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잊지 말아요
신상숙
“사람이 언제 죽습니까?”
질문을 던진 분께서‘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질 때’가 바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야’ 하면서 나도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다는 사실에 ‘속물이야’ 하면서 몸서리를 쳤다. 사람이 늙어 병들면 죽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다. 하지만 진리를 받아들이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어서 시커먼 그림자가 나를 비켜갈 거라고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늘 한다.
농사라고 해야 남들의 비하면 소꿉장난이다. 그런데도 농사일에서 헤어날 날이 별로 없으니, 농사경력이 이십 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일솜씨가 서툴러서다. 하지만 거기에는 농약을 덜 줌으로써 우리 농산물을 먹을거리로 선택한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려는 노력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질 좋은 농산물을 소출하면서 그 들의 마음이 나에게서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간절하기도 하다. 가족처럼 지내는 동식물을 볼 때면, 그들 나름대로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 년에 한 차례 새빨간 꽃잎을 피우는 작약을 바라보노라면 황홀하기 그지없다. 계단 아래 수돗가에서 꽃을 피우기 때문에 하루에 수도 없이 나와 마주친다. 혹시라도 노란 꽃술이 밤사이에 내리는 이슬에 젖기라도 할까 봐 꽃잎을 곱게 포개어 접어둔다. 예쁜 고것들이 아침햇살에 활짝 열기를 반복하면서 ‘나를 봐주세요.’라는 노력이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텃밭 한 귀퉁이에 부챗살처럼 활짝 꽃을 피우는 자귀나무의 우아함이라니···. 그도 밤이 되면 잎사귀를 모두 접는다. 넝쿨에서 샛노란 꽃을 피워내고 실기둥을 땅속에 박은 후에야 열매를 맺는 땅콩도 밤에는 푸른 잎을 모두 접어버린다. 내가 식물학자도 아니고 그들의 그런 행위에 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지만, 그들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이려니 한다. 나에게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 강아지들, 어느 자식이 저들처럼 나를 따르고 기쁨을 주느냐고 할 때도 있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 너머로 녀석들을 바라보아도 그렇다. 사람의 기척을 용케도 알아차리고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어 댄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부터 마당가를 거닐 때에도 눈동자가 나에게 꽂혀있다. 저희들 근처에라도 다가갈 때면 두 녀석이 서로 먼저 손을 주겠다고 치맛자락을 툭툭 쳐댄다. 또 사람처럼 눈동자를 맞추면서 재주 부리기를 좋아해서, 일어서서 두발을 내 손에 얹어 놓겠다고 두 놈이 경쟁을 할 땐 얼른 그 자리를 피한다.
제 주인의 발소리를 알아차리는 것은 기본이요, 남의 자동차 우리 자동차 처음 오는 손님과 친척들도 구분을 아주 잘한다. 꾀 먼 거리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도 알아듣고 펄쩍펄쩍 뛰기도 한다. 밤마실 가는 날에는 앞장서서 내가 자주 놀러 가는 집으로 향한다. 외출해서 돌아올 때면 대문 밖에 웅크리고 앉아서 제 주인을 기다리는 그들의 충성심에 감탄할 따름이다. 동식물도 사랑을 베푸는 제 주인에게 예쁘게 보이려고 저렇게 노력을 하는데, 하물며 창조자의 으뜸 피조물인 사람들이야말로 몇 배로 더 노력을 해서, 생명을 부여하신 분의 뜻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분께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스러운 너로, ‘세상 끝 날에 너를 기억하리라 잊지 않으리라’는 그 말씀을 꼭 듣고 싶다. 그 때문에 망설이지 말고 나를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공부해라 책 읽어라 막내딸의 종아리를 때리시던 우리 어머니, 지금 내 모습에 엄청나게 좋아하시겠지, 하지만 이미 여러 해 전에 이승을 떠나신 우리 부모님이시다. 나의 소홀함으로 얼마나 많은 나날을 적적해하셨을까. 엉터리 딸내미를 그리워하며 섭섭함을 어찌 달래시고···. 눈물이 쏟아지고 목이 멘다. 이제라도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 늘 감사하는 마음 자주자주 기억해야 하겠다. 이웃의 잘못도 용서하고 형제들과 우애도 돈독히 하면서 말이다.
첫댓글 여러 생각들이 오가는 가을입니다.
그러네요.
11월은 먼저 가신 분을 기억하는 달이라서 더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샘
나를 잊지 말아요 물망초...
같은 문학 소녀였단 것
오늘도 알차게 행복하세요~^^
농사 일 언제 줄어들 건지.
우라질 시퍼런 배추가 사라져야
농사꾼도 쉼이라는 게 찾아 오렸다.
@햇살타고, 마리아 농사꾼은 한겨울에도 움직여야 합니다 오죽하면 내가 ...
ㅎㅎ
건강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