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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6편(다윗의 시)
"9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10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11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9절의 "이러므로"는 앞말을 근거, 원인으로 뒷말을 이어주는 부사입니다. 접속부사라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다윗은 "이러므로"를 사용하여 이제껏 기록한 말씀(1~8절)을 근거로 현(9) 상황과 지금 이후 영원한(10~11)상황까지
계시한 말씀을 연결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1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2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3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4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저희가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5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내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리로다
6주께서 줄로 재어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7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하라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도다
8네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야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시편은 일관성 있게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모든 환란속에서 하나님 외 다른 신이나 인간을 의지하지 않고
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라는 훈계를 모든 성도에게 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께 피함이 무엇인지 2절을 통해 보여줍니다
곧 여호와와 자신과의 관계를 주종관계로 정립한 후 오직 주군만이 복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기름부으심이 화답하길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여호와의 모든 즐거움이 성도에게 있다하십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동일하신 성령님께서는 다윗에게 들려주신 말씀을 오늘날도 들려주고 계십니다
놀라운 것은 여호와의 즐거움이 어느 일부분,귀퉁이가 아닌 <모든(WHOLE)> 즐거움이 존귀한 성도에게 있다하십니다
귀가 있어 이 말씀을 듣게 되면 어찌 다른 신에게 절할 것이며 그 이름을 성도의 입술로 부를 것입니까?
당신의 모든 즐거움이 내게 있다 하시는 분께 무엇이라 화답하겠습니까?
다윗처럼 여호와는 나의 산업 내 잔의 소득이라 하지 않겠습니까?
잠시 다윗 자신을 가리켜 말한 "내 잔(운명)의 소득이시니"를 묵상해봅니다
다윗의 운명은 왕의 운명이되 이방 왕이 아닌 철저히 주군이신 여호와께 종속된 왕의 운명입니다
이로인해 다윗은 자기 시대에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뜻을 다 이루어드리고 아버지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곧 주께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주시려고 줄로 재어준 가나안 땅을 한 치도 부족함 없이 다 정복하기 위해
여호와의 전쟁을 수없이 치렀다는 것입니다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주군을 위해 다윗은 수많은 전쟁을 해야만 하는 운명을 불평하지 않고 다 마신 자입니다
근데 놀라운 것은 다윗은 "내 운명(잔)"이라고만 하지 않고 "내 운명(잔)의 소득이시니"라고 고백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는데 마치 성도에게 있는 여호와의 모든 즐거운 꽃들이 만개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왠일일까요?
울 주님께서도 "나의 마시려는 잔(운명의 십자가)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라고 질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에 철없는 제자들은 그게 뭔지도 모른체 마시겠다합니다
그러자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말씀대로 제자들은 주께서 찢겨진 살로 인해 십자가에서 몽땅 쏟으신 피의 잔을 마시게 됩니다
주 홀로 치르신 십자가의 전쟁으로 완성된 언약의 잔을 우린 말할 수 없는 사랑과 감사로 마실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아버지께서 십자가 전쟁으로 사단을 이기신 아들에게 사단의 포로된 우리들을 전리품으로 주신 증거라 하겠습니다
땅에 있는 존귀한 성도들도 다윗처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싸워야 하는 운명입니다
그 운명에 순복하는 자와 그렇지 않는 자의 차이는 여호와께서 주시는 전리품이 있는가 없는가로 드러납니다
다윗은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 사울 왕으로부터, 또한 수많은 전쟁터에서 여호와께 피하는 자신을 항상 보호해주시는
여호와를 경험함과 동시에 주군이신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주시는 훈계로 인해 전리품을 얻을 때보다 더 큰 기쁨이
되는 그리스도를 뵙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뇨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막12:35~36)"
훈계를 주시는 여호와를 찬송하며 밤마다 심장의 교훈을 듣는 다윗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생깁니다
그 변화를 다윗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8네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어려울 때만 여호와께 달려가 피했었는데 이제는 아예 항상 여호와의 임재 안에 거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전능자의 그늘아래 거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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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묵상본문을 위해 다시한번 1~8절을 훑어보니 과연 9~11절의 첫 마디를 "이러므로"라고 할만합니다
항상 다윗이 여호와를 앞에 모실 때 여호와께서는 그의 우편에 계셔주시니 요동치 않는 자가 됩니다
"이러므로" 다윗은 "내 마음이 기쁘고 그의 영도 즐거워하며 그의 육체도 편히 쉽니다"
그는 현재 누리는 즐거움만이 아니라 미래에 오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히 즐거워할 생명의 길을 예언(10~11절)합니다
이는 다윗이 항상 여호와를 앞에 모실 때 여호와께서 다윗의 우편에 계시므로 그에게 한량없는 성령을
여호와께서 부어주셨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순절 강림절에 베드로가 일어나 새 술에 취해 설교할 때 인용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영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사도행전2:25~28
"다윗은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사도행전2:30~32
결론적으로 "여호와께 피하는 자가 다 복이 있다"는 말씀이 말하는 복이 부활생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우상이나 사람을 의지한다면 죽음 이후를 보장받지 못합니다
허나 오직 여호와께 피하여 그와의 관계를 주종관계로 정립하여 그에게 순복하는 자로 살아가면
현세는 물론 죽은 순간과 죽음 이후 영원토록 복(생명,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복을 주실려고 당신께 피하라는 훈계를 오늘도 주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복"을 갈망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여호와를 주군으로 모시고 그에게 순복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지라도 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궁극적인 복으로서의 영생을 받게 될 것입니다
왜냐면 영생은 행함이 아닌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복이기 때문입니다
허나 현세에서 누릴 수 있는 전리품은 주군의 훈계에 순복할 때 받는 것입니다
아멘!
마라나타!
첫댓글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