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할 것이 있는데 사실 저는 초능력자입니다. (제발 믿어줘라!)
초능력이란 것은 보통 사람들은 알 수 없거나 볼 수 없는 것을 알아내는 능력이죠. 내가 가진 초능력은 그렇습니다, 바로 팜므파탈을 밝혀내는 능력입니다.
제가 이런 초능력을 갖고 있다고 해서 반 인간 반 뱀프로 태어난 블레이드처럼 음지를 돌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여러분도 알다시피 평범하게 살고 있어요. 영화 블레이드에서는 뱀파이어들을 죽이기 위해 주인공은 난리를 부리고 있지만 전 팜므파탈들을 죽이지는 않습니다. 난리도 부리지 않습니다.
근데 우리 모두 알아둬야 될 게 있습니다. 팜므파탈-그녀들은 사실 뱀파이어보다도 훨씬 더 위험한 존재입니다. 아니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뱀파이어는 기껏 자신들의 종족을 보존하는 차원에 머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보통 인간들을 다 잡아 먹으면 더 이상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자신들이 다 망하는 것이죠. 이런 점 때문에 극소수의 뱀파이어들로서 자신들 종족의 확장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 조금씩만 늘어도 금방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최소한의 종족유지로서만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뱀파이어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자신들의 개체 유지를 위해 오히려 서로들이 죽이기도 합니다. 그럼으로 뱀파이어에 당하는 인간들은 매년 항상 그 수가 거의 비슷합니다. 우린 그게 뱀파이어에 의해 그 사람들이 당한 것인지도 모르면서 말이죠. 결론으로 말한다면 뱀파이어는 개적으로는 위험하지만 전체적으로 봐서는 하나도 위험하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팜므파탈은 그렇지 않습니다. 매우 위험한 존재입니다. 잘 살펴보면 인류전체에, 한 개인의 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 영향은 대개가 다 극히 부정적인 성향이죠.
팜므파탈(femme fatale)의 팜므는 프랑스어(語)로 '여성', 파탈은 '숙명적인, 운명적인'을 뜻합니다. 동양에서는 확장된 개념으로 경국지색(傾國之色)이 여기에 속합니다. 19세기 낭만주의 작가들에 의해 문학작품에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후 미술·연극·영화 등 다양한 장르로 확산되어, 남성을 죽음이나 고통 등 치명적 상황으로 몰고 가는 '악녀', '요부'를 뜻하는 말로까지 확대·변용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가장 극단적인 팜므파틀은 우리 인류를 죄악의 구렁텅이로 몰고 간 이브를 들 수 있습니다.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된 스파르타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도 끝내 주는 것입니다. 헤로데스를 춤으로 유혹해 그로 하여금 세례 요한을 죽게 하는 《신약성서》의 살로메는 매우 관능적입니다. 삼손과 드릴라도 빠질 수 없습니다. 시저와 안토니우스를 유혹해서 로마를 내전에 빠뜨리는 클레오파트라도 유명하다고 할 수 있죠.
동양에서는 부지기수입니다. 당나라 현종의 눈을 멀게 한 양귀비, 당나라 태종과 고종의 여자였던 측천무후, 동탁과 여포 사이를 오가는 초선. 포사(서주를 망하게 한 여자)와 달기(은나라를 망하게)도 이름을 올립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숙종시대의 여인 장희빈이 유명하죠. 그녀 때문에 조정이 피의 숙청을 당합니다. 장희빈은 살았을 때도 그랬지만 죽어서도 계속 난리를 부렸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름이 오리내리한 사람들도 많지만 더 많은 팜므파탈들은 거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채 세상을 결정적으로 어렵게 만들어 버리곤 합니다. 나중에 들통이 나기도 하고 묻혀져 버리고 말기도 하지만.
최근에 각광을 받은 팜므파탈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
‘미인계, 역사를 바꾼 여인들’(한스미디어)을 쓴 중국 작가 장시우펑은 만주족 기녀 영화춘(迎和春)에 대해서 입니다.
원래 18세기쯤 청나라가 전세계 경제의 40%정도를 차지했다 하고 전 유럽이 다 합해도 그 정도이고 미국은 그땐 몇 퍼센트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청나라의 부는 막강했었더랬습니다. 물론 그 이후로 유럽의 대항해와 산업혁명으로 인해 급격히 부가 새로 개편되는 것이지만 그래도 1894년 7월부터 1895년 4월까지 발발한 청일전쟁의 결과는 정상적으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일본이 급작스레 부를 축적됐다 하더라도 또 청나라가 비리비리해 졌다고 해도 부자가 삼대는 가는 것인데. 청나라의 함대가 일본에 완전히 궤멸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그 대답은 영화춘의 미인계였습니다. 위 책의 저자 장시우펑은 만주족 기녀 영화춘(迎和春)이 일본 첩자와 손잡고 작전 기밀을 빼돌렸기 때문이라고 단정합니다. 영화춘은 타고난 미색으로 지휘관들을 구워삶아 화물선에 포탄을 싣게 하는 등 무기 체계까지 흩으러 놓았다는 것이죠. 이로써 청의 멸망이 가속화됐습니다. 이 결과는 대단한 의미를 가집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만약 청일전쟁이 청의 승리 내지는 비겼다면 동양의 그 후 변화는 지금과 아주 틀려졌을 것이고 특히 우리나라의 위치는 매우 달라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일합방 등도 다르게 전개됐을 지 모르죠. 중국의 공산화까지도…….
이를 테면 영화춘은 팜므파탈이었던 것이죠. 우리가 그것을 알든 모르든.
나라와 그 사회 또는 어떤 단체를, 한 개인을 은근히 망가뜨리는 여자가 바로 팜므파탈인 것입니다. 그래서 팜므파탈은 제거돼야 하는 것입니다만 그게 매우 어려운 일이죠.
요즘 말하는 된장녀, 까칠녀 등은 팜므파탈과 무슨 관계성을 가질까? 포함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또 미인이나 스타라고 다 팜므파탈은 절대로 아닙니다.
사실 팜므파탈도 자신의 내적인 속성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된장녀이면서도 스스로는 그런 것을 잘 모르고 은근하게 하나하나씩 껍질이 벗겨가는 경우처럼 말이죠.
이런 된장녀들을 착한 여자라고 생각해 결혼했다가 파멸의 길을 걷는 남자들을 숱해 보지 않습니까?
팜므파탈을 보면 저의 눈엔 그녀들의 뒤로 시커먼 아우라가 보입니다. 그녀가 아무리 자신을 가다듬고 착한 척 하더라도 이 아우라 때문에 척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여자들을 발견하면 그 주위의 남자들에게 경고를 해줍니다.
직접 경고를 하면 백의 백은 씨알도 안 먹힙니다. 마치 어떤 계시처럼 보이게 하죠. 남자가 “우린 서로 좋아하지만 어차피 함께 가기는 힘들겠다!”라는 결론이 나올 수 있도록 절묘한 스토리를 엮어냅니다.
그러나 요즘 심각한 회의를 가집니다. 남자들을 움직이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는 것입니다. 팜므파탈에 빠진 남자치고 제정신을 되찾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는 것이죠. 심지어 충정 어린 내 호소를 무시하고 되려 위해를 가하려는 어리석을 남자들이 숱해 많은 것입니다. 남자들은 발정 난 수캐의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거죠.
그래서 아예 여자 자신의 인류적인 양심에 호소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세상에는<지구 팜므파탈 협의회>란 것이 있는데 이 단체에서 저의 능력과 활동을 알아채고 저를 제거하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제 목숨이 경각에 다 달았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게다가 요즘 내가 좋아하는 그녀가 있는데 그녀가 매우 놓은 확률로 팜므파탈인 것처럼 생각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팜므파탈은 저의 눈에 띄는 것이지만 나 자신의 여인은 내가 사랑에 눈이 멀어 나의 능력이 발휘되지 않는 것입니다. 옛말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아마도 < 지구 팜므파탈 협의회>에서 보낸 나를 제거하기 위한 킬러일지도 모르죠.
그래서 말인데 이젠 저의 초능력이 아예 없어졌으면 해서 그렇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물론 그 동안 활동으로 수많은 지구의 위기를 구해낸 것은 사실이지만, 수많은 남자들의 개인적 파멸을 막은 것도 사실이지만.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만. 이제는 너무 피곤합니다. 나 자신을 위하고 싶습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아무도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또라이라고 말합니다. 이 글을 써도 아무도 믿어주지도 않겠죠. 더우니까 맛이 갔구나, 결국 밥맛이다 는 등등으로 생각하시겠지만. 그렇지만 세상에는 우리가 결코 믿을 수 없는 수많은 진실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못할 겁니다.
팜므파탈에 관한 저의 얘기도 진실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심정은 될 데로 되라는 마음입니다. 그녀가 아무리 팜므파탈이라고 해도, 그래서 그녀를 사랑함으로 내가 파멸된다 하더라도, 이 세상이 망한다 해도 이젠 아무렇지도 않을 작정입니다.
첫댓글 아휴~ 어지럽고 덥다 더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