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얼굴을 찾고 있어
(서유재청소년문학선 바일라 18)
김혜진 장편소설
2023년 10월 16일 발행 | 140mm×205mm | 196쪽
값 13,000원 | ISBN 979-11-89034-74-043810
우리는 행동했다. 행동했으니까 달라질 것이다.
모든 게 다 실패였다고 해도 행동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잘못한 게 없었어. 너희도 마찬가지야.”
잘못 든 길 끝에서 마주한 진실
“얼굴을 본다는 건 결국 마주 보는 것이었다.”
1학년 1반 이해솔, 1학년 3반 서루아, 1학년 4반 지태희, 세 아이들의 반성문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학교를 빠지고 ‘그곳’에 가자고 한 건 자기라며 서루아와 지태희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다는 이해솔. 잘못한 게 없으니 반성할 일도 없다는 지태희. 어차피 학기도 끝난 마당에 일탈행위를 한 것도 아니고 다른 데도 아닌 ‘그곳’에 간 건 칭찬받을 일 아니냐는 서루아. 짧은 반성문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나는 서로 다른 성격의 아이들, 도무지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힘들 것 같은 이 아이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우리는 셋이 아니었다. 난 둘에 더해진 하나, 군더더기, 나머지.”-이해솔
작품의 화자이기도 한 해솔은 아빠와 둘이 살고 있다. 지방 출장이 잦은 아빠가 걱정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현재 해솔의 가장 큰 과제다. 혹시 다칠까 봐 농구도 그만두고 감기에 걸릴까 봐 일찌감치 패딩 점퍼도 꺼내 두어 언제든 입을 수 있도록 걸어놓은 해솔. 아파서도 다쳐서도 안 되는 까닭이 물론 아빠의 걱정 때문만은 아니다. 갑작스러운 가족의 변화 앞에서 해솔은 아무도 모르게 가라앉는 중이다. 그런 해솔이 주말마다 찾는 비밀 공간이 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서 마주한 뜻밖의 만남이 해솔의 일상을 뒤흔든다.
“언제나 그래. 누구도 날 믿지 않아. 내가 그런 애니까겠지.”-서루아
‘우당탕 소리가 나고 웃음과 비명이 들리면’ 예외없이 그 중심에 서 있는 아이, ‘주변을 다 끌어들이는 작은 허리케인 같은 애’, 서루아. 서루아와 같은 반이 된다면 ‘시끄럽고 안전한’ 일 년이 보장된다. 예민하고 날 선 감정 선들을 눈치 보는 일 없이 밟아 버리는 서루아 앞에서는 어떤 갈등도 오래가지 못한다. 모든 일이 ‘서루아니까’로 정당화되는 학교 최고 인싸 서루아. 그런 서루아의 공인 단짝인 지태희. 유치원 때부터 엄마들끼리 친구인데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까지 같은 곳으로 진학해 학원도 함께 다니는 이 두 아이들의 묘한 신경전은 2년 전, 중2 때의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사건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오자 서루아도 결국 폭발하고 만다.
“또 그랬어. 알면서. 다 알면서, 모르는 척했어. 너는 언제나 그딴 식이야.”-지태희
‘언제나 선을 따라 단정하고 올곧게 걸을 것 같은’ 아이, 어디서든 문제집부터 펼쳐 드는 우등생 지태희. 언뜻 비치는 그늘마저도 뿌리 깊은 나무의 고요함에서 오는 듯한 지태희가 N극이라면 서루아는 S극이다. 번번이 핀잔을 주고 고개를 젓고 한숨을 쉬면서도 그런 서루아를 ‘원래 그런 아이’라면서 곁에 두는 지태희.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던 두 사람의 관계는 이해솔이 끼어들면서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태희의 오랜 비밀 앞에서 꾹꾹 눌러두었던 감정들이 민낯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열일곱 가을, 서로를 발견한 순간 빛나기 시작한 우리들의 얼굴
그리고 현재진행형의 성장
청소년의 내밀한 마음의 날들을 섬세한 시선으로 그려 온 김혜진 작가의 장편소설 『우리는 얼굴을 찾고 있어』는 가족에 관한 아픔과 비밀을 가진 아이들이 열일곱 살 가을, 뜻밖의 장소에서 우연히 서로를 발견하고 굳게 닫혔던 마음을 열며 그 힘으로 함께 나아가는 이야기이다.
나는 겨우 웃음을 참았다. 아, 참아도 좋았다. 이 순간은 빙 돌아가는 길 중간에서 얻어낸, 우리의 답이었다.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우리는 여전히 헤매고 있다. 많이 헤맬 테니까 많은 답을 찾게 될 것이다. 동그라미나 빗금이 쳐지지 않을, 질문보다 길어질 답들을.
지금 나는, 기대하고 있다. (본문에서)
상처와 아픔이 되어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비밀이 드러난 순간 마주 보게 된 아이들은 서로의 얼굴을 통해 비로소 자신만의 답을 찾는다. ‘질문보다 길어질 답들을’. 그리고 이들의 얼굴을 찾기 위한 여정은 한없이 충만한 기대감으로 다시 시작된다. 기대하고 질문하고 헤매는 것이야말로 진짜 성장이니까. 성장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니까. 청소년의 시선으로 안내하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경주 남산의 유물들, 평생을 우리 역사와 문화유산을 알리고 보존하는 데 바친 ‘마지막 신라인’ 고청 윤경렬 선생에 관한 이야기는 이 작품이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다.
-작가 소개
김혜진 | 오래 헤아려 보아야 하는, 숨은 마음들에 관심이 있다. 숨은 것들이 놀라지 않도록 조심스레 보듬는 글을 쓰고 싶다. 『여기는 시장, 각오가 필요하지』, 『완벽한 사과는 없다』, 『집으로 가는 23가지 방법』을 비롯한 청소년 소설과 판타지 동화 ‘아로와 완전한 세계’ 시리즈, 『가느다란 마법사와 아주 착한 타파하』, 『일주일의 학교』 등을 썼다. 김묘원이라는 이름으로 추리소설 『고양이의 제단』을 발표했다.
-작가의 말
잊혔을 때는 비밀이었고 발견되어 의미가 부여되었을 때는 답이 되었다. 돌에 새겨 변하지 않는 얼굴조차 새로운 얼굴들이 마주 볼 때마다 새로워진다는 것이 좋다. ‘변함없다’는 말은 새로워질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차례
우리는 얼굴을 찾고 있어 · 9
작가의 말 · 187
-책 속으로
상상 못 한 조합이었다. 엉뚱한 장르 두 개를 이어 붙인 것처럼 어울리지 않는 그림체의 두 사람. 아니, 그림체가 문제가 아니라, 저 둘이 원래 친했었나? (17쪽)
“그게 보기 좋아?”
지태희는 별 뜻 없이 물은 걸 텐데, 갑자기 얼굴이 달아올랐다. 속마음을 들킨 기분이었다. 대단한 속마음도 아닌데. 그냥 나도 그 순간에 깨달아서 그랬다. 내가 그런 걸 좋아하는구나. (42쪽)
“베이비박스 같네.”
지태희가 여전히 문제집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꾸했다. 나는 흠칫 놀라 책장을 놓쳤다. 책장이 후루룩 넘어가 저절로 닫혔다. 서루아는 눈치 채지 못했지만 지태희는 잠깐 내게 시선을 주었다. 나는 당연하게도, 아빠를 떠올렸다. 상자에 들어 있었다던 아빠를. (55쪽)
지태희와 함께 서루아를 바라보는 그 순간에 나는, 이 둘과 나라는 구도가 아닌 우리 셋을 처음 느꼈다. 셋이 함께, 이런 것까진 아니었다. 평소엔 서루아의 쪽에서 지태희를 봤다면, 지금은 지태희의 편에서 서루아를 보는 거니까. 나는 어느 쪽에도 설 수 있었다. 그런 게 바로 친해지는 일일까. 내가 지금까지 알았던 우정과는 아주 다른, 생경한 느낌의 ‘한편’. (66쪽)
아냐, 변명하려는 거. 지태희는 치를 떨겠지. 또 말로 빠져나가려 한다고. 걔가 빡친 거 너도 봤잖아. 내가…… 할 말이 없다. 과거에서 조금이라도 배웠더라면, 내가 지금껏 쌓아 온 실수들을 몇 개라도 기억했다면…… 해솔이 네가 그 꼴이 되진 않았을 텐데. (69쪽)
태희는 루아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야, 넌 아무것도 하지 마. 다 그만둬. 너하고 엮여서 멀쩡한 게 없어!” (80쪽)
지태희 말이 맞아. 난 감당 못 하는 짓을 자꾸 해. 일이 벌어지면 내가 수습할 것도 아니면서. 그 순간에는 다 잘될 거 같거든. 그런데 결과는 엉망인 거지. 지태희는 잘됐다 싶을 거야. 나 맘에 안 들어서 부글부글하고 있었을 텐데 내가 꼬투리를 내줬네. (88쪽)
대답 못 할 질문들과 하지 못할 말들이 내일과 함께 올 것이다.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다. 그러나 내일을 오지 못하게 할 수는 없으니, 내가 떠나야 했다. (103쪽)
우리는 행동했다. 행동했으니까 달라질 것이다. 보고 어떤 느낌을 가져서가 아니라, 답을 얻어서가 아니라.
목적을 달성했든 못 했든, 모든 게 다 실패였다고 해도 행동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1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