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글쓴이; 다죽자(ekwnrwk1211@hanmail.net)
원출처; http://cafe.daum.net/NovelinDajukja
서예는 좋다고 난리를 쳤고, 난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녀석들에게 조금이라도 틈을 보여선 안 된다.
“벼루야! 먹아! 누나 학교엔 어쩐 일이야? 꺄아악~ 누나가 보고 싶어서 왔구나!”
그렇다. 벼루와 먹이 저것들의 이름이다.
서예가이신 서예 할아버지가 직접 지으신 이름.
“왕순대, 안녕?”
“어제도 보고 오늘도 보니까 무지 반갑다, 얘들아.”
“달리기 잘 하던데?”
“하하, 원래 못하는데 어제 삘을 좀 받았나봐.”
인사한 애가 먹이고, 얘가 벼루인가?
아님 인사한 애가 벼루고, 달리기 하자는 녀석이 먹인가?
아~ 둘이 키는 물론 머리 모양, 눈동자 색깔, 목소리,
심지어 옷 까지 똑같이 입어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
“누나가 맛있는 거 사줄 테니 가자. 참! 제순이한테 다 털렸지?”
서둘러 서예 입을 막았지만
쌍둥이들의 눈빛이 달라지는 걸 볼 수 있었다.
“왕순대, 나 배고파.”
“나도 배고파. 왕순대 사줘.”
“저기, 오늘은 누나가 바빠서 그러는데 다음에 사줄게.”
녀석들, 서로 눈짓을 주고받더니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누나라는 사람이 동생들 굶기기나 하고~”
“1학년 9반 왕제순이 저희 누나랍니다. 혹시 저희 누나”
“벼루야! 먹아! 순대 먹고 싶다고? 가자! 가!!”
“떡볶이랑 김밥이랑 만두는?”
젠장. 내 한달 용돈이 날아가는구나.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대답했다.
“다 사줄게.”
“오랜만에 우는 연기 했더니 배고프네.”
“난 어지러워. 왕순대, 달리기는 잘 봤으니까 얌전히 따라와.”
저것들은 악마야! 악마!!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동생들이라면
눈이 뒤집어지는 서예였기에 감히 함부로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녀석들한테 덤벼봤자 나 왕제순, 질게 뻔하다.
지금까지 덤벼서 이겨본 적이 있던가? 없다.
세상이 두 쪽 나도 녀석들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녀석들을 따라 도착한 곳은 집 앞 분식점.
이거 어째 집까지 끌려갈 것 같은 불안감이 밀려온다.
“아줌마, 순대 3인분, 떡볶이 2인분, 참치랑 치즈 김밥 각각 한 줄.”
“그리고 만두 2인분 주세요.”
이것들아, 그걸 누가 다 먹는다고 시키는 거야!!
순대 1500원, 떡볶이 2000원, 김밥 2500원, 만두 2000원.
그걸 곱하고, 더하면.... 흐어억!! 17500원!!
맙소사! 용돈 받은 지 일주일 밖에 안 됐는데...
“쌍둥이들, 누나들이 맛있는 거 사주나봐?”
“왕순대 누나가 저희가 너무 귀엽다고 사주고 싶대요.”
“왕순대 누나? 누가 왕순대 누나니?”
“제 앞에 있는 누나요. 좀 덜 떨어져 보이긴 해도 착하고 순진해요.”
부모님이나 사람들 앞에선 철저히 가면을 쓰는 녀석들.
녀석들에게 난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있는 존재요, 살아 움직이는 장난감이다.
“안녕하세요.”
뚫어져라 쳐다보는 아줌마에게 인사 했다.
“귀엽게 생겨서 쌍둥이들이 잘 따르나봐? 옆에 있는 친구는 쌍둥이들 누나?”
“네~ 동생들이 여기 순대가 맛있다고 해서 왔는데 맛있게 해 주세요.”
“우리 집만큼 순대 맛있게 하는 집도 없지. 조금만 기다려~”
쌍둥이들에게 세뇌당해서인지 순대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날 부르는 듯한 착각이 든다.
잠시 후 보기만 해도 배가 터질 것 같은 음식들이 놓여졌다.
두 녀석, 순대만 먹어치우고는 젓가락을 놓는다.
“벼루야, 먹아. 설마 배불러서 젓가락 놓은 거 아니지?”
“그럼 더 먹으려고 젓가락 놓겠어?”
“왕순대도 다 먹었지? 집에 가서 할 일 있으니까 얼른 가자.”
“음식 남기면 벌 받아. 그러니까 이거 다 먹자꾸나.”
하지만 내 말은 들은 척도 안 하고 의자에서 일어선다.
녀석들 눈을 피해 서예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야!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왜 꼬집어!!”
“어머머~ 내가 언제 꼬집었다고 그래? 많이 먹어.”
참서예, 너 지금 매점 일 복수하는 거지?
이것아! 넌 돈 뜯기는 걸로만 끝났지만
난 네 동생들한테 몸도 뜯기게 생겼어!!
“서예누나, 더 먹을 거야?”
이 녀석들, 자기 누나한테는 무지 잘한다.
“더 먹고 갈 테니까 제순이랑 먼저 가 있어.”
“아니야! 나도 더 먹을래. 너희들 먼저 가.”
“참 먹, 왕순대가 상했나봐? 어떻게 해야 할까?”
“두들겨 패야지. 하지만 터지면 곤란하니까 살짝 주물러주는 정도만 해야겠다.”
애초부터 내겐 선택권이 없었다.
쌍둥이들에게 끌려 가게를 나가는 순간, 날 부르는 서예.
“제순아.”
드디어 네가 날 살리는구나!
“왜? 나의 하나뿐인 친구 서예야.”
“그냥 가면 어떡해. 돈 주고 가야지.”
그럼 그렇지! 잠깐이나마 기대했던 내가 바보였다.
한 달 만에 다시 찾은 서예네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옳고 바르게’ 라는 가훈이 보인다.
서예 할아버님, 아버님.
참 씨 집안 아이들은 절대 옳고 바르지 않습니다.
부탁인데, 제발 옳고 바르게 키워주세요!!
텔레비전 앞으로 간 녀석들이 오라고 손짓했다.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긴장하며 천천히 걸어갔다.
“이거 한번 해봐.”
먹인지, 벼루 녀석 인지 텔레비전을 가리킨다.
텔레비전으로 눈을 돌리자 한 여인네가 열심히 요가를 하고 있었다.
“나보고 지금 요가를 하라고?”
“응. 바로 이 동작!”
녹화 해둔 건지 화면을 정지 시키는 녀석.
요가의 요 자도 모를뿐더러 몸 또한 막대기처럼 뻣뻣한 게 나다.
그런 내게 몸을 완전히 뒤집는 저 동작을 하라고?!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빠져나갈 방법이 생각나질 않는다.
“뭐해? 저런 동작이 진짜 되는 지 궁금하니까 얼른 해봐.”
“그렇게 궁금하면 너희가 직접 해보지 그러니?”
“남자가 요가 하는 거 봤어?”
요가를 즐겨보거나 많이 본건 아니지만
남자가 하는 건 한번도 본적이 없다.
“다른 동작도 해야 하니까 얼른 해!”
“저기 얘들아, 누나 치마 입어서 곤란한데.”
녀석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서예의 체육복 바지를 내민다.
오늘로써 내 허리랑 안녕이구나. 그동안 고마웠다, 허리야.
부디 다음 생에선 몸이 유연한 주인 몸에서 태어나거라.
체육복을 입고 녀석들이 친절하게 틀어주는 요가를 보며 자세를 잡았다.
한참을 낑낑거리는데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서예와 서예 어머니가 들어왔다.
“왕제순, 너 지금 뭐해?”
보면 몰라? 빌어먹을 네 동생들한테 당하고 있잖아!
몸을 일으켜 어머니께 인사를 올렸다.
“안녕하세요.”
“그동안 왜 안 왔어? 우리 쌍둥이들이 너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지금이 기회야. 서둘러!
체육복 바지를 벗어 던지고 현관 쪽으로 달려가 신발을 신었다.
“어머니, 저 가볼게요!”
“왜? 저녁 먹고 가.”
“그럼 오빠 혼자 밥 먹어야 돼서요. 안녕히 계세요.”
“내일 토요일이니까 놀러와~”
쌍둥이들아, 오늘이 마지막이다. 내가 다시는! 다시는 오나봐라.
오늘처럼 학교 앞에서 기다려도, 울면서 연기해도 안 와! 죽어도 안 와!!!
다음날, 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집을 나갔다는 녀석들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학교에 없었다.
서예에게 복수 할 계획을 짜고 있는 그때, 새록이 녀석이 나타났다.
“땡촌, 이제야 네 주제를 알았구나.”
“뭐냐? 웬 친한 척?”
“못 올라갈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아야지. 암 그렇고 말고~”
헛소리 하는 거 보니 또 정신병이 도진 모양이다.
“깝치고 다니더니 쌤통이다. 너 같은 게 려한이랑 어울리기나 하냐?
생각만 해도 울렁거린다. 네 주제 알았으면 앞으로 얌전히 구석에 찌그러져 있어.”
못 참아!! 아니 안 참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녀석에게 소리쳤다.
“산새록 넌! 넌 려한이 좋아하는 주제에!!”
웅성거리는 소리들 속에 뒷문에 서 있는 려한이와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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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 1.
[ 중편 ]
얼굴의 황제(皇帝) #27
다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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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21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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