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김 여 정
두 차례의 조직검사로 암은 아니라는 결과에 봄 동산에 물오르듯 생기가 솟아났다.
그러나 한 달간 치료를 해보았지만 차도가 없어 입원을 하고 주사치료를 해야 되겠다
는 의사선생님의 지시대로 그 날로 입원을 하게 되었다 약 처방전이나 받을 줄 알고 왔
는데 갑작스러운 일에 당황했다. 간호사가 시트를 깔고 환자복을 입으라고 가져왔다.
몸이 많이 불편하기는 했지만 멀쩡하게 활동하던 내가 환자복을 입고 주사를 꽂고 병상
에 올라앉아 있으니 영락없는 환자가 되었다.
새 식구를 맞는 병실은 잠시 침묵이 흐르고, 앞의 환자가 무슨 병으로 왔느냐고 물었
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암은 아니고 염증치료 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왔으니 남편이 세면도구와 침구를 가지러 간 사이에 저녁이 들어왔
다 주사를 꽂은 팔을 부딪기라도 할까 조심하건만 익숙지 못하여 주사 줄에 피가 흘러
서옆 환자의 보호자가 상을 물려주고 잔일을 거들어 주었다. 살다보니 뜻밖에도 남의
도움을 받고 신세를 지는 일도 있다.
이 병실은 6인 실로 불행하게도 대부분 암환자이지만 비관하거나 슬퍼하는 기색 없이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병마를 이겨내려는 강한 투지가 있다 환자와 같은 마
음으로 간호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용기가 솟았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
을 다 잃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분들에게는 현대의학과 담당 의사선생님을 믿고 따르
며, 꼭 나으리라는 희망이 있다.
생명력은 담금질을 한 부지깽이조차도 봄이 되면 파란 잎을 피우고 싶어 한다는데 하
물며 우리 인간이야 강인한 생명력에 작용으로 하루 속히 회복되리라.
이분들에 비하면 가벼운 종기 같은 것이지만 검사기간 중에 초조하게 기다리며 생각
으로 죽음을 짓고 생각으로 지옥을 드나들며 공상으로 두려움에 떨던 내가 부끄러워졌
다.
입원을 하던 날 환자들의 사정도 모른 채 무심코 암은 아니라고 한 경망스러운 말에
자책을 하며 그들에게 미안했다. 문병 온 분들이 암만 아니면 됐다고 위로하는 말에도
민망스러웠다.
이 병실은 각양각색의 일을 하였고 환경이 다른 사람들이지만 같은 환자 입장이라서
그런지 죽이 잘 맞았다. 서로 사정을 잘 아는 이웃과도 같이 과일과 음료를 나누며 위로
하고 마치옛날 단독주택에서처럼 속내가나는 정을 느껴보았다.
내가 처음 입원했을 때 있던 환자들 중 네 명이 퇴원했다. 새로 온 담석 환자는 삼일
만에 퇴원을 하는데 중환이었던 위암환자는 위를 다 들어내고 식도와 장을 연결하였다
는데 이유식만큼 죽을 먹으면서도 퇴원하면 우리 집에도 놀러오겠다고 하여 내 가슴을
찡하게 했다.
병원에 온 지 5일째 되는 날 큰 멍울을 부분마취로 수술을 하고 나니 그 동안의 공포
가 사라지고 한결 마음이 가벼워져 상처도 생각보다 덜 아팠다 병원에서 여러 환자들
의 정황을 보며 아픔과 고통을 참을 수 있는 인내심이 생기고 대담해졌다.
병원 창가에서 바라보이는 구룡산은 아직 꽃도 잎도 피지 않았지만 햇볕에 아지랑이
가 아물아물 봄기운이 완연하게 느껴진다. 갑자기 앰뷸런스의 경적이 울리며 또 한 생
명의 화급함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리는 소리에 시선이 그곳으로 머물렀다 6층에서 내
려다보이는 병원 앞에는 많은 차량이 줄지어 늘어섰고, 헐렁한 환자복을 입고 끌신을
신은 환자들도 간혹 보인다. 삶의 의욕이 강한 환자들이 북풍한설을 이겨내고 새 촉을
틔워내며 봄을 맞는 생명력으로 하루 속히 쾌유되기를 빌어본다.
입원한 지 9일 만에 퇴원을 하고 사오일 몸을 추스르고 2주 만에 산에 올랐다. 한줄기
바람이 싸하게 가슴을 헤집고 진달래물결이 수줍은 듯 일렁이며 반긴다. 그 중에도 아-8.
직 벌어지지 않은 꽃망울은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듯 꽃보다 더 벌겋게 망울이 부풀었
다. 어쩌면 수술 전 내 젖가슴 멍울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안쓰러운 마음으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꽃망울 사이로 새 부리 모양의 파란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보며 칠십 고개를 목전에
두고 화들짝 놀라 지친 내 육신과 마음에도 봄 생명의 이파리가 돋아나기를 바래보았
다.
2005/ 21집
첫댓글 그 중에도
아직 벌어지지 않은 꽃망울은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듯 꽃보다 더 벌겋게 망울이 부풀었
다. 어쩌면 수술 전 내 젖가슴 멍울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안쓰러운 마음으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