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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한흠로마서강해46 연약한 자의 약점을 감당하라
롬 15:1-13
교회 안에는 믿음이 강한 자가 있고 약한 자가 있게 마련입니다. 무엇을 보고 믿음이 강하냐 약하냐를 평가할 수 있습니까? 교회를 다니는 열심이나 주를 위해 충성하는 그 모습 또는 기도를 많이 하는 것들이 중요한 평가 기준은 될 수 있겠지마는 사도 바울은 뭐니뭐니해도 인간관계에서 얼마나 성숙한 모습을 보이느냐를 가지고 평가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내가 신앙 경력이 오래되었다. 성경을 많이 안다. 성경을 많이 읽는다 그런 것 갖고 자랑하지 마세요. 내 가까이 있는 교회 형제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어느 정도의 성숙한 모습과 태도를 보이느냐 이것을 가지고 판단하라는 말입니다. 특히 믿음이 약해서 흠이 많고 실수를 자주 하는 형제에 대해서 내가 그를 어떻게 대하고 포용하느냐에 따라서 나의 믿음의 강도를 증명하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가르쳐주는 중요한 교훈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믿음이 강한 자의 그룹에 속해있다고 말합니다. 믿음이 강한 자가 많은 교회일수록 그 교회는 평화를 유지할 수 있고 사랑이 넘치는 교회일 수 있고 영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생산적인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만큼 이질적이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체가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자연적인 성격으로는 어울릴 수도 없고 하나되기 거의 불가능한 것이 교회에 모이는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우리가 이를 인정해야 합니다.
이런 관계 때문에 교회 안에서 가끔 교역자로서는 참 다루기 어려운 일이 생깁니다. '우물가선교회'에 속한 자매들이 가끔 저를 만나면 통사정을 합니다. "목사님, 이제 우리가 예수 믿고 돌아왔는데 사람들이 우리를 정상으로 봐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락방도 제자훈련도 교회에서 비토 놓습니다" 같이 훈련받는 사람들이 시험받기 쉬우니까 좀 기다렸다 들어오라고. 저부터 그랬지요, 저부터. 교회에 소속은 되어있습니다만 항상 이런 식으로 본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이야기입니까. 그렇게 해서 교회에 들어왔다 상처입고 나가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어떤 형제도 차별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약함을 받아주고 감싸 줄 수 있는 사람이 믿음이 강한 사람입니다.
약한 자의 약점은 '쉽게 상처를 받는 것'입니다. 이해를 잘 해주어도 쉽게 상처를 받습니다. 아무리 거치는 것을 놓지 않으려 해도 잘 걸려 넘어집니다. 어느 형제는 사랑의 교회에 들어와서 강단 뒤에 십자가가 없는 것을 보고 시험을 크게 받습니다. “야~ 이 교회에 십자가가 없다. 이게 무슨 교회냐!” 그 형제, 한 가지는 분명한 사람이에요. 믿음이 약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얼마나 교회에서 따뜻하게 수용할 수 있느냐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 강하냐 약하냐를 결정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강한 자가 어느 정도 그들을 위해주어야 할까요? 거치는 자가 되지 않도록 하는 선에서 만족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세 번째 원칙을 줍니다. 이것은 아주 적극적이고 대단히 실천하기 어려운 원칙입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성령의 은혜를 이 시간 기다려야 합니다. 1절a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여기 담당한다는 말을 이사야는 멋있게 표현합니다. 사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다 이 때 '지고' '담당했다' 하는 말이 바로 이 구절에 나오는 담당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짊어지셨듯이 형제의 약함을 짊어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더 무서운 말씀은 '마땅히' 하는 말입니다.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자기가 믿음이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으면 당연히, 의무적으로, 형제의 약함을 자기의 약함으로 짊어지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치러야 하는 희생이 있으니 1절b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이것이 우리가 치러야 하는 희생입니다.
그리고 2절 나를 기쁘게 하지 말고 이웃을 기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선을 이루고 덕을 세워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선을 이룬다는 말은 형제에게 도움을 준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덕을 세운다는 말은 건물을 세우듯이 서로 약한 믿음을 붙들어 세워주는 것입니다. 형제의 많은 약점들을 점점 없어지도록 내가 도와준다는 말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고전 10:32-33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형제를 기쁘게 하면서 그에게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는 일입니다.
사실 이런 교훈은 얼마나 멋있는 말입니까. 그러나 실제로 우리에게는 어려운 일이고 불가능한 일입니다. 형제를 기쁘게 해주는 일도 그것이 나에게 어느 정도 기쁨이 될 때 하려고 하지 나의 기쁨은 송두리째 무시해버리고 형제의 기쁨만을 위해서 어느 정도 할 수 있느냐? 이거 뭐 성경이니까 이런 말이 있는 것이지, 우리 자신의 어떤 의지나 본능을 가지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언가 다른 것이, 내 마음 밑바닥부터 흔들어 놓는 어떤 강한 동기가 작용할 때 우리는 조금 실천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나를 기꺼이 희생하고 형제의 약함이 나의 약함인 줄 알고 짊어지고자 하는 뜨거운 마음이 내 안에서 일어나도록 펌프질하는 어떤 감동이 있어야만이 나에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3절을 봅니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나의 기쁨을 희생하고 형제의 약함을 짊어지게 만듭니까? 예수님은 일생동안 자기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이미 구약 성경에서 예언한 그대로입니다. 시편 69:9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하나님을 욕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 앞에 범죄하는 모든 사람의 큰 무거운 죄 짐을 예수님이 혼자 다 담당했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구원해서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기쁨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 자기의 기쁨을 송두리째 포기한 것을 이야기합니다. 모든 사람의 비방을 예수님이 다 짊어졌습니다. 모든 죄인들의 저주를 자기 혼자 짊어졌습니다. 왜 짊어졌습니까? 우리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빌립보서에서 참으로 아름답게 이 사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빌 2:6-8 왜 예수님이 하나님 자리에 계시기를 거부하고 내버리고 내려오셨습니까? 왜 종의 모습을 입으셨습니까? 왜 말구유에 탄생하셨습니까? 왜 자기를 낮추어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까? 우리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우리에게 선을 이루기 위하여 주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한 사람은, 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자기의 영혼을 적나라하게 내놓은 사람은 강한 감동을 받고 변화를 받습니다. 나도 예수님처럼 살아보자 하는 강한 동기가 나에게 일어납니다. 이와 같은 강한 동기에 끌려서 형제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마음을 일컬어서 예수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빌립보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 만난 사람은 예수의 마음을 소유하게 됩니다.
당시 빌립보 교회는 똑똑한 여자 두 사람 때문에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현상이 일어나 교회가 굉장히 어려웠어요. 이 때 바울은 말했습니다. 너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우리는 예수 믿을 때에 성령이 우리 안에 와서 거하십니다. 그 사람은 성령을 통해 살아계신 주님을 모십니다. 주님을 모셨으니 주님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의 마음을 가지면 자연히 예수님의 품성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것을 일컬어서 성령의 열매라고 부릅니다. 갈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이 아홉가지 열매를 반죽해서 다듬고 또 다듬고 압축을 해서 딱 하나로 만든다면 [나를 기쁘게 하지 않고 이웃을 기쁘게 하기 원하는 성품 인격]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대조적으로 갈 5:19에 육체의 일을 뭐라 말했습니까? 갈 5: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부 다 묶어놓고 보면 결국은 나를 위한, 내 위주의 삶, 나의 기쁨을 위한 삶입니다.
이렇게 대별이 되요.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의 성품은 철저하게 이타주의요. 자기의 육신을 따라 행하는 사람은 철저하게 이기주의요. 이렇게 구별이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예수님을 닮은 사람으로 예수님의 성품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은 형제에 대해서 얼마만큼 희생적이냐? 형제의 약함을 얼마나 짊어지고 그 형제를 위해서 수고를 해주느냐? 이것 가지고 평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그렇게 사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려면 예수의 마음을 가진 작은 예수가 되어야 합니다.
300년전 미국의 유명한 신학자요 또 설교자였던 조나단 에드워즈에게 굉장히 성격이 좋지 않은 딸이 하나 있었어요. 괴팍하고 고집불통이고 아버지에게 실망밖에 주는 것이 없어요. 자식 복이 없으면 이런 자식들이 가끔 나옵니다. 나오는 걸 우리가 어떻게 합니까? 이 딸이 장성하여 결혼할 나이가 되었는데 어떤 청년이 찾아오더니 딸과 결혼하게 해달라 합니다. 머리도 좋고 성품도 좋고 믿음도 좋고 아버지 조나단 에드워즈가 인정하는 청년인데 웬만한 사람 같으면 잘됐다 하고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그런데 목사니까 양심이 있거든,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 했어요.
“젊은이, 고집부리지 말게. 내 딸과 같은 사람과 평생 동거할 수 있는 자가 되려면 하나님은 되어야 될 걸세. 자네가 하나님인가?”
그래요. 믿음이 약해서 이런 저런 흠을 많이 가진 사람을 기쁘게 하고, 그의 약함을 내가 짊어지려고 하면 내가 하나님이 안되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경은 이만큼 예수를 닮은 우리의 모습을 높은 수준으로 올려놓고 있습니다. 자, 내가 집안에 있는 시부모도 하나님처럼 포용하지 못하는 마당에 교회 안에서 형제의 약함을 짊어지라니, 이거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성령이 내 마음에 계시니까 자연적으로 주님의 마음이 내 마음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자라야 되고 그 마음이 힘을 얻어야 되고 그 마음이 나를 지배해야 되는데 이걸 어떻게 합니까? 예수를 10년 믿어도 나타나는 것 보면 전부 다 예수님의 마음이 아니고 내 마음인데, 내 맘대로 하는데 이거 어떻게 합니까.
끝으로 내 안에 있는 예수님의 마음이 자라고 성장해서 내가 예수님처럼 되게 하는 중요한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교훈해서 믿음이 강한 자, 예수님처럼 살도록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 만들기 위해서 성경을 기록해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통해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자는 이 성경을 자꾸 먹어야 예수님의 마음이 내 안에서 자꾸 자라고 힘을 얻어요. 말씀 배우는 동안 성령은 성경 말씀을 가지고 우리의 이기적인 마음을 녹이십니다. 나도 모르게 나의 못된 성격은 자꾸 약해지고 예수님의 그 아름답고 거룩한 성품이 나를 지배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런 혁명이 어디서 일어나느냐? 성경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자꾸 배우고 성경을 통해서 성경 안에 있는 모든 교훈을 나의 교훈으로 삼고 그 안에서 자신을 자꾸 다듬고 자라야 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평생 내 멋대로 살다가 주님 앞에 서야 되는 부끄러운 사람이 될 수밖에 없어요.
우리 교회 안에서 이런 저런 모임을 통해 성경을 공부하는 가운데서 아름다운 이야기들도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예수 믿고 그리고 성경 말씀을 배우면서 참 예수님의 성품이 점점 자기 안에서 자라는 걸 느끼는 자매들은요, 옷입는 것이 달라집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 은혜받은 자매들 중에는 좋은 옷을 교회 올 때는 못 입고 나와요. 자기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옷을 입지 않고 약한 형제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옷을 입어요. 벌써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 아닙니까, 몇백만원짜리 옷을 나보란 듯이 걸치고 들어오는 사람은 믿음이 약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다른 형제에게 은혜 끼치기 위해서 일부러 옷을 검소하게 입고 오는 사람, 그 사람이 믿음이 강한 사람입니다. 성경 말씀을 배우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으로 변화되는 일이 얼마나 교회 안에 많은지 모릅니다.
그리고 또 놀라운 것을 배우게 됩니다. 예수님의 꿈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4-5절 예수님의 꿈 첫째, 교회가 하나되는 것 이것이 예수님의 꿈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공부하는 사람은 우리 주님이 마음으로 원하는 것, 믿는 자들끼리 하나되는 것을 원하는 것을 알면 약한 형제들을 비판하고 깔아뭉개고 하지 않습니다.
또 예수님의 꿈이 있습니다. 8-13절까지 예수님의 꿈 두 번째, 세계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것이 통일되어서 영원한 나라를 이루시는 것이 주님의 꿈입니다.
9절(시 18:49 인용) 유대인으로 하여금 열방 앞에서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셨습니다. 또 두 번째 단계로 10절 온 세계가 하나님을 찬송하는 그 날이 오는 것을 주님이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반복하는데 11절(시 117:1 인용) 드디어 온 세상 열방이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을 찬송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주님의 꿈이라는 것을 우리는 배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12절 이새의 뿌리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어나시고 예수님을 영원한 왕으로 모시고 전 세계가 하나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영광스러운 나라가 탄생합니다. 이 나라를 건설하는 것을 주님이 소망하고 계십니다. 13절 이 소망이 무슨 소망입니까? 교회가 하나되고, 전 세계가 하나되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 나라, 그것이 주님의 소망이요, 이 소망을 믿는 자에게 막 부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공부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통해서 주님은 교회가 하나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배우게 되고, 주님은 전 세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기를 소망하고 계신다는 것을 배웁니다. 주님이 세우는 하나님의 나라에는 아무런 구별이 없이 모든 백성이 하나가 되어 주님을 섬기는 나라가 됩니다. 이 소망을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고 이 소망 때문에 사랑의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소망과 꿈을 아는 사람은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되게 하는 일, 형제를 포용하고 하나되게 하는 일에 자기를 희생합니다. 나의 기쁨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한이 있더라도, 형제를 기쁘게 하는 일에 전심전력을 하려는 마음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경을 통해서 예수의 마음이 우리를 지배하도록 합시다.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의 꿈이 무엇인가를 배우도록 합시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형제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그의 약점을 내가 담당할 수 있고 형제에게 선을 이루고 또 덕을 이루는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성경을 1년 공부한 사람보다 성경을 10년 공부한 사람이 훨씬 더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형제에게 더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저는 분명히 믿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더 가까이 다가와서 그 말씀을 매일 매일 먹으면서 그 말씀대로 살아가고 그 말씀대로 다듬어지는 하나님의 귀한 자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와 같은 은혜를 여러분 모두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다 같이 기도하십시다.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사실 우리는 굉장히 천박합니다.
예수를 10년 20년을 믿어도 철저하게
아직도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고백합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나만을 생각합니다. 나의 기쁨만을 앞세웁니다.
약한 형제를 주님,
나의 약함처럼 짊어지고 위해 주려는 마음이 너무 너무 희미합니다.
주여 우리 안에 성령도 계시고
우리 안에 예수님의 마음이 있는 것도 압니다마는
이것은 다 머리로만 생각하는 신앙 지식이요 상식이지
그것이 내 삶을 지배하지 못하는 어려운 때가 너무나 많은 것을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의 약함을 고쳐주시기 원합니다.
성령이여 우리를 고쳐주시기를 원합니다.
회개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어떻게 사셨는가를
다시 한 번 깊이 연구하면서
그 주님 앞에
내 자신이 송두리째 녹아지는 신령한 은혜를
다시 한 번 허락해주시기를 원합니다.
성경 말씀을 통하여 온 세계가 하나되게 하시는
주님의 놀라운 꿈이 나의 꿈이 되도록
우리가 열심을 다해 배울 수 있도록 축복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