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이었다.
쨍쨍 내려 쬐는 햇볕아래 소구는 낙양의 홍등가를 걸어가며 두리번거리고 걷고 있었다.
"쯔쯔, 젊은 놈이 할 짓이 없어서 대낮부터 홍등가를 어슬렁거리다니--."
등뒤로 지게를 이고 가던 노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소구는 소화루라는 이름의 기원을 열심히 찾아 헤매는 중이었다.
"도대체 이놈의 건물이 어디에 붙어 있는 거야?"
투덜거리면서 거리를 걷고 있는 소구의 팔을 붙잡는 손이 있었다.
"아이, 공자님 잘 해 드릴테니 이리 오세요."
손에 붉은 손수건을 들고 요란하게 화장을 한 여자가 팔을 잡아끌면서 말을 했다.
"이거 놔, 난 들릴 곳이 있어서 온 거라고."
호객행위를 하던 그 기녀는 체 하는 소리를 내면서 팔을 놓았다. 등뒤에서 기녀가 작은 소리로 욕하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소구의 걸음은 바쁘게 옮겨지고 고개는 계속 좌우로 두리번거렸다. 유곽들이 늘어선 낙양의 홍등가에 들어서면서 이미 여러 번 겪은 일인지라 기녀의 말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소구는 계속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소화루라는 이름을 찾았다.
"유곽들이 많긴 많네."
"그러니까 홍등가지요."
소구는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헐벗은 차림에 빼빼 마르고 키가 작은 소년이 앞에 서 있었다.
"꼬마야, 넌 뭐냐?"
"보면 몰라요? 대낮부터 이런 곳에 오면 알 건 다 알텐데? 어떤 여자를 원하는 거죠?"
"여자가 아니라 기원을 찾아 온 거다."
"그러니까 마음에 드는 기녀를 찾는 곳이 아니라 건물을 찾는 것이로군요?"
"그래. 꼬마야, 너 소화루라는 기녀원이 어디에 붙어 있는 것인지 아냐?"
"당연히 알지요. 안내해 드리면 얼마 주실 거예요?"
"동전 다섯문이면 되겠니?"
"체, 겨우 그거요? 심부름 값으로 열문은 주셔야죠! 이 뜨거운 날 길 안내를 하는 것인데 조금 더 주세요!"
손을 벌리며 말하는 꼬마를 바라보면서 소구는 망설였다. 이곳 낙양에서 얼마 동안이나 있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가지고 있는 돈을 최대한 아껴 써야했다. 돈이라는 놈이 품에서 떠나는 일은 쉬워도 다시 품으로 들어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소구도 잘 알고 있었다. 돈이 없으면 객잔에서 머물 수도 없고 배가 고파도 음식도 사 먹을 수가 없었다. 절대로 돈은 최대한 아껴야 했다. 그런 생각 끝에 소구는 앞에 있는 꼬마에게 길 안내를 맡길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화루가 이 낙양의 홍등가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좀 더 돌아다니다 보면 보이게 될 것이다.
"됐다, 가서 네 일 봐라. 그냥 내가 찾도록 하지."
소구의 입에서 그 말이 흘러나오고 소년을 지나쳐 걸음을 옮기자 소년은 황당한 얼굴이 되어 소구의 등을 바라보면서 소리쳤다.
"체, 정말 쩨쩨한 아저씨네. 아저씨! 그럼 다섯 문만 줘요!"
소구는 흘낏 뒤로 고개를 돌려 소년을 바라보다 고개를 흔들었다.
"필요없다."
한마디 말을 하고 소구가 그대로 묵묵히 걸음을 옮기는 동안 등뒤를 졸졸 쫓아오면서 소년이 계속 말을 걸었다.
"그럼 네 문만 줘요. 오늘처럼 더운 날 땀 뻘뻘 흘리며 대낮에 계속 돌아다니고 싶은 생각은 없겠죠?"
소구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좌우로 두리번거리며 계속 걸음을 옮겼다.
"그럼 세문요!"
"아니 두문만 줘요!"
꼬마는 계속 뒤를 따라 다니며 말을 걸었다.
"그럼 한 문요! 더도 말고 한 문만 줘요!"
최후에 이르러서는 한 문(文)까지 길 안내비가 떨어졌지만 소구는 그래도 대답하지 않았다. "에잇 빌어먹을 놈아! 한 문(文)도 없는 거지 새끼! 혼자 잘 먹고 잘 살아라!"
꼬마의 입에서는 욕이 터져 나오고 재빨리 골목길 사이로 도망쳤다.
소구가 욕을 듣고 가만 있을 사람이냐 하면 결코 그렇지가 못했다. 기녀들이 욕하는 소리는 꼬마처럼 험한 말을 내뱉은 것도 아니고 대놓고 소구를 향해 욕을 한 것도 아니라 무시할 수 있었지만 꼬마만은 아니었다.
"이런 빌어먹을 꼬마가--? 싫다는 사람 졸졸 쫓아다니면서 귀찮게 하더니 욕을 하고 도망쳐?"
뒤돌아 서서 중얼거리는 소구의 눈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열살이라는 나이 이후 구정문 사부 외에는 무려 이십년간이나 다른 사람과는 접촉을 하지 못했던 소구였다. 그래서 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어린 아이 같은 부분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고 욕을 듣는 순간 꼬마를 찾아내어 쥐어 패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오르기 시작한 소구였다. 다른 사람 같으면 길거리의 꼬마가 내뱉는 쌍소리 같은 것은 개에 물렸다 생각하고 신경을 끄겠지만 소구는 결코 그럴 수가 없었다. j
꼬마는 골목길을 돌아 소구가 안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서서 땅바닥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젠장, 오늘은 재수 더럽게 없는 날이네. 개시부터 그 딴 지독한 구두쇠가 걸려들어 가지고--."
소년의 입에서 투덜거리는 말이 흘러나올 때 한 마디가 하늘 위에서 들려왔다.
"꼬마야, 조금 전에 뭐라고 했지?"
"으악!"
꼬마는 조금 전의 구두쇠의 목소리가 들리는 장소를 향해 고개를 들어올렸다. 담벼락 위에 서 있는 소구의 모습을 발견하자마자 소년은 비명을 내지르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헥 헥, 이제 안 쫓아오겠지?"
낙양의 외곽에 있는 작은 숲까지 뛰어서 도망쳐 온 소년은 허리를 굽혀 두 손을 무릎에 얹고 거친 숨소리를 토해내며 말했다. 그러나 그런 소년의 기대를 무참히 박살내는 목소리가 소년의 귀를 파고들었다.
"이곳까지 밖에 도망치지 못했냐?"
소년은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렸다. 손가락 만한 나뭇가지 위에 서 있는 소구의 모습이 아프게 소년의 눈에 들어왔다.
'제길, 잘못 걸렸다. 무림인이었잖아!'
획하니 소년의 앞으로 뛰어내려온 소구의 주먹은 불끈 쥐어졌다.
"걱정하지 마라. 최소한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병신으로 만들지도 않을 거고--. 한 이틀 정도만 누워 있으면 될 거다."
때리기도 전에 소구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을 들으면서 소년은 바싹 얼어버렸다. 다음 순간--.
"잘못했어요! 아저씨 때리지 마세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싹싹 비비면서 소년이 소리쳤지만 소구의 마음은 변하지 않은 상태였다.
퍽 퍽 하는 요란한 격타음이 시작되면서 돼지 잡을 때 나는 비명 같은 것이 숲속을 가득 채운 지 반 시진----.
두 눈에 파란 멍을 새긴 채 바짝 긴장해서 소년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미 한 번 기절했다가 깨어난 소년이었다. 가 버렸을 줄 알았던 심술궂게 생긴 아저씨가 옆에 여전히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부르터서 잘 벌어지지 않는 입으로 조심스럽게 소년이 물었다.
"이제 그만 때리실 거죠---?"
"아니,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인데--? 설마 이 정도로 끝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내가 손을 쓰고도 살려주는 건 네가 처음이야. 행운이라고 생각해라."
소구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은 그렇지 않아도 겁에 질려 있는 소년을 더욱 겁에 질리게 만드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제길, 걸려도 단단히 걸렸구나.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
뒷골목의 가장 밑바닥에서 살고 있는 소년에게 기절할 때까지 맞는 일 정도는 별 것 아닌 일이었다. 누군가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화풀이 대상이 되어 맞아주어야 하는 것이 소년의 삶이었다. 뒷골목의 건달들에게도 상납금이 부족하면 맞아야 하고, 기녀원에 들린 돈 있고 권세 있는 사람들이 기분이 나쁠 때 재수 없게 옆에 있다면 그때도 맞아야 했다. 동네 북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소년이 기절할 때까지 두들겨 맞는 일은 늘 겪는 일이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기절하면 맞는 일은 끝이었지만 눈앞에 서 있는 좀스런 인간은 그 정도로는 절대로 만족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저 아까 소화루라는 기원을 찾는다고 하셨죠? 제가 공짜로 그곳까지 안내해 드릴테니 용서해 주실래요?"
소년은 소구의 매를 피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온 몸이 안 아픈 곳이 없었다. 게다가 단지 주먹으로만 맞은 것인데도 쇠망치로 두들겨 맞는 것처럼 아팠다. 조금 전의 고통을 또 다시 겪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고 있는 소년이었다.
"앞장서라."
소년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소구의 입에서는 튀어나온 말이었다.
울긋불긋한 멍으로 가득 찬 몸을 하고 소년은 비틀거리면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나 둘 씩 집집마다 대문 앞에 붉은 등이 걸리고 있는 초저녁의 홍등가로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 들어오고 있는 여름날의 저녁이었다.
모기와 하루살이 같은 벌레들도 해가 떨어지면서 활동을 하기 시작하는 그 시간에 소구는 소화루라는 현판이 달린 건물의 지붕 위에 숨어서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막연히 소화루라는 이름만을 가지고 이곳에 도착한 소구로서는 소화루를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일 이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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