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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능해한(雨能解旱)
비가 능히 가뭄을 해결할 수 있다
雨 : 비 우(雨/0)
能 : 능할 능(月/6)
解 : 풀 해(角/6)
旱 : 가뭄 한(曰/3)
주역(周易) 등의 책에서는 이 세상의 삼라만상(森羅萬象)을 음양(陰陽)의 구조로 되어 있다고 본다. 대표적인 음양구조가 하늘과 땅(天地), 남자와 여자(男女), 낮과 밤(晝夜), 불과 물(火水) 등이다. 한의학 등에서는 모든 약재(藥材), 음식, 신체의 모든 장기(臟器)까지도 음양으로 구분해 놨다.
이 음양의 구조는 대립관계가 아니고,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대대(對待)관계이다. 서로 다르면서 한쪽만으로 존재할 수가 없고, 서로가 서로에게 작용해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이다. 하늘만 있고 땅이 없으면, 하늘의 존재 가치가 없고, 땅만 있고 하늘이 없어도 땅의 존재가치가 없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는 것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햇볕과 비다. 햇볕은 열과 빛을 보내어 이 세상을 밝고 따뜻하게 해 준다. 비는 모든 만물이 수분을 흡수하여 자라게 하고 열에 의해서 지나치게 더워진 것을 식혀준다. 모든 만물이 이 두 가지 때문에 나고 자라게 된다.
해만 있고 비가 없어도 안 되고 비만 있고 해가 없어도 안 된다. 이 두 가지가 잘 균형을 이루어 적절하게 되어야 사람이 살 수 있다. 이 지구상에서 두 가지의 균형이 깨어진 것이 가뭄과 홍수다.
사람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만으로는 가뭄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보(洑)를 막고 저수지를 만들어 물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아득한 옛날 5000년 전부터 이집트에서 저수지를 만들기 시작했고 동양에서는 2300년 전 전국시대(戰國時代) 진(秦)나라 때 양자강(揚子江) 상류에 도강언(都江堰)이라는 댐을 만들어 강물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백제시대 만든 저수지인 김제(金堤)의 벽골제(碧骨堤)가 그대로 남아 있다. 우리나라는1960년 이후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때부터 대형 댐과 저수지를 많이 만들어 지금은 농토가 거의 전천후(全天候)로 되어 가뭄의 피해가 많이 줄었다.
필자가 어릴 때만 해도 댐이나 대형 저수지가 거의 없어, 가뭄이 심하면 군수, 면장 등이 여기저기서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 봉천답(奉天畓), 천수답(天水沓)이라 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의 힘으로 농사를 짓는 논이 많았다. 조금만 가물어도 논바닥이 갈라지고, 벼가 말라 비틀어졌다.
댐이나 저수지도 오래 가물면 다 말라 버린다. 결국 가뭄을 해소하는 방법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최고다. 지구를 파괴하다 보니 이상 기후가 갈수록 더 심해져 간다. 우리나라도 작년 9월 이후 비다운 비가 한 번도 안 내려 가뭄의 피해가 아주 심했는데, 다행히 어제 6월 5일에 비가 종일 내려 충분히 가뭄이 해소되었다.
이 세상이 잘 돌아가는 것은 음양의 조화부터 해서 모든 것의 조화가 중요하다. 지방선거 이후 당선자 측과 낙선자 측의 대립이 극심하다. 대립은 자꾸 대립을 부른다. 조화로 상대방을 끌어안는 것이 자기를 위하고 상대방을 위하는 길이다.
■ 음양의 조화 – 호메오스타시스
2천오백여년전 어느날, 고대 중국의 황제(黃帝)가 신하 기백(岐佰)에게 말했다. "하늘과 태양이 양이고, 땅과 달이 음이라고 보는 것은 옳다. 하늘과 땅, 그리고 태양과 달 등의 우주가 질서있게 운행함으로 해서, 일년 삼백육십오일, 열두달의 세월이 흐르는 것처럼, 경락을 통해 사람몸속을 흐르고 있는 생명력도 이러한 우주의 운행질서와 다름없다고 본다."
기백은 답한다. "우주공간과 물체, 즉 양과 음이 펼치는 세계는 너무나 넓어,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은 이 범주안에 들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음과 양은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원리는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기 전에는 음의 곳에 머물러 음중음(Yin within Yin)의 상태로 있지만, 태어나는 순간 활동하고 성장을 계속함으로, 우리는 이것을 음중양(Yang within Yin)의 생명체라 부르는 것입니다."
기백은 생명체가 생명을 유지하고 성장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은 양기(陽氣)가 있음으로써 가능하다고 덧붙인다. 기백이 말하고 있는 음중양은, '음 가운데 양'이라는 뜻으로 필자가 펼치는 음-중-양의 개념과는 다르다.
실존의 모습 – 음양
음양은 우리의 실존의 모습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음양 이야기만 나오면 갑자기 복잡해지고,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짖는다. 음양하면 오행설이 떠오르고, 이어서 주역(周易)이라고 하는 귀신잡는 이야기가 연상되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쉽게 이야기하면 음은 땅밑에 있으면서 형체를 갖고 있는 물질의 모든 것이다. 양은 형태가 없는 공간을 말한다.
황제와 기백은 이 물질과 공간이라는 2차원에서 살아가고 있는 3차원의 존재, 즉 시간이라는 한정된 동안을 살고 있는 생명체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황제와 기백이 펼치고 있는 이야기의 골자는 음양의 조화다. 음과 양이 잘 조화하고 있으면 삶이 평화롭고, 음과 양의 조화가 깨어지면 그것이 곧 병적인 상태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몸에서는 무엇이 음이고, 무엇이 양일까. 세포를 보자. 우리 몸은 하나의 세포막을 단위로 하는, 많은 세포들의 결집체다. 음과 양은 이 세포막 안에 들어 있다. 세포막은 이 음과 양을 담는 그릇으로, 이것을 중(中)이라고 부른다. 이 중이라는 소우주 안에 음과 양이 들어 있다.
확대하여 말하면 음과 양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우주를 둘러싸고 있는 외연(外延)도 중(中)이다. 그러니까 대우주도 중이고, 소우주인 생명체도 중이다. 왜냐하면 둘다 음양을 포괄하고 있으므로. 대우주에서와 마찬가지로 소우주인 생명체 내에서,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음이라고 할 수 있다.
양은 형태는 없지만 세포막안에서 여러가지 기능을 하고 있다. 호흡을 통해 산소를 들이고 탄산가스를 내보내고, 단백질을 만들어내고, 세포안으로 양분을 흡수하고, 노폐물은 내보내고, 혈액을 순환하게 하고, 세포를 분열시키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하는 것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짓들은 모두양의 역할들이다.
이 세포는 양이 없으면 음이 생성될 수 없듯이, 음이 없으면 양도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은 곧 세포안에는 음에 합당한 양이 있어야 하고, 반대로도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 음과 양의 절묘한 조화는 어떻게 이루어 지는 것일까. 아쉽게도 지금까지의 한의학에서는 여기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음양의 발란스
우리는 살면서 우리 몸안의 음양의 조화를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 '아, 음이 부족하니까 숨을 크게 들이쉬어 양을 보충해 주어야겠군' 하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저 무심코, 부지런히 숨을 쉬고, 배가 고프니까 먹고, 피곤하니까 쉴려고 하고, 왜 사냐고 물으면 그냥 웃기도 할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몸이 알아서 척척해주고 있으니까, 우리는 그저 행복하기만 하면 될 뿐이다.
발란스(Balance)는 누가 잡아주는 것이 아니다. 만약 누군가가 발란스를 잡아주어야 할 정도라면, 그는 이미 안팍으로 불구자일 것임에 틀림없다. '홀로 서기'라는 피곤한 말이 있지만 , 현상태를 유지하여 발란스를 잡는 것은 홀로서기보다 훨씬 어렵고, 그래서 더욱 보람있는 것이다. 건강하다는 것은, 건강한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몸의 안과 밖으로부터의 변화에 간단없이 노출되어 있는, 자연의 위험속에 내던져진 가련한 존재나 다름없다. 정말로 믿을 것은 약도, 그 누구의 손길도 아니고, 내 몸안에 있는 '현상태 유지하기' 기능 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이것을 서양의학적으로 말하자면 호메오스타시스(Homeostasis)라고 한다. Homeo는 현상태와 똑같이라는 뜻이고, Stasis는 같은 상태를 유지하기라는 뜻이다.
그러나 말이 쉽지, 울산공업단지 시설보다 몇십배나 복잡한 화학공장과 같은 우리 몸안의 사정은 우리가 늘 현상태를 유지하도록 놔두지 않는다. 추위와 더위, 그리고 요즘같은 가뭄, 공해, 소음, 스트레스, 과로 등은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발란스를 위협하는 요인들은 우리 몸안이 훨씬 복잡 미묘하고 많다. 체온은 계속 빼앗기고 있고, 혈액은 원활하게 순환되어야 하며, 세포내의 노폐물은 제때 걸러져야 한다.
균형과 조화
호메오스타시스는 우리 몸의 구석구석, 세포에서부터, 조직, 기관, 계통 등에 이르기까지, 다 관여하며 우리 몸의 발란스를 잡아주는 기능을 하고 있는 시스템을 말한다. 예를 들면 세포에서의 호메오스타시스는 세포내의 성분과 구성을 늘 같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기능이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일은 세포내의 음과 양의 역할이 제기능을 발휘할 때 이루어진다고 본다. 서양의학자들은 그것을 호메오스타시스라는 말로 구체화하고 있지만, 한의학에서는 균형과 조화라는 추상적인 말로서 설명하고 있다.
결국 지향하는 바는 다 같겠지만 발상의 차이는 서양은 기능적이고, 동양은 균형과 조화를 중요시한다. 그런데 요즘의 개방된 세상을 보면, 어떤때는 동양이 더 기능을 중요시 여기고, 서양이 균형과 조화앞에 더 몸을 사리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 세상 상식에 깃든 음양의 조화
내가 의도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모든 현상들은 일정한 것이 없어서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인과응보도 일정한 것이 아니므로 거기에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선을 행하여도 화를 면하지 못하고 악을 행해도 복을 받을 수도 있으므로 선악의 과보는 어느 하나도 믿을 것이 없다. 충도 믿을 수 없고 효도 믿을 수 없으니 오자서도 죽었고 증삼도 슬퍼한 것이다.
오직 사람의 경우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천지자연의 세계에도 또한 그러하여 음양이 서로 어긋나면 천재지변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은 항상 이해를 다투므로 물욕은 불꽃처럼 일어나 심성의 달을 태우니 이것은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다. 황산곡이 이른바 "사람의 본심은 해와 달 같은데 이기심과 욕망이 다 먹어버린다"고 한 것이 바로 이러한 것이다.
그러므로 도를 닦는 사람은 먼저 마음을 비워 세상에 잘 적응하고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면 모든 화를 멀리할 수 있을 것이다. 성인이라도 나아가야 할 때를 놓쳐버리고 뒤늦게 반응하여 화를 입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성인은 때를 놓치더라도 자연의 이치라는 근본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항상 공을 이룬다.
최고의 선은 선을 애써 행하는 행위를 버리면 이루어지고, 최고의 깨달음은 작은 깨달음을 버려서 저절로 큰 깨달음을 이룬다. 그러므로 장자는 쓸모없는 것의 쓸모를 말했던 것이다. 그리고 무위자연을 말했으니 "사람으로서 능히 무위에서 스스로 즐거워할 수 없는 사람은 아무리 스스로 즐거워하려 해도 즐거울 수 없는 것이다"고 했다.
도의 경지에 이른 사람은 스스로 잘 놀아 세상에 섞이어도 그 도가 막히지 않는다. 그 마음에 하늘의 이치가 항상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극복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세상 속에 섞여도 치우치지 않고, 예나 지금을 시비하지 않으며, 언제나 화광하고 한가지의 티끌이 되어 세상과 서로 거스르지 않는다. 사람의 뜻을 따르지마는 자기를 잃지 않으며, 세상의 가르침을 많이 배우더라도 서로 차별함이 없다.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구산이나 대림(대자연)을 좋다고 한다. 그러나 혼탁한 세상의 명리를 이겨내지 못하면 지극한 지식이나 높은 덕망은 소용이 없다. 세상의 명리를 초월하는 것이 진정한 해탈이지 얽매여 속세에서 은둔하는 것은 무위자연의 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무릇 밖에서 오는 화복은 일정한 것이 아니다. 이러하니 비천도 죽었으며 기자는 거짓 미치광이가 되었고, 은나라의 유력한 선비인 악래는 죽고 걸·주는 망했다.
임금으로서 신하의 충성을 누가 바라지 않으랴마는 그 충성도 반드시 임금의 신임을 받지 못했다. 그러므로 오나라의 충신인 오자서는 그 시체가 강물에 띄워졌고, 장홍은 촉나라에서 자살했는데 그 피를 간직한 지 3년 만에 모두 변해서 무른 구슬이 되었다.
또 어버이로서 그 자식의 효성을 누가 바라지 않으랴마는 그 효성도 반드시 어버이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은나라 고종의 태자인 효기는 언제나 나라를 걱정했지만 고종의 신임은 얻지 못했다. 나무와 나무가 서로 부딪치면 불이 일어나 타게 되고, 쇠는 불을 만나면 녹아서 흐르는 것이다.
음양이 뒤섞이면 천지는 크게 어지러워 거기서 우레가 생기고 번개가 일어 물(비) 속에서도 큰 나무가 타는 것이다. 또 사람은 근심·걱정을 만나면 이익과 손해의 양쪽에 빠져서 벗어날 길이 없다. 언제나 항상 두렵고 무서워 편안하지 못하며, 마음은 천지 사이에 대롱거리며 매달린 것처럼 안정되지 않아서 기운은 막히고 답답하여 어려움 속에서 헤매는 것이다.
그래서 이익과 손해의 생각은 서로 부딪쳐 불을 내는 일이 아주 많은 것이다. 이 불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은 마음 속의 조화로운 기운을 태워 버리는 것이니 사람의 본성은 원래 욕심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품성과 생명의 성정은 무너져서 몸뚱이와 정신은 함께 다하고 마는 것이다.
장자가 집이 구차해서 위나라 문후인 감하후에게 좁쌀을 꾸러 갔더니 감하후는 이렇게 말했다. "좋다. 그런데 나는 지금부터 백성들에게 내 영토의 세금을 받아서 그것으로 자네에게 300금을 꾸어 주려고 하네. 그래도 좋은가?" 하였다.
장자는 성이 난 듯 얼굴빛을 고치며 "내가 어제 여기 오는데 도중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있기에 돌아보았더니, 수레바퀴 자국의 고인 물 속에 붕어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놈에게 '붕어야, 오너라, 너는 어떤 놈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내게 '나는 동해의 파신입니다. 당신은 모쪼록 한 말(斗)이나 한 되(升)쯤 되는 물로써 나를 살려줄 수 없겠습니까?'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래 좋다. 그런데 나는 지금부터 남쪽으로 오, 월의 임금에게 가서 도를 펴고 난 뒤에 저 서강의 물을 가지고 와서 너를 맞이하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좋은가?'고 했더니 붕어는 성이 난 듯 얼굴빛을 고치며 내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꼭 내게 있어야 할 물을 잃고, 있을 곳이 없습니다. 나는 다만 한 말이나 한 되쯤 되는 물만 얻어서 살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런 말을 하십니다. 그러면 당신은 빨리 가서 저 건어물점에서 내 시체를 찾으십시오'라 했습니다"고 말했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로 거절하는 것을 꾸짖은 것이다.
세상일에서 정해진 규칙은 없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필요한 기본적으로 공유되는 상식은 있는 것이다. 이것을 지키면 세상이 태평해지나 지키지 못하면 어지러운 세상이 됨을 위의 대화에서 알 수 있다.
▶️ 雨(비 우)는 ❶상형문자로 하늘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는 모양을 본떴다. (우)란 음은 宇(우), 羽(우) 따위와 관계가 있고 위로부터 덮는다는 뜻이 닮았다. 부수(部首)로서는 비 또는 구름, 기타 기상(氣象)에 관한 뜻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고대 중국은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농업을 매우 중시했었다. 농업의 성공 여부는 날씨와도 직결된다. 그래서인지 한자에는 날씨와 관련된 글자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雨자는 하늘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한자가 생성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날씨와 관련된 글자를 만드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갑골문에 나온 雨자를 보면 하늘에 획이 하나 그려져 있고 그 아래로 점이 찍혀있었다. 이것은 구름 아래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雨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대부분이 날씨나 기상 현상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雨(우)는 ①비 ②많은 모양의 비유 ③흩어짐의 비유 ④가르침의 비유 ⑤벗의 비유 ⑥비가 오다 ⑦하늘에서 떨어지다 ⑧물을 대다 ⑨윤택하게 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흐릴 담(曇),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빛 광(光), 볕 양(陽), 갤 청(晴)이다. 용례로는 비가 온 분량을 우량(雨量), 비를 몸에 맞지 않도록 손에 들고 머리 위에 받쳐 쓰는 물건을 우산(雨傘), 1년 중에 비가 가장 많이 오는 시기를 우기(雨期), 눈과 비를 우설(雨雪), 비와 이슬을 우로(雨露), 비가 올 듯한 기미를 우기(雨氣), 비가 오는 날을 우천(雨天), 비 맞지 않도록 차림 또는 그 복장을 우장(雨裝), 비가 내림 또는 내린 비를 강우(降雨), 밤에 내리는 비를 야우(夜雨), 줄기차게 많이 오는 비를 호우(豪雨), 오랫동안 계속해 내리는 음산한 비를 음우(陰雨), 오래 오는 궂은 비를 음우(霪雨), 갑자기 많이 쏟아지는 비를 폭우(暴雨), 식물이 자라나기에 알맞도록 내리는 비를 자우(滋雨), 장마 때에 오는 비를 장우(長雨), 몹시 퍼붓는 비를 능우(凌雨), 세차게 내리는 비를 강우(强雨), 알맞은 때에 내리는 비를 감우(甘雨), 보리가 익을 무렵에 오는 비를 맥우(麥雨), 바람과 함께 내리는 비를 풍우(風雨), 천둥소리가 나며 내리는 비를 뇌우(雷雨), 산골짜기에 내리는 비를 계우(溪雨), 비가 온 뒤에 솟는 죽순이라는 뜻으로 어떤 일이 일시에 많이 일어남을 이르는 말을 우후죽순(雨後竹筍), 바람 불고 비오는 것이 때와 분량이 알맞음을 일컫는 말을 우순풍조(雨順風調), 비올 때의 경치도 매우 기이하고 갠 후의 경치도 좋다는 뜻으로 날씨에 따라 풍경이 변하는 모양을 일컫는 말을 우기청호(雨奇晴好), 비와 이슬이 만물을 기르는 것처럼 은혜가 골고루 미침을 이르는 말을 우로지은(雨露之恩), 회합 등을 미리 정한 날에 비가 오면 그 다음 날로 순차로 연기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우천순연(雨天順延), 비 온 뒤에 우산을 보낸다는 뜻으로 이미 지나간 일에 쓸데없는 말과 행동을 보태는 경우를 일컫는 말을 우후송산(雨後送傘), 떨어지는 빗방울이 돌을 뚫다라는 뜻으로 아무리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적극적인 돌파구를 마련하면 해결되지 않는 일은 없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우수천석(雨垂穿石) 등에 쓰인다.
▶️ 能(능할 능, 견딜 내)은 ❶회의문자로 곰(문자의 왼쪽 부분)과 짐승의 발바닥(문자의 오른쪽 부분)의 모습을 뜻하는 글자로 곰의 재능이 다양하다는 데서 능하다를 뜻한다. 月(월; 肉육)은 살, 마늘모(厶; 나, 사사롭다, 마늘 모양)部는 큰 머리의 모양에서 변한 것으로 머리가 큰 곰 같은 동물의 모습이다. 이 동물은 힘이 세고 고기 맛이 좋기 때문에 이 글자를 빌어 사람의 일이 충분히 된다는 뜻으로도 쓰고, 나중에 곰을 나타내기 위하여는 熊(웅)이란 글자를 따로 만들었다. ❷상형문자로 能자는 '능하다'나 '할 수 있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能자는 곰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能자는 본래 '곰'을 뜻했었다. 하지만 후에 '능력'이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었다. 곰을 그린 能자가 왜 '재능'이나 '능력'이라는 뜻으로 바뀐 것일까? 곰은 재주가 뛰어나기에 재능을 뜻하게 되었다는 해석이 있다. 신성함을 상징했던 곰은 여러모로 탁월한 능력을 갖췄던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能자가 이렇게 '재능'과 관련된 뜻으로 가차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灬(불 화)자가 더해진 熊(곰 웅)자가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能(능, 내)은 (1)재능(才能). 기능(機能) (2)능력(能力)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능하다 ②능히 할 수 있다 ③기량(技倆)을 보이다 ④재능(才能)이 있다 ⑤화목하게 지내다 ⑥~할 수 있다 ⑦응당 ~해야 한다 ⑧능력(能力) ⑨재능(才能) ⑩인재(人才) ⑪에너지(energy) ⑫곰(곰과의 포유류) 그리고 ⓐ견디다(=耐)(내)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일을 감당하거나 해결해 낼 수 있는 힘을 능력(能力), 일정한 동안에 할 수 있는 일의 비율을 능률(能率), 제 힘으로 움직임을 능동(能動), 능하고 익숙함을 능숙(能熟), 잘 하는 일을 능사(能事), 익숙하고 솜씨 있음을 능란(能爛), 능하게 잘 하는 말을 능변(能辯), 대상을 포착하여 관찰하는 주관을 능관(能觀), 능히 오거나 가거나 함을 능통(能通), 뛰어난 작품을 능품(能品), 능하고 어진 이를 능인(能仁), 잘 쓴 글씨나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을 능필(能筆), 넉넉히 감당함을 능당(能當), 유능하다는 평판을 능성(能聲), 뛰어난 재능을 능재(能才), 할 수 있음이나 될 수 있음을 가능(可能), 어느 기관이 그 기관으로써 작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기능(機能), 기술적인 능력 또는 재능을 기능(技能), 재능이 없음을 무능(無能), 재주와 능력을 재능(才能), 두뇌의 작용으로 지적 활동의 능력을 지능(知能), 재능이 있음을 유능(有能), 능력이 없음을 불능(不能), 어떤 물건이 지닌 성질과 능력 또는 기능을 성능(性能), 온갖 것에 다 능통함을 만능(萬能),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임기응변으로 잘 처리해 냄을 이르는 말을 능소능대(能小能大), 능히 보고도 생각하기 어렵다는 말을 능견난사(能見難思), 능력을 개척하여 발전시킴을 일컫는 말을 능력개발(能力開發), 재능이 있는 자는 계책을 숨기고 남에게 알리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능사익모(能士匿謀), 인간의 능력은 모든 사물에 다 능할 수 없다는 말을 능불양공(能不兩工), 잘 해치우는 재간과 익숙한 솜씨를 이르는 말을 능수능간(能手能幹) 등에 쓰인다.
▶️ 解(풀 해)는 ❶회의문자로 觧(해)의 본자(本字)이다. 牛(우; 소)와 角(각; 뿔 여기서는 물건을 나누는 일)과 刀(도; 칼)의 합자(合字)이다. 소의 살과 뼈를 따로 바르는 데서 물건을 풀어 헤치다, 가르다의 뜻이 있다. ❷회의문자로 解자는 '풀다'나 '깨닫는다', '벗기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解자는 角(뿔 각)자와 刀(칼 도)자, 牛(소 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角자는 소의 뿔을 그린 것이다. 여기에 刀자가 더해진 解자는 칼로 소의 뿔을 해체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解자를 보면 牛자 위로 뿔을 감싸고 있는 양손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소의 뿔을 잘라 해체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금문에서는 양손 대신 刀자가 쓰이면서 '해체하다'라는 뜻을 좀 더 명확히 표현하게 되었다. 그래서 解(해)는 (1)풀어 밝히는 일. 풀이 (2)해괘(解卦) (3)방정식(方程式)의 근(根), 작은 문제(問題)를 풀어서 얻은 도형(圖形), 미분방정식(方程式)을 만족(滿足)시키는 함수(函數) 등(等) (4)의혹(疑惑)을 푸는 데 쓰는 한문(漢文)의 한 체 (5)백제(百濟) 8대성(大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풀다, 벗다, 깨닫다, 설명하다 ②풀이하다 ③깨닫다 ④통달하다(사물의 이치나 지식, 기술 따위를 훤히 알거나 아주 능란하게 하다) ⑤가르다, 분할(分割)하다, 떼어내다 ⑥느슨해지다 ⑦떨어지다, 빠지다 ⑧벗기다 ⑨흩어지다, 떠나가다 ⑩쪼개다, 분열(分裂)되다 ⑪녹이다 ⑫화해(和解)하다 ⑬그치다 ⑭문서로 보고(報告)하다 ⑮압송(押送)하다 ⑯신에게 빌다, 기원(祈願)하다 ⑰세월을 보내다 ⑱게으르다, 게을리하다 ⑲마주치다, 우연(偶然)히 만나다 ⑳주해(註解), 주석(註釋) ㉑구실, 변명(辨明), 핑계 ㉒관청(官廳), 관아(官衙) ㉓향거(鄕擧) ㉔해태(獬豸: 시비와 선악을 판단하여 안다고 하는 상상의 동물) ㉕문체(文體)의 이름 ㉖괘(卦)의 이름 ㉗게(=蟹) ㉘마디,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흩어질 만(漫), 놓을 방(放), 흩을 산(散), 느릴 완(緩), 풀 석(釋),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다스릴 리(理)이다. 용례로는 얽힌 일을 풀어 처리함을 해결(解決), 어떤 상태나 관계를 풀어 없앰을 해소(解消), 마음의 긴장이나 규율 등이 풀리어 느즈러짐을 해이(解弛), 고용주가 사용인을 그만두게 함을 해고(解雇), 수학에서 문제를 푸는 방법을 해법(解法), 의심나는 곳을 잘 설명하여 분명히 함을 해명(解明), 속박 또는 예속 상태에서 풀어 주어 자유롭게 함을 해방(解放), 사물을 상세히 풀어서 이론적으로 연구함을 해석(解析), 강제나 금지 따위를 풀어서 자유롭게 함을 해제(解除), 모였던 사람들이 흩어짐을 해산(解散), 무슨 문제를 풀어서 답함 또는 풀어 놓은 답을 해답(解答), 뜻을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함 또는 그 책을 해설(解說), 독을 푸는 일을 해독(解毒), 단체가 흩어짐을 해체(解體), 얼었던 것이 녹아서 풀림을 해동(解凍), 하지 못하게 하던 것을 풀어 줌을 해금(解禁), 아이를 낳음을 해산(解産), 직무를 내어 놓게 함을 해직(解職), 얽매임을 벗어 버림을 해탈(解脫),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함을 이해(理解), 보고서 깨달아 앎을 견해(見解), 다툼질을 서로 그치고 풂을 화해(和解), 뜻을 잘못 이해함을 오해(誤解), 사정을 살펴서 너그럽게 이해함을 양해(諒解), 녹아서 풀어짐을 융해(融解), 여러 부분이나 요소들로 이루어진 것을 그 낱낱의 부분이나 요소들로 갈라냄을 분해(分解), 풀기가 어려움을 난해(難解), 녹거나 녹임을 용해(溶解), 본문의 뜻을 알기 쉽게 주를 달아 풀이함 또는 그 글 주석을 주해(註解), 글을 읽어서 이해함을 독해(讀解), 도리를 깨달아 알아냄을 개해(開解), 해석하여 가면서 강론함을 강해(講解), 의심 등이 얼음 녹듯이 풀림을 빙해(氷解), 옷을 벗어주고 음식을 밀어준다라는 뜻으로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을 이르는 말을 해의추식(解衣推食), 자기 갑옷을 벗어 남에게 입힌다는 뜻으로 남에게 은혜를 베풂을 이르는 말을 해구의지(解裘衣之), 옷을 벗고 불을 안는다는 뜻으로 재난을 자초함을 이르는 말을 해의포화(解衣抱火), 말을 알아듣는 꽃이란 뜻으로 미인을 이르는 말을 해어지화(解語之花), 거문고의 줄을 바꾸어 맨다라는 뜻으로 느슨해진 것을 긴장하도록 다시 고치거나 사회적 정치적으로 제도를 개혁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해현경장(解弦更張),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을 결자해지(結者解之), 매실은 시기 때문에 이야기만 나와도 침이 돌아 해갈이 된다는 뜻으로 매실의 맛이 아주 심 또는 공상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음을 이르는 말을 망매해갈(望梅解渴) 등에 쓰인다.
▶️ 旱(가물 한)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날 일(日; 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마른다는 뜻을 나타내는 干(간, 한)으로 이루어졌다. 해가 쨍쨍 내리쪼이고 마른다는 뜻으로, ①가물다 ②사납다 ③가뭄 ④뭍, 육지(陸地) ⑤육로(陸路) ⑥밭,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가뭄 발(魃)이다. 용례로는 밭에 심는 벼를 한도(旱稻), 가뭄으로 인한 재앙을 한재(旱災), 오래 비가 오지 않고 가묾이나 논밭이 가물을 잘 탐 또는 땅이 물기 없이 바작 마름을 한건(旱乾), 물을 대지 아니하거나 필요한 때에만 물을 대어서 야채나 곡류를 심어 농사를 짓는 땅을 한전(旱田), 가뭄의 피해를 한해(旱害), 가뭄으로 말미암아 입는 손해를 한손(旱損), 가물에 견디는 곡식을 한곡(旱穀), 오래도록 계속하여 비가 아니 오는 날씨를 한기(旱氣), 뭍에 난 길을 한로(旱路), 가뭄과 홍수를 한수(旱水), 가물 때의 더위를 한열(旱熱), 가물 때의 불같은 무더위를 한염(旱炎), 가뭄 때에 뜨는 구름을 한운(旱雲), 비가 오기를 비는 일을 한제(旱祭), 가뭄의 징조를 한조(旱兆), 물을 대지 아니하고 농사를 짓는 땅을 한지(旱地), 쨍쨍한 여름 하늘 또는 그 날씨를 한천(旱天), 가뭄을 견디는 풀을 한초(旱草), 심한 가뭄으로 인하여 생물의 몸에 미치는 병적 영향을 한독(旱毒), 맑게 갠 하늘에서 치는 천둥을 한뢰(旱雷), 가뭄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소동을 한소(旱騷), 가뭄의 징조를 한징(旱徵), 가뭄으로 땅이 거칠어짐을 한황(旱荒), 가뭄으로 인한 굶주림을 한기(旱饑), 큰 가뭄을 대한(大旱), 오랜 가뭄을 구한(久旱), 오래 가뭄을 장한(長旱), 오랜 가물음을 항한(亢旱), 더운 여름에 드는 가뭄을 염한(炎旱), 오랫동안 계속하여 비가 내리지 않아 메마른 날씨를 천한(天旱), 가뭄을 견딤을 내한(耐旱), 홍수와 한발을 홍한(洪旱), 홍수와 가뭄을 잠한(涔旱), 가뭄에 대비함을 비한(備旱), 장마와 가뭄을 노한(澇旱), 재앙인 가물이 듦을 모한(耗旱), 실지로 논밭에 가서 한해를 조사함을 답한(踏旱), 농작물이 다 타 죽어서 호미도 댈 것 없는 혹심한 가뭄을 서한(鋤旱), 가뭄에 콩 나듯 한다라는 뜻으로 일이나 물건이 드문드문 나타난다는 말을 한시태출(旱時太出), 가문 하늘에 자애로운 비라는 뜻으로 곤경에 처했을 때 구원을 받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한천자우(旱天慈雨), 가뭄이 계속되면 비의 조짐인 구름을 몹시 기다린다는 뜻으로 어떤 사물이 와 닿기를 간절히 바람을 대한운예(大旱雲霓), 백성이 도탄에 빠지면 하늘이 백성의 뜻을 살펴 비를 내린다는 뜻을 한천작우(旱天作雨),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를 구한감우(久旱甘雨), 샘이나 내나 논이나 못 등이 물이 넉넉하여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아니함을 대한불갈(大旱不渴), 가물을 잘 타지 않는 성질을 내한발성(耐旱魃性), 여름에 가물고 가을에 장마 짐 곧 기상의 이변을 이르는 말을 하한추로(夏旱秋澇)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