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정신
安秉煜(1920~2013)철학교수
우리는 동물한테서 배울 것이 많다. 어떤 동물은 인간의 뛰어난 스승이 될 수 있다.
그 중의 하나가 기러기다.
기러기는 세 가지의 훌륭한 덕목(德目)을 갖는다.
첫째는 질서의 덕이다. 기러기는 9만 리 장천(長天)을 날아가도 대열을 헝클어뜨리지
않고 일사분란(一絲不亂)한 자세로 질서정연하게 날아간다.
뒤에 나는 새가 앞서가는 새를 따라가며, 남에서 북으로 또는 북에서 남으로 명확한
방향감각을 가지고 창공에 높이 나는 기러기를 볼 때마다. 나는 감탄을 글할 수가
없다. 이것은 하늘이 기러기에게 부여한 놀라운 본능의 지혜다.
본능처럼 놀랍고 지혜로운 것이 없다. 본능하란 무엇이냐. 본래부터 갖는 근본적
능력이다.
동물의 세계에는 학교도 없고 선생도 없고 책도 없지만, 하늘이 준 타고난 본능의
지혜로 살아간다.
우리는 기러기 한테서 질서의 덕을 배워야 한다. 줄을 지어 질서있게 행동하는
것을 안항(雁行)(안행이라도 읽는다)이라고 하고, 또 안서(雁序)라고도 한다.
기러기와 같은 질서라는 뜻이다. 기러기는 새 중에서 질서의 천재다.
독수리는 혼자 외롭게 난다. 참새는 잡동산이(雜同散異)로 무질서하게 난다.
그러나 기러기는 질서정연하게 난다. 질서는 아름답고 편리하다.
우리는 기러기의 질서의 정신을 배워야한다.
기러기의 둘째 덕목은 신애(信愛)다. 기러기는 서로 믿고 서로 사랑한다.
기러기는 난혼(亂婚)하지 않는다. 일부일부제(一夫一婦制)를 꼭 지킨다.
하번 짝을 잃으면 죽을 때까지 변치않고 사랑한다.
우리의 조상들은 결혼할 때에 나무로 기러기 암수를 만들었다. 이것을
목안(木雁)이라고 한다. 목안을 가지고 혼가(婚家)에 가는 사람을 안부(雁夫)라고 했다.
오늘날에도 이 아름다운 전통과 풍습이 그대로 남아서 결혼하는 신랑신부에게
목안을 준다.
세상에 서로 믿고 사랑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이 없다.
기러기는 땅에 내려 앉으면 한 두 마리가 반드시 용의 주도 하게 망을 본다.
독수리가 날아오지않는가. 우리에게 해를 끼치려는 놈이 없는가,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고 경계하는 보초의 역할을 한다.
기러기는 상호간에 신애의 정이 두텁기 때문에 약육강식(弱肉强食)의 거친 동물
세계에서 안전하게 생존한다.
끝으로 기러기의 점진(漸進)의 정신이다. 기러기는 독수리같이 사나운 맹금(猛禽)의
동물이 아니다. 백조(百鳥)의 왕인 독수리를 보라. 무서운 발톱과 날카로운 눈과
예리한 부리와 강건한 날개를 가지고 한 시간에 250킬로미터를 날아간다.
독수리는 무서운 공격력을 갖는 새다. 그러나 기러기는 그렇지않다. 기러기는
비둘기처럼 평화로운 새다. 기러기는 억센 발톱도 없고 예리한 눈매도 없고 날카로운
부리도 갖지 않는다. 다른 새를 해칠 수 있는 전투적 무기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약해 보이는 듯한 몸매와 날개를 가지고 수만 리의 먼 거리를 쉬지않고
꾸준히 날아가서 목적지에 도달한다.
영어의 노우 헤이스트 노우 레스트 (no haste no rest)라는 말이 있다.
서두리지도 말고 쉬지도 말라, 보보등고(步步登高), 한발 한발 쉬지 않고 높은 데로
꾸준히 올라가는 사람만이 산의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 쉬지 않고 날아가는 새만이
붕정만리(鵬程萬里)의 먼 길을 돌파할 수 있다.
천리 길도 발 밑의 한 발짝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노자(老子)는 말했다. 어떤 태도로
인생을 살아갈까, 우리는 기러기의 정연(整然)한 질서와 돈독(敦篤)한 신애와 쉬임없이
전진하는 점진(漸進) 주의의 정신을 가지고 인생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