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필요한 날
김보나
막사발을 빚고 남은 흙을 주무른다
휜 등줄기 내보이며
먹고사리를 다듬던 사람의
뒷모습 떠올리면서
옛사람들은 때로 가마터에서 빌린
땔감으로 밥을 지었다는데
물과 불로 익힌 한 사발의 쌀밥처럼
다 여문 눈 코 입 하나
고슬고슬 이편을 올려다본다
흙으로 빚은
토우
움직여 봐
네 주인이 잠든 곳까지 기어가
세상의 모든 토우가 출토된 구릉으로
날 데려다줘
늦털매미가 내려앉은 참나무
곡이 다 끝난 다음 울려 퍼지는 매미 소리로
서서히 들끓어 오르는 풀밭
고사리를 찾아 나섰다가
산과 들에서 마주친 이름 모를 묘에도
허리 굽혀 인사하던 사람
그 몸짓에 일던 바람이 뒤늦게 나를 흔든다
묘의 뒷등성이를 따라 오르며
이름 없는 토우에게 되뇌었다
여기부터 너의 백제라고
쌀밥에도 봉분이 있어
도도록이 솟은 둔덕을 허물며 맞는 아침
—웹진 《같이 가는 기분》 2023.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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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나 / 1991년 서울 출생. 성신여대 교육학과 졸업. 2022년 〈문화일보〉신춘문예 당선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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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6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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