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일
방화자
연 보라빛 나비가 사뿐히 내려 앉는 모습으로 피어 있는 꽃, 양옆 두 줄기에서
열 아홉 송이꽃이 가지가 휘어 지도록 활짝 피어있다. 향기는 없지만 정성들여
만든 포장과 장식 그리고 자필로 적은 글귀가 향기보다 더 진하게 가슴을 흔들
어 놓는다. 연분홍 작은 편지 봉투속에 핑크빛 리본과 튜우립 꽃으로 장식을 한
하트 모양의 편지지 에는 진홍빛 사랑의 고백이 들어있다. 반세기가 넘도록 살
아온 삶의 무게 만큼이나 귀하고도 진국같은 고백의 수줍음이다.
눈빛과 표정, 그리고 말로하는 그 어떤 사랑의 표현 보다도 더 은근하게 마음
을 사로잡는 이 작은 서한은 어디에 그런 마력을 지니고 있는 걸까. 서툰 표현에
서 풍겨지는 진지함에서 일까. 아니면 너무 오랫동안 까맣게 잊어버렸던 탓일까.
며칠전 남편이 내 생일을 축하 한다고 선물한 난화분이다. 장미꽃을 사기에는
꽃송이가 너무 많아 어쩐지 우울한 기분이 들어서 평소 내가 좋아하는 보라색으
로 난 화분을 골랐다고 했다.
한손에는 케이크가 또 한쪽 팔에는 화분을 끌어안고 퇴근하는 남편을 마주하
니 왈칵 뜨거움이 솟구쳤다. 올해도 생일을 양력으로 챙겨 주려는 살뜰한 배려가
고맙기만 하다.
늘상, 추석날이 생일이기에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나를 위한 생일을 따로 차려
본 적이 한번도 없다. 어렸을때도, 결혼전에도, 결혼해서도 마찬가지다. 내 생
일은 “추석날 이니까.” 라는 말이 불문율처럼 되어서 으례껏 그냥 넘어가곤 하
였다. 가장 푸짐한 생일상을 받는 사람이라 좋겠다는 말을 어려서부터 들어온
터라 정말 그런가보다 하고 섭섭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시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 3년 동안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미역국을 끓여 생일상을 차려 보
았다. 생일날 미역국도 못 얻어먹는 내가 측은했던지 추석 이틀전 날이면 어머
님은 미역 한 다발과 닭 한마리 그리고 국거리 고기를 사서 미리 집으로 보내셨
다. 어쩔수 없이 내 손으로라도 미역국을 끓여 생일상을 준비할 수 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3년동안은 추석 바로 전날이 내 생일로 둔갑을 하여 행운의 날이
되기도 하였다.
요근래에는 딸아이가 생일상을 준비 한다고 부산을 떨지만 그냥 보고 있기가
민망하고 아직은 서툴러서 내가 도와 주어야 할 형편이다. 생일, 미역국, 케익
같은 것이 뭐 그렇게 의미가 있는 것일까. 어려서부터 생일을 제대로 챙겨 받지
못해서인지 나는 생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살아왔다. 오히려 세상에 첫
울음을 터트리며 한 생명으로 탄생하게 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를 하는 날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아이들은 새 달력이 나오면 제일 먼저 자신들의 생일날에 동그라미를 그려 놓
는다. 그것도 눈에 잘 보이라고 빨강 색연필로 커다랗게 그려놓는다. 그리고는
손꼽아 기다리며 며칠전부터 귀띔을 하곤한다. 생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내
게 보내오는 신호이리라. 우리집 아이들은 생일날이면 빼놓지 않고 내게 하는말
이 있다. “어머니 저 낳으시느라고 얼마나 수고하셨어요. 고맙습니다.” 간단한
말이지만 생일타령 하는 아이들에게 일침을 가하기 위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
라는 뜻으로 평소에 일러두곤 했는데 지금은 생일날 아침이면 듣는 인사말이 되
어 버렸다.
아이들이 철이 들고 보니 제 어미의 생일이 평생동안 추석을 핑계 삼아 그냥
자나칠 것 같았는지 양력으로 계산해본 날이 10월 1일 이라며 몇 해 전부터 그
렇게 하기로 했다. 그래서 올해는 추석 닷새 전이 생일날 이었다. 남편과 나의
생일만 음력으로 하고 아이들은 처음부터 양력으로 생일을 기억했는데 앞으로는
남편생일도 그렇게 해야할것같다.
딸아이가 학교에서 돌아 오면서 양손에 이것 저것 사들고 들어왔다. 커다란
쇼핑백 하나를 내 앞으로 내민다. 펼쳐보니 색이 고운 개량 한복 한벌이다. 그
러지 않아도 며칠전에 추석을 대비해 남편의 한복을 장만할 때 내것도 함께 사
라고 했으나 어쩐지 나이가 더 들어 보일 것 같아 거절하고 사지 않은 터였다.
“엄마 추석날 곱게 입으세요. 다른 걱정 마시고요.” 나이들어 보일까 입기 싫었
지만 딸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도 예뻐서 더 이상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 고맙다. 예쁘게 잘 입을게.”
이튿날 아침 딸아이는 일찍 일어나 생일상을 차렸다. 케익에 촛불을 밝히다
말고 초가 몇 개 모자란다고 하자 남편은 일부러 그렇게 샀노라고 했다. 잠시동
안 침묵이 흘렀다. 부부 일심동체라더니 어떻게 내 마음을 꾀뚫었을까. 나는
그 말을 얼른 받아서 “열개 정도 덜 사지 그랬어요.” 하며 무거운 분위기를 바
꾸기 위해 한마디 덧붙였다. 얼떨결에 한마디 해 놓고도 억지를 쓴것같아 겸연쩍
은 웃음이 나왔다. 해마다 생일날이면 촛불로 인해 정확히 확인되는 나이 수가
올해는 남편의 재치로 몇살 젊어졌다. 생각해 보면 가슴 아픈일이나 역으로 순
간의 지혜로 돌린다면 잠시 동안이나마 기분좋게 웃을 수 있었던 여유로움에 진
정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동안 추석과 겹치게 되어 제 구실을 못했던 생일이 남편과 아이들의 배려로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늦게나마 빛을 보게 된 셈이니 그날 하루라도 뜻깊은 날
이 되었으면 좋겠다. 평소 삶의 신조로 삼아온 현명하고 사랑스런 아내와 너그
럽고 인자한 어머니의 역할을 하루만이라도 완벽하게 해보고 싶다.
이제 추석과 생일로 어정쩡 했던 기분같은 것은 다 잊어버리고 양력으로 바뀌
어 제 구실을 하게 된 생일처럼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부족했던 점을 채워가는
사랑스런 여인이고 싶다.
1998
첫댓글 그동안 추석과 겹치게 되어 제 구실을 못했던 생일이 남편과 아이들의 배려로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늦게나마 빛을 보게 된 셈이니 그날 하루라도 뜻깊은 날
이 되었으면 좋겠다. 평소 삶의 신조로 삼아온 현명하고 사랑스런 아내와 너그
럽고 인자한 어머니의 역할을 하루만이라도 완벽하게 해보고 싶다.
이제 추석과 생일로 어정쩡 했던 기분같은 것은 다 잊어버리고 양력으로 바뀌
어 제 구실을 하게 된 생일처럼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부족했던 점을 채워가는
사랑스런 여인이고 싶다.
추석과 겹치게 되어 제 구실을 못했던 생일이 남편과 아이들의 배려로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늦게나마 빛을 보게 된 셈이니 그날 하루라도 뜻깊은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평소 삶의 신조로 삼아온 현명하고 사랑스런 아내와 너그럽고 인자한 어머니의 역할을 하루만이라도 완벽하게 해보고 싶다.
이제 추석과 생일로 어정쩡 했던 기분같은 것은 다 잊어버리고 양력으로 바뀌어 제 구실을 하게 된 생일처럼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부족했던 점을 채워가는 사랑스런 여인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