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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을 양식을 구하던 자, 영생에 이르는 양식을 풍성히 주시다(왕하 4:38-44)
1. 오늘의 말씀 : 왕하 4:38-44
38 엘리사가 다시 길갈에 이르니 그 땅에 흉년이 들었는데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의 앞에 앉은지라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큰 솥을 걸고 선지자의 제자들을 위하여 국을 끓이라 하매
39 한 사람이 채소를 캐러 들에 나가 들포도덩굴을 만나 그것에서 들호박을 따서 옷자락에 채워가지고 돌아와 썰어 국 끓이는 솥에 넣되 그들은 무엇인지 알지 못한지라
40 이에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였더니 무리가 국을 먹다가 그들이 외쳐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죽음의 독이 있나이다 하고 능히 먹지 못하는지라
41 엘리사가 이르되 그러면 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솥에 던지고 이르되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하매 이에 솥 가운데 독이 없어지니라
42 한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만든 떡 곧 보리떡 이십 개와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그가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43 그 사환이 이르되 내가 어찌 이것을 백 명에게 주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이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44 그가 그들 앞에 주었더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먹고 남았더라
2. 시작 기도
아버지! 오늘은 CFNJ 복음생명 세미나 마지막 날입니다. 명절 끝날은 큰 날이오니 예비된 은혜를 베풀어주소서. 저녁에는 삿포로 지역의 연합기도모임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40분의 짧은 시간이오나 진리의 영으로 역사하사 참된 회개가 일어나게 하소서. 지난 월요일 CFNJ 학장과 부학장 부부와 점심을 같이했는데 그들이 코로나 진단을 받고 격리 중입니다. 그래서인지 저를 포함한 동역자들에게 몸살과 목감기 기운이 있어 고생하고 있습니다. 복음 전하는 일에 장애가 없게 하소서. 백부장은 하인의 중풍병으로 예수께 간구합니다. 예수께서 그의 집에 가서 고쳐주겠다고 하자, 그는 주님이 집에 들어오는 것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마 8:8). 다만 말씀으로 해달라고 합니다. 예수께서 이스라엘 중에 그와 같은 믿음을 보지 못하였다고 칭찬하십니다(마 8:10). 오늘도 주님은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십니다. 육신의 생각에서 더러운 것을 솟구쳐내는 자는 감히 주님을 모셔다드릴 수가 없나이다. 주께서 내 마음의 집에 들어오시는 것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오직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주소서. 오염된 영혼을 보혈로 씻어 정케 하소서. 내 영혼이 오직 주를 갈망하나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왕하 4:38-44는 두 개의 기적 이야기나 급식 기적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다룬다. 38-41절은 먹을 수 없는 양식을 먹게 하는 기적이고, 42-44절은 소수가 먹을 수 있는 양식으로 많은 사람이 배불리 먹는 기적이다.
엘리사가 길갈로 돌아왔다. 아마도 엘리사는 갈멜산에서 길갈로 온 것 같다. 이곳은 엘리사가 선지자의 제자들을 데리고 사는 곳이었다. 마침 그때 그 땅에 흉년이 들었다. 엘리사가 한 종에게 큰 솥을 걸어 놓고 선지자의 제자들이 먹도록 국을 끓이라고 하였다(38절).
흉년(기근)이라는 말속에 있는 정관사는 아마도 엘리사가 살아있을 때 겪었던 끔찍한 7년의 기근으로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8:1). 선지자의 제자들이 공동식사를 하는 것으로 보아, 이들은 오늘날 수도원과 유사하였다. 특히 길갈에서 엘리사가 공동식사를 시행한 것은 선지자의 축복을 나누어 받게 하려는 것이다(그레이).
선지자의 제자 중 한 사람이 나물을 캐려고 들에 나갔다가 들포도 덩굴을 발견하고 그 덩굴을 뜯어 옷에 가득 담아서 돌아왔다. 그는 그것들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채로 국솥에 썰어 넣었다(39절). 주석가 ‘달만’은 들포도 덩굴이 여리고 지방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강력한 완하제(변비약) 성분이 들어있는 식물이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너무 많은 양을 먹으면 치명적인 탈이 났다.
선지자의 제자들이 각자 국을 떠다 먹으려고 맛을 보다가, 깜짝 놀라 하나님의 사람을 부르며, 그 솥에 사람을 죽게 하는 독이 들어 있다고 외쳤다. “사망의 독이 있나이다”(40절). 그들이 먹은 양식은 실제로 죽음을 불러오는 독이 들어있다기보다는 평소에 먹는 음식을 곁들이지 않고 들포도 덩굴을 지나치게 많이 먹어 탈이 난 것이다. 원시 공동체에서 ‘솥 안에 사망이’라는 외침은 속히 대응조치를 취해야 하는 불길한 말이었다(그레이).
엘리사가 밀가루를 가져오라고 하여 그 밀가루를 솥에 뿌린 후에 이제는 먹어도 되니 사람들에게 떠다 주라고 하였다(41절). 그는 적어도 이 음식으로 인한 사고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그는 밀가루로써 식단의 균형을 복원시킨 것이다. 그러고 나니 정말로 솥 안에는 독이 전혀 없었다. 곧 음식은 탈이 나지 않았다.
42절에서 장면이 바뀐다.
어떤 사람이 바알살리사에서 왔다. 바알살리사는 길갈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있었다. 사울이 잃어버린 아버지의 나귀를 찾아 다닌 지역 중의 하나가 바로 살리사였다(삼상 9:4). 이 지역의 땅은 매우 기름진 곳이었다고 한다(홉스).
그 사람은 처음 익은 보리로 만든 보리빵 20개와 자루에 가득 담은 햇곡식을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지고 왔다(42절). 맏물은 여호와께 바치도록 되어 있었다(레 23:20). 그래서 엘리사는 여호와의 권위에 근거하여(43절), 바알살리사 사람이 가져온 양식을 재료로 사용할 수 있었다. 엘리사가 그것을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라고 하였다(42절). 그의 사환은 “어찌 이것을 100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주겠느냐?”라고 하였다,
그러나 엘리사가 거듭 말하였다.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이 먹고 남으리라 하셨다”(43절). 그 사환이 그것을 100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 내놓자, 여호와의 말씀대로 무리가 배불리 먹고 남았다(44절). 이 경우 남은 양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수치로 밝히지 않는다.
엘리사가 행한 두 가지 기적은 별개지만 ‘급식 기적’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통합된다. 첫 번째 기적은 먹을 수 없는 양식을 먹게 만든 기적이다. 두 번째 기적은 부족한 양식을 풍성하게 채우는 기적이다. 엘리사가 행한 두 개의 기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병이어 기적을 예시한다(요 6장). 예수는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썩을 양식을 구하는 자들에게 썩지 아니할 양식을 주셨고, 결핍의 실존인 인생에게 풍성한 생명의 떡을 주셨다.
예수께서 행하신 치병의 기적을 보고 큰 무리가 예수를 따랐다(요 6:2). 예수께서 제자 중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는가?”라고 물으셨다(요 6:5). 마태복음의 병행구에서 예수는 엘리사의 말을 인용하셨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마 14:16). 요한복음에서 빌립은 각 사람이 조금씩 받아도 200데나리온은 필요할 것이라고 대답하였다(요 6:8).
제자 중 베드로가 나서서 한 아이에게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가 있다고 말하였다(요 6:9). 물론 이것은 한 사람분의 양식으로 큰 무리를 먹이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하였다. 그래서 베드로 역시 이것이 큰 무리에게 얼마나 되겠느냐고 말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무리를 잔디에 앉게 하시고, 떡을 가져 축사하시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누어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셨다(요 6:11). 엘리사가 사환을 통해 먹을 것을 나누어준 것처럼, 예수께서 제자들을 통해 먹을 것을 나누어주셨다.
엘리사는 보리떡 20개와 채소로 100명을 먹는 기적을 행하였다. 예수께서는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이 배불리 먹는 기적을 행하셨다. 엘리사가 급식 기적을 베푼 후 양식이 남았다 예수께서 급식 기적을 베푸시고 다 배불리 먹고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요 6:13).
예수의 급식 기적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저 굶주린 백성들에게 몸의 양식을 주신 것인가? 아니면 그보다 더 중요한 영적 양식이 있는 것인가? 예수를 따르던 큰 무리는 육신의 눈으로만 보았다. 그래서 예수를 왕으로 삼고자 하였다(요 6:15). 무리는 예수가 왕으로 통치하면 적어도 먹고살 걱정은 없다는 생각에 예수께 열광하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현실 세계에서는 잘 먹고 잘살게 해주는 왕을 원한다.
그러나 예수는 무리를 뒤로 하고 혼자 산으로 떠나가셨다. 그리고 그날 밤 바다를 건너다 풍랑 만난 제자들에게 물 위를 건너가서 그들과 함께 건너편 동네인 가버나움으로 가셨다(요 6:21). 예수의 급식 기적에 대한 소문이 급속히 퍼졌다. 다른 동네들에서 사람들이 배를 타고 급식 기적이 일어난 곳으로 몰려왔다. 사람들은 예수를 두루 찾았으나 예수는 그곳에 없었다. 이윽고 무리가 예수를 찾으러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가서 예수를 만났다.
무리는 예수를 보고 반색하였으나 예수는 무리를 보고 정색하며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요 6:26). 그러면서 그들에게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썩지 아니할 양식을 위해 하라고 말씀하셨다(요 6:27).
몸을 위한 양식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썩을 양식이다. 예수께서 5천 명을 먹이신 급식 기적은 몸을 위한 썩을 양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썩지 아니할 양식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실 썩을 양식조차 없어 예수가 주시는 양식을 썩을 양식으로 알고 열광하였다.
예수께서 주시는 양식, 곧 영생으로 인도하는 양식은 ‘생명의 떡’이다. 이 떡을 먹는 자마다 결코 주리지 않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 6:35).
예수께서는 썩을 양식을 구하는 무리에게 썩지 아니할 양식을 주신다. 인간은 이생의 필요로 인하여 신을 찾는다. 그리스도인 역시 처음에는 썩을 양식, 곧 이생의 필요를 위해 예수를 찾는다. 그러나 그에게 영생으로 인도하는 복음이 들려지면, 생명의 떡으로 생명을 얻고 풍성히 누린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러 오셨고 더 풍성히 주기 위해 오셨다. 이를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누구든지 그의 죽음 안에 거하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예수께서 주시는 ‘생명의 떡’은 그의 죽음을 표상하는 그의 살과 피다. 예수가 떡을 가지고 축사하신 것은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날밤 성만찬을 예시한다(막 14;22). 아들의 살을 먹고 아들의 피를 마시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아들이 다시 살리신다(요 6:54).
아들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아들을 양식으로 먹는 자마다 아들로 말미암아 산다(요 6:57). 우리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갈 2:20b).
4. 나의 묵상
나는 영생을 알기까지 50여 평생 썩을 양식을 구하였다. 세인으로 있을 때는 내 힘으로 썩을 양식을 구하였다. 20대 중반부터 교회 생활을 하면서부터는 하나님께 썩을 양식을 구하였다. 급식 기적을 보고 예수를 왕으로 삼으려 했던 큰 무리 중에 내가 있었다. 결핍이 클수록 부르짖음도 절박하였다. 새벽마다 교회에서 부르짖는 격음은 나 자신과 신자들에게 썩을 양식을 달라는 것이었다. 설령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어느 나이 든 전도사는 자녀를 위해 기도하되, 이생의 필요를 위해 간구하였다. 어머니의 기도 덕분(?)인지 모르나 그의 딸은 성공적으로 주류 무대에 진입하였다. 남편이 전문직으로 큰 수입을 올리고, 자녀들도 무탈하게 잘 자랐다. 그러면서 교회를 한 두 번 빠지더니 아주 빠지게 되었다. 어머니 전도사가 딸에게 교회 출석을 권하였다. 그랬더니 딸이 하는 말이, 교회에서 말하는 복을 다 받았는데, 굳이 교회에 나갈 이유가 없다고 대답하였다.
신앙생활의 목적이 이생의 필요가 되면 그것이 채워질 때 언제든지 하나님께 등을 돌린다. 이것은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늘 있었던 일이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경고하셨다. 그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후 배불리 먹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고 하나님을 멸시하고 언약을 파하리라는 것이다(신 31:20).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은 그러하였다.
곰곰 돌아보니 내가 만일 썩을 양식으로 배불렀으면 어찌 되었을까? 많은 사람이 모이고 유명해지고 큰 교회를 운영했다면 영락없이 하나님께 등돌리고 내가 하나님 노릇을 했을 것이다. 게다가 전공도 경영학이니, 경영적 수완을 발휘했음이 틀림없었다. 실제로 수년간 사람의 일을 위해 그렇게 하였다. 아, 공의로 심판받고 영생에 이르는 양식을 얻은 것이 꿈꾸는 것 같다.
어제 사역을 마치고 동역자 김선교사, 이토 선교사와 셋이 교제하였다. 김선교사는 2022년 말 복음생명캠프에 와서 생명의 말씀을 듣고 이후로 생명의 교제를 하고 있다. 그가 오랜 동역자 이토 선교사에게 고백하기를, 생명을 풍성히 누리는 일상이 꿈인지 생시인지 가끔 허벅지를 꼬집어볼 때가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같은 길을 걸어온 이토 선교사가 이런 은혜를 누리기를 권하고 기도하였다. 정말이지 평생 썩을 양식을 구하던 자에게, 영생에 이르는 양식을 주셨으니 꿈꾸는 것 같다는 말이 맞다.
오늘은 CFNJ 세미나 마지막 날이다. 오전에는 세미나 마지막 강의를 하고, 저녁에는 삿포로 지역의 목회자와 성도가 두 달에 한 번 모이는 기도 모임에서 복음을 전한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성도들이 이 서신을 읽으면 그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그들도 알수 있으리라고 하였다(엡 3:4). 영생에 이르는 양식은 먼저 영으로 깨달은 자를 통해서 성도들에게 알려진다. 오전 강의와 저녁 복음 선포 시 듣는 자마다 영생에 이르는 양식을 먹고 또 먹고 풍성히 누리기를 기도한다.
5. 묵상 기도
아버지... 엘리사가 음식 준비를 명하였으나 선지자의 제자들이 먹으니 탈이 났습니다. 이는 먹지 못할 썩을 양식을 예시합니다. 엘리사가 밀가루를 솥에 넣으니 먹을만한 양식이 되었습니다. 선지자 엘리사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예시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썩을 양식을 구하는 자에게 영생에 이르는 썩지 아니할 양식을 주십니다. 또, 엘리사는 작은 음식으로 100명을 먹이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신 급식 기적을 예시합니다.
아버지여... 예수께서 궁극적으로 주시는 것은 썩지 않을 양식이요, 그가 죽음으로서 주신 생명의 떡입니다. 썩을 양식은 이생의 필요입니다. 먹어도 먹어도 주림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생명의 떡은 결코 주리지 않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썩을 양식을 위해 예수를 찾고 찾았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본 무리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썩을 양식을 먹고 사망에 거하던 자가 긍휼을 입었습니다. 썩지 아니할 양식, 곧 생명의 떡을 먹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렀습니다.
아버지... 참으로 꿈같은 일입니다. 하늘의 양식을 먹고 또 먹고 배불리 먹으니 감당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더 바랄 것도, 더 원할 것도 없습니다. 날마다 생명의 떡을 주소서. 하늘의 양식으로 배부르게 하소서. 넘치고 넘쳐 담을 넘어가게 하소서. 오늘은 CFNJ 복음생명세미나 마지막 날입니다. 저녁에는 삿포로 지역의 연합기도모임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진리의 영으로 역사하소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이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