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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구려 토론방 고구려와 북연 관계에 대하여
김용만 추천 1 조회 1,714 11.05.29 23:20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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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5.30 00:33

    첫댓글 제가 쓸데없이 말을 붙여서 되려 두분간에 오해만 더 중첩시킨 느낌입니다. 지금 올리신 글을 보니 제가 김용만 선생님 생각을 오독한 부분이 있음을 알겠군요. 죄송합니다. 어쩌면 야스페르츠님 글에도 그런 오독을 해서 이상한 말을 덧붙인게 없진 않다 말할 순 없겠습니다. 다만 아래에 같은 시간대에 야스페르츠님이 올리셨던 일반 사신과 조공사신의 구분 예시는 고구려 사례에서는 어떻게 봐야할지 아는 것이 없어 여쭤봅니다.

  • 11.05.30 07:10

    조공이라는 표현이 중요한가요. 양국의 위상에 비추어 어떤 의미를 갖는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정기적 외교교류에서 선물을 지참한 사신단을 위나라가 조공사신이라고 생각하면 조공사신단이 되는것 아닙니까. 만약 고구려 스스로의 기록이 남아 있어 북위에서 선물을 지참한 사신단이 방문을 했다면 무엇이라 기록했을까요. 후에 고구려가 고수전쟁의 전리품을 왜에 선물로 보내는데 일본서기는 그것을 공물을 바침이라고 기록합니다. 결국 기록을 남긴 물건을 받는 국가의 입맛대로라는게 아니겠습니까. 한편 '바치는 양이 늘어나고 보답받는 양도 늘었다'고 했는데 결국은 양국의 교류 이야기입니다.

  • 11.05.30 11:20

    고구려와 북연의 관계에 있어 누가 상전이라고 보든 상관없이, '속국' 관계가 성립하느냐의 여부는 '속국'에 대한 정의와 그런 정의를 뒷받침하는 타당한 논리를 가진 주장인지에 달려 있기 때문에, '누구'의 주장이 타당한지가 아니라 '각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탄탄한 논리가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툼이 일어날 여지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지요.

    어쨋든, 김용만 선생의 주장 중의 일부에 관련해서 두 가지 정도 생각할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 "관작을 제수 받은 국가가 군대를 파견해 격돌했다는 것은, 관작 제수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는데, 문무왕의 신라가 당나라와 전쟁을 벌인 것을

  • 11.05.30 11:21

    두고도 그런 식으로 해석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신라는 당과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도 조공을 한 적이 있다고 기억을 합니다.
    둘째, "풍발의 동생 풍비가 고구려에 414년까지 인질처럼 머물렀다는 것"을 북연이 고구려의 속국이라는 방증으로 보는 데, 백제의 왕자(심지어 뱃속의 아기까지)가 일본에 인질로 머무른 기록이 있으며 백제의 위기 상황에서 일본이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지의 문제입니다.

    국가 사이의 관계를 항상 도식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유사 사건들을 서로 별개의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 작성자 11.05.30 11:42

    중요한 사례를 지적했군요. 이런 사례들이 다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황증거를 더 자세히 살피고, 어떤 관점에서 해석해야 하는냐가 중요합니다. 신라의 경우는 당나라에 처음 협조하다가, 당이 신라에 삼키려고 하자, 화전양면책을 구사하면서 전쟁을 하는 경우인데, 고구려와 북위와의 관계와 비교할 때 처한 상황이 달랐습니다. 백제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백제는 도리어 고대 왜국의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북연이 고구려 정치에 영향을 미친 것과는 다름니다. 이와 반대되는 경우도 물론 많습니다. 따라서 역사를 도식화시키거나, 일부 사료만으로 전체를 해석해서는 안되고, 전체적인 상황을 깊이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 11.05.31 11:36

    중국 측 사료는 비판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판적으로 접근하든 글자 그대로 접근하든 누가 더 합리적이고 개연성이 높으냐에 달려있지 않을까요? 일례로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부정하는 국내 주류 사학계의 이론은 야스페르츠님 말대로면 소설일 뿐일 겁니다.

  • 11.06.08 16:34

    푸념입니다만 중국 측의 관념속에서 형성된 조공`책봉관이 우리나라 고대사에 끼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생각이 다시금 듭니다^^; 선생님 글 잘보고 갑니다. 최근에 백제의 450년 풍야부의 대송파견을 관심있게 보고 있던지라 더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5세기 중반의 북연 및 북연출신 인물들의 활동은 국제정세 파악에 빼놓아서는 안될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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