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꿈이 있는 바른 세상
권성업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고 충효와 신의를 중히 여기며 예를 숭상하
여 동방의 예의지국이라 일컬을 만치 훌륭한 전통을 지닌 선조들
의 후예들이다.
그러나 요즘 들어 현대의 물질만능의 유혹에 물들어 소중한 전통
과 사람의 도리를 잊고 배금주의와 인명경시라는 패륜적인 병균
에 감염되어 제 정신을 잃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서구 영화에나 있을 법한 은행 강도 사건이나, 여인을 욕
보이고 나체시진을 찍어 인터넷에 공개하겠다고 협박하여 금품을
갈취하는, 듣기만하여도 소름이 끼칠 파렴치범이 생겨났다. 옛 속
담에 눈이 빠져도 그만하기가 다행이란 말이 있듯이 인명피해가
없다는 것이 그래도 다행이었다.
허나 그에 한 수를 더하여 부녀자를 납치하여 무참히 살해하고
시신을 차의 트렁크에 싣고 다니며 범행을 계속하려다 잡힌 천인
이 공로할 끔찍한 연쇄 살인 사건도 있었다.
그 범행 동기가 카드 빚 때문이라니 참으로 어이없고 놀라운 일
이다. 남의 생명을 유린하여 자신의 행복을 꿈꾸는 어리석은 망
상과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야만적 발상을 어찌 할 수 있단 말인
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희생된 가족의 비통이야 오죽하겠으
며 정신적, 물질적, 사회적 손실을 누가 보상하겠는가?
이제 사람만이 지닌, 위대한 정신유산인 인륜도덕과 양심의 최후
보루를 허물고 마침내 흡혈귀나 야차로 둔갑하여 우리의 생존권
마저 위협하는 심각한 단계에 직면하고 있다.
인간이란 본래 천진무구하게 태어났건만 가정·학교의 교육이나
사회 환경의 영향을 받고 자라면서 그의 성격과 인격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기성 사회가 그동안 어딘지 모르게
문제점을 안고 방심한 사이에 무시무시한 병독을 키워왔단 말인
가? 앞으로 전문적인 연구와 대책, 정책적인 대안을 찾아내지 못
한다면 우리는 더 깊은 불행의 늪으로 말려들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민심이 순후했던 옛날과 지금은 가정·학교·사회의 교육면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옛날의 가정은 어머니가 귀여운 아기
를 따뜻한 품에 안고 반짝이는 눈망울을 마라보며 한없는 사랑과
정을 쏟았고 아기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젖을 먹었다. 무언 중,
따듯함과 고마움의 행복한 가교가 놓여지고 사람을 신뢰하고 사
랑하는 마음씨가 깊이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지금은 직업여성이
늘었고 딱딱한 우유병이 어머니의 위치를 차지하고 보니, 욕구불
만, 불안과 불신, 원망이 은연중에 쌓여 차디찬 비정의 씨앗을 어
린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주는 결과를 만들지 않았을까? 염려가
된다.
내몰리는 직장여성, 늘어나는 이혼에 따른 결손가정의 양산, 어린
이의 학대 등의 여러 문제들, 이들을 대신하여 어린이를 따뜻하
고 건전하게 보호하고 길러줄 전문가의 양성과 사회복지 시설을
확충하여 자라나는 아이들의 행복권을 보장하고 사랑에 굶주린
아이들을 치유할 특별한 방법은 없는 것일까?
가정교육도 문제가 있다. 옛날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한 울안에
오손 도손 인정을 나누며 살았다. 때문에 어른을 공경하는 예의
범절이며 인사법. 인간으로서의 생활규범을 익힐 기회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소가족 제도에다 부모는 직장과 모임으로, 아이들
은 학교로 학원으로 바쁘다. 대화시간은 줄고 가정교육은 위기를
맡게 되었다.
더욱이 자손들은 하나·둘만 낳는 세상이고 보니 금지 옥엽인양
애지 중지 과잉보호 속에서 길러낸다. 그러니 그들은 독선적이거
나 이기적, 자기중심적인 편협한 아이로 자랄 확률이 높아가고
있다. 이들이 사회에 나와 남을 배려하고 이웃을 생각하는 성숙
한 사회원이 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으리라.
학교는 입시위주의 지식교육에 바쁘고 인간교육은 뒷전으로 밀려
난다. 교사가 사랑과 애착을 가지고 다소 엄한 교육을 하다보면
인권침해로 고발당하는 세월이고 보니 교권은 땅에 떨어지고 학
생은 있어도 스승이 없는 세월이 됐다. 모쪼록 가정과 학교가 서
로 신뢰하고 도와 인격을 갖춘 훌륭한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기관
으로 거듭나야한다. 물론 국가의 교육 정책도 백년대계를 위하여.
인성교육과 도덕교육 인간의 고운 품성을 함양하는 문학, 예술,
독서, 취미 등을 살리는 새로운 교육모델을 계발해야 되지 않을
까.
내가 어릴 때 경험한 일이다. 어떤 사람이 꾸지람을 듣는 도중
내려치는 아버님의 담뱃대를 빼앗아 꺾어버린 불효를 저질렀다고
하여 동리 사람이 모여 꾸짖고 멍석말이로 몰매를 치는 광경을
보았다. 혹, 북을 등에 지우고 치면서 동리를 순회하는 등, 지금
으로는 상상도 못할 향약적인 불문율이 있었다. 어른들 앞에서는
담배나 술도 법도를 꼭 지켜야 했다. 어린이의 잘못을 어른이 꾸
짖고 시정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사회의 통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어른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자칫하면 봉변을
당하기 일쑤다.
청소년의 휴식 공간, 운동시설, 취미활동, 문화 공간 등의 사회시
설이 없는데다 그들을 유혹하는 향락업소나 폭력과 비교육적인
영상물에는 무방비로 노출되어 비판력이 부족한 순수한 아이들이
점차 오염돼 가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란 그들이 어찌 올
바른 가치관이 정립되며 건전한 사고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가정도 학교도 사회도 후세교육에는 손을 쓰지 못한 사이
에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닐까? 앞의 부끄러운 사건들은 바로
우리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돋아난 독버섯과 같은 무서운 병리현
상이다. 앞으로 온 국민이나 당국은 새로운 처방과 발전적인 대
안을 찾아내어 독소를 과감히 수술해야 한다. 그런 뒤에야 우리
앞날에 희망과 꿈이 있는 바른 세상이 오리라 믿는다.
2002 12집
첫댓글 우리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돋아난 독버섯과 같은 무서운 병리현
상이다. 앞으로 온 국민이나 당국은 새로운 처방과 발전적인 대
안을 찾아내어 독소를 과감히 수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