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전례
민족 분단의 아픔을 안고 사는 한국 교회는 1965년부터 해마다 6월 25일에 가까운 주일을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로 정하였다. 1992년에 그 명칭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바꾸고, 2005년부터 이날을 6월 25일이나 그 전 주일에 지내다가, 2017년부터는 6월 25일에 거행하기로 하였다. 한국 교회는 남북한의 진정한 평화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며 노력하고 있다.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흩어진 사람들을 모으시고 모인 사람들을 지켜 주시니
남북으로 갈라진 저희 민족을 자비로이 굽어보시어
평화 통일을 이루어 주시고
흩어진 가족들이 한데 모여
기쁘게 하느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제1독서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다시 모아들이실 것이다.>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30,1-5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 “이 모든 말씀, 곧 내가 너희 앞에 내놓은 축복과 저주가 너희 위에 내릴 때,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몰아내 버리신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너희가 마음속으로 뉘우치고, 2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서,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대로
너희와 너희의 아들들이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
3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의 운명을 되돌려 주실 것이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또 너희를 가엾이 여기시어,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흩어 버리신 모든 민족들에게서
너희를 다시 모아들이실 것이다.
4 너희가 하늘 끝까지 쫓겨났다 하더라도,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그곳에서 너희를 모아들이시고
그곳에서 너희를 데려오실 것이다.
5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 조상들이 차지하였던 땅으로 너희를 들어가게 하시어,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하고 조상들보다 더 잘되고 번성하게 해 주실 것이다.”
제2독서
<서로 용서하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4,29―5,2
형제 여러분, 29 여러분의 입에서는 어떠한 나쁜 말도 나와서는 안 됩니다.
필요할 때에 다른 이의 성장에 좋은 말을 하여,
그 말이 듣는 이들에게 은총을 가져다줄 수 있도록 하십시오.
30 하느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속량의 날을 위하여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31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32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5,1 그러므로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복음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8,19ㄴ-2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9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우리는 통일이라는 선물을 받을 준비가 되었는가?
오늘은 남북통일 기원 미사입니다. 남북통일은 우리가 하는 것일까요? 우리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선물의 가치를 아는 이에게 그 선물을 주십니다.
동서독의 통일되는 과정을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통일은 정말 선물과 같이 왔습니다. 1989년 11월 9일, 동독 정치국 귄터 샤보프스키 의원이 동베를린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그는 동독인들이 해외여행을 위해 비자를 더 쉽게 신청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새로운 여행 규정을 발표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그러나 샤보프시키는 일설에 의하면 전날 술을 많이 마셔서 새로운 규정의 세부 사항과 시기에 대해 충분히 설명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기자회견에서 한 언론인은 샤보프시키에게 새로운 규정이 언제 발효되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자기 발표문을 여기저기 뒤적이다가 다소 불확실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내가 아는 한, 지체 없이 즉시 발효됩니다."
이 발언은 틀렸으며 동독 정부를 포함해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해당 규정은 즉각 시행되지 않고 점진적으로 순차적으로 시행되도록 의도됐습니다. 샤보프스키의 성명은 TV와 라디오로 생중계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수천 명의 동베를린 주민들은 베를린 장벽을 통과할 것을 요구하며 베를린 장벽으로 달려갔습니다. 갑작스럽고 대규모의 인구 유입에 대비하지 못한 국경수비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명확한 명령도 없이 늘어나는 군중에 직면한 그들은 결국 문을 열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개방되었고 이 물결은 더는 막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습니다. 이후 몇 달 동안 협상과 외교적 노력이 강화되어 1990년 10월 3일 독일이 공식적으로 통일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나라도 이렇게 갑작스러운 선물처럼 통일의 물꼬가 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북한 주민들이 수없이 철책을 넘어온다면 우리는 기쁘게 맞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을까요? 어떤 이들은 내가 왜 그 많은 통일비용을 내야 하느냐며 통일을 반대합니다. 앞으로의 치안과 전체적으로 나라가 가난해질 것을 걱정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미 결혼도 안 하고 자녀를 낳지 않아 소멸해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통일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세상이 되면 새롭게 국민들의 마음도 변화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통일비용이 많이 든다고 통일을 반대하는 이들은 장기적으로 북한과의 대립으로 우리가 소비해야 하는 군사비용이나 핵무기의 위협과 같은 감정적인 부분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질적으로도 관광적으로도 기대되는 이익도 엄청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건 북한을 이용하기 위한 것 아니냐, 우리가 북한이 불쌍해서 통일해주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관계가 되지 않습니다. 모든 관계는 쌍방의 고마움을 전제해야 합니다. 인간의 자존심을 비굴해지느니 죽는 것을 선택합니다. 로마에 끝까지 맞서다 나중에 집단으로 자살했던 마사다 항쟁을 생각해봅시다. 아니면 영화 ‘300’에서 자신은 관대하다는 페르시아 장군에게 목숨을 잃더라도 끝까지 저항한 몇 안 되는 스파르타 군인들을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북한에게 다가갈 때는 우리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갑작스러운 선물로 통일의 물꼬가 트일 때 서독인들처럼 기쁘게 동독 사람들을 맞아들일 수 있습니다. 만약 나의 배우자가 “너 나 아니었으면 거지로 살았을 거야?”라고 한다면 그래도 그 사람과 살겠습니까?
통일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이 통일이 우리에게 더 좋다는 전반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기회가 오면 내분이 없이 바로 통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통일이라는 선물을 받을 자격이라고 생각합니다. 결혼도 마찬가지고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하고 자녀를 낳는 것이 더 좋다는 믿음이 먼저 있어야 그 선물도 받을 수 있습니다. 분명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서독에서는 통일의 이점이 어려움보다 크다는 것이 전반적인 공감대였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몰려올 때 우리가 기뻐 뛸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통일의 준비가 된 것이고 이때 우리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단지 15분’이라는 연극이 있다고 합니다. 이 연극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극 중 주인공은 몸이 이상해서 병원을 찾아갑니다. 여러 검사를 하고 나서 의사로부터 “당신은 15분 후에 죽습니다.”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게 됩니다. 우울한 마음으로 병원 문을 나서는데 전화가 울립니다. 재산상속을 해줄 테니 얼른 서명하러 오라는 할머니의 전화였습니다. 15분 후면 죽는다는데 유산 상속 소식에 기뻤을까요?
잠시 후에 오랫동안 구애를 했던 여자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당신의 청원을 받아들일 테니 얼른 자기 집으로 오라는 것입니다. 15분 후면 죽는다는데 결혼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곧바로 세계적 과학 학술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당신의 논문 게재가 확정되었으니, 게재료를 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역시 15분 후면 죽는데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주인공은 15분 앞에서 세상의 모든 욕망이 의미 없음을 깨닫고 오열합니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것 하나였습니다.
‘남은 15분을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요? 우리 모두 유한한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이 시간 안에서 과연 중요한 것이 나의 욕망일까요? 그보다 삶에 충실할 수 있는 중요한 것을 찾아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사랑의 삶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의 삶을 통해 지금이 의미 있으며, 무엇보다도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하느님 나라에서의 삶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에 나의 전부가 있는 것처럼 살았던 것이 아닐까요? 욕심을 버리고 사랑으로 채울 수 있는 나의 삶을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는 날입니다. 1950년 6월 25일의 전쟁을 시작으로 남북한은 지금까지도 민족 분단의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였던 나라가 둘로 갈라져 너무 오랫동안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있습니다. 이 모습이 과연 중요한 것일까요? 아직도 우리 민족 간에는 거리감이 무척 커 보입니다. 좌파, 우파, 빨갱이, 보수라는 말 등으로써 아군과 적군으로 나누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 민족 간의 간격은 너무나 커 보입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사랑의 삶을 통한 일치인데도 아군 적군 식의 편 나누기가 더 중요한 것처럼 여기는 사람도 너무나 많습니다.
사랑의 주님이시만 동시에 이 사랑으로 일치를 이루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역시 주님의 마음을 받아들여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라는 주님 말씀을 따라, 마음을 모아 기도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즉, 남북한의 진정한 평화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며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는 인생의 3/4을 남의 인생을 살다가, 나머지 1/4은 내 인생을 살지 못했음을 후회하며 죽는다(쇼펜하우어).
사진설명: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