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
마태 28,8-15
주님의 영광스러운 부활 앞에 우리는 어느 쪽에 서 있습니까?
목숨 바쳐 사랑했던 주님의 영광스러운 부활 앞에 여자들 마음속에는 두 가지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마태오 복음 28장 8절)
우리네 지난 인생 여정을 돌아보니 두려움과 기쁨이 서로 교차되는 특별한 순간들이 있습니다.
아기를 가진 엄마들은 산달이 가까워질수록 두렵고 떨립니다.
그러나 이 순간의 고통을 잘 견뎌내면 나를 통해 새 생명이 탄생한다는 기쁨에 마음이 설렙니다.
정치적으로 암울하던 지난 시절, 보다 나은 세상을 한번 만드는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노라며,
철옹성 같은 압제자들과 무장한 병력에 저항의 깃발을 들 때, 잡혀가고, 구속되고, 고문당할 때의
두려움을 상상을 초월합니다만, 내 청춘을 나라를 위해 바친다는 생각에 마음이 웅장해집니다.
언젠가 우리가 맞이할 죽음의 순간도 그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오직 나 홀로 떠나야 하는 데서 오는 두려움,
어떤 장면이 펼쳐질까 하는 데서 오는 걱정이 크겠습니다.
그러나 그 마지막 고통의 언덕을 넘어서면, 그토록 우리가 기다려왔던 순간,
주님 부활에 결정적으로 참여한다는 생각에 기쁨으로 가득 차야 하겠습니다.
예수님 부활의 최초 목격 증인인 두 여자는 두려움에 떨었지만,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더 강한 믿음으로
주님 부활을 확신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만큼 주님을 열렬히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주님 부활에 대한 확신이나 믿음이 부족하십니까?
그렇다면 두 여인처럼 주님을 더 깊이, 더 열렬히 사랑해 보십시오.
안갯속 같았던 주님 부활이 보다 명료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여자들과는 달리 주님 부활의 현장을 직접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덤 경비병들은 수석 사제들의 꾀임에 넘어갑니다.
두둑한 목돈을 받고서는 예수님의 시신을 제자들이 훔쳐 갔다고 거짓 증언을 함으로써,
주님 부활의 영광을 철저하게 외면했습니다.
수석 사제들의 악행은 무덤 경비병들의 악행보다 훨씬 더 센 것이었습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에게 돈을 주어 스승님을 배반하게 만들었던 수석 사제들은,
이제 다시 한번 무덤 경비병들에게 돈을 주어 예수님 부활 사건에 대한 입막음을 합니다.
사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칠 계획이 있었다면, 그들은 예수님께서 무덤에 안장되고 봉인되기 전에
그 일을 실행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 밤 제자들은 단 한 사람도 무덤 근처를 얼씬거리지 않았습니다.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사악한 수석 사제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살아 계셨을 때 돈을 주고
그분의 목숨을 샀습니다.
그분께서 돌아가시고 되살아나셨을 때, 그들은 다시 한번 돈을 주고 그분 부활의 증거를 지우려고 했습니다.
주님의 영광스러운 부활 앞에 우리는 어느 쪽에 서 있습니까?
주님 부활에 대한 강한 확신과 믿음을 바탕으로 그분 부활의 충실한 증인입니까?
아니면 끝끝내 주님 부활을 의심하고 거부하는 수석 사제들 편입니까?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
첫댓글 감사합니다.
아멘 🙏
알렐루야 ~~~알렐루야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