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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제97회-2
잠시 후 어떤 사람이 말을 타고 혼자서 산을 올라오고 있었다. 사당에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교도청이 절벽에서 내려다보고 있다가 깜짝 놀랐다. 그는 바로 전수(殿帥) 손안이었다.
“저 사람이 어떻게 여길 왔을까?”
손안이 말에서 내려 인사를 하자, 교도청이 황망히 물었다.
“전수는 병력을 거느리고 진녕으로 가지 않았소? 그런데 어떻게 혼자서 여길 왔소? 산 아래에 많은 군마가 있을 텐데, 어째서 가로막지 않았소?”
손안이 말했다.
“형님께 알려드릴 것이 있어서……”
교도청은 손안이 ‘국사’라고 부르지 않는 걸 보고 이미 의심이 들었다. 손안이 말했다.
“일단 사당으로 가서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이 사당으로 들어가자, 비진과 설찬이 인사했다. 손안은 진녕에서 자신이 사로잡혔다가 투항한 일을 자세히 얘기했다. 교도청이 아무 말이 없자, 손안이 말했다.
“형님은 의심하지 마십시오. 송선봉 등은 모두 의기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그 휘하에 투신하여 천조에 귀순한다면, 후에 역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제가 여기 온 것은 특히 형님을 위해서입니다. 형님은 예전에 나진인을 찾아간 적이 있지 않습니까?”
교도청이 놀라서 물었다.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가?”
“그때 나진인이 형님을 만나주지 않고, 동자를 통해 전해 준 말이 ‘우덕마항(遇德魔降)’ 아니었습니까?”
교도청은 더욱 놀라며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네. 있었어!”
“형님의 술법을 깨뜨린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그와 마주치기는 했지만, 단지 송군 사람이라는 것만 알 뿐 그의 내력은 알지 못하네.”
“그는 바로 나진인의 제자 공손승입니다. 송선봉의 부군사입니다. 나진인께서 주신 법어도 그가 저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 성의 이름이 ‘소덕(昭德)’인데, 여기서 형님의 술법이 깨졌으니, 바로 ‘덕을 만나 마성이 항복한다.’는 말과 합치되지 않습니까?
공손승은 나진인의 뜻에 따라 형님을 교화하여 함께 정도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병마로 포위만 하고 산을 올라와서 형님을 사로잡지 않고 있는 겁니다. 그가 이미 법술로 형님을 이겼으니, 형님을 해치려고 든다면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형님은 헛된 고집 부리지 마십시오.”
교도청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깨달아, 마침내 손안과 함께 비진과 설찬을 데리고 산을 내려가 공손승에게로 갔다.
손안이 먼저 영채로 달려가 알리자, 공손승은 영채를 나와 영접하였다. 교도청은 영채로 들어가 엎드려 절하며 죄를 청하였다.
“법사의 너그러우심 덕분에 목숨을 건졌습니다. 저 하나로 인해 대군을 피곤하게 하였으니, 그 죄가 더욱 깊습니다.”
공손승은 크게 기뻐하면서 답례를 하고, 귀한 손님을 대하는 예로써 대접하였다. 교도청은 공손승의 그런 의기를 보고 말했다.
“제가 눈이 있어도 훌륭한 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법사의 곁에 서 시중이라도 들 수 있다면 평생 다행이겠습니다.”
공손승은 명을 내려 포위를 풀게 하였고, 번서를 비롯한 장수들을 사면의 영채를 뽑고 출발하였다. 공손승은 교도청·비진·설찬을 데리고 성으로 들어가 송선봉에게 인사시켰다. 송강은 예로써 대접하고 좋은 말로 위로하였다. 교도청은 송강이 겸손하고 온화한 것을 보고 더욱 심복하였다.
잠시 후, 번서·단정규·위정국·임충·장청이 모두 당도하였다. 송강은 명을 내려, 모든 군마를 성중으로 들어와 쉬게 하였다. 송강은 연회를 열어 경하하였다. 연석에서 공손승이 교도청에게 말했다.
“족하의 술법은, 위로는 여러 겁(劫) 동안 수행하여 허공삼매(虛空三昧)에 들어 자재신통(自在神通)한 부처와 보살보다 못하고, 가운데로는 수십 년 동안 물불의 고난을 겪고 형체를 변화시켜 조화를 부릴 수 있는 봉래산의 36명의 신선보다 못하네. 자네는 그저 주문에 의거하여 일시적으로 천지의 정기를 훔치고 귀신의 힘을 빌렸을 뿐이네. 불가(佛家)에서는 ‘금강선사법(金剛禪邪法)’이라 하고, 선가(仙家)에서는 ‘환술(幻術)’이라고 하는 것이지. 그런 술법으로 범인(凡人)을 초월하여 성인(聖人)이 되려 한다면, 그것은 처음에는 한 터럭의 차이지만 나중에는 천리(千里)의 차이가 나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네.”
교도청은 그 말을 듣고 마치 꿈에서 깨어난 것 같아, 그 자리에서 절을 올리고 공손승을 스승으로 모셨다. 송강 등은 공손승의 말이 명백하면서도 현묘한 것을 보고, 공손승의 신공(神功)과 도덕을 칭찬해 마지않았다.
다음 날, 송강은 소양에게 표문을 쓰게 해서 진녕과 소덕을 얻었음을 조정에 아뢰었다. 또 서신을 써서 숙태위에게 승첩을 알리면서, 위주·진녕·소덕·개주·능천·고평에 관원이 없으니 현명하고 유능한 사람을 골라 속히 보내달라고 청하였다. 그래야 그곳을 지키고 있는 장병들을 이끌고 진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소양이 표문과 서신을 다 쓰자, 송강은 대종을 불러 즉시 떠나게 하였다.
대종은 명을 받고 표문과 서신을 가지고 날랜 군사 1명과 함께 송선봉을 작별하고 신행법을 써서 다음 날 동경에 당도하였다. 먼저 숙태위의 부중을 찾아갔는데, 마침 숙태위가 있었다. 부중에 당도한 대종은 먼저 양우후를 찾아서 먼저 인사차 은자를 준 다음 서신을 숙태위에게 전하게 하였다. 양우후가 서신을 받아 들어갔다가 잠시 후 다시 나와 대종에게 말했다.
“태위께서 하실 말씀이 있어, 두령을 부르십니다.”
대종이 양우후를 따라 부중으로 들어가 보니, 숙태위는 대청에 앉아 서신을 보고 있었다. 대종이 인사를 하자, 숙태위가 말했다.
“마침 긴요한 때에 잘 왔네. 이렇게 공교로울 수가! 지난번에 채경·동관·고구가 천자 앞에서 자네 형님 송선봉을 탄핵했다네. 패전하여 장수들이 죽고 군사들을 잃어 나라를 욕되게 했다고 비방하면서, 황상께서 벌을 내려야 한다고 아뢰었다네.
천자께서 주저하시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우정언(右正言) 진관이 상소하여 채경·동관·고구가 충성스러운 사람을 모함하고 선한 사람을 밀어낸다고 탄핵하였네. 그리고 자네들의 병마가 이미 호관을 넘어섰음을 아뢰고, 채경 등이 군주를 기만한 죄를 다스릴 것을 청하였다네.
그러자 채태사는 진관에게 앙심을 품고 그에게 죄를 덮어씌웠네. 어제 채태사가 천자께 이렇게 아뢰었네. ‘진관은 존요록(尊堯錄)이란 책을 지어, 신종(神宗) 황제를 요(堯)임금에 견주었습니다. 이는 은연중에 폐하를 헐뜯는 의도가 있었으니, 진관의 죄를 다스려야 합니다.’ 다행히 천자께서 아직 진관에게 벌을 내리지는 않으셨네.
오늘 자네가 승첩을 가지고 왔으니, 진관도 면목이 서게 되고 나도 고민이 해소되었네. 내일 조회 때, 내가 표문을 올리겠네.”
대종은 재배하고 칭사하였다. 부중을 나와 숙소를 찾아 쉬면서 대기하였다.
다음 날 아침, 숙태위가 입조하였다. 도군황제는 문덕전에서 문무백관의 알현을 받았다. 숙태위는 천자께 절하고 만세를 세 번 부른 후, 송강의 승첩을 아뢰었다. 송강 등이 전호를 토벌하러 가서 여섯 개 고을을 회복하고, 지금 사람을 보내 표문을 올렸음을 말하였다. 천자의 용안에 기뻐하는 빛이 떠올랐다. 숙원경이 또 아뢰었다.
“정언 진관이 존요록를 지어 선제(先帝) 신종황제를 요임금에 견준 것은, 폐하께서는 순(舜)임금이 되시는 것이니 어찌 죄가 되겠습니까? 진관은 평소에 강직하여 남에게 굴복하지 않는 사람이며, 일을 당해서는 바른 말을 서슴지 않습니다. 그리고 담력과 지략이 있으니, 폐하께서는 진관에게 관작을 내리시어 하북의 병마를 감독하게 하시면 필시 큰 공을 세울 것입니다.”
천자는 숙원경의 상주를 인준하고 즉시 성지를 내렸다.
“진관에게 원래의 관직에 추밀원 동지(同知) 벼슬을 더하여 안무사(安撫使)로 임명한다. 어영군 2만을 거느리고 송강의 부대로 가서 전쟁을 감독하고, 아울러 상으로 내릴 은냥을 가지고 가서 장병들의 노고를 위로하도록 하라.”
조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숙태위는 대종을 불러 회서를 주었다. 대종은 천자가 성지를 내린 일을 듣고, 숙태위를 작별하고 동경을 떠나 신행법을 써서 다음 날 소덕성에 당도하였다. 동경까지 왕복하는 데 겨우 나흘이 걸렸다.
송강은 병마를 점검하고 진격할 일을 상의하고 있다가, 대종이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불러서 조정의 소식을 물었다. 대종이 숙태위의 회서를 바치자, 송강은 읽어 보고서 그 내용을 자세히 두령들에게 애기해 주었다. 두령들이 모두 말했다.
“진안무 같이 담력 있는 사람은 얻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힘을 다해 싸우는 것이 헛되지 않을 듯합니다.”
송강은 천자의 칙령을 받은 후에 진격한다는 명을 내렸다. 장수들은 명에 따라 성중에 주둔하고 있었다.
한편, 소덕성 북쪽에는 본주에 속한 노성현이 있었는데, 그 성을 지키는 장수 지방은 교도청이 포위되었을 때 사람을 위승의 전호에게 보내 위급을 고하였었다. 전호 수하의 가짜 성원관이 위급을 고하는 문서를 전호에게 알리려고 하는데, 홀연 진녕을 이미 잃고 전호의 동생 삼대왕(三大王) 전표가 겨우 목숨만 건져 도망쳐 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보고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전표가 당도하여, 성원관과 함께 들어가 전호를 만나 방성대곡하며 말했다.
“송군의 세력이 너무 커서 진녕성을 빼앗기고, 아들 전실도 죽었습니다. 신은 겨우 목숨만 건져 도망쳐 왔는데, 성도 잃고 군사도 잃었으니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
말을 마치자 또 울었다. 곁에 있던 성원관이 또 아뢰었다.
“신이 조금 전에 노성을 지키는 장수 지방에게서 온 문서를 받았는데, 교국사는 송군에게 포위되어 있고 소덕성은 곧 함락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합니다.”
전호는 크게 놀라, 문무백관과 우승상 태사 변상, 추밀관 범권, 통군대장 마령 등을 불러모아 상의하였다.
“지금 송강이 우리 경계를 침범하여 서쪽의 큰 고을을 점령하고 많은 장병들을 죽였으며, 교도청도 적들에게 포위되었다고 하오. 어떻게 하면 좋겠소?”
국구(國舅) 우리가 아뢰었다.
“주상께서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신이 나라의 은혜를 입었으니, 군마를 이끌고 소덕으로 가서 송강의 무리를 사로잡고 빼앗긴 성을 회복하겠습니다.”
우리 국구는 원래는 위승의 부호였다. 그는 창봉을 잘 쓰고, 두 팔은 천근을 들 수 있는 기력이 있었다. 또 강한 활을 잘 쏘았으며, 무게가 50근 나가는 발풍대도(潑風大刀)를 사용하였다. 전호는 우리의 예쁜 누이동생을 아내로 삼아, 우리를 추밀관에 봉하고 국구라고 칭하였다. 우리 국구가 또 아뢰었다.
“신의 어린 딸 경영(瓊英)이 근래에 꿈속의 신인(神人)에게서 무예를 배워 그 실력이 대단합니다. 게다가 무예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신비로운 수단을 익혔습니다. 손으로 돌을 날려 새를 잡는데, 백발백중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딸아이를 ‘경시족(瓊矢鏃)’이라고 부릅니다. 이 딸아이를 선봉으로 삼으면, 필시 큰 공을 세울 것입니다.”
[제93회에 이규가 꿈속에서 만난 선비가 ‘전호의 무리를 평정하려면 반드시 경시족과 화합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전호는 즉시 성지를 내려 경영을 군주(郡主)로 봉하였으며, 우리는 사은하였다. 통군대장 마령이 아뢰었다.
“신은 군마를 이끌고 분양으로 가서 적을 물리치겠습니다.”
전호는 크게 기뻐하면서, 두 사람에게 금인(金印)과 호패(虎牌)를 내리고 금은보화를 상으로 하사하였다. 우리와 마령은 각각 병력 3만을 이끌고 출발하기로 하였다.
마령은 군마를 이끌고 분양으로 떠났고, 우리 국구는 왕명을 받들어 병부를 가지고 교련장으로 가서 병마 3만을 선발하였다. 병장기와 기계 등을 정돈한 다음, 집으로 돌아가 땅 경영을 선봉으로 삼았다. 경영은 부친의 명을 받아 군마를 이끌고 소덕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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