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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국 훈독경 제11권 15일
평화로운 천국의 왕궁
날짜 : 1990. 8. 12(일)
장소 :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남녀가 하나되는 데 이상이 있어
여러분, 남자들끼리 손잡고 다니는 것하고 남자와 여자가 손잡고 다니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보기 좋아요? 남자들끼리 손잡고 다니는 것을 보면 키가 커서 늘씬하고 그런데 남자와 여자가 손잡고 가는 것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여자는 거의 다 작고, 남자는 다 큽니다. 그렇지만 그게 어울립니다. 높은 사람은 내려다보고 낮은 사람은 올려다보는 것입니다. 거기서 상대성이 이루어집니다.
거기에서는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을 올려 주려고 하고 낮은 사람은 높은 사람을 내려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자연스런 행동이 개재됩니다. 원형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큰 남자는 머리를 숙여야 되고, 작은 여자는 이렇게 해야 됩니다. 거기에 제3의 동작, 제3의 운동이 일어나야 미의 세계, 조화의 세계가 이루어집니다.
남자가 커야 여자를 커버할 수 있습니다. 여자는 그 아래 덮여 가지고 기뻐하면 되는 것입니다. 또, 작은 여자가 큰 남자를 덮을 수도 있습니다. 이럴 수 있으면 됩니다. 안팎이 엇갈리면서도 하나되는 데 이상이 벌어집니다. 외적으로 보면 힘이라든가 모습이 여자들보다 남자가 크지만 정적인 면에서는 여자가 풍부합니다. 여자는 흉악한 남자같이 딴 짓을 못 합니다. 그렇지만 정서적인 면에서는 남자들보다 큽니다. 엇바뀌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닭 같은 것을 못 잡습니다. 여기서는 기계로 닭을 잡지만 동양에서는 집에서 닭의 목을 떼고 하는데, 그런 것을 여자들은 절대 못 합니다. 그거 하라고 하면 전부 도망갑니다. 그건 다 남자들이 합니다. 여자들은 그것을 할 줄 모릅니다. 소를 잡는다고 할 때, 여자가 나서서 “아, 내가 잡아야 되겠다” 해요? “나 싫어” 하면서 전부 뒤로 숨지요.
육지의 동물도 그렇지만 바다에 있는 고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글로스터에 가면 84파운드나 되는 스트라이프트 배스(striped bass;줄무늬농어)가 있습니다. 펄펄 뛰는 그런 것을 잡아서 칼로 목을 자를 수 있느냐 이거예요. 다들 도망갈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자들이 “내가 좋아하는 것, 색다른 것을 잡아먹기 위해서도 남자가 필요하다” 합니다. 남자들이 외적인 면에서 그런 것을 잡아다 주면 여자들은 비늘을 벗기고 정성껏 요리를 하는 것입니다. (205-133)
여자는 사랑문화 창조의 공로자
그렇게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가치가 다른 것은 아닙니다. 하나의 가치를 중심삼고 쌍방이 협력해야 됩니다. 전후가 협력하고, 상하가 협력하고, 좌우가 협력할수록 더 귀한 것입니다. 먹는 것은 누가 먼저 먹기 시작해요? 음식을 만들어서 누가 먼저 먹어요? 여자들이 요리해서 맛을 보지요? “아무리 대통령이고 잘난 손님이라도 내가 먹다가 남은 것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아요! 내가 먹던 찌꺼기를 먹는다는 것입니다. 또, 그걸 불평하는 대통령이 어디에 있고 그것을 불평하는 왕이 어디에 있어요? “그래야 되지” 합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여자가 좋은 것입니다.
그러면 요리를 해서 왜 먼저 먹어야 돼요? 심정적 모든 사랑의 내용을 가지고 정성을 다합니다. 여자들은 간장을 치나, 소금을 치나, 무를 자르나, 모든 오색가지의 음식을 만드는 재료를 갖다 놓고 정성을 다합니다. 만지는 것도 사랑이요, 자르는 것도 사랑이요, 삶는 것도 사랑이요, 물을 주는 것도 사랑입니다. 이런 연유로 인해서 섬세한 데 있어서 대표가 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정성을 들였으니 그것이 얼마나 맛있냐 할 때 보기에도 좋고, 냄새를 맡기에도 좋고, 만지기에도 좋고, 먹기에도 좋게 하기 위해서 웃으면서 맛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테이블에 갖다 놓으면 모든 것은 내 사랑의 전시판이 됩니다. 그럴 때 여자의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기분이 좋습니다. 정성을 들이고 힘들게 할수록 더 행복을 느끼고 더 자랑스럽게 느낍니다. 그런 것을 매일 만드는 여자들이 하나님 앞에 가깝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할 때 좋아하셨던 심경에 제일 가까운 생활의 일면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여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여자가 행복해요, 불행해요?
누구든지 사랑을 가지고 만든 물건은 언제나 가지고 있고 싶은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이 우주를 사랑으로 지었기 때문에 나와 제일 가까운 자리에 있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심정세계에 동참할 수 있는 생활의 일면을 더 많이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이 남자보다 여자입니다. 그래서 여자를 좋아한다구요. 사랑의 창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해요!
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아들딸, 사랑하는 부모…. 사랑이라는 것을 중심삼고 사랑과 더불어 연결해 가지고 내가 언제나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하루에 세 번 밥 먹는 것을 통해서 높으면 높은 단계, 낮으면 낮은 단계로 언제든지 연결을 지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밥을 먹게 될 때, 며느리가 누구와 싸움하고 만든 것하고 평화로운 환경에서 기뻐하면서 만든 것하고는 맛을 보면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가정에는 모든 차원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아들딸의 레벨, 어른의 레벨, 노인의 레벨 등 인류를 대신해서 사랑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게 얼마나 멋져요! 거기에 문화가 있고 예술이 있고 문학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랑의 문화를 창조하는 데 있어서 공로자가 누구겠어요? 남자겠어요, 여자겠어요? 세계의 누구를 붙들고 물어 보더라도 남자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자가 된 게 불행해요, 행복해요?
여자는 꽃을 좋아하지요? 향기 나는 것하고 색깔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남자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보통 남자들 가운데는 꽃을 매일매일 시간시간 갈아 놓더라도 그것을 감정하는 남자가 없습니다. 며칠 전부터 꽃을 열 번쯤 갈아 놓았는데도 “요전의 그 꽃이 아직도 있구만” 하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세상에 여자가 없으면 얼마나 삭막하겠어요!
또, 꽃만 있고 향기만 있으면 어떻게 해요? 그걸 누가 맡아 줘요? 자기가 그것을 좋아하고 맡아요? 자기 혼자 “아이구, 좋아” 그러겠어요? 자기 이외의 다른 무엇이 향기를 맡고 좋아해야 되는 것입니다. 닭도 보고 꼬끼오 하고 울고, 개도 보고 좋아서 멍멍 하고 짖고, 송아지도 음매 하면 얼마나 멋져요! 그렇게 될 때, 여자는 다른 꽃을 또 그렇게 해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상대가 찬양해 주어야 또 하자고 하면서 더 한다는 것입니다. (205-134)
예술의 표상도 여자
천국이 뭐냐? 평화로운 천국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천국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천국을 만들어야 됩니다. ‘헤븐(heaven)’ 할 때와 마찬가지로 ‘평화로운’ 할 때도 상대적인 여건이 들어가기 때문에 ‘사랑의 천국, 행복의 천국’ 할 때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형용사들이 필요합니다. 여자의 목걸이가 뭐예요? 여자의 목을 자랑하는 형용사적인 비품입니다. 브로치(brooch)를 달고 스타일을 꾸미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이 그런 것입니다.
여자들 가운데 옷 한 벌을 가지고 10년 입는 여자가 있어요? 세 번만 입으면 싫어합니다. 남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남자는 입던 게 편안하다고 생각합니다. 새 양복을 입으면 얼마나 불편한지 모릅니다. 자리가 안 잡히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래요? 이것은 전부 폼이 잡혀 가지고 컬러풀(colorful)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딱 째 가지고 춤을 추겠어요?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전부 감겨요. 그런데 여자들은 그렇지 않거든요. 불편하면 잘라 가지고 쇼트팬티로도 입고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남자는 그렇게 못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의 표상은 여자입니다. 그래서 여자의 나체를 그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서구사회에서 예술이 발전한 것입니다. 여자는 사랑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여자의 살결이 어때요? 남자보다 보들보들해요, 뻣뻣해요? 남자보다 부드럽습니다. 그거 왜 그래요? 남자가 하루에 천 번을 웃는다고 하면 피부가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웃고 나면 입술이 얼마나 거북하겠어요! 그러나 여자들은 피부가 부드러우니까 이것이 얼마든지 늘었다 줄었다 하더라도 지장이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 보더라도 가정에서 웃는 여자의 얼굴이 어떤 명화보다도 아름답습니다. 집에서 남자의 웃음소리가 여자 웃음소리의 3배쯤 나는 것하고, 여자의 웃음소리가 남자 웃음소리의 3배쯤 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정상적이에요? 여자의 웃음소리가 많은 것이 정상적입니다.
또, 유선형의 곡선미를 갖춘 것이 여자의 손입니다. 남자의 손은 손가락이 뻣뻣하고 시커매서 멋이 없습니다. 여자의 손은 하얗고 아주 예술적입니다. 그리고 여자가 수염이 난 얼굴을 가지고 웃는다면 얼마나 재수가 없게 보이겠어요! 그러니까 여자들은 매일같이 화장도 해야 되고 예쁜 것들을 많이 상대할 수 있는 조화의 관계를 가져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은 그런 환경을 자연히 좋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남성이에요, 여성이에요? 어떤 게 주체인가 말이에요. 여자예요? 미국 여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요? 그게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여자냐, 남자냐? 하나님이 여자라면 남자를 만드셔야 됩니다. 그렇다면 예술의 중심, 사랑의 중심은 남자가 됩니다. 그런 세계에서 사는 여자라면 얼마나 비참해요! 여자들은 그런 것을 생각해야지요? 하나님이 남성이면 좋겠어요, 여성이면 좋겠어요? 남성이면 좋습니다. ‘맨(man)’ 하게 되면 에이(a)가 들어가 있습니다. 높다구요. ‘우먼(woman)’ 하면 동그라미가 들어가 있습니다. 동그라미하고 이것 중에서 어떤 게 더 높아요? 맨(man)은 높은 것이고, 우먼(woman)은 깊은 것입니다. 구조적으로도 여자는 깊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깊은 게 중심이에요, 높은 게 중심이에요? 깊은 것은 안 보입니다. 바다 밑이 보여요? 제일 깊은 데가 바다 밑이잖아요. 에베레스트 산은 모든 만물이 아침마다 보기 싫어도 보는 것입니다. 저녁에도 본다는 것입니다. 비가 올까 안 올까, 일기가 좋을까 안 좋을까 하면서 봅니다. 구름이 끼든가 어둡든가 하면 거기를 보고, 금년에 풍년이 들 것인가 안 들 것인가를 알려고 해도 높은 데를 바라보고 측정합니다. 깊은 곳은 안 보입니다. 깊은 데는 봐서는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닷물로 딱 덮어 놨습니다. 깊다고 나쁜 게 아닙니다. 거기에는 신비가 있습니다. 여자에게도 신비스런 무엇이 있기 때문에 남자가 관심을 가집니다. 키가 큰 녀석이 허리를 구부리고 내려다봅니다. 남자가 신비스럽게 생각하고 찾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신비스러운 것을 남자들에게서 찾을 때 예술적이에요, 여자들에게서 찾을 때 예술적이에요? 여자들에게서 찾을 때 예술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못난 여자도 남자를 끌어 붙일 수 있는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암만 뚱뚱해도 매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두고 재 볼 때 남자만이 제일이 아니고 여자라고 해서 못한 것이 아닙니다. 신비로운 사랑의 내용 같은 것이 있습니다. 여자에게는 남자가 가지고 있는 힘이라든가 용감한 면은 없지만 그것에 대치될 수 있는 내용을 갖추었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가 사랑의 인연을 중심삼고 돌게 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새로운 문화세계가 형성됩니다.
여자가 나서서 “세계 전쟁이 일어났으니, 일선에 나설 것은 여자들이야” 할 때 누구든지 그 말을 듣고 “예” 하게 안 되어 있습니다. 남자가 그럴 때, 모두 “와…” 하는 것입니다. 남자는 수염이 나고 해서 말에 신비가 있습니다. 여자는 밖으로 나타나 있는 미의 신비가 있지만 남자는 수염을 갖고 있어서 그 속에서 나오는 말에 신비가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여자가 남자를 좋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신비로운 것은 다 커버하려고 했다구요. 사람이라면 여자나 남자나, 늙은 사람이나 젊은 사람 할 것 없이 모두 여기 이렇게 하면 웃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웃음의 신비의 왕궁이 겨드랑이에 있습니다. 그것을 커버하고 있습니다. 웃음의 왕궁을 덮었고, 남자나 여자의 음부도 전부 털로 커버했습니다. 거기는 중요하고 신비로운 곳입니다. 또, 눈을 보라구요! 들여다보려면, 이렇게 하면 못 보는 것입니다. 그런 뜻도 있습니다. 신비로울수록 덮어두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205-136)
사랑의 예술을 간직한 곳이 천국의 왕궁
오늘 말씀의 제목이 뭐냐? ‘평화로운 천국의 왕궁’인데, 왕궁이 어떤 것이냐? 신비스러운 사랑의 예술을 간직한 곳이 하늘나라의 왕궁이 아닐 수 없다는 결론을 이제 여러분은 알 것입니다. 그것을 무엇이 그렇게 만드느냐? 신비스러운 사랑입니다. 하늘나라의 왕궁인데, 그 신비스러운 것을 하나 벗기면 여자들이 만세를 하고 또 하나를 벗기면 남자들이 만세를 한다구요. 남자 여자들만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또 하나를 벗기면 아이들이 만세 하고, 또 하나를 벗기면 청년들이 만세 하고, 또 하나를 벗기면 노년들이 만세 하고, 전부가 만세라는 것입니다.
그런 조화와 신비스러운 내용의 풍부성을 언제나 끌고 다니고 언제나 리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참사랑입니다. 여러분 각자가 신비스러운 무엇을 가지고 있어요? 사랑만 가지면 눈으로 보는 데도 신비하고, 코로 숨쉬는 데도 신비하고, 듣는 데도 신비합니다. 신비하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 웃는 데도 가공적인 웃음이 아니라 자연적인 웃음입니다. 뿌리에서부터 줄기, 가지, 잎, 꽃, 열매까지 한꺼번에 다 와와와 하고 웃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가공적인 웃음은 잎사귀 웃음, 가지 웃음입니다. 전부 따로 웃는 것입니다. 전체가 역사와 더불어 웃어야 됩니다.
세계 사람들이 선생님을 신비스러운 사나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러니까 신비스러운 말도 잘하는 것입니다. 또, 신비스런 행동도 잘합니다. 내가 통일교회 교주지만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면 어부 중의 왕어부입니다. “저 사람이 통일교회 교주인데 뭘 알까” 하지만 현장에 가서 감독하면 10년, 20년 하던 사람들도 감탄합니다. 농장에 가면 농장의 일도 잘합니다. 학자들은 자기들이 스스로 신비로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데 선생님을 만나면 더 신비스러운 사람이 레버런 문이라고 합니다. 무엇이 신비스럽게 만든다구요? 참사랑이 만듭니다.
그러면 신비의 왕궁이 있는데 그 왕좌에 올라갈 수 있는 것이 뭐냐? 참사랑입니다. 이런 결론을 내려도 아니라고 할 사람이 없습니다. 사랑이 그런 것입니다. 사랑을 빼 놓으면 모든 신비로운 것은 없어집니다. 여자가 무엇 때문에 신비스러워요? 사랑이 없어 가지고는 신비로울 수 없습니다. 사랑이 없다고 생각해 봐요. 얼마나 삭막해요! (205-140)
평화와 자유의 의의
‘평화’ 하게 되면 재미있는 게 뭐냐? ‘평화’ 하면 공평을 말합니다. 남자 여자, 그리고 모든 피조세계는 플러스 마이너스, 주체 대상의 세계입니다. 이것은 또 평(平)입니다. 이건 어디에 가든지 맞는 것입니다. 그거 무엇이 그렇게 할 수 있어요? 백인하고 흑인하고 사이의 빈 공터를 무엇이 메워 주겠어요? 색으로 못 메웁니다. 사랑만이 메울 수 있습니다. 색깔을 가지고는 안됩니다. 무엇으로 채울 수 있어요? 힘 가지고, 수단 가지고, 예술 가지고 채울 수 있어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술도 사랑의 상징입니다. 사랑만이 가능합니다.
문제는 종적인 이상(理想)이 계속되어야 됩니다. 이걸 무시하는 자유는 있을 수 없습니다. 원리를 떠난 자유는 없습니다. 다음에는 책임을 져야 됩니다. 행동해 놓고, 자기가 책임을 져야 되는 것입니다. 파괴해 놓으면 책임을 져야 됩니다. 책임을 지는 데 자유가 보장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선의 번식입니다. 행동하는 것이 전체의 환영을 받아야 됩니다. 전체에게 파괴를 가져오면 악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자유의 기반이 선을 번식시키는 데 있습니다.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의 자유에는 선의 번식이 없습니다. 오히려 해악이 선으로 되어 있고 파괴가 선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진정한 자유에는 번영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소위 참된 자유라고 합니다. 원리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안 됩니다. 책임을 져야 됩니다. 선을 번식해야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자유는 멸망의 자유입니다. 그것은 사탄의 자유입니다.
원리에 들어가 있는 것 다 알지요? 첫째가 뭐라구요? 원리에 입각한다는 것입니다. 원리에 입각하지 않으면 자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전 세계에 그런 자유가 아니면 다른 자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또, 두 번째는 뭐라구요? 책임입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책임은 자기 자신이 져야 됩니다. “난 몰라” 누구나 다 그러는데, 하나님은 그런 것을 안 좋아하십니다.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도 책임을 안 지려고 합니다. 여러분 자신도 그런 것을 싫어하지요? 어떤 행동을 했으면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선이 될 수 없습니다. 책임감이 없는 행동은 하면 할수록 악하게 됩니다. 어느 누구도 악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싫어합니다. 두 번째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무엇이냐? 선의 번식입니다. 선의 번식이 없어 가지고는 자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미국의 젊은이들을 생각해 봐요! “저것들은 뭐야? 저 동양 사람들은 뭐야” 하면서 비웃었습니다. 선생님을 생각해 봐요! 선생님이 여기에 온 지 20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 동안에 이만큼의 기반을 닦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지금에 와서는 그 동안 레버런 문이 옳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미국 국민이 스스로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하냐? 원리는 영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205-141)
투입을 해서 선한 기반을 닦을 수 있어야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런 내용을 미국 국민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가르쳐 왔는데, 이제 그들이 선생님의 이러한 가르침이 옳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핍박을 받아 가면서 전 세계에 이런 승리적인 기반을 닦았습니다. 일단 핍박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치더라도 자기들에게 그 결과가 돌아갑니다. 아무리 맞더라도, 결국에는 치던 쪽이 “당신이 옳소” 하면서 올려다보게 됩니다. “당신이 옳소. 당신이 센터요” 하면서 존경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위의 모든 환경이 그 센터를 따라갑니다. 왜 따라가느냐? 신비스러운 그 무엇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신비스러운 센터 뒤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느냐? 참사랑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 참사랑을 치게 되면 치는 쪽이 오히려 깨져 나갑니다. 선은 맞아서 내려가더라도 다시 올라옵니다.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면 그때부터는 못 할 게 없습니다. 센터를 정복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신비스러운 참사랑입니다. 누구든지 그런 것이 필요합니다. 그게 신비스러운 왕궁의 왕좌가 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거기에 연결되고 싶어합니다. 그게 천국의 왕궁, 중심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참사랑이 없으면 연결될 수 없습니다. 거기에 부자가 연결될 수 있어요? 연결될 수 없습니다. 지식도 안 되고 권력도 안 됩니다. 참사랑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불가능합니다. 그게 신비스러운 왕궁입니다.
평화가 뭐라구요? 참사랑이 없으면 평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지옥과 마찬가지입니다. 참사랑이 있어야만 평화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 이만큼 했으면 알았지요? 여러분이 평화의 사람이에요, 신비의 사람이에요, 참사랑의 사람이에요? 이 세 가지 중에서 하나라도 되어 있어요? 특히, 여자들은 뭐라고 한 마디만 하면 따다다다 기관총을 들이 쏘지요? 거기에 평화가 있을 수 있어요? 거기에 신비가 있어요? 거기에 사랑이 있어요? 여자의 입술에 사랑이 없습니다. 말을 하는 입술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말없이 이렇게 웃는 얼굴에는 사랑이 가득하기 때문에 거기에 남자들이 끌려 가지고 입을 맞추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참사랑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싫증나지요? “선생님이 또 참사랑…” 이러면서 싫증내지요? 눈도 보기 싫어서 이러고, 귀도 “아이구, 아이구, 아이구…” 하면서 도망가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참사랑의 맛은 봤지만 참사랑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요리를 만드는 게 여자인데, 요리를 못 만든다면 그게 무슨 사람이에요? 구경이 아닙니다. 듣는 게 아닙니다. 실천을 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실천을 해야 참사랑이 여러분 자신의 것이 됩니다.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205-142)
여러분의 마음에 평화가 있어요? “이미 나에게는 영원한 평화가 있다” 하는 영원한 센터가 세상에 나타났다고 생각해 봐요! 그것은 모든 것의 센터가 됩니다. 그 무엇도, 어느 누구도 그 센터를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런 기반만 닦아 놓으면 어느 누구도, 하나님도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사악한 세상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을 점령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기반을 닦아 놓아야, 하나님도 내려다보고 여러분을 믿으십니다.
여러분은 어때요? 여러분의 마음에 평화가 있어요? 뿌리가 없습니다. 언제든지 떠돌아다니는 것은 뿌리가 아닙니다. 한 군데 머물지를 못합니다. 내가 뿌리를 내리면 다른 어느 누구도 그 뿌리를 뽑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못 뽑습니다. 나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 역사, 미국, 인류, 지식, 권력뿐만 아니라 사랑도 이것을 못 뽑습니다. 그런 기반 위에 서서 “나를 따르라”고 해야만, 거기서부터 재창조가 가능합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 여러분의 마음에 평화의 기지가 있어요? 어때요? 이것은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어느 누구도 여러분의 그 기반을 빼앗아 가지 못합니다. 여러분 자신이 그런 기반을 닦아야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도와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왕궁의 왕좌를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야만 사방의 모든 것이 그것을 인정해 주고, 그렇게 인정을 하고 “당신이 센터에 앉으십시오” 한 다음에 거기에 앉아야만 자연스럽습니다. 강제로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선생님이 아침마다 참사랑을 얘기하느냐? 자연적으로 여러분이 참사랑의 센터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게 목적입니다. 단번에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강제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연적으로 여러분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서 참사랑에 연결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이 그렇게 해서 여러분의 재산으로 만들어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어느 누구도 그 기반을 건드리지 못합니다. 여러분 자신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손을 못 대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그렇게 되어서 하나님 편에 서게 되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끝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투입, 투입, 투입, 계속 투입을 해야 됩니다. 아무리 여러분이 그런 것을 부정하더라도 그것은 부정될 수 없습니다. 투입을 해서 선한 기반을 닦을 수 있어야 하늘 편이 여러분을 인정해 줄 수 있습니다. 이게 원리관입니다.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영원불변의 칸셉(concept)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모두 복귀해야 됩니다. ‘모두’라고 하는 데는 친족, 국가, 인류가 다 포함됩니다. 백인과 흑인을 묶고 백인들의 나라와 흑인들의 나라를 묶어서 하나의 세계를 건설해야 됩니다. 거기에는 하나되는 우주가 포함됩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죽어서도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지, 그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어떻게 기반을 닦을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기반이 없어 가지고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관심을 안 가지신다구요. 이것이 이론적인 결론입니다.
여러분도 선생님이 가는 데 가고 싶지요? 그러려면 선생님이 마크를 해야 됩니다. “이거 오케이” 하는 마크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피부색이 문제가 아닙니다. 역사의 배후에 얽혀 있는 사탄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아 가지고 “이거 오케이” 하면서 꽝 하게 되면 끝나는 것입니다. 그 이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평화의 기지,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런 기반을 닦아야 됩니다. 그게 제일 중요한 문제입니다. 아무리 천국을 생각하더라도 그런 기반이 없으면 하나님의 본연의 이상에 연결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결론입니다. 역사가 아무리 흘러도 오늘의 이런 결론은 변할 수 없습니다. (205-145)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컨트롤해야
여러분에게 그런 기반이 있어요? 여러분 스스로가 여러분 자신을 잘 안다구요.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신비로운 뭐가 있어요? 특히, 미국 여자들은 그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항상 텅 비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 텅 빈 공간을 어떻게 채울 것이냐? 그것을 채울 수 있는 내용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선생님은 어때요? 아직까지 한국 사람들 가운데 선생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4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선생님을 문제의 사나이라고 하면서 모두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본도 마찬가지고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여러분 자신을 잘 안다구요. 신비스러운 그 무엇을 가지고 있어요? 온 우주를 생각하는 그런 무엇이 있어요? 이것은 여러분의 문제입니다. 선생님의 문제도 아니고 통일교회의 문제도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의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여러분 스스로 해결해야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것은 여러분 자신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참사랑이 있어요? 선생님으로부터 참사랑에 관한 얘기를 수백 번도 더 들었지요? 듣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실천이 중요합니다. 어떤 실천이 중요하냐? 참사랑의 실천이 중요합니다. 참사랑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는 하나님이 모든 센터가 되십니다. 그런 곳에서는 하나님이 센터 포인트(center point)로 등장하십니다.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말씀을 수백 번도 더 들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어때요? 선생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어요? 선생님의 말씀을 듣기 전에 실천해야 됩니다. 이제 들었으니까 어떻게 해야 돼요? 더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할 텐데 그런 추진력이 지금 보이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참사랑의 말씀을 들으면 흥분도 되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없습니다. 그게 뭐예요? 실적이 없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게 여러분의 책임이에요, 선생님의 책임이에요? 어느 거예요? 여러분의 책임이라구요. 선생님은 모든 것을 다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미국 땅에서 그렇게도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실적이 없습니다. 선생님 자신이 언젠가는 저주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실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농부를 생각해 봐요! 수확이 없으면 그때부터 망하는 길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신비스러운 기반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참사랑의 기반이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여러분의 마음을 컨트롤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컨트롤해야 됩니다.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가능할 때 비로소 완성된 남자와 여자, 완성된 미국의 남자와 미국의 여자가 될 수 있습니다.
평화는 여러분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나로부터입니다.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나중입니다. 모든 게 내가 문제입니다. 그런 기반을 닦지 못하면 어디에도 통할 수 없고 누구에게도 순종할 수 없고 어떤 것도 컨트롤할 수 없습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그러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문제입니다. 선생님이 문제가 아닙니다. (205-146)
몸과 마음을 하나로 만들지 않으면 안돼
그러면 여기서 결론을 짓자구요. 참사랑·참생명·참혈통을 우리의 생활권 내에 어떻게 직결시키느냐 하는 게 문제입니다. 혈통이라는 것은 남자와 여자의 뼈와 살을 묶을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뼈와 살을 무엇으로 묶어요? 핏줄로 묶습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묶어요? 생명을 중심삼고 묶습니다. 또, 생명의 결합은 사랑을 중심삼고 묶습니다. 혈통에는 생명이 가담되어 있고 사랑이 가담되어 있습니다.
또, 생명에는 핏줄이 가담되어 있고 사랑이 가담되어 있습니다. 참사랑에는 혈통과 생명이 개재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됩니다. 암만 참사랑이라도 생명과 혈통을 연결시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피가 끓게 되면 생명이 끓습니다. 그러기 전에 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사랑이 없어 가지고는 끓지 않습니다. 또, 사랑이 격동하기 위해서는 생명이 격동해야 되고 피가 끓어야 됩니다.
그 말은 뭐냐? 여자와 남자가 아무리 사랑에 빠져 있더라도 서로 만지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피가 안 끓습니다. 그러나 서로 만지든가 해서 관계를 맺어 보라구요. 생명이 부딪치게 되면 피가 끓는 것입니다. 첫사랑을 찾아다니는 미치광이 남자와 여자가 있다고 할 때, 거기는 누가 터치하느냐 하는 게 문제입니다. 남자가 키스를 해버리면, 여자가 싫다고 해도 어떻게 돼요?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세 번을 해서 서로 좋아지면 끝장이 나는 것입니다. 누가 키스를 먼저 해주느냐? 누가 참을 가지고 터치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터치하는 데 있어서 사랑도 살아나고 터치하는 데 생명도 연결되고 터치하는 데서 피가 끓습니다. 제일 깊은 곳을 누가 터치하느냐? 거기가 어디예요? 그게 생식기관입니다.
그래, 가장 깊은 데가 몇 군데라구요? 한 군데예요, 여러 곳이에요? 한 군데, 절대적으로 한 군데입니다. 남자가 가장 깊은 신비로운 곳을 여는데, 그것을 연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사랑·생명·혈통의 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만큼 심각한 문제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스스로 보호하는 것입니다. 열 수 없습니다. 왜냐? 그것의 주인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높은 데, 가장 깊은 데, 가장 신비스러운 데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입니다.
하나님은 직단거리를 통하십니다. 우회하시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의 길밖에 없습니다. 이게 핵심입니다. 여기에 참사랑이 연결되고, 참생명이 연결되고, 참혈통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가장 높고, 가장 깊고, 가장 신비스러운 그 셋이 연결되는 한 자리가 몸뚱이에 있어서 생식기입니다. 아무렇게나 사용할 수 없습니다. 모든 역사가 여기서 틀어진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돌려놓을 수 있느냐? 불가능합니다. 영원히 못 돌려놓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기를 원한다면 회개를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광야에서 ‘이스라엘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했지요?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이상세계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게 참된 노정입니다. 지금 선생님이 참된 노정을 중심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참은 변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변할 수 있어요? 일단 찾아 놓기만 하면 영원합니다.
누가 그것을 만들었어요? 선생님이 만든 게 아닙니다. 창조주, 본연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다른 어느 누구도 바꿀 수 없습니다. 바꿀 수 없는 자리입니다. 여러분이 여기서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결론이에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의 혈통이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갈라졌습니다. 하늘의 혈통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을 하나로 만들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게 키워드(key word)입니다. 무엇으로 하나되게 하느냐? 참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게 합니다. 참사랑을 찾게 되면 하나님, 참부모와 세계의 사정은 물론이고 섭리의 방향을 금방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러한 참된 세계 속에 내가 있다고 생각해 봐요! 이것은 뭐 들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쓰레기 같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그와 같은 입장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아야 됩니다. “나는 쓰레기다” 하는 관념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 성냥을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태워 버리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남는 것은 재밖에 없습니다. “푸” 하고 불어 버리면 아무것도 남는 것 없이 깨끗해집니다. 그러한 자리에서부터 시작해야 됩니다.
이런 것을 누가 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도 해줄 수 없고 형제들도 해줄 수 없고 여러분의 국가나 전 인류로서도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여러분 자신의 책임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뭐 어떻다고 하는 사람도 못 해주는 거예요. 여러분이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하늘 편에 못 서는 것입니다. 그 이외의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205-148)
몸 마음의 싸움을 극복해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어
우리의 몸과 마음이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세계대전보다 더 무서운 이 싸움을 누가 말릴 수 있겠어요? 아무도 못 말립니다. 이 싸움이 멈추어야만, 여러분이 본연의 하늘 편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참칸셉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이 본연의 원리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이 같이할 수 없습니다. 구세주가 문제가 아니고, 교회가 문제가 아니고, 국가가 문제가 아니고, 교육이 문제가 아니고, 주인이 문제가 아니고, 부모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여러분 자신입니다.
어떻게 나를 극복하느냐? 몸뚱아리가 모든 것을 점령하려고 합니다. 마음은 빼 버리고, 나를 중심삼고 있습니다.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나에게 있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이 아니고 역사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나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 어떻게 몸을 굴복시킬 것이냐? 여러분이 살아 있는 동안에 이것을 해결해야 됩니다. 그렇게 되어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른들도 “오케이”, 늙은이들도 “오케이, 당신이 옳소! 당신을 따라가겠소” 합니다. 어떻게 그런 승리자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길이 없습니다. 법정에 서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판사도 없고 원고도 없고 검사도 없습니다. 그걸 생각해야 됩니다. 방청객도 없습니다. 법정에 서 있는 것은 여러분 자신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모든 삶을 빠짐없이 체크(check)해야 됩니다. 비교해 봐요! 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205-151)
그래, 몸과 마음을 하나 만들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해요? 참사랑이 필요합니다. 참사랑을 봤어요? 왜 참사랑이 필요해요? 그러면 타락하지 않은 하나님도 몸과 마음이 싸우겠어요?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참사랑의 센터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몸이 완전히 하나되어 계십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그래요? 참사랑입니다. 참지식, 참권력, 참물질이 아닙니다. 오직, 참사랑입니다. 하나님의 혈통에 연결되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참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에는 하나로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 힘을 바꾸지 못합니다. 무엇 때문에 나에게 있어서 몸과 마음이 싸우느냐? 타락 때문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재창조가 필요합니다.
핏줄로써는 무엇을 묶느냐? 부모와 형제, 어머니와 아버지, 아들딸, 가정을 묶는 것입니다. 혈통은 가족을 묶습니다. 그 다음에 이 위는 뭐냐? 나라를 묶습니다. 그 위에는 세계와 천주입니다. 전부 필요합니다. 다 필요하지요? 참사랑도 필요하고, 국가에도 혈통이 필요합니다. 생명이 연결되어 있고, 사랑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류의 첫 조상을 중심삼고 모든 것의 혈통이 같고 생명이 같고 사랑이 같습니다. 하나입니다.
효자라는 것이 있지요? 효자는 뭐냐? 참된 사랑이 뭐냐, 참된 혈통이 뭐냐, 참된 생명이 뭐냐? 하나님이 참된 핏줄이요, 참된 생명이요, 참된 사랑이실진대 그분이 뭘 하셨느냐? 자기를 투입해 가지고 새로운 이상적 세상을 만들려고 하셨기 때문에 인간이 이상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가정이면 가정에 있어서 자기의 모든 생명과 핏줄과 사랑을 투입해야 됩니다. 가정을 위해서 그런 사람이 효자가 되는 것이고, 나라를 위해서 이 전체를 투입하는 사람이 충신이 되는 것이고, 세계를 위해서 이와 같은 전체를 투입하는 사람이 성인이 되는 것이고, 하늘땅을 위해서 이 전체를 투입하는 사람이 성자가 되는 것입니다. (205-152)
첫댓글 감사합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