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만나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무수히 날아오는 주파수를 감지하여 가슴에 담는 일이다. 그것을 통해 아이들 마음 밭에 자라는 나무의 잎과 줄기가 더욱 파릇한 생기를 머금기를 소망한다.”(이삼남 광주 고려고 교사)
청소년기 아이들이 문학을 만나는 장은 교과서를 통해서다. 대다수의 청소년은 수많은 문학작품 가운데 엄선한 작품을 교과서를 통해 만난다. 과거와 달리 국어교과서는 현재 16종에 이른다. 출판사별로 그 안에 담긴 문학작품도 다양하다. 어떤 작품들이 교과서에 수록돼 있으며, 그 가운데서 불교의 사상과 가치를 담아낸 작품은 무엇이 있을까. 김세연 동대부중 교법사의 도움을 받아 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를 대상으로 시와 수필, 소설로 구분해 문학작품을 살펴봤다. <국어교과서 작품읽기>(창비)를 참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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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윤동주의 ‘서시’를 기억한다. 또 조지훈의 ‘승무’, 만해스님의 ‘님의침묵’ 등을 접한 곳은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통해서였다. 현재 중고생들이 교과서를 통해 접하는 시는 어떤 것이 있을까.
교과서에 수록된 시인은 70여 명. 윤동주와 김소월, 만해 한용운스님, 서정주, 정지용 시인 등의 글은 각각 수편이 수록돼 있다. 특히 월북시인으로 1980년대까지 작품 게재가 불허됐던 백석 시인의 작품이 다수 교과서에 수록된 것도 특징이다.
교과서에 게재된 문학작품은 몇 가지 특성을 갖고 있다. 우리 문학사에 어떤 영향을 끼친 작품이거나 사회적 배경을 잘 나타낸 시 등이 그것이다. 한용운, 김소월 등 일제강점기 민족의 아픔을 노래한 시가 대표적이다. 한발 나아가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아픔을 노래한 ‘역사속의 삶’을 그린 시들이 시대의 아픔을 보여준다.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 정희성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최승호의 ‘대설주의보’ 등은 시대를 읽은 문학작품이다.
더불어 사는 삶의 이야기를 노래한 시도 다수 교과서에 수록돼 있어, 우리시대가 추구하는 지향점을 엿보게 한다. “…아쉬울 때 마늘 한 접 이고 가서/ 군산 묵은 장 가서 팔고 오는 선제리 아낙네들/ 팔다 못해 파장 떨이로 넘기고 오는 아낙네들/ 시오릿길 한밤중이니/ 십릿길 더 가야지/ 빈 광주리야 가볍지만/ 빈 배 요기도 못하고 오죽이나 가벼울까/ 그래도 이 고생 혼자 하는게 아니라/ 못난 백성…”(선제리 아낙네들 중, 고은)
시골 장터에 가서 삶을 나누는 아낙네들의 모습을 그린 고은 시인의 ‘선제리 아낙네들’은 힘든 삶이지만 정을 나누며 사는 우리의 삶의 지향점을 잘 그려내고 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너에게 묻는다 전문) 는 안도현 시인의 글은 우리를 질타한다. 누군가에게 뜨거운 사람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꾸짖음이다.
김춘수의 ‘꽃’, 천상병의 ‘귀천’ 등은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와 더불어 바위, 별, 교목, 낙화, 봄 등의 자연을 소재로 ‘너와 나’가 하나라는 교감을 보여주는 작품들도 교과서를 통해 ‘우리’라는 전통적 가치관을 청소년에게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시인들이 자주 노래하는 소재는 단연 ‘고향’이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근대화를 통해 우리 사회는 ‘해체’의 과정을 걸쳤다. 마을 동구 밖을 한 번도 나가보지 않은 채 서로 모여 살았던 많은 조상들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고향을 떠나야 했다. 또 근대화 과정에서 더 많은 사람들은 가족과 고향을 떠나 살아야 했다. 그러한 마음이 시로 표현됐다.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 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여우난골족 중, 백석)
박목월의 ‘나그네’, 백석의 ‘여우난골족’ ‘고향’, 정지용의 ‘고향’ ‘향수’, 정현종의 ‘들판이 적막하다’ 등은 고향과 도시의 풍경을 시로 승화한 작품들이다. 또 고정희 시인의 ‘우리동네 구자명 씨’ 등의 작품은 새로운 고향이 돼버린 타향에서 보는 이웃의 모습을 담아냈다. 이런 시를 통해 우리 사회의 변화과정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도록 하는 것도 문학의 힘이다.
김세연 동대부중 교법사는 현대 시문학에서 아쉬운 점으로 “불교를 직접 소재, 주제로 한 시가 거의 없어진 점”을 꼽았다. 1980~90년대 까지만 해도 적지 않은 시가 있었지만, 교과서가 다양해지면서 종교적 색채를 띤 시를 수록하길 꺼려한다는 지적이다.
김세연 교법사는 “조지훈의 승무와 서정주의 동천을 제외하고 불교 시가 없다는 점이 아쉽다. 다만 시의 내용을 통해 시인들의 정서 깊숙이 내재된 불교적 심성을 볼 수 있을 뿐”이라며 “좋은 문학작품은 종교적 색채 여부를 떠나 다양하게 소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교과서에 나오는 시는 학생들 뿐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시다. 문학적 가치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한번 쯤, 그 시들을 음미하면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冬天(동천)
서정주
내 마음 속 우리님의 고은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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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전(月田) 장우성(1912~2005) 작가의 승무도, 1937년 작품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
승무
조지훈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접어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이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 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은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 하고
이 밤 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인제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접어 나빌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