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도는 건 누구일까
하재열
마주 걸어오던 사람이 왼쪽 어깨를 툭 부딪치며 지나간다. 내 발걸음이 엇갈리며 기분이 언짢아진다. 뒤돌아보니 팔까지 크게 흔들면서 당당하게 멀어진다. 이번엔 땀투성이의 퉁퉁한 여자가 밀치듯 치고 나간다. 바르게 가던 내가 먼저 비껴가야 했었나 보다.
집 뒤편에 작은 공원이 있다. 건너편 아파트와의 사이, 제법 넓은 터에 가득 찬 나무들이 무시로 짙은 바람 소리를 낸다. 가장자리 나무들 사이로 산책로가 나 있다. 한 바퀴가 육백미터를 좀 넘고, 도는데 팔 분 남짓 걸린다. 한 시간쯤 걸으면 족히 오 킬로 거리가 되니 운동에 안성맞춤이다. 사람 둘이서 조곤조곤 이야기하면서 걸으면 옆으로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폭이다. 몇 해 전, 사람 발길 따라 나 있던 여러 갈래 길을 하나로 합치면서 나무를 적게 솎아내려 좁게 만든 것 같다. 한 방향으로 돌며 편리하게 운동하라고 왼쪽 화살표를 우레탄 포장길 위에 새겨 놓았다. 그 좁은 길을 거꾸로 도는 사람들로 불편할 때가 많다. 이전에도 마주 오는 사람과 부딪쳐 정해놓은 쪽으로 도는 게 어떠냐고 말을 건네다가 실없는 일에 끼어든다고 아내에게 핀잔만 들었다.
여름이면 더 많은 사람이 더위를 식히려 길을 메운다. 거꾸로 도는 사람이 많아지지만 제 잘난 맛에 산다고 콧날 세우는데 어쩌랴. 나는 요즘 거꾸로 도는 사람들 만나는 게 오히려 즐겁고 반갑다. 마주 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뜯어보며 이 생각 저 생각 굴리는 재미도 괜찮다. 관상 공부하러 오라는 지인이 있어 저절로 관심이 높아진 건가. 서너 바퀴는 후딱 지나가니 지겹지 않게 운동할 수 있어 좋다. 잘생긴 여자에게 건들리면 은근슬쩍 좋아지기도 한다.
어젯밤엔 숲이 바람에 심하게 흔들렸다. 올라오고 있는 태풍 때문이었다. 나뭇잎에 휘감긴 외등의 불빛이 춤을 춘다. 불빛을 헤치며 걸어오던 한 여자가 인사하듯 살짝 웃으며 지나간다. 내 바로 앞에 걷는 사람과 아는 사이일 거라 여기며 걷는데 어디서 많이 본 듯도 했다. 다시 마주치는 곳에서 또 엷은 웃음을 보이며 스친다. 뒤돌아보니 그 여자도 돌아보며 여전히 웃고 있다. 틀림없이 나보고 웃는 게 맞다. 젊은 얼굴이다. 누굴까? 바람 부는 날이면 뛰쳐나와 괜히 서성대는 여자일까. 궁금해하며 더 빨리 걸어 다시 만나는 지점에 이르렀다.
“아저씨, 왜 거꾸로 도세요? 이쪽으로 도는 게 훨씬 경치도 좋은데요.” 하며 웃는다. 이런, 나보고 거꾸로 돈다고? 순간 헷갈린다. 찬찬히 보니 집 앞 수영장에서 만나는 아주머니였다. 같이 수영을 배우고 있지만, 수영복 입은 맵시만 보다가 운동복에 긴 머리, 안경까지 쓴 얼굴을 눈썰미 없는 내가 못 알아보았다. 훨씬 잘 생겨 보였다. 오던 길을 거꾸로 따라 걸어보았다. 몇 순간 두근거리게 한 여자가 팔을 끄니 안 따라가면 아까울 것 같아서이기도 했다.
아! 이런, 바라보이는 경치가 정말 색다르고 운치가 더 좋았다. 왼쪽으로 돌 땐 아파트에 가려 보이지 않던 대구타워 불빛이 보였다. 동쪽으로 향하는 내리막길의 수목 위로 멋진 야경이 펼쳐져 있지 않은가! 지금까지 그 야경을 등에다 지고 오르막길을 걸었던 거였다. 나는 왜 왼쪽으로 도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 그 화살표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육상경기도 왼쪽으로 달리니 당연히 왼쪽으로 돌도록 표시를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게 맞는 걸로만 여기며 방향을 바꾸어 보지 못하고 색다름의 정취를 놓치며 걸었으니 거꾸로 돈 건 나였던 건가?
왜 사람들이 왼쪽으로 도는 걸 당연히 느낄까? 사람들이 거의 오른발잡이이기 때문이란다. 오른발잡이는 달릴 때 왼발로 몸의 균형을 잡기 때문에 왼쪽으로 달리는 게 편하다고 한다. 곡선의 원심력을 이기기 위해 왼쪽으로 기울어 몸을 지탱하기 위해서이다. 오른발잡이 축구 선수가 왼발을 땅에 딛고 중심을 잡은 후 오른발로 볼을 차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했다. 당연히 왼발잡이는 오른쪽 발로 중심을 잡으니 오른쪽으로 돌아야 편한 게 아닌가. 백 미터는 모르지만 곡선이 있는 이백 미터를 오른쪽으로 달리기하면 우사인 볼트가 역시 일등을 할까. 안 해보았던 의문이 인다.
나와 거꾸로 도는 사람에게 구시렁거리기까지 하고, 무례하게 얼굴을 뜯어보았던 것이 슬그머니 미안해진다. 사는 일을 왼발로만 중심 잡으려 했으니, 여태 절룩거리며 왔는가 보다. 탑돌이 할 때 오른쪽으로 도는 것도 세상사 균형을 잡으라는 뜻은 아닐는지?
(2012. 12)
이 작품도 그의 초기 작품에 해당한다. 보기의 작품으로 가져온 이유는 이 작품은 그의 수필 기법이나, 수필세계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하였다. 그러한 기조가 최근의 작품까지도 유지된다.
자기가 경험하였던 사실을 아주 세세하게 묘사하였다. 세세하게 표현한 그의 수필쓰기 기법이 소설 쓰기의 기법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국문과에서 수학하였으므로, 문학을 전공으로 공부하는 은연중에 소설 쓰기의 기법이 몸에 배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 수필에서도 그는 보여주기를 통하여, 즉 ‘거꾸로 돌기’라는 보여주기를 통하여 세상이 다르게 보이더라는 것을 말한다. 이 수필의 주제일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가 왜 자기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화살표’ 때문이라고 하였다. ‘화살표’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하나의 ‘기호’로 작용한다. 우리의 삶을 방향지어 주는 ‘화살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나는 사회의 규범 안에서 충실하게 살아온 그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믿는다. 독자에게 생각거리를 남긴다.
그렇다고 한다면 하재열의 수필세계 읽기는 단순하지 않다. 말하자면 그는 수필을 단순히 사실적인 표현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굳이 이런 해석까지 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독자가 ‘화살표의 의미’를 따져보도록 하는 ‘지적 수필’이라고 하겠다.
나와는 반대 방향에서 걸어오는 사람과 어깨를 툭 부딪히고는 기분이 나빴다는 것도 재미있는 표현이다. 자기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나와는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는 적대감을 가지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내가 과연 옳은 방식일까라는 화두를 던져준다. 그리고는 나 아닌 타인도 옳은 사고를 하더라는 깨달음이다.
그의 수필세계는 유년이나 고향을 향수 심리에 젖어서 이상향으로 그려내는 단계를 지나서, 우리에게 생각을 하도록 하는 글을 쓴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는 수필의 소재를 현실의 도시 생활에서 가져온 것이 많다. 현실의 도시 생활에서 소재를 가져온 것은 이 한 편의 글만이 아니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생각 하도록 해주는 것이 그의 수필에 나타나는 또 하나의 흐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