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6편(다윗의 시)
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도다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잠1:2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1:7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잠13:1
"훈계를 저버리면 가난과 수치가 닥치지만, 꾸지람을 받아들이면 존경을 받는다"잠13:18
훈계에 관한 잠언의 몇 구절만 인용해서 읽기만 해도 왜 다윗이 훈계의 여호와를 송축했는지 쉽게 이해가 갑니다
대부분 인간은 종교성에 이끌려 하나님을 찾으며 그를 두려워하며 경외심을 갖게 됩니다
이런 경우 훈계를 주시는 여호와를 두려워하기엔 익숙할지라도 찬송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예배자로 세우실 때는 반드시 훈계/말씀/계명을 주시며 그것을 통해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가십니다
이는 당신이 우리를 지으신 아버지 하나님 창조주시라는 것을 알리사 믿게 하려하심입니다
그 옛날 애굽의 종된 이스라엘이 오직 당신만 예배하도록 당신의 전능자되심과 예수 그리스도를 표상하는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그들을 바로로부터 구원하십니다
특이한 것은 여호와께서는 죄의 종으로부터 구원시킨 것으로 끝내시지 않고 그 순간부터 구원이란 기나긴 여정의 문을
여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구원자 되신 당신께서 구원의 수혜자들과 함께 거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이 자기 백성들가운데 거하신다는 것을 가시화시켜주셨는데 그것이 곧 모세를 통해 광야에서
지은 성막인 것입니다
이 성막을 깊이 묵상할수록 성막이야말로 여호와께서 내(우리)게 주신 모든 훈계라는 것에 알게 됩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훈계(십계명, 모든 말씀)와 성전 식양을 시내산에서 주십니다
이 때 여호와께서는 십계명외 재판법과 의식법도 주십니다
십계명 외 재판법과 의식법은 언약의 내용이 되어 곧 언약서가 됩니다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기전 모세는 제단을 쌓고 열 두 기둥을 세운 뒤 소로 번제와 화목제사를 드린 후
그 제물의 피 반은 제단에 뿌리고 반은 언약식에 참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뿌립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과 그의 두 아들들과 칠십 명의 장로들이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십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을 당신의 나라로 삼으시기 위해 훈계를 주신 여호와를 알게 되면 어찌 그를 즐거워하며
송축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여호와의 모든 훈계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늘 이스라엘을 좇아 다녔지만 모세가 언약을 체결하기전 먼저
제단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뿌린 번제와 화목 제물의 피를 보시고 구원의 여정을 인도하심에 성실과 열심으로
동행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주신 모든 훈계는 풍성한 생명의 근원을 이 땅에 끌어 내리는 복의 지침서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만일 이같은 여호와의 훈계가 없다면 여호와 경외심은 생명 행위가 아닌 종교 행위로 전락할 것입니다
다윗은 조금도 주저함없이 자신을 훈계하시는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공포합니다
돌이켜보니 나를 훈계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 없었다면 나는 무엇으로 여호와를 찬송하게 되었을까?
모든 훈계를 지키기엔 턱없이 부족한 것을 뻔히 아시면서도 지키라고 주신 여호와의 마음을 알면 알아 갈수록
뱃속에서부터 그가 나를 이토록 후대하시는 분이신가에 경이로움을 갖고 찬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를 당신께서 원하시는 수준까지 끌어 올리시는 것은 오직 그분께서 주신 훈계를 통해서일뿐입니다
이것은 결코 행위 구원을 말함이 아닙니다
구원의 모든 여정 필독서라 할 수 있는 여호와의 훈계를 받는 그 순간부터 듣고 읽고 묵상하며
깨달아가는 모든 시점들은 결코 행위로부터 오지 않습니다
사고와 인식의 패턴과 방향 감각이 새로와지는데서 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이웃 사랑에 구체적인 훈계/말씀/명령/계명을 지키기에 많은 고난과 환란이 있을지라도 포기하거나
멈추거나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훈계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믿는 믿음 없이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성경도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나는 거룩하신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완전하라"고 99세된 아브라함에게 훈계를 주신 여호와께서
신약에 이르면 하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훈계하십니다
어릴 때는 정말 하늘이 높음 같이 까마득했던 말씀이였으나
지금은 이렇게까지 우리를 후대하시는 훈계의 말씀으로 받게 될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이런 여호와! 이런 예수 그리스도를 무엇으로 만날 수 있겠습니까?
그 훈계의 말씀이 아니면 어찌 만날 것입니까?
그러므로 우리에게 오늘도 훈계를 주시는 여호와를 어찌 송축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내게 양심을 주신 여호와께서 살아계셔서 밤마다 나를 교훈하시지 않는다면
어떻해 내 생각을 새롭게 전환시킬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훈계를 주시는 여호와를 송축하며 밤마다 자기 심장이 교훈하는 것을 멸시하지 않는 자는
다음과 같이 외칠 수 있게 됩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아멘!
마라나타!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