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키타카의 시대가 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점유’는 축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공을 안정적으로 점유할 수 있다는 것은 공격 기회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상대의 공격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므로 승리의 가능성을 높이는 방식이 될 수 있다. 다만 이 점유율이 공격의 ‘양적 측면’은 보장하지만 ‘질적 측면’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점유에 있어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 스페인은 수비와 역습이 화두인 이번 유로 2016에서도 여전히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체코 전에서 비록 어려운 경기를 펼쳤으나 터키를 상대한 경기에선 공격력이 더 가다듬어진 듯하다. 체코와 터키의 수비력 차이를 고려해야겠으나, 스페인은 터키 전에서 지공 상황에서 ‘두 줄 수비’를 돌파할 대안을 찾아낸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은 수비 축구가 대세인 이번 대회에서 다른 팀 컬러로 팬들을 즐겁게 만들어줄 것이다.
첫 골을 기록한 모라타. 그의 한 골은 경기 양상을 결정지은 귀중한 골이었다. ⓒUEFA EURO 2016
스페인을 상대하는 팀은 일단 수비적인 경기를 펼쳐야 한다. 스페인은 공을 한 번 빼앗으면 절대 놓치지 않는다. 라모스-피케 두 중앙 수비수까지도 엄청난 기술 수준을 갖고 있으며, 모든 선수들이 정확한 패스를 구사한다. 하지만 패스만 잘하는 것이 아니다. 패스만 잘했다면 스페인은 두 줄 수비를 잘 돌파할 수 없을 것이다. 패스를 살릴 수 있는 침투 움직임이 활발하기 때문에 두 줄 수비에 균열을 내고 있다.
기본적으로 스페인은 모든 선수들이 침투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특히 체코 전과 마찬가지로 터키 전에서도 공통적으로 좌우측면수비수인 알바와 후안프란의 공격 가담이 눈부셨다. ‘윙어’들은 안으로 좁혀들어 오는 움직임을 하고 측면으로 ‘벌려주는’ 공격을 이들 측면수비수들이 담당하고 있다. 때로는 측면에 넓게 벌려섰다가 대각선으로 잘라들어 오는 움직임으로 보다 직접적인 찬스를 만들기도 했다. 측면수비수들의 공격 가담은 답답한 두 줄 수비 가운데에서도 화려한 패싱을 자랑하는 스페인 미드필더들의 침투 패스를 받아서 상대 수비가 잡아놓은 형태를 흩트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스페인은 측면에서 상대를 흔드는 것에 더해 전술적인 움직임을 하나 더했다. 바로 ‘침투’ 움직임이다.
키 패스를 뿌려대는 이니에스타. 와이너리 운영 능력만큼 축구 실력도 출중하다. ⓒUEFA EURO 2016
스페인은 체코가 거의 경기 내내 공격을 퍼부었지만 경기 막판 피케가 한 골을 뽑아내는 데에 그쳤다. 하지만 피케가 얻어낸 소중한 골에서 조밀한 수비 돌파를 위한 힌트를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체코는 스페인의 크로스를 거의 완벽하게 잘라냈다. 그 이유를 체코가 세웠던 좁은 간격의 수비에서 찾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철저하게 지공을 하던 스페인의 공격 방식에서도 찾을 수 있다. 수비적으로 내린 체코를 상대로 스페인이 지공을 펼친다는 이야기는 공격수들이 ‘서서’ 경기에 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자리에서 공을 기다리거나 헤더를 위해 점프한다는 뜻이다. 공격자가 서있으면 수비하는 입장에서 매우 방어하기가 쉽다. 체코 전 피케의 골은 상대 수비의 머리를 넘기는 이니에스타의 크로스에서 나왔다. 피케는 수비수-골키퍼 사이의 공간으로 움직여 들어가며 머리에 공을 맞췄었다.
두 줄 수비를 공략하기 위해선 짧은 거리라도 침투하는 움직임으로 순간적으로 수비수의 수비 범위를 벗어나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움직임에 맞춘 크로스가 이어진다면 위협적인 찬스를 만들 수 있다. 이번 경기에서 스페인은 터키가 수비 라인을 깊이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최종 수비수의 배후 공간을 노렸다. 그 공간은 매우 좁았지만 수비수가 처리하기 부담스러운 위치, 즉 최종수비수와 골키퍼 사이의 공간으로의 크로스와 패스를 시도했다. 특히 모라타가 기록한 첫 골은 크로스도 매우 정확했고, 수비수와 골키퍼 사이의 공간으로 침투하는 모라타의 움직임 자체가 훌륭했다.
기가 막힌 침투 움직임을 선보인 놀리토. 공간 침투에 있어 매우 기민한 움직임을 보인다. ⓒUEFA EURO 2016
첫 골 이후로 스페인은 여유를 찾으며 더 좋은 경기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여기서도 수비수의 배후 공간, 즉 골키퍼와 수비수의 사이를 노리는 패스는 여전했다. 터키가 만회골을 위해 조금 더 전진하자 골키퍼-수비수 사이의 공간이 조금 더 넓어졌고 스페인은 여지없이 이 공간을 파고들었다. 스페인의 두 번째 골 득점 장면도 토팔의 헤더를 실수라고 볼 수도 있지만, 뒤로 물러서면서 하는 헤더는 원래 맞추기도 힘들고 맞춘다고 해도 힘이 실리기 어려워 확실한 클리어는 어렵다. 타이밍에 맞춰 침투한 놀리토와 로빙 패스를 정확하게 넣어준 파브레가스는 칭찬 받아 마땅했다. 세 번째 골 역시 오프사이드가 불려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침투와 패스 자체는 매우 훌륭했다.
2패를 당한 후에 마지막 경기에서 체코와 ‘단두대 경기’를 치러야 하는 터키에게 전진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터키의 전진은 공격 기회의 증대를 의미했지만 동시에 스페인에게 공격을 위한 공간을 내준다는 것을 의미했다. 3:0이란 결과는 스페인에게 공간을 허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보여주는 경기였다.
완패를 당한 터키. 역습 전술이 스페인을 공략하기엔 투박하고 느렸다. ⓒUEFA EURO 2016
이번 대회에서 스페인, 독일, 프랑스, 잉글랜드 같은 ‘객관적 강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줄 수비의 돌파라고 할 수 있다. 골문을 열지 못하고 역습에 실점을 한다면 자이언트 킬링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유로2016 개막 후 수비 축구를 전술적인 움직임으로 깔끔하게 뚫어낸 팀은 없었다. 프랑스가 2승을 거두곤 있지만, 인내심을 갖고 두드린 끝에 후반 막판 체력 저하, 집중력 저하를 틈타 넣은 골이었다. 프랑스 역시 칭찬 받아 마땅하지만 상대가 루마니아와 알바니아였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한편 스페인은 훨씬 강한 전력을 갖춘 터키를 상대로 완벽히 약속된 플레이로 골을 만들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다른 두 줄 수비를 구사하는 팀을 상대로도 비슷한 플레이를 선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스페인은 이번 유로2016에서 두 줄 수비를 지공으로도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팀이 아닐까.
스페인은 이번 터키 전 승리로 많은 것을 얻었다. 토너먼트에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음과 동시에 두 줄 수비의 돌파를 위해 준비한 전략이 유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스페인은 점유에 강점이 있는, 시대에 뒤처진 팀으로 비춰질지도 모르지만, 지공 상황에서 상대의 좁은 간격 사이에서도 공간을 만들고 또 이용할 수 있는 팀이다. 스페인은 기존의 점유율 축구를 기반으로 한 단계 진화한 것처럼 보인다. 패싱 능력을 바탕으로 측면수비수의 공격 가담과 선수 전체의 침투 움직임으로 좁은 수비 간격 사이에서 공간을 만드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 스페인은 수비 축구가 ‘흥하고’ 있는 이번 대회에서 가장 이질적인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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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모라타 아기아기했는데... 못알아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