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주는 가짜 평안과 예수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한복음 14:26~27) 하심 같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장 갖기를 원하는 것이 바로 평안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 지키는 일로 평안하려 하셨고, 세상 사람들은 많은 재물과 높은 권세를 취하는 일로 평안하려 합니다. 그래서 참된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께 충효하려 하나, 문재인 같은 짐승들은 육신의 배부름과 이웃들로부터 존대받으려고 재물과 권세를 탐합니다.
에덴 동산에서 사단이 사람들을 속여 금단의 선악과를 따 먹게 한 죗값으로 인해 그는 영원무궁히 김일성 일가들과 종북 반역 세력들처럼 지옥 형벌을 예약해 놓고 불안공포에 뒤쫓기며 살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창세기 3:14)는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로 태어난 생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해 거역하게 되면, 그에 대한 최고 형벌이 바로 영생에 이를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 곧 영의 양식을 먹을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흙과 생물들로부터 발생되는 썩은 양식들만 먹고 죽음보다 더 고통스런 형벌을 받습니다.
영물에 속한 들짐승 뱀과 사람들이 똑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해 거역하였기 때문에 고통과 죽음의 저주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뱀만은 반역을 주도한 주범자였기 때문에 살아생전에 배로 기어다니는 형벌이 추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대신 들짐승 뱀의 말을 믿은 사람들에게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만 먹을 양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들은 죄의 허물을 가릴 수 있는 의의 흰옷을 입어야만 다시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하나님의 보좌와 영광을 탐한 역신죄(逆臣罪)로 인해 지옥 불못에 들어가 영원한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사단이 이처럼 자신의 종말이 지옥형벌임을 알고 심히 분노하여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들마저 지옥으로 끌고가 함께 고통당하는 일로 하나님께 보복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단이 사람들에게 살아생전에 하나님께 회개하여 하나님의 자녀되는 일보다, 자신과 함께 하여 김일성 일가들이나 문재인처럼 이웃들이 땀흘려 얻은 알곡과 분복을 속여 갖거나 총검으로 위협해 빼앗아 자손만대까지 부귀영화와 쾌락을 누리는 삶이 진정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치는 스릴과 쾌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름을 청사(靑史)에 길이 남기기 위해 명승지 곳곳에다 동상을 만들어 세워 사람들로부터 절 받으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죽은 우상의 동상을 만들어 세우려면, 태어난 사주팔자(四柱八字)가 좋아야 하고 또 조상들의 묏자리와 자신이 살고 있는 집터가 명당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사람은 오직 살아생전에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해 지키는 충효로만 거룩하신 하나님을 다시 뵈옵고 영원히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건만, 사단은 이러하여야 할 사람들에게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 어느 시간에 태어나느냐 하는 '사주팔자'와 죽은 조상의 묏자리와 자신들이 거하는 집터가 좋아야만 살아서도 평안하고 죽어서도 평안하다고 가르쳐,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불효불충한 죄를 망각해 버리고 회개치 못하도록 합니다.
이런 세상에 예수님이 오셔서 사단의 졸개가 된 천하만민의 죗값을 대신 짐지고 참혹한 십자가의 형벌로 죽었으나, 죽음의 사자가 예수님의 몸을 영원히 땅에 묻어 두어야 할 죄목을 한가지도 찾을 수 없게 되자 삼일만에 그의 몸을 죽음의 무덤에서 석방시켜 다시 살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김일성 일가들처럼 스스로 존엄자 행세를 하려 할 뿐, 자신들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께 돌아가려 하지 않습니다. 사단은 자신보다 무지하고 어리썩고 유약한 존재들 위에서만 존엄자 행세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 육신의 권세와 영역이 미치는 곳에서는 어떤 존재들도 자신보다 높고 뛰어나서는 안된다고 하며 서로 짓밟아 굴종시키려 합니다.
천하의 그 어떤 고명한 사람이라도 자신과 우주만물과 천하만민을 홀로 창조해 다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말씀을 배제해 버리고, 스스로 연구해 지어내고 꾸며만든 모든 법과 윤리도덕과 철학과 과학지식으로 만든 기계들로 자신들의 배를 불리고 육신의 안일을 추구하려 하여도 그런 것으로는 거룩한 사람이 누려야 할 평안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을 필두로 한 모든 피조물은 오직 자신들을 창조해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 한분의 말씀을 예수님처럼 존중해 지켜야만 비로소 자신을 비롯한 우주만물과 천하만민에게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을 뿐, 이것을 배제시킨 상태하에서는 그 어떤 것들로도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들과 같은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저버린 마귀 같은 자들은 오직 지옥 형벌에 떨어질 불안공포에 휩쌓여 부모형제지간이나 부부지간이나 부자지간이나 이웃지간도 참된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서로 철천지 원수가 되어 하나님을 반역한 죗값에 대해 서로가 심판관 행세하려고 권력만 잡으려 할 뿐, 추호라도 남들의 죗값을 대신해 예수님처럼 희생당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때문에 성경은,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잠언 21:9) 하셨고 또,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잠언 21:19) 하심 같이, 남편과 아내 같은 친분 관계라 할지라도 두 사람 중 어느 하나가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을 섬기자고 할 땐, 그와 헤어져 혼자 사는 것이 평안합니다.
예수님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아도 자기 내면에서 육신의 생각이 영의 생각을 심히 거슬려 앙탈을 부렸습니다. 즉 육신의 생각이, "지금껏 영의 생각을 좇아 추호라도 범죄하여 죽을 죄를 저지르지 않았거늘, 어찌하여 완악한 세상 사람들이 지은 죄악의 죗값을 우리가 모두 짊어지고 대신해 참혹한 십자가의 형벌로 죽어야 하느냐?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니 십자가에 못박혀 죽지 않는 다른 방법을 만들 수 있잖느냐?"고 기도하도록 독촉하였습니다. 이런 육신의 생각에 쫓겨 예수님이,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태복음 26:38~39)라고 하며 참혹한 십자가의 형벌을 거부케 하는 육신과는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이 결단은, 세상 어느 피조물 곧 예수님 자신의 몸둥아리도 하나님이 처음 결정하신 원안(原案)을 거역한 상태하에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을 뵈올 수 없기 때문에 육신의 애절한 부탁을 손절(孫絕)하였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참된 평안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의 원안(原案)을 재고(再顧)해 보도록 요구하면, 그와 손절(孫絕)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의 본분입니다. 이 시점에 하나님의 원안을 수정하도록 요구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즉 하나님은 자기 본래의 뜻만 고집해 강요할 것이 아니라, 자녀된 사람들의 무지와 연약도 참작하라는 뜻입니다. 간곡한 청원 같아 보이지만, 그 청원 속에는 사단의 간교한 악독이 담겼습니다. '실세자 예수'에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창조 당시의 원안대로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능력이 담겼습니다. 이런 능력으로 인간 유일무이의 참된 평안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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