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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앞바다에 무녀도(巫女島)라는 섬이 있다. 무당의 춤추는 모습을 닮았다며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 섬 이름을 들을 때 나는 무녀도(無女島)라는 생각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짓는다. 무녀도(無女島)가 더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현실과 비슷해 그런지도 모른다.
무녀도(無女島)는 여자가 없고 남자만 살고 있는 섬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이 섬이 나에게서 무녀도(無女島)가 되었을까. 어느 곳은 여인이 넘쳐나고 또 어디는 여인이 없다고 할 때, 오갈 데 없는 여인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해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소위 인기 없는 여자라도 이 섬에 가면 여왕 대접을 받지 않을까. 외모지상주의에 쫓긴 여자들이 성형외과만 기웃거리지 말고 이 섬에 찾아간다면 자존감을 찾으리라고 본다. 외부 요인의 약점으로 배우자를 고르지 못한 노처녀가 있다면 이곳에 가보기를 권하고 싶다. 마음에 드는 반려자를 찾기 쉬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남자에게도 배우자를 맞이하는 숙원을 풀 수도 있다.
지구상에 남자들만 사는 섬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얼마나 재미없고 삭막할 것인가. 부부 중심의 가정생활이나 청춘 남녀의 데이트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을 것이다. 무릇 인간사회는 아기부터 노인까지 층층이 각기 다른 세대로 구성되어 있다. 아이들이 뛰놀고 울음소리도 들을 수가 있어야 사람 사는 세상이다. 남자들만 있으면 가정은 해체되고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적으로 살아가는 혼자만의 사회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서로 갈등만 빚고 폭력, 술, 도박, 마약으로 황폐한 섬이 되어가지 않겠는가.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하나, 둘 죽음을 맞이하다가 결국은 무인도로 변하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 무녀도(無女島)가 아닌 무녀도(巫女島)라는 게 다행이라고 느껴진다.
우리 세대가 젊었을 때 결혼은 필수라고 생각하였다. 인간이라면 남녀가 결혼해서 후손을 남기는 것이 당연한 의무처럼 교육받고 자랐다. 가정주부라면 출산과 육아의 어려움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다. 만일 딸만 있는 가정은 가까운 친척에게서 양자를 입적해 대를 잇는 사람이 많았다. 그때는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든지,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구호가 회자하였었다. 어쩌다가 우리나라가 인구의 감소로 미래를 걱정하는 단계까지 왔는지 세월의 변화가 무상하다. 현시대는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 되었다. 개인주의로 너무나 빨리 변하는 사회에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다.
아파트 단지나 산책로를 걷다 보면 유모차를 끌고 가는 젊은이들을 자주 본다. 아기를 보면 모두 귀한 보물로 보이고 젊은 부부는 애국자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OECD 회원국 중에서 최하위를 차지하고 있어 앞날이 걱정이라는 보도를 자주 보고 듣는다. 왜 이 지경까지 왔는지 안타깝다. 섬이나 다를 바 없는 나라에서 천연자원은 없고 그나마 고급 인력자원이라도 있어 다행이었는데 이나마 염려해야 할 실정이다. 앞으로는 국방인력도 참으로 문제가 될 것 같다. 우리나라는 부모를 비롯해 조상을 잘 받들다가 세상을 뜨면 산소나 납골당에 모시면서 죽음 이후까지 돌보고 제사 지내는 미풍양속이 있다. 이마저 우리 후세대는 이런 풍속이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너무나 빠르게 전통 습관이 변하고 있다.
유모차를 만났을 때 얼마나 아기가 귀여울까 하는 기대감으로 “까꿍”하며 가까이 다가가서 쳐다보다가 실망한 적이 여러 번 있다. 유모차에는 아기가 아니라 견공이 의젓이 무게를 잡고 있다. 강아지가 아기 자리를 버젓이 차지하고 있으면서 뭘 이상한 듯 바라보고 있느냐고 힐난하는 것 같다. 아기가 재롱을 부려야 할 자리에 반려견이 대신 자리 잡은 게 어제오늘이 아니다. 주객이 바뀌어 인간 가치는 떨어지고 견공의 신분만 올라가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10만 원짜리 지폐가 나온다면 아마도 인물 대신 개를 넣어도 이상하지 않게 느껴지는 세상이 올지 모르겠다. 너무 지나친 생각일까.
무녀도(巫女島)는 무녀도(無女島)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남녀가 뒤섞여 살면서 가정을 이루고 각자 맡은바 직분에 충실하며 경제력을 키워갈 때 살맛이 나는 섬이 될 것이다. 장성한 남녀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활력이 넘치는 섬을 만들어야 한다. 아기와 청소년들이 법석대고 이들에 대한 교육에 힘써 미래의 국가 동량으로 키워야 한다. 지구상의 곳곳에서 벌어지는 동성 결혼이 아니라 남녀 이성 간의 결혼만이 합법화되는 세상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무녀도를 떠올리면서 남녀가 손에 손을 맞잡고 춤을 추는 약동의 섬을 기대해 본다면 내 욕심일까. 무녀도(巫女島)도 아니고, 더욱이 무녀도(無女島)도 아니며, 무녀도(舞女島)가 되는 지상낙원을 꿈꾼다면 터무니없는 망상일까. 꿈은 꿈꾸는 자만의 자유다.
2013년 11월, 월간 ‘문예사조’ 시부문 신인상 수상
2015년 7월, 월간 ‘한국수필’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청숫골문학회 회장 역임,
에세이 강남문학회 회원, 미국 워싱턴문인회 회원, 문예사조문학상 수상, 한국창작문학상 수상
시집 : ‘그림자 따라가기’, ‘구부러진 그림자’
이메일 : hwlee@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