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리아를 위한 변명-시론 (외 2편) 우대식 마리아 당신은 내 유일한 저쪽이다 모래바람이 당신의 한쪽 얼굴을 쓸고 갈 때 태양은 당신의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 맑고 찬 우물에 충충히 번지는 양의 핏물처럼 광야의 밤이 찾아온다 짐승의 울음소리가 떠도는 밤이다 태초에 있었던 당신 마리아라고 부를 때마다 쌓여가는 그리움의 두께를 느낀다 가까스로 살아 당신을 배경으로 오래전 인화된 사진처럼 낡아간다는 사실은 어떤 위로와도 견줄 수 없다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이 있다는 사실도 적어둔다 마리아 서리 내리는 가을 새벽처럼 우리가 좀 더 추운 곳에서 종말을 맞이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물을 긷는 사내가 되어 어떤 골목길에서 당신을 만나는 꿈을 꾼다 조심스레 길을 비킨다 찰랑대는 물통에서 몇 방울의 맑은 물이 당신의 옷자락으로 떨어진다 내가 당신과 동행하는 서툰 방식이다 당신과 내가 눈 내리는 사막을 걸어 어느 베두인의 집에 이르면 호롱불 아래 수많은 문자들이 울고 있을 것이다 거기서 십 리 즈음이면 나의 노래도 멎을 것이다 마리아. - 목숨 장마 빗소리 또 물소리 천둥소리 장하다 막걸리 한 통 노가리 몇 마리도 장하다 니힐리스트의 꿈은 젖는다 젖은 채로 흘러간다 거센 물살의 중심으로 들어가 가부좌를 튼다 내장에 돋은 비늘이 날을 세운다 나는 나에게 언제나 고통이다 - 꽃의 북쪽 개구리도 겨울잠에 들고 싸락눈이 내리는 밤 마쓰오 바쇼, 이런 날은 늘 바람이 창호 문을 두드렸지 화로에 술을 데우도록 하지 낡은 신발은 방 안 머리맡에 놓아두도록 하지 왜 마음이란 천리만리 달아나는 것인지 조금은 뜨거운 술을 천천히 내장에 붓고 매화나 동백 같은 꽃을 기다리기로 하지 아니면 꽃의 북쪽으로 달아날까 신음처럼 그대가 내게 물을 때 나는 절망의 심줄을 활시위처럼 당겨 심장 가장 먼 뒤쪽으로 모든 생각을 모으곤 하지 마쓰오 바쇼, 조금 추워도 되겠지 유여한 봄빛이 마루 구석 쌀통에 넘칠 즈음이면 안개와 연기는 강줄기를 따라 무진무진 흐르겠지 그대와 나도 이쯤에서 안녕이지 연기를 좋아하는 나와 안개를 좋아하는 당신 바람이 올 때까지만 지상에 기대기로 하지 이쯤에서 안녕이지 ⸺시집 『베두인의 물방울』 2021년 9월 ----------------- 우대식 / 1965년 강원도 원주 출생.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다』 『단검』 『설산 국경』 『베두인의 물방울』. 저서 『죽은 시인들의 사회』 『비극에 몸을 데인 시인들』 『선생님과 함께 읽는 백석』 등. 현재 숭실대 문예창작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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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를 위한 변명-시론 (외2편)/ 우대식
오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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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12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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