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 / 문학사상사
‘나를 잊지 마,
내가 여기 있었다는 걸 기억해 줘’
‘그때 서른일곱 살이던 나는 보잉 747기의 한 좌석에 앉아 있었다.
거대한 비행기는 두터운 비구름을 뚫고 내려와, 함부르크 공항에 막 착륙하려 하고 있었다...’
소설은 ‘나’ 와타나베가 함부르크 공항에서 18년 전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시작된다.
그가 겪은 10대부터 30대까지의 방황과 애틋한 사랑을 그리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오래전, 이제는 기억마저 희미한 시절에 읽었던 책이다.
1990년대 이 책을 읽지 않고 그 시대를 지난 사람은 거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사랑 이야기이자 사람사는 이야기다.
세월이 한참 지났는데 다시 읽어도 풋풋하다.
1987년 일본에서 출간되어 폭발적인 반응 후,
30여개국에서 출판, 전 세계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적 성과를 널리 알리면서 '하루키 붐'을 일으켰다.
우리나라에서도 1989년 문학사상사에서 출간,
까뮈의 ‘이방인’과 함께 젊은이들의 영원한 필독서로 최장 베스트셀러다.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한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1960년대 말 고도성장을 이룬 기성세대와 새로운 세대의 저항 문화가 시대적 배경으로 공존한다.
현대인의 고독과 젊은이들의 방황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현대 일본 문학의 대표작'이다.
사람이 태어나 살다 죽는 일 즉 생로병사는 우리의 삶이다.
살아있는 것은 언젠가는 다 사라진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은 매 순간 슬프고 아프다.
가족, 형제, 친구, 부모일수록 더욱 그렇다.
상실감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생의 한가운데에서 더 이상 마주할 수 없는 세계로 떠나보내는 상실감을 무엇으로 위로받을 수 있을까.
떠난 사람은 말이 없다.
눈빛, 표정, 몸짓으로 이야기 나누던 사람이 더 이상 곁에 없다는 사실을 감당하는 것은 쉽지 않다.
좋았던 기억보다 후회가 더 많다.
왜 좀 더 잘 대해주지 못했을까...
'상실의시대'는 우리 삶 속의 '죽음'을 방황과 고독 그리고 사랑으로 이야기한다.
'삶'은 죽음의 무게를 끌어안아야 하지만,
결국은 남겨진 사람들의 온기속에서 '삶'은 회복된다.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방황, 고독, 사랑 또한 '삶' 위에서 성장한다.
소설 '상실의 시대'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며 삶의 무게감을 덜어주는 작품이다.
빛나던 그 시절이 오히려 더 어둡게 느껴졌던 건 왜일까?
빈약한 오늘은 늘 허전하고, 무엇이 될지 알 수 없는 내일은 늘 공허했다.
막연한 희망과 차가운 현실 사이에서 그저 아파할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누구나 통과의례처럼 그런 '상실의 시대'를 지나온다.
되돌아보면 그 시절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회한이 밀려온다.
돌아갈 수 없기에 더 애틋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작가가 현재의 젊은이들에게, 또 돌아갈 수 없는 모든 세대에게 바치는 헌사다.
책의 원래 제목은 비틀즈의 노래 ‘Norwegian Wood(This Bird Has Flown)’를 딴 ‘노르웨이의 숲’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 원래 제목인 ‘노르웨이의 숲’으로 출간했으나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89년 문학사상사에서 ‘상실의 시대’로 제목을 바꿔 출간하면서 국내에서도 크게 붐을 일으켰다.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이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심리를 잘 포착한 것 같다.
2013년 무라카미 하루키의 요구와 원제목을 좋아하는 국내 독자들의 요청으로 ‘노르웨이의 숲’으로
민음사에서 재 출간되었다.
책속에서
'죽음은 삶의 대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있다.'
그것은 진실이다. 우리는 살면서 죽음을 키워 가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진리다. ‘나오코의 죽음이 나에게 그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어떤 진리로도 사랑하는 것을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다.
어떤 진리도, 어떤 성실함도, 어떤 강인함도, 어떤 상냥함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 없다.
우리는 그 슬픔을 다 슬퍼한 다음 거기에서 뭔가를 배우는 것이고,
그렇게 배운 무엇도 또 다시 다가올 예기치 못한 슬픔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p.529-530)
인상 깊었던 문장은 주인공 하루키에 대한 묘사다.
글로 표현된 인물임에도 생생하게 그 모습이 그려졌다.
지금껏 읽은 소설중에 손꼽힐 만큼 매력적인 인물이다.
때로는 상황 상황마다의 묘사가 자극적(19금)이어서 이게 섬나라 일본하고,
우리하고의 도덕심의 차이인가.. 하고 아예 몇 작품은 중간에 덮기도 했지만,
오래된 작품인데도 촌스럽지 않고 세련되고 감각적이다.
‘반딧불이 사라진 뒤에도 그 빛의 흔적은 내 안에 오래오래 머물러 있었다.
눈을 감은 두터운 어둠속을,
그 가녀린 엷은 빛은 마치 갈 곳을 잃은 영혼처럼 언제까지나 방황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러한 어둠속에 몇 번이고 손을 뻗쳐 보았다.
손가락에는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그 조그마한 빛은 언제나 나의 손가락이 닿을 듯 말 듯 안타까운 거리에 있었다.‘- 상실의 시대 1부 마무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