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남자(A lonely man)-14
"헬로, 뱍샹 반장입니까?"
"그렇습니다. 다니엘 조?"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조 만수는 다급한 음성으로 그의 위치를 물었다.
"저는 지금 탄중판치에 있습니다. 업무 출장입니다. 무슨 급한 일이 생겼습니까?"
그는 지금 이 경철을 찾아 북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조 만수 같은 신출내기 한국 정보원에게 일일이 위치와 계획을 말해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가능한 협조하라는 상부의 지시는 받았지만 이번 이 건은 직접 해결해야만 했다.
"한국인 장 지향이 납치되었습니다. 오늘 저녁에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협조를 좀 해주십시오."
"협조하고 싶지만... 훌리아도 반장을 만나십시오. 제가 전화해 놓겠습니다. 장거리라서 전화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훌리아도 반장을 만나면 협조해 줄 겁니다."
그리고 전화는 끊어졌다. 조 만수는 황당하였다. 그래도 한국의 정부에서 파견되었다면 쉽게 모든 협조를 공손하며 적극적으로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예상이 간단한 경찰 협조에서 어긋나고 있다. 화도 났지만 지금 장 지향을 구출하는 것이 급 선무가 되었다. 그는 투숙하고 있는 호텔 택시를 타고 반둥 경찰서로 향했다.
제임스는 에버타냐로부터 장 지향이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받고 반둥공항 휴게소에서 그와 대책을 의논하고 있었다. 그로서도 지금 상황이 난감하였다.
"에버타냐 장군! 전혀 짐작이 되지 않는 상황입니까?"
"아니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좀 심각해질 것 같습니다. 저쪽에서 접근하려는 방법 중의 하나일 것으로 짐작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까지 하여야 하는가?에 의문을 두면 곧 이해가 갈 것입니다. 장 지향은 사실 이 사건과 관계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그들은 초점을 돌리기 위하여...
에바타냐 장군. 저가 없어도 장 지향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한국의 다니엘도 이 상황을 알고 있을 겁니다. 그의 판단이 어느 쪽으로 기우냐에 따라 대응의 강도를 조정할 수 있겠지만, 우선은 다니엘이 모른다는 상황을 설정하여 신속하게 장 지향을 구하십시오. 그들이 장 지향을 해쳐 곤란한 입장에 처해 지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전하게 구출하는 것을 목표로 행동해 주십시오."
"약속하겠습니다. 전력을 다 동원하여 속히 원상태로 회복해 놓겠습니다. 싱가폴로 가려는 판단은 변함없습니까?"
"예. 없습니다. 싱가폴에서는 준비를 해 놓았습니까?"
"이미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럼 30분 후부터 에이 작전을 시작합시다. 그전에 장 지향에 대한 현재 상황과 대응을 알려주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지향은 그들의 대우가 나쁘지 않음에 놀랐다. 벽돌로 지어진 2층 양옥의 베란다가 있는 남쪽 거실 같았다. 가구는 거의 없고, 대나무로 만든 침대가 하나 흰 시트가 덮인 채 벽에 붙어 있었다. 침대 맞은편에는 유리로 된 탁자와 역시 대나무로 만들어진 4개의 의자가 있었다. 벽에는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았다.
그게 다였다. 양옥은 지은지 오래되어 낡았다. 칠이 벗겨져 있었고 열대과일 냄새가 났다. 바퀴벌레가 곳곳에 나타났다간 사라지곤 하였다. 전화나 티브이 등 전자제품은 볼 수가 없었지만, 창가에도 대나무로 만들어진 탁자와 의자가 있었다.
지향은 오랫동안 감겨져 왔던 눈과 허파에 맑은 산소를 주고 싶어 창가에 난 문을 열고 베란다로 나갔다. 누구도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베단다는 건물 이층을 둘러쌓듯이 긴 사각형으로 둘러쳐 있었다. 방과 베란다를 가르는 역시 대나무로 만들어진 칸막이가 전부였다. 멀리 언덕 아래로 시내가 보였다. 그렇다면 이곳은 산 중턱쯤 되지 않은가고 생각하였다. 왜 그들이 자기를 이곳으로 납치하듯 데리고 와서 비록 집안이겠지만 이렇게 자유스럽게 풀어놓았는가. 심호흡을 하며 맑은 공기를 들이 마시자 몸과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았다. 그제서야 숱한 의구심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제임스와 함께 동생 소향이를 만나기 위하여 출발했을 때는 달콤한 신혼여행을 느꼈었는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건들이 발생하고 한국 정부가 개입하고... 제임스의 과거가 한국 정보원에 의하여 낱낱이 밝혀졌고 그리고 장 지향. 본인이 이렇게 납치를 당하고.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뭔가 윤곽이 잡히는 것 같았다. 제임스와의 관계는 너무 큰 충격으로 덮쳤기 때문에 당장 생각의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다만 현재의 상황을 생각하는 것이 더 급했다.
장 지향은 머릿속에서 빨리 정리를 하기 시작하였다. 문제의 키는 KJ의 김 서방이 가지고 있는 것인데 지금 그 무엇 때문에 살인사건과 첩보전을 방불케하는 그 무엇의 탈취 게임이 벌어지고 있으며 지향은 어쩌면 미끼나 협상의 대상물로 이용되고 있는 것 같음을 감지하기 시작하였다.
제임스와 다니엘은 내가 납치되었음을 알 것이다. 그러면 누군가가 나를 구하려고 할 텐데... 제임스는 나를 구하러 먼저 올 것이라 믿었다. 지향은 골똘히 생각하며 저도 모르게 그들이 미리 준비해둔 듯한 사이드 테이블 위의 담배에 손이 갔다. 인도네시아로 브랜드 된 고급스러운 담배 한 갑과 일회용 라이터가 있었다. 담배를 피워보고 싶었다.
그 시각, 제임스는 싱가폴을 건너가기 위하여 말레이시아 쪽에서 조호바루 브릿지의 중간쯤에 다른 차량들 틈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싱가폴로 바로 가지 않았다. 그는 지향이 걱정되었지만 에버탸냐 장군을 믿기로 하였다. 그의 능력이라면 차질 없이 무사히 지향을 구해 내리라 믿었다.
지향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인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초점이나 키포인트를 돌리려는 의도나 시간을 벌기 위한 작전일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는 담배를 피우기 위하여 무의식적으로 왼손을 재킷 속주머니에 넣었다. 그러다 곧 손을 내려 핸들을 잡고 오른손으로 재킷을 뒤져 담배와 함께 손에 잡히는 것을 꺼 냈다. 싱가폴 상그리라 호텔에서 주운 종이 성냥이었다. 그는 국경 통과 절차를 간단히 마치자 곧 동물 같은 감각으로 상그리라 호텔을 향하여 악셀레이터를 밟았다.
그는 우드렌드를 빠져 고속도로를 타고 싱가폴 대학을 지나 카퉁타운의 바다가 보이는 한가로운 해변에 위치한 상그리라 호텔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상그리라 호텔 뒤편에는 12층 아파트가 거의 완공되어 입주를 기다리듯 베너를 곳곳에 붙여 미풍에 나부끼고 있었다. 그때 때를 맞춘 듯 전화가 울렸다.
"나, 제임스입니다. 제이?"
"어디 계십니까?"
"상그리라 호텔 주차장에 있습니다."
전화한 그는 놀라워하였다. 제임스 역시 놀랐다.
"어떻게 여기를... 지금 저도 호텔에 있습니다. 위치를 말씀하시면 가겠습니다."
"아니. 위치를 말하면 내가 찾아가리다."
"호텔 뒷 편 주차장 혼다 어코드 검정입니다."
제임스는 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차를 뒤 주차장 맹그로브 나무숲에 주차하였다. 어코드는 찾기 쉬웠다. 검은색은 한 대가 있었다. 주변과 위를 보았으나 특히 의심할 상황은 없었다. 그때 문을 열고 호리호리한 중년의 사내가 나와서 가까이 다가왔다.
"제이. 군 군입니다. 미스터 제임스 맞지요?"
"군 군. 그렇소. 내가 제임스요”
“참 많이 변했습니다. 이렇게 함께 일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준비는 되었습니까? 그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는 지금 창으로 바다가 보이지 않는 707호에 있습니다."
"그럼, 감시는 어떻게 하고 있고, 언제 그가 투숙하였습니까?"
"장군님의 명령대로 뒤편 신축 건물 8층에 스나이퍼가 있습니다. 바로 그 방을 망원경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30분 전에 방에 들어갔습니다. 함께 가시겠습니까?"
"그전에, 나에게 줄 것은?"
군 군은 어코드 트렁크에서 검은색 방탄조끼와 베레타 38구경 권총과 탄창을 하나 더 꺼내어 제임스에게 주었다. 베레타 컴펙트는 총신이 짧아서 근거리 살상 사격용이며 자동 반자동이 되었다. 특히 소지하기에 좋았다. 써버 컴팩트가 12발 탄창이지만 컴팩트는 15발이고 게다가 탄창을 하나 더 휴대한다는 것은 불필요하였지만 전투는 예측을 불허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살아남아야 하기에는 충분하였다.
대사관에서 받은 권총은 다리를 건너며 버렸었다. 혹 근거가 되어 불필요한 조사와 마찰을 사전에 막는 게 좋다 생각하였다. 잘하였다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