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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제 미주 한인 루터교회 총회가 주최하는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예배]에 초청 받아 참석했다. 느리게 부르는 찬송(느리게 부르면 더 경건할까?)과 더불어 예배순서에 신구약 성경을 여러 번 나누어 봉독하는 모습이 초대교회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설교를 통해 종교개혁에 관한 메시지를 들었다. 대부분 루터 당시의 개혁의 내용이었다. 어찌 보면 귀가 닳도록 듣고 아는 내용을 또 다시 교과서처럼 들었다. [기념예배]여서 그랬을까? 아닌데.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내일과 미래를 위한 것인데? 미래가 보이지 않은 과거는 흑암 이다. 오늘의 기념예배가 미래에 관한 도전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을 품고 손님 수에 비해 좀 모자라는 듯한 점심을 대접받고 총총히 돌아왔다.
우리는 매주 예배 시간에 "거룩한" 가톨릭 교회(Holy Catholic Church - 여기서 catholic이란 영어는 교파적인 의미가 아니고 universal이란 뜻이다) 를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교회는 거룩한 교회라기 보다는 오히려 더럽고 추한 경우가 많았다. 중세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항상 교회 안에는 개혁 운동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교회의 역사는 타락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교회가 한편으로는 줄기 차게 개혁을 이루어 왔다. 중세 교회 역시 개혁운동을 벌여 왔다.
첫번째는 교회의 수장이었던 교황이 강력한 추진력을 가지고 개혁 운동을 주도했다. 이 경우 개혁의 효과는 즉각적이고 확실하게 나타났지만 장기적인 개혁은 불가능하였다. 개혁적인 교황이 집권하고 있는 동안에는 개혁의 물결이 일었지만, 그 뒤를 잇는 교황은 타락한 교권을 행사하기가 일쑤였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이 있듯이. 교권을 1인이 혼자 독점하게 될 때, 교회는 부패할 수 밖에 없었다.
두 번째 개혁이 가능한 경우는 경건한 황제가 교권에 개입하는 것이다. 중세 시대의 황제는 자신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세우신 지도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명목상의 황제들은 자신의 세속 권력에 관심이 있었지만 그 중에 하나님은 경건한 지도자를 세우셔서 교회를 개혁하도록 하였다.
이 개혁의 장점은 효과가 가장 확실하다는 것이었다. 무력을 통하여 교회를 개혁 할 때, 황제 앞에서 저항하는 세력은 미미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개혁의 단점은, 황제가 언제나 교회 일에 신경을 쓸 수 없다는 것이고, 다음 황제의 입장에 따라 개혁이 개악(改惡)이 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였다. 사실상, 황제가 교회에 깊숙이 개입하면 할 수록 교회는 타락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세번째 경우는 수도원 운동이다. 교회가 전반적으로 타락할 때 수많은 참된 신자들은 세속을 벗어나서 참된 신앙의 모임을 추구하였다. 곳곳에 수도원이 세워졌고 이 수도원은 중세 시대 유일한 학문의 장이 되기도 했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수도원이 했던 중요한 일은 도서를 보관하고 손으로 필사하는 것이었다. 이런 수도원을 통해서 중요한 인물들이 배출되었고, 이러한 인물 중에는 나중에 교황으로 선출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런 교황은 수도원에서 가졌던 이상(理想)을 교회에 적용시키고자 노력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수도원은 노력 역시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수도원은 기본적으로 제도권 밖의 기관이었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는 엄격한 규율과 질서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이 일반 교회에는 적용되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들이었다. 수도원은 교회 개혁의 이정표로써 역할을 하는 정도였다.
네번째 경우는 공의회 운동이다. 교황의 절대 권력이 교회를 부패하게 하기 때문에 교황을 공의회의 권한 아래 두어서 견제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이다. 중세 기간 동안 교황이 둘 혹은 셋으로 나누어서 서로가 싸운 적이 있었는데 이 들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 공의회였다. 공의회란 모든 주교들이 함께 모여 최고의 권위로 교회 일을 결정하는 제도였다. 그러나 공의회도 한계가 있었다. 공의회는 각 나라가 모인 단체였기 때문에 각자 이해관계가 달랐고 명백한 문제가 아닌 한 한 목소리를 내기가 불가능하였다. 이들 중에는 순수한 의미에서 개혁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명백하게 이해 득실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꾼들도 많았다. 결국 공의회 운동은 교황의 공작으로 실패하고 만다.
이와 같은 4가지 관점에서 한국 교회를 들여다 보자.
1. 한국에는 교황이 없다. 총회장이 있기는 하지만 임기가 1년이기 때문에 강력한 총회장의 리더십으로 개혁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리고 총회장이 교단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지만, 장로교 법으로는 총회장은 Moderator에 지나지 않는다. 즉 총회가 열리는 기간 동안 사회를 보며 중재를 보는 사람이다.
2. 한국에는 경건한 국가 지도자도 없다. 지금까지 대통령 중에 교인이 있었을 뿐이지 그들이 한국 교회를 위해서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한국 교단의 일부의 개혁은 국가기관인 교육부에 의해서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앞으로 교단이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교육부에 의해서 강제적인 조치들로 인해 개혁이 이루어질 지 모를 일이다.
3. 한국에는 수도원도 없다. 물론 여기 저기 산재한 기도원이 있다. 한국의 기도원은 중세 시대와 같은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리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기도원은 개인기도를 중심으로 운영 혹은 단시간 적인 교회의 수양회 장소로 운영되기 때문에 교회의 개혁을 총괄적으로 지휘하기에는 역부족이다.
4. 한국 교회는 교단 별로 총회가 있지 않은가? 그러나 모든 교단의 총회는 개혁의 힘을 상실한 지 오래다. 한국 교회는 너무 개교회 중심적이기 때문에, 총회를 통한 개혁이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각 계파(系派)의 이익만이 대변되기 때문에 중세와 같은 개혁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각 교단이 총회장을 뽑을 때 들리는 부정 선거에 관한 추문, 돈이 오고 갔다는 썩은 냄새가 코를 찌르는 가운데 무슨 개혁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신문 지상을 살펴보라. 지금도 치사한 법정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가슴을 치면서 한마디 할 수 있다면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는 한 교회의 개혁은 불가능하다.
중세 역시 자신을 개혁하지 못함으로 결국 참 교회를 분리 시켜야 했듯이 한국 교회도 [하나님의 쪼개심]이 없이는 도저히 개혁의 여지가 보이지 않다.
문제는 무엇인가? 종교개혁의 시대와 다른 점은 우리에게는 바른 신학과 바른 교리와 바른 교회 정치의 원리가 있으나 그것을 현실에 적용시킬 힘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들리는 개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 사람이 바로 개혁의 대상이란 데 문제가 있다. 사회적으로도 범법을 행하여 지탄을 받은 사람이 설교를 아직도 하고 있는 현실이 한국교회의 개혁을 뒤로 미루고 있는 것이다. 참 개혁이 앞서지 못하고 인맥과 조직과 이권과 명예와 체면이 앞서고 있다.
결국 교회의 개혁은 자신을 개혁하는 데서 시작 할 수밖에 없다.
교회 정치꾼들이 이 말을 쓴다면 "너나 잘해"라는 소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참다운 교회 개혁을 꿈꾼다면 우리 자신의 철저한 무능력을 인정하고 죄를 회개 하는 데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중세 교회사를 보아서 알겠지만, 지금 우리 교회는 개혁의 가능성이 거의 없다. 개인이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회개하는 길 밖에 길이 없다.
미스바로 모이는 회개의 기도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이것을 빼놓고 무슨 탁상공론으로 교회개혁을 이룰 수 있단 말인가? 죽기 살기로 성령께 구하면 도와주실 것이다. 개인의 회개 운동이 교회의 개혁을 이루게 해야 하겠다.. (장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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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소식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자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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