는 의미를 담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떤 스토리를 만들어야 할까요? 주님께서는 사랑을 말씀하셨습니다. 욕심과 이기심으로 가득 찬 곳에서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는 사랑을 실천하는 가장 멋진 스토리를 만들라고 하십니다. 그런 스토리를 만들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일행이 카파르나움에 이르렀을 때, 성전세 납부에 관한 문제가 제기됩니다. 성전세는 성전 유지와 희생 제물의 비용을 충당하는 것으로, 20세 이상의 이스라엘 사람이 매년 내는 인두세였습니다. 그러나 성전 주인이나 제관들은 납세 의무가 없었습니다. 성전은 하느님의 집이라고 했으니, 주인은 하느님이고 제관들은 그 식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하느님의 아드님이기 때문에 성전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그 식구라고 할 수 있겠지요. 성전세를 내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이런 일로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낚시해서 성전세를 직접 내게 하십니다.
성전세 내지 않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향한 공격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 아니라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원을 부정하는 것으로 죄의 영역에 들어설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죄의 영역에 갇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기에, 굳이 낼 필요가 없는 성전세를 내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도 구원에서 제외하지 않으려는 주님의 사랑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랑의 스토리에 우리는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스토리에 우리는 모든 믿음을 기울이게 됩니다.
사랑은 사라질 운명을 인정하면서도 영원을 믿는 고백이다(로버트 롤런드 스미스).
성 도미니코 사제.
첫댓글 새벽미사는 늘 옳습니다~^^ 오늘도 성체를 모시고 예수님과 함께 우리 인생이라는 여행을 떠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