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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 20,28-38
그 무렵 바오로가 에페소 교회의 원로들에게 말하였다.
28 “여러분 자신과 모든 양 떼를 잘 보살피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을 양 떼의 감독으로 세우시어, 하느님의 교회 곧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피로 얻으신 교회를
돌보게 하셨습니다.
29 내가 떠난 뒤에 사나운 이리들이 여러분 가운데로 들어가 양 떼를 해칠 것임을 나는 압니다.
30 바로 여러분 가운데에서도 진리를 왜곡하는 말을 하며 자기를 따르라고 제자들을 꾀어내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31 그러니 내가 삼 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눈물로 타이른 것을 명심하며 늘 깨어 있으십시오.
32 이제 나는 하느님과 그분 은총의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그 말씀은 여러분을 굳건히 세울 수 있고, 또 거룩하게 된 모든 이와 함께 상속 재산을 차지하도록 여러분에게 그것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33 나는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낸 일이 없습니다.
34 나와 내 일행에게 필요한 것을 이 두 손으로 장만하였다는 사실을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35 나는 모든 면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그렇게 애써 일하며 약한 이들을 거두어 주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고 친히 이르신 주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36 바오로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무릎을 꿇고 그들과 함께 기도하였다.
37 그들은 모두 흐느껴 울면서 바오로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38 다시는 자기 얼굴을 볼 수 없으리라고 한 바오로의 말에 마음이 매우 아팠던 것이다.
그들은 바오로를 배 안까지 배웅하였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 17,11ㄷ-19
그때에 예수님께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기도하셨다.
11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12 저는 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켰습니다.
제가 그렇게 이들을 보호하여,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멸망하도록 정해진 자 말고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13 이제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제가 세상에 있으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14 저는 이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이들을 미워하였습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5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
16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17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18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19 그리고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의 묵상글
<“거룩하신 아버지,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과 아버지의 영광의 현현을 위한 기도에 이어,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남겨진 제자들이 아버지께 속한 이들임을 재확인하면서, 제자들을 세상의 악에서 지켜주시고 그들이 하나 되고 거룩해지기를 간청합니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아버지의 이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세상에서 뽑으시어 저에게 주신 이 사람들에게 저는 아버지의 이름을 드러냈습니다.”
(6절)
“저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주었고, 앞으로도 알려주겠습니다.”
(26절)
'아버지'라는 이름은 하느님보다 그분의 속성을 더 정확하게 드러냅니다.
여기서 '아버지의 이름'을 드러낸다는 것은 아버지의 실체에 관한 모든 것, 곧 그분의 존재와 본성, 그분의 거룩함과 정의와 사랑, 그분의 능력과 보호와 신실하심을 드러냅니다.
사실 성경에서 기도에 대한 가장 처음 언급된 곳이라 할 수 있는 <창세기>에서도 그 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곧 아담의 셋째 아들인 셋에게서 에노스가 태어나자, 그때부터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창세 4,26)
또한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 바칠 때도 “내 이름이 거기에 머무를 것이다.”(1열왕 8,29)하신 분께 기도를 바쳤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루카 11,2)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주신 이름”(요한 17,11.12), 곧 ‘아버지의 이름’을 드러내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아버지를 계시하시는 공적 소명을 끝내시면서, 그 소명을 이어가게 될 제자들이 '하나가 되기'”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요한 17,1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아버지와 아들의 신적일치에 ‘하나’ 되도록 기도하십니다.
곧 아버지의 이름 안에서 보호받고, 아버지와 당신의 하나 됨을 체험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러니 ‘하나 됨’은 그리스도란 이름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진리와 사랑으로 ‘하나’를 이룬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실재로 초대교회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었습니다.(사도 4,32)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는 유대인이든 그리스도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1코린 12,13)
그러나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이름’과 ‘아버지의 말씀’, 곧 ‘진리’를 주셨고, 성령으로 제자들이 아버지께 속하게 되었지만(아우구스티누스), 세상은 그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미워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그들을 지켜주시기를 청하면서 기도하십니다.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요한 17,17)
그렇습니다.
‘진리이신 말씀’을 행함으로서 우리 안에 ‘거룩함’이 더욱 자라게 될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요한 17,17)
주님!
깨끗하기보다 진실되게 하시고,
흔들리지 않기보다 당신과 함께 있게 하시고,
단지 함께 있기보다 당신께 속해 있게 하소서.
사랑하되 진리 안에서 사랑하게 하시고,
진리 안에서 사랑하되 행동하게 하소서.
또한 진리 안에서 거룩해지게 하시고,
제 안에서 거룩함을 드러내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묵상글
<마지막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제가 정한 오늘의 주제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유언입니다.
사도행전은 바오로 사도의 유언이고, 복음은 주님의 유언이자 기도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를 떠나며 원로들에게 유언으로 몇 가지를 신신당부하는데 명심하고 명심하라고 합니다.
“내가 눈물로 타이른 것을 명심하며 늘 깨어있으십시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고 하신 주님 말씀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사도 20,31.35ㄷ)
그런데 명심하라는 두 말씀을 놓고 볼 때 앞의 명심하라는 말보다 뒤의 명심하라는 말이 더 낫지요.
앞에서 바오로 사도는 내가 한 말을 명심하라고 하고, “나는 모든 면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사도 20,35ㄱ)라고 하면서, 어떻게 보면 겸손을 떨지 않고 자기 말을 듣고 자기처럼 하라고 하는데 그러나 이것보다는 주님의 말씀을 명심하라고 함이 당연히 더 낫겠지요.
그리고 주님 말씀을 명심하라고 직접 신신당부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바오로 사도도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나는 하느님과 그분 은총의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사도 20,32)
내가 할 바와 할 말을 다 하고 난 뒤에 우리가 할 일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곧 하느님께 나머지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맡김, 의탁.'
이것이 우리 신앙인의 믿음이고 가난이고 사랑입니다.
자식을 너무도 사랑하고 그래서 잘 되기를 아무리 바라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의 당부까지입니다.
그다음은 내 역할을 내려놓고 퇴장하는 것이고, 그것은 하느님 사랑에 대한 믿음의 의탁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보다 내 자녀를 더 사랑하신다는 믿음이요, 하느님께서 나보다 더 잘 아시고 사랑해주실 거라는 믿음의 의탁입니다.
그러니까 내 자녀를 하느님께 의탁하지 못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지 못하는 표시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기도까지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처럼 청원과 의탁의 기도는 하는 겁니다.
어쨌거나 우리는 사랑하지만 떠나야 할 때가 오는데, 그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당부, 의탁, 기도임을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배우는 오늘 우리입니다.
- 작은형제회
♠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의 묵상글
<하늘을 양보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논리를 따르지 않고, 하늘의 뜻을 헤아려야 합니다.
어떤 분은 말합니다.
“세상에 발을 붙이고 있는데 천국을 살라고 하시면 어떻게 하십니까?
그게 말하는 것같이 쉬운지 아십니까?
정말 어렵습니다.
신부님은 자꾸 하늘을 보라고 하시는데 하늘을 보니 제가 땅에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땅에 있으니, 땅의 처지대로 살아야겠습니다.
저도 먹고살아야지 어찌합니까!
그래도 하느님은 이해하실 것입니다.
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실 테니까요!”
그래도 하늘의 그물은 빠져나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늘을 양보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을 믿고 산다는 것은 진리 안에 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는 곧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면 세상이 그를 미워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어둠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둠은 빛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빛으로 나아가는 길을 방해합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습니다(요한 1,5).
그러므로 두려워 마십시오.
지금 당장 힘에 겹더라도 반드시 빛의 진가는 드러나게 됩니다.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갑니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요한 3,21)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1티모 2,4)
그리고 육화를 통하여 인간이 되신 진리인(요한 14,6)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이들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인정받는 사람으로, 부끄러울 것 없이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하는 일꾼으로 하느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2티모 2,15)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 그것으로 우리가 그분을 알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나는 그분을 안다.'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고, 그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1요한 2,3-4)
우리가 비록 땅에 발을 붙이고 있지만 진리를 거슬러 살 수는 없습니다.
세상이 험해지면 험해질수록, 어두워지면 어두워질수록, 믿는 이들이 진리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세상이 어두워지는 것은 남의 탓이 아니라 내가 빛나는 삶을 살지 못한 까닭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상에 속하지 않으신 주님의 뒤를 이어 세상에 있으면서도 이미 천상을 살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의 어둠을 탓합니다.
믿는 이들이 제대로 살지 못한다고 불평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모순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나만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요, 교만입니다.
못마땅한 것이 보이면 보일수록 더 많이 사랑하고 모두를 품을 수 있는 마음으로 살지 못했음을 탓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련의 고통 속에서도 아버지와 깊은 일치를 이루면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온전히 순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거룩함으로 인해 제자들이 거룩해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주님과의 일치 안에서 거룩함을 잃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혹 죄에 떨어졌다면 주님의 거룩함에 온전히 맡겨드려 다시 거룩함을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복음의 기도는 ‘하나가 되게 하소서.’ ‘악에서 지켜 주소서.’ ‘진리로 거룩하게 하소서’로 요약됩니다.
그 기도가 내 안에서 풍성하게 열매 맺기를 희망합니다.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내덕동 주교좌 성당
♠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묵상글
<가장 완전한 기쁨은 무엇인가?>
우리는 기쁨을 언제 느낄까요?
제가 가장 큰 기쁨을 느꼈을 때는 아마도 대학에 합격했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옆집 친구는 대학에 합격했는데, 저는 발표가 하루 이틀 늦었습니다.
이때 걱정되는 것은 내가 떨어졌을 때 어머니가 옆집 어머니의 기쁨 때문에 슬퍼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기쁨은 나 때문보다는 나를 사랑하시고 나에게 많은 희생을 한 이를 기쁘게 해 드릴 때 가장 기쁜 것 같습니다.
나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 기쁨이 자꾸 줄어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압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전기가 처음 들어왔을 때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이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전기가 들어와 TV를 제대로 보고 학교에서 아이들과 말이 통하는 게 소원이었지만, 이제 전기가 들어온 기쁨은 사라지고 컬러 TV를 보고 싶다는 소원이 생깁니다.
연봉 100억이 넘는 정승제 강사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는 수업 중에 “강남 아파트에 살면 행복할 거 같아?”라고 묻습니다.
한강 경치가 보이는 수십억짜리 아파트를 처음 볼 때 기뻤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시금으로 아파트값을 낼 때, 딱 그렇게 이틀 좋았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쁨은 조금씩 사라지고 다른 걱정이 생기게 됩니다.
이렇게 나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은 그것 때문에 나를 노예로 만들 뿐입니다.
하지만 내가 그런 아파트에 사는 것을 보는 부모님의 기쁨 때문에 그 기쁨은 유지됩니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분에게 보답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인간 안에 양심이 넣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양심은 ‘정의’입니다.
받았으면 갚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양심의 가책이 나를 사로잡습니다.
오늘 복음은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이 세상에 살며 죄를 용서받게 하시기 위해 아드님을 죽이신 바로 그 부담감에서 해방되는 자유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제가 세상에 있으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부담스러우셨습니다.
아버지께 성령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모든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셨으면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드님이 교회라는 자녀를 탄생시키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교회를 탄생시키고 아버지께 가시는 예수님은 기쁩니다.
아기를 낳아 남편에게 보여주려는 마음, 혹은 자녀를 낳아 부모님께 보여드리는 마음과 같습니다.
그 마음은 ‘당신이 저를 낳아 키우신 일이 헛되지 않았습니다!’라고 보답하는 마음입니다.
하느님은 당신 앞에 나올 때 빈손으로 오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당신이 줄 축복을 양심상 감당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사우디에서 땀 흘려 몇 년 동안 번 돈을 제비에게 다 날려버렸다면 몇 년 만에 김포공항으로 오는 남편을 맞으러 나갈 용기가 있을까요?
그때 많은 아내들이 집을 나가거나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선교하여 자녀를 낳지 않으면 그렇게 지옥으로 스스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제로 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저냥 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젠가 나를 사제로 세워주신 주님의 은총에 심판받아야 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한 영혼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편히 쉬는 것보다 이것이 더 큰 기쁨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기쁨이 우리 안에도 함께 하려면 예수님께서 기쁨을 얻기 위해 어떻게 하셨는지 배워야 합니다.
우리도 언젠가 야곱에 에사우를 만나러 가는 상황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때면 정말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자녀를 낳고 기르는 삶을 살지 않았다면 우리 스스로 그분을 만날 용기를 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참 기쁨인 하느님 자녀를 낳는 일을 게을리하지 맙시다.
- 수원교구 조원동 주교좌 성당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의 묵상글
<예수님께서 친히 죄인인 우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신다는 것,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승천하시기 전 예수님께서는 남겨지는 제자들과 오늘 우리를 향해 감동적인 고별사를 발표하셨습니다.
꽤 장문의 고별사입니다.
세상으로 치면 이임사(離任辭) 비슷합니다.
그간 수행했던 직무를 내려놓고 떠나며 하는 말입니다.
장관들이나 총장들의 이임사를 많이 들어봤습니다.
대체로 아쉬움이 가득합니다.
맡겨진 직무를 보다 멋지게 완수하지 못했음에 대한 안타까움과 송구함도 표현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고별사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맡겨주신 인류 구원 사업을 120퍼센트 훌륭하게 수행하셨기에 일말의 아쉬움도 없습니다.
당신이 떠나가면 그 자리를 대체할 보호자 성령을 생각하니 걱정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이룬 성취감과 만족감,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지상에 남게 될 제자들과 우리를 향한 위로와 격려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조만간 다시 하느님 아버지 안에 재회할 그 날을 기억하고 힘과 용기를 내라고 초대합니다.
장엄한 고별사에 이어 오늘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우리를 향해 고별 기도를 바치십니다.
우리 머리 위에 당신의 두 팔을 펼치신 후 하늘을 향해 눈을 드시고 기도하시는데, 한 구절 한 구절이 너무나 은혜롭습니다.
만물의 창조주요 인류의 구세주 하느님 아버지의 외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보잘 것 없는 죄인인 우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신다는 것,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로 감사의 정이 흘러넘칩니다.
오늘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 마음에 담고 감사와 기쁨 속에 남아있는 우리의 여정을 힘차게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이들을 악에서 지켜주십시오.”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 살레시오회
♠ 송영진 모세 신부님의 묵상글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1)
13절의 “제가 세상에 있으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이라는 말씀은 “제가 이런 식으로 기도를 하는 이유는”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기도를 바치면서 제자들이 들을 수 있도록 일부러 소리를 내서 기도를 하십니다.
사실상 제자들 들으라고 하시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의 기도는 아버지께 바치는 기도이면서 동시에 제자들에게 하시는 당부 말씀입니다.
“이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라는 말씀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기도를(말씀을) 듣고서 더욱 큰 용기와 힘을 얻고 영원한 기쁨을 향해 나아가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2)
11절의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라는 말씀을 “이들도 우리와 함께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신앙인들의 일치는 신앙인들끼리만 똘똘 뭉친 배타적인 단합이 아니라, 아버지와 예수님의 완전한 일치에 참여하는 일인데, 그 참여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습니다.
선교활동은 그 일치에 함께 참여하자고 세상 사람들을 초대하는 일입니다.
여기서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이고,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는 하느님의 권능과 사랑으로 제자들을(신앙인들을) 보호해 달라고 청하는 기도입니다.
동시에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일치를 이루기를 바란다고 당부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은 13장에 있는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요한 13,34-35)
여기서 ‘사랑’은 신앙인들끼리만 뭉치는 사랑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고, 바로 그 사랑이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증명하는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그 사랑이 없는 일치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범죄조직도 자기들끼리는 단합을 잘하는데,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 없이 자기들끼리만 뭉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일치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일치도 중요하지만 사랑으로 하나 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3)
17절의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라는 말씀은 “이들이 진리를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들이 되게 해 주십시오.” 라는 뜻이기도 하고, “이들을 진리로 무장(武裝)시켜 주십시오.” 라는 뜻이기도 하고, 진리로 무장하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주님 안에서 그분의 강한 힘을 받아 굳세어지십시오.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날에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그리고 모든 채비를 마치고서 그들에게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갖추십시오.
그리하여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십시오.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의 신을 신으십시오.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잡으십시오.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불화살을 그 방패로 막아서 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투구를 받아 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늘 성령 안에서 온갖 기도와 간구를 올려 간청하십시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인내를 다하고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며 깨어 있으십시오."
(에페 6,10-18)
바오로 사도의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라는 말과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하느님의 말씀, 아버지의 말씀’은 ‘구원의 진리’, 또는 ‘계시 진리’ 전체를 가리킵니다.
성경 말씀뿐만 아니라 신앙 교리도 포함되고, 인류 구원을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과 의지’도 포함됩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 무장을 해야만 ‘악’을 상대로 한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고, 이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변화시킬 수 있고, 세상 사람들을 하느님에게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간단하게 줄여서 표현하면, “신앙인으로서, 신앙인답게 정신 무장을 단단히 해야 한다.”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하지는 않지만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하고, 세상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은 대충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해야 하고, 온갖 정성과 온 힘을 다 쏟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세속 일에 전력을 다하는 것보다 더 열성적으로, 더 강하게, 더 뜨겁게 전력을 다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하고, 선교활동을 해야 합니다.
- 전주교구 상지원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의 묵상글
<어떻게 살 것인가? - 거룩한 삶, 아름다운 떠남>
계속되는 파스카 축제시기이자 5월 성모성월이요, 다음 주일은 성령강림대축일입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신록이요 신록과 꽃이 잘 어울어진 참 아름답고 신비로운 5월입니다.
5월의 한가운데 날인 오늘 5월15일이 참 각별합니다.
오늘은 세종대왕(1397.5.15.-1450.3.30)의 627째 탄일이자 스승의 날입니다.
민족의 위대한 스승인 세종대왕 탄일을 스승의 날로 정한 것입니다.
오늘은 불자들의 대축일인 부처님 오신 날인 석가탄일이고, 위대한 공주수도생활의 원조인 이집트의 성 파코미오 아빠스 기념일입니다.
또 오늘은 우리 요셉 수도원의 최종근 빠코미오 원장수사의 영명축일이기도 합니다.
세종대왕, 부처님, 성 파코미오, 세 분 모두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라 할만합니다.
이어 오늘 복음의 예수님과 사도행전 제1독서의 바오로 사도 역시 위대한 인류의 스승입니다.
참 좋으신 하느님은 적절한 시기 위대한 스승들을 선물로 보내주시어 우리의 영원한 길잡이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마침 스승의 날인 오늘 옛 어른의 말씀도 귀한 가르침이 됩니다.
“참된 스승은 제자를 통해 다시 배운다.
고전의 가르침을 통해 제자와 스승은 함께 자란다.”
<다산>
늘 제자를 통해, 고전을 통해, 일상의 크고 작은 일들을 통해, 겸손히 배우는 자가 참 스승임을 깨닫습니다.
눈만 열리면 온통 삶의 스승들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배움의 기쁨을 능가할 수 있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이런 참스승의 자세는 삶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게 되니 스승은 할 만하다.”
<논어>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에서 새것을 깨달아 알아가는 일에 힘쓰는 이가 또한 참된 스승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예수님, 바오로, 부처님, 세종대왕, 파코미오, 옛 어른으로 소개된 다산 정약용, 논어의 공자 등 우리의 스승들이 좋은 모범이 됩니다.
거룩한 삶, 아름다운 떠남으로 요약되는, 길이길이 향기로 남아있는 스승들의 삶입니다.
자취없이, 흔적없이 사라져간 무명의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이들은 영원히 살아 있어 창공의 별처럼 빛을 발합니다.
모두가 거룩하게 사시다가 아름답게 떠나심으로 우리에게는 영원한 삶의 좌표가 되신 분들입니다.
비록 거룩하게 아름답게 살지는 못해도 부끄럽게, 사악하게, 거짓되이, 남을 아프게 하며 살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역사 무대에서 자기의 배역을 놀랍게 훌륭히 해내신 스승들입니다.
과연 인생 순례 여정의 무대에서 나의 배역은, 역할은, 소명(召命)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결코 유일무이한 선물로 받은 인생을 무의미하게, 허무하게, 무지의 어둠속에 보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위로 지혜를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교화하며 대자대비의 삶을 사셨고, 성 파코미오는 은수자로 시작하여 임종시 그의 수하에는 약 3천명의 수도자와 2개의 수녀원도 있었지만 사제로 서품되지 않았습니다.
성인은 전염병이 창궐하던 지역에서 환자들을 돌보다 전염되어 346년경, 9월5일 56세로 선종했습니다.
한국인들에게 가장 존경과 사랑을 받는 두분은 광화문 두 동상에서 보다시피 성군(聖君) 세종대왕(제가 전주 이씨 영해군파인데 영해군은 세종대왕의 17남)과 성웅(聖雄) 이순신입니다.
오늘 탄생일을 맞이하는 세종대왕의 애민사상과 한글창제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세종 평전에서 일부 내용을 소개합니다.
“세종은 비굴한 사대주의자도 아니고, 배타적 민족주의자도 아니다.
국제주의와 민족주의를 배합시킨 지혜로운 분으로, 우리의 민족적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국제사회와 개방적인 자세로 교류하여 공동번영을 꿈꾼 이상주의자이면서 현실주의자였다는 것이 바로 세종의 진실이요 위대함이다.
세종은 토론과 여론을 존중하는 소통정치의 달인이고, 신분과 국적을 초월하여 인재를 발탁한 개방적 인사정치의 달인이고, 사회적 약자인 노비, 서얼, 죄수, 노인, 고아, 여성의 인권을 높인 복지정책의 달인이고, 천문, 역법, 수학등 과학기술문화를 진작시킨 과학의 달인이고, 중국음악과 민족음악을 조화시킨 음악의 달인이다.
경학과 역사학에 통달한 인문학의 달인이고, 법률에 정통한 법학의 달인이고, 집현전을 통해 인재를 길러낸 교육의 달인이고, 우리의 농업을 개발한 농학의 달인이고, 우리 땅의 약초를 개발한 의약의 달인이었다.
세종이 10학에 통달했다는 것은 굳이 비유하자면 오늘날 종합대학의 박사학위를 10개쯤 가졌다는 것과 비슷하다.”
세종실록에 나오는 인품도 정말 놀랍습니다.
“영민하고 총명했으며 강인하고 과감했다.
침착하고 굳세며 너그럽고 후덕했다.
관대하고 부드러우며 어질고 자애로웠다.
공손하고 검소하며 효도하고 우애함은 타고난 천성이었다.”
타고난 천재에다 전인적 인품에 한결같이 백성을 내몸처럼 사랑했기에 이뤄낸 기적같은 현실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소개되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위한 고별기도와 바오로 사도의 에페소 교회의 원로들에게 주신 고별사도 감동적입니다.
두 분 다 거룩한 삶과 아름다운 떠남이 압축적으로 드러납니다.
다음 두 대목이 우리의 삶에도 귀한 가르침이 됩니다.
당대의 제자들은 물론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의 우리를 위한 기도입니다.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주십사고 빕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세상속에 살면서도 악으로부터 보호받으며 세상에 속화되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성화할 수 있는 비결은 단 하나 진리로 거룩해지는 거룩한 삶 하나 뿐입니다.
거룩한 삶에 아름답고 향기로운 떠남이요 바로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바오로의 고별사도 일맥상통하며 감동적입니다.
“내가 삼년동안 밤낮 쉬지 않고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을 눈물로 타이른 것을 명심하여 늘 깨어 있으십시오.
이제 나는 여러분을 하느님과 그분 은총의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그 말씀은 여러분을 굳건히 세울 수 있고 거룩하게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낸 일이 없습니다.
나와 내 일행에게 필요한 것을 이 두 손으로 장만하였다는 사실을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모든 면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고별사를 마친후 무릎을 꿇고 기도한후 원로들은 흐느껴 울면서 바오로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니 고별사는 물론이고 고별장면도 감동적입니다.
47년 전 6학년 제자들의 졸업식때 울던 모습에 울컥하던 제 모습이 생각납니다.
매해 스승의 날 전후로 저를 찾는 지금은 60세의 제자들 몇명이 다음 5월19일 주일 오후에 저를 찾는다 했습니다.
스승의 은혜, 어린이날 노래, 과수원길 세 노래를 준비해오라 당부도 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거룩한 삶을 살다가 아름답게 떠나야 합니다.
바로 지금까지 소개한 스승들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특히 예수님과 바오로의 가르침이 우리에게는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진리로 거룩해지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바로 진리입니다.
말씀의 진리로 부단히 정화되고 성화될 때, 모든 죄악으로부터 보호될 것이며 아름다운 떠남도 이뤄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물론 바오로 사도, 그리고 모든 성인들의 삶이 그 모범입니다.
무엇보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주님과 깊어지는 우정과 더불어 우리를 날로 거룩하게 하십니다.
아멘.
- 성 베네딕도회 요셉 수도원
♠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의 묵상글
<갈망>
요즘 <시간에 묻힌 한 사제의 삶>을 읽고 있습니다.
신부님은 혼자서 미국 횡단을 3번이나 하셨습니다.
현역에서 은퇴한 후에는 유람선 사목을 하셨습니다.
1937년에 태어났으니 87세의 고령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수녀원이나, 양로원에서 청하면 기쁜 마음으로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책의 내용 중에 신부님께서 1959년에 세례를 받을 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부님은 자신이 세례를 받아야 할 이유 4가지를 질문하였고, 본인이 질문에 답을 하면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세례를 받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노력했는가?’였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답을 하였습니다.
“나는 세례를 받기 전에 거의 3년이나 성당에 다니면서 배우고 체험하여 마음 깊은 데까지 나름대로 신앙에 젖었기에 앞으로 때에 따라 가톨릭 신앙을 저버리거나 냉담하지 않을 것 같다.
설령 이 신앙에 회의가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두 번째 질문은 ‘가톨릭 신앙에 대한 보람을 변함없이 느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답을 하였습니다.
“난생처음 가톨릭 신앙을 접한 순간에 받은 첫인상이 워낙 강했다.
마치 순간적으로 지상에서 천국을 경험하는 것과 같은, 그간의 내 삶을 통해서는 도저히 체험하지 못하였던 기쁨에 휩싸였다.
나는 가톨릭 신앙을 갖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늦게나마 가톨릭 신앙을 알게 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세 번째 질문은 ‘정식으로 가톨릭 신자가 되기 위한 첫 관문인 세례성사 받기를 진심으로 원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답을 하였습니다.
“예”
아주 간단하고 명확한 답변을 하였습니다.
네 번째 질문은 ‘세례 받을 사람에게 본당 신부님이 요구하는 교리문답 325개를 완전히 암기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답을 하였습니다.
“나는 교리문답 325개 항의 문제와 답을 한 자도 어김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암기했다.”
저는 예비자 교리를 가르쳤고, 많은 분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세례를 받고자 하는 갈망이 있는 사람과 이유가 있어서 세례를 받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갈망이 있는 사람은 세례를 받은 후에도 신앙의 깊이와 맛에 젖어 들었습니다.
이유와 목적이 있어서 세례를 받는 사람은 세례를 받은 후에 신앙이 점차 퇴색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미 목적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갈망에서 시작됩니다.
신앙은 기도로 자라납니다.
신앙은 말씀으로 꽃이 핍니다.
신앙은 나눔으로 열매 맺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바로 그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낸 일이 없습니다.
나와 내 일행에게 필요한 것을 이 두 손으로 장만하였다는 사실을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모든 면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그렇게 애써 일하며 약한 이들을 거두어 주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라고 친히 이르신 주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흐느껴 울면서 바오로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다시는 자기 얼굴을 볼 수 없으리라고 한 바오로의 말에 마음이 매우 아팠던 것이다.
그들은 바오로를 배 안까지 배웅하였다.'
바오로 사도는 갈망이 컸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생의 전부입니다.
이제 내 안에는 그리스도께서 살고 계십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지금 죽는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이들을 미워하였습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제자들에게 닥쳐올 박해와 시련을 예견하셨습니다.
유대인 공동체와 이방인 공동체의 갈등과 분열도 예견하셨습니다.
교회가 커지고 조직화 되면서 소외되는 사람이 생기는 것도 예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두 가지 청원을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따를 수 있는 용기를 청하셨습니다.
진리로 거룩하게 되기를 청하셨습니다.
그 진리는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듯이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갈등과 아픔을 만나게 됩니다.
산을 넘으면 또 산이 나오듯이 우리는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 기쁨도 찾아오고, 슬픔도 찾아오고, 즐거움과 분노도 찾아옵니다.
모든 갈등과 아픔을 벗어나서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고통과 아픔을 이겨 낼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청하는 것입니다.
그 시작은 ‘갈망’입니다.
- 미국 댈러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
♠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의 묵상글
<누군가와 하나 되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가능합니다>
“10년 연속 ** 브랜드 대상 수상. 피부 장벽과 뼈 기능, 면역력 강화를 한 번에…. 특허 출원, FDA(미국 식품 의약국) 등록 완료.”
이런 건강식품 광고를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 말이 거짓은 아니지만, 과대광고일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브랜드 대상은 주관사에 돈만 주면 받을 수 있습니다.
특허 출원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특허받기 위해 심사를 요청했다는 것뿐입니다.
FDA 등록 역시 수출을 위해 업체 정보를 FDA에 제출한 것이지, FDA가 효능을 보장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런 과대광고에 주의해야 한다고 언론에서 말합니다.
실제로 그런 광고는 정말로 많습니다.
그런데 문득 저 역시 그러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즉, 다른 사람에게 나에 대한 과대광고를 계속하고 있지 않습니까?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다른 사람과 구별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욕심과 이기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자기에 대해 과대광고를 하는 사람 곁에는 필요에 의해 아첨하는 사람만이 있습니다.
보통의 사람은 이런 사람 곁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피곤하고 스트레스 지수만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보다 남을 더 높이려는 사람, 남의 좋은 점을 바라보면서 칭찬해 주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 곁에 많은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과 하나 되게 해 달라고 아버지께 청하십니다.
누군가와 하나 되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가능합니다.
내가 더 윗자리에 올라가려고 하고, 내 뜻만을 주장하는 가운데에서는 하나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대단한 것처럼 착각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마치 종 부리듯이 이것 해달라, 저것 해달라고 계속해서 청원만 하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과 하나 된다는 것은 예수님 안에 드러내시는 아버지의 진리로 거룩해져야만 가능합니다.
거룩해진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기쁨을 내적으로 충만함을 누리면서 그들을 미워할 세상에서도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그 거룩함은 교만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닌, 진정한 겸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주님과 하나 될 수 있습니다.
-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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