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지향론
[11]
10일 남았다.
내가 요양소로 가게 될 날이.
"너 왜 그랬어. 너 미쳤어? 오늘 어떤 애가 와서 그러더라. 스카이에서 니가 지예한테 했던 말... 너 미쳤어?"
오빠가 날 흔들었다.
알았구나.. 알아버렸구나.
이런게 악녀의 끝이라는 거구나.
허무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끝끝내 오빠 웃는 건 못 보겠구나...
아무런 대답이 없자 오빠는 더 화난 듯 보였다.
"너 말 못해? 왜 안해!"
찰싹...
언젠가 처럼 오빠가 또 다시 내 뺨을 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놀란 기색 하나 없이 태연했다.
그리고 지예언니가 들어왔다.
"니가 사람이니? 니가 사람이야? 어떻게 그래? 사람이면... 어떻게 그래!"
[충격을 주지 마십시오. 아셨습니까? 머리가 울릴만한 짓은 가급적 삼가해주십시오. 그래서 뛰는 것, 운동이 안되는 겁니다.]
언니가 날 붙잡고 흔들었다.
몸이 흔들렸다. 머리가 울렸다.
시야가 조금 더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그만..."
내 말을 들은 건지 오빠가 콧 웃음을 쳤다.
"다신 내 앞에 보이지 마라. 유비에... 너란 애는 없다. 이제 내 눈에..."
눈물이 뚝 흘렀다.
순간 너무 흐려진 시야에 조금 놀랐다.
뒷걸음질 치다가 걸려서 넘어지고 말았다.
거의 보이질 않았다.
무언가가 있다는 것과 약한 빛 정도밖에는 보이질 않았다.
너무 놀라서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일어났다.
빨리 요양소로 가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만.. 한번만 웃어줘요. 오빠... 제발."
내 말투가 너무 서러웠던 건지... 오빠는 마지막으로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됐냐? 가라."
[12]
다행이었다.
요양소로 오자마자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악녀의 종말이라는 것이.
이렇게 비참할 줄 알았다.
생각보다 안 보인다는 사실이 슬프지는 않다.
다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이,
그 것이 애석할 뿐.
지금 쯤 우리집에서는 난리가 났겠지.
연락이 뚝 끊겨버린 채 2주일이나 지났으니까.
출국확인을 해보고는 더 놀랐겠지.
출국 명단에 내가 없을테니까...
주하오빠는 그 사실을 알고 슬퍼해줄까?
비겸이는...?
비겸이가 많이 보고싶어졌다.
[13]
언젠가 부터 그녀가 보이질 않았다.
자길 사랑하고 있는 나를 모르고는, 자신의 사랑을 위해서 그런 짓을 부탁한 후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여자를 떼어내기 위한 계획을 부탁한 그녀.
그 후로 그녀가 보이질 않았다.
거의 한 달이나 되어가는 데...
소문에 의하면 그녀가 악독한 악녀가 되어있었다.
아닌데... 나의 그녀는 그런 여자가 아닌데.
나는 그 소문을 퍼트리는 녀석들을 무참히 밟아버렸다.
그래도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찾아간 그녀의 집은 이미 발칵 뒤집혀져 있었다.
그녀가 사라졌다.
[14]
그녀가 갈 만한 곳을 뒤지는 가족들.
나는 혹시나 그녀가 무언가를 남기지는 않았을 까, 그녀의 방을 뒤졌다.
그리고 그녀의 컴퓨터를 켜봤다.
인터넷에 접속해서 기록을 보았다.
그녀가 한달 전 접속한 사이트 들을 볼 수 있었다.
병원과 요양소들...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그중 들어갔던 것으로 보라색으로 글씨가 변한 한 사이트.
그 곳은 우리 동네 근처의 큰 규모의 안과였다.
[15]
결국 알아버렸다.
그녀의 병을...
나는 가족들에게 미처 말하지도 못한 채 출발했다.
그녀가 있는 곳으로.
[16]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다.
앞이 보이지 않아서 하늘을 보지는 못하지만,
분명히 맑을 것 같다.
웃는 비겸이의 얼굴 처럼.
어느 새 주하오빠의 얼굴이 기억나질 않았다.
기억나는 건 비겸이의 얼굴과 가족의 얼굴들.
오늘 따라 비겸이가 더 보고싶다.
[17]
도착 했다.
그녀가 있는 곳에.
이제 곧 그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말해야 하지?
어떤 인사를 해야할까...?
자칫하면 그녀가 앞이 보이질 않아서 자존심이 다칠 텐데...
어떻게 하면 좋지?
[18]
오늘 자원봉사자 한명이 온다고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나를 도와줄 거라고 했다.
조금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지금의 나로써는 너무 고마운 일이었다.
"안녕하세요?"
내가 인사 했지만 그 사람은 말이 없다.
아마도.. 그 사람은 말을 못하나 보다.
"말씀을 못하시는 건가요? 전 앞을 보지 못하는데... 그래도 제가 더 불쌍하지 않나요? 하하"
그 사람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날 따스히 안아주는 것 같다.
익숙한 향기가 났다.
"우와... 익숙한 향기가 나요. 되게 기분 좋다."
"바보야..."
이 목소리는...
이 목소리는...
비겸이었다.
[19]
바보같은 그녀.
앞도 보지 못한 채 버거웠을 그녀.
어떻게 다가가야 할 지 몰라서 자원봉사자라고 해버렸다.
"안녕하세요?"
그녀의 인사에 대답해 줄 수 없었다.
그녀는 내가 아닌 다른 곳을 보며 허공에 인사했기 때문에...
입 밖으로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겨우 참아냈다.
그녀는 내가 벙어리인 줄 아는 모양이다.
뭐라고 하든 내겐 중요하지 않았다.
달려가 그녀를 꽉 안았다.
그녀가 익숙한 향기가 난다고 한다.
"바보야..."
[20]
"너... 너...! 왜 왔어! 나 이렇게 된 거 보니까 좋아? 좋으니? 동정이라도 생겨?"
소리쳤지만, 비겸인 더더욱 날 안을 뿐이었다.
"사라지지 마라. 내 심장 멈출 뻔 했잖아. 바보야..."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난 몰랐다.
몰랐던 걸 이제야 알았다.
내가 사랑하고 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에 대해서...
그렇지만 말할 수는 없다.
난 악녀니까.
이제 악녀니까.
악녀지향론을 지지해야하니까.
그래서 그를 꽉 안고 있을 뿐이다.
"악녀지향론"의 5가지 사실.
1. 악녀에게는 동기가 있다. - 결국 악녀를 만드는 것은 그 동기였을 뿐이다.
2. 악녀는 가장 처절하고도 가장 약하다. - 겉으로 강한 척하는 것 일뿐.
3. 악녀의 시작은 괴롭다. - 그 동기로 인해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지보다는...
4. 악녀의 끝은 정해졌다. - 그러나 시작할 수 밖에 없다. 무너질 줄 알면서도.
5. 악녀는 사랑을 안다. - 그래서 나중엔 결국 보낼 수 밖에 없다. 자신이 무너지면서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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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읽고 꼬리말 남겨주세요 ^-^
감상메일도 환영합니다.
아참! 파라오의 눈물은 불펌입니다.
다른 소설은 저에게 메일을 보내주신후,
제 닉네임과 메일주소 그리고 인터넷소설닷컴이라는 출처를 밝혀주시면
퍼가셔도 됩니다.
pramis1004@hanmail.net
첫댓글 케리아s 님 오랜만이네요^ ^와우ㅜ 악녀지향론이라, 여자가 너무 불쌍하네요ㅜ
아랑해님 오랜만이네요. 헤헤.. 제가 워낙 악녀, 마녀를 지향하기때문에.. 히히..
다음에 마녀지향론 기대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