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밤
송종규
어둑어둑한 이 시간 속에 무수한 틈이 있다
틈 사이에 끼인 문장을 읽는 것은 오늘 내가 해야 할 일
읽히지 않는 페이지 속에 존재하는 나는 이 세계 속
불완전한 문장일 뿐이지만
몇 개의 이미지들이 겹치는 호수의 수면과, 소멸의 모든 찰나들,
자욱한 새들의 둥지, 만발한 공중을 끄집어낼 수는 있다
느티나무 위에 번쩍이는 독수리 모형들이 매달리고 나서
새들은 사라졌다, 빈 둥지 가득 허공과 들판을 들여놓고
초록색 모자를 쓴 남자 몇이서 긴 막대기로 툭툭 둥지를 두드렸지만
여기에 없으므로 새들은 끄떡없다
이것은 사실
형이상학도 아니고 신파도 아닌 어떤 생의 틈새 이야기
공중에는 부서진 모음들과 분홍으로 넘쳐났지만
공중은, 슬픔의 한 부분일 뿐이라고 중얼거리는 나는, 도대체,
남아있는 이 풍경 속으로 당신을 불러들이고 싶지만
당신께 나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네
잠 속으로 초록색 모자가 따라 들어오는 기이한 밤
책을 덮어도 나는 닫히지 않는다
아주 구체적으로, 나는 흩어진다
웹진 『시인광장』 2024년 7월호 발표
송종규 시인
1989년 《심상》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그대에게 가는 길처럼』 ,『고요한 입술』 .『정오를 기다리는 텅 빈 접시』 .『녹슨 방』 .『공중을 들어올리는 하나의 방식』 등이 있음. 대구문학상, 애지문학상,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좋은시상, 이상시문학상 등을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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