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제석산 이야기(2-2)
그러나 사람들은 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듯하다. 산행 길에 눈구멍과 콧구멍만 뚫린 가면(假面)을 쓰고 걷는 여자들을 보면 말이다. 가면이 없으면 얼굴이 탄다고 하는 데 숲속에서 햇볕을 얼마나 보겠나. 가면을 덮고 산책나온 사람들을 보면 마치 미국 할로윈데이에 귀신마스크를 쓰고 나온 것 처럼 섬짓하기도 하다. 내 아내는 맨 얼굴이지만.
모든 생물이나 사람은 온 몸으로 숨쉰다. 해서 가능한 노출이 많을수록 자연스러운 데, 이처럼 가면 쓰고 산책한다면 움직이는 것 밖에 달리 있겠는가.
한편, 여자들이 화장하는 것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이를 위해 곱게 단장하는 것인 데 요즘 여자들은 외출할 때마다 화장한다고 한다. 예뻐 보이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속마음을 감추기 위한 술수인가.
이 뿐이랴! 남자들 세계는 온갖 권모술수가 횡행하고 있다. 작게는 거짓말, 사기부터 우격다짐, 총칼이나 투표로 권력쥐기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으냐 말이다. 경찰, 검찰, 이해관계를 조정해주는 법관들, 의견충돌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주고 돈 버는 변호사들이 빽빽하게 많은 것만 보아도 알 수가 있다.
언젠가 김수환 추기경은 정채봉시인과 대담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사람에게는 세 사람의 자기가 있다. 곧 자기가 아는 자기, 남이 아는 자기, 자기도 모르는 자기’가 있다고. 어떻든 감추는 것은 뭔가 캥기는 것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일단 산행 길에 나서면 그렇고 그런 세상에서 벗어나 편안하다. 갖가지 나무와 풀, 꽃들이 건네주는 피톤치드 등 향기와 잘 익은 산딸기, 꿀꽃의 꿀을 따먹는 고마운 일도 풍성하고, 어느 누구에게로부터 내 자신을 방해받지 않아서 좋다.
아내와 둘이서 걷는 길은 묵언이어도 좋고, 나무사이를 날아다니는 새들이나 나무 이름을 가르쳐주는 일도, 풀벌레 소리를 듣는 일도 싱그럽다. 병원의 치료 이야기를 들어도 좋고.
아리랑고개에 이르렀다. 지금 아리랑고개의 들녘은 택지를 조성하느라 터파기와 터 다지기 공사가 한창이다. 숲길을 걷다가 잠시 들녘을 지나면 개구리, 맹꽁이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가을에는 누런 황금빛 나락을 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들판을 지나 약수터가 있어 오고 가는 산행객들이나 주변 시민들이 약수를 마시거나 떠가곤 했는 데 이제는 모든 것이 공동주택을 짓는다고 파괴되어 버렸다. 들판과 약수터는 추억속으로 사라져 안타까울 뿐이다.
아리랑고개를 너머 공사장을 비껴가면 치마봉으로 이어지는 데 투병중인 아내는 ‘무리할 것 없다’며 되돌아 가잔다. 아프면 모든 일상이 일그러진다. 무탈할 때가 행복한 법인 데 실제로 평범한 나날일 때는 ‘행복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잃어 보아야 ‘일상이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된다. 경험이 주는 교훈이랄까.
산에는 때죽나무 꽃이 만발하고, 양지녁 묘의 벌엔 꿀꽃이 많이 피어 있다. 꽃들은 백화주(百花酒)를 만들기 위해 채집하고 있어 당연히 관심사이다.
문성고 인근에는 작은 텃밭이 있는 데 주인이 밭둑에 장미, 분홍빛 병꽃, 노란 붓꽃, 보라색 붓꽃 등을 심어 놓아 꽃들이 활짝 피었다. 한 줌 정도를 채집했다. 다른 이들도 아름다운 꽃향기를 맡아야 하니까. 한가하게 걸을수 있었고, 꽃을 채집하느라 3시간 산행하였다.‘17.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