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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살인경주
①
휘이이잉!
한풍이 잿빛 구름을 할퀴자 눈발이 미친 듯이 펄럭이며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신년의 새벽이 밝아옴과 함께 또다시 퍼부어지기 시작한 폭설이었다.
낮과 밤이 구분되지 않는 원시 그대로의 광란.
여기가 어디인지도 알 수 없었다. 폭설을 쏟는 하늘에는 미처 걷지 못한 듯한 오색의 연 몇 개가 떠 있고, 희미한 빛줄기가 눈덮인 구릉을 비추고 있어 지금이 낮이며 어느 산맥의 뿌리쯤에 위치한 능선의 한 부근임을 알게 해 줄 뿐이었다.
어디선가 작은 새의 여린 울음소리처럼 섬세한 음향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눈 덮인 능선의 끝에서 자그마한 사람 하나가 서서히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바로 자천릉이었다. 그의 입가에서는 빨간 바람개비 하나가 천천히 돌아가며 예의 기이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문득 기음이 뚝 멈추며 돌연 치기 흐르는 음성이 새어나왔다.
"쳇!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대곤륜산맥이 나오는 거야. 벌써 이십 오 일을 걸어왔는데 겨우 산맥의 뿌리에 닿았을 뿐이니."
자천릉의 음성은 불평에 가득차 있었다.
"후우! 귀찮아. 지저분한 벌레들이 어찌 중원에는 그리도 많은지, 하지만 여기서부턴 괜찮겠지. 이렇게 춥고 눈이 쏟아지니까."
자천릉의 고개가 가볍게 끄덕여졌다.
"그래, 일단 걸어갈 수 있는데 까지는 가보자. 중할아버지는 대곤륜산맥을 넘어 서북의 뿌리가 아홉 갈래로 갈라지는 곳에 부나비도가 있을지 모른다고 했으니까."
청도를 떠나 홍익청차를 입에 물고 부나비도를 찾아나선지 이십 오 일째, 가공할 살인자들의 끊임없는 추적과 한 번도 개이지 않고 쏟아지는 폭설을 뚫고 자천릉은 이곳까지 이르러 있었던 것이다.
자천릉이 걷고 있는 이 능선은 동쪽으로 뻗친 대곤륜산맥의 한 뿌리였다. 뿌리라고는 하나 본령에 이르기까지는 아직도 수만 리 길. 폭설에 눈사람이 되고 만 자천릉이 불평을 터뜨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때 뭔가를 발견한 듯 자천릉의 눈망울이 반짝 빛났다.
"응? 저기 귀틀집이 있군. 조금 쉬었다 갈까."
자천릉의 약 십여 장 앞에는 눈에 거의 파묻혀 지붕의 끝만 살짝 드러난 통나무집 한 채가 있었다.
삐류류!
자천릉은 다시 바람개비를 불며 통나무집 앞으로 다가가다 흠칫 무감각하게 냉소를 터뜨렸다.
"치이! 관이 있는 걸 보니 상여집이였잖아!"
통나무집 앞에는 가로 석 자, 세로 아홉 자에 두께 석 자 크기의 시뻘건 관이 아홉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헌데 기이하게도 그토록 폭설이 쏟아지건만 아홉 개의 관 위에는 한 점의 눈발도 묻어 있지 않았다. 단지 피 칠한 듯 붉은 관뚜껑에 검은 글씨로 <상(喪)>자 하나씩이 음산하게 쓰여져 있을 뿐이었다.
자천릉은 무관심한 표정으로 통나무집의 문을 열며 전신의 눈을 툭툭 털었다.
"후! 좋군. 조금 어둡긴 하지만 요리를 만들어 먹기에는 적당한 분위기야."
화섭자에 불을 밝힌 자천릉은 등에 멨던 보퉁이에서 말린 흑해능치포와 홍앵십이난도, 도마 등을 꺼내놓고 곧장 요리를 시작하고 있었다.
홍앵십이난도가 현란하게 움직이자 화섭자의 붉은 빛이 비좁은 실내 여기저기에 반사광을 흩뿌렸다.
헌데 붉은 빛에 비쳐 드러나는 상여집의 정경은 결코 자천릉의 말처럼 요리하기에 적당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두텁게 밀려든 눈발 곳곳에 얼음마저 낀 통나무벽 사이에는 상여의 부서진 잔재인 듯 울긋불긋한 나무조각과 낡은 제기들이 어수선하게 널려 있어 실로 음산하고 괴이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자, 이제 불에 살짝 그을리기만 하면 훌륭한 건어포육이 되지."
순식간에 흑해능치포에 솜씨있게 칼집을 낸 자천릉은 나무조각들을 모아 모닥불을 지폈다.
그 순간 모닥불에 녹아내렸는가? 통나무를 뒤덮고 있던 얼음과 눈덩이가 쏟아져 떨어지며 어디선가 한 줄기 차갑고도 무미건조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너의 이름은 자천릉?"
헌데 놀랍게도 자천릉은 일체의 동요도 없이 태연하게 되묻는 것이 아닌가?
"그대의 이름은?"
자천릉은 모닥불에 흑해능치포를 끼운 막대기를 걸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있었다.
"키는 다섯 척 석 자, 외모는 다국적, 성격은 자신의 일이 아니면 기억하려 하지도 않고 설사 기억했다 해도 곧 잊어버림, 맞는가?"
예의 무미건조한 음성이 바로 등 뒤에서 또렷이 들려왔다.
자천릉의 등 뒤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얗게 탈색되어 있는 백색의 인간 하나가 솟아나 있었다. 그의 전신에서는 흡사 빙벽 속에 박혀 있는 듯 싸늘한 냉기가 칼끝처럼 번져나고 있었다.
이때 자천릉은 여전히 모닥불에 말린 생선을 구으며 동문서답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대의 키는 일곱 척 반쯤 되겠군. 백미, 백포에 징그러우리만큼 흰 피부라 대충 재수없게 생긴 인종인데."
"취미는 요리, 맞는 것 같군. 그리고...."
"훗! 그대의 취미는 남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비맞은 중처럼 혼잣말을 지껄이는 것이라... 대강 윤곽이 잡히는군."
"중원에 나온 이후 줄곧 입가에 바람개비를 물고 있음, 행색은 허름한 흑포에 커다란 보퉁이를 맴, 틀림없군."
"쳇! 그렇지 돌할아범이 말했던 그 못생긴 눈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설국의 싸움꾼, 설상영인 만초우리(萬草宇利)가 바로 그대였군."
자천릉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백색인의 말투를 흉내내고 있었다. 헌데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 마디가 실로 가공스럽지 않은가.
- 설국.
전설의 신령스러운 산인 대설산과 희노애락을 같이한 문파가 있었다. 대설산과 적석산(積石山)을 잇는 빙벽, 설산마벽(雪山魔壁) 속에 자리잡고 있는 설산빙족들의 살인단체.
그들을 일컬어 만년설의 피(血)라고도 한다. 청부살인을 받되 눈과 추위 속에서 잘 견디는 빙족 특유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겨울에만 활동을 개시하는 특이한 집단이 바로 설국이었다.
겨울의 살인에는 단 한 번도 상대를 살려준 적이 없는 공포의 단체. 그 설국을 이끄는 설국칠십이사(雪國七十二邪)의 두목이 바로 설상영인 만초우리였다.
자천릉이 만초우리의 정체를 밝혀내는 순간 그의 새하얀 전신에서 전율스러운 살기가 뻗쳐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탈색된 입술에서 스산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흐흣! 이제 그만 지옥에 가서 너의 살을 떼어 요리하거라."
돌연 자천릉이 우뚝 허리를 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머금었다.
"후! 알겠어. 대신 이 건어포육을 먹어 봐. 그리고 평가해. 지옥에 가서까지 요리를 만들 수 있을 만한 솜씨를 내가 가지고 있는지를."
자천릉의 손에는 어느새 접시까지 받친 먹음직스런 포육 요리가 들려 있었다.
"흐흣, 그래 꼬마는 독요리가 특기라고 했었지."
만초우리는 음소를 띄며 자천릉의 요리를 받아들었다. 허나 그는 곧 포육이 담긴 접시를 그대로 땅바닥에 팽개쳤다.
"훗! 허나 유감스럽게도 본인에게 독요리를 감상하는 취미는 없다."
싸늘한 냉소와 함께 희디흰 검이 뽑아지면서 검은 어느새 한 줄기 희뿌연 빛으로 화하여 번개처럼 자천릉의 머리를 향해 쏘아오고 있었다.
허나 만초우리의 신형이 자천릉의 한 치 앞까지 다가들고 희디흰 검이 막 자천릉의 미간에 쑤셔박히려는 바로 그 찰나의 순간, 돌연 검이 바닥에 나뒹굴며 만초우리의 몸은 그대로 퉁겨지듯 허물어지고 말았다.
"꼬, 꼬마! 왜... 왜 내가 죽어야 하는 거지?"
가득 불신을 떠올린 채 자천릉을 바라보는 만초우리의 물음에 자천릉이 차디찬 조소를 피어올렸다.
"물론 그대는 독을 먹지 않았어. 그 건어포육에는 독을 타지 않았으니까."
"그, 그런데, 왜?"
"풋! 왕왕 사람들은 간단한 일을 잊고 살지. 독이란 집어 넣을 수도 있지만 또한 바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접시? 그렇지... 그걸 잊다니!"
독은 접시에 발라져 있었다. 허나 만초우리의 사고는 독이란 먹거나 마시는 것이라는 상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어이없이 당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그가 어찌 알리오. 그의 생각이 짧아서가 아니고 치밀하게 상식의 빈틈을 계산한 자천릉의 심리살인술이 너무 완벽했기 때문에 그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음을.
"어이없군. 이토록 멍청하게... 큭!"
삽시간에 시퍼렇게 변색된 만초우리의 몸이 몇 차례 세차게 경련하더니 풀썩 고개가 꺾어지고 말았다. 죽은 것이다. 헌데 바로 그 순간 상여집의 통나무벽이 통째로 요란하게 부서져 나가며 금포를 입은 두 인영이 뛰어들어왔다.
"크흐흣,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우리가 노리던 사냥감이 사나웠기에 망정이지 연약하고 순했다면 저 빛바랜 계집애 속곡같은 눈귀신에게 넘겨줄 뻔하지 않았나?"
"휴! 정말 큰일날 뻔했어! 우리 모과쌍왕이 무려 이십 오 일 간이나 뒤쫓아다닌 사냥감이 일 각의 차이로 도로아미타불이 되었을 테니."
두 사람은 눈을 피하는 황금빛 도롱이로 전신을 두르고 철립을 깊숙히 눌러쓰고 있다.
"크흣! 하기야 뭐, 저 눈귀신까지 한꺼번에 사냥하면 되는 일이었지만."
"아뭏든 이 어린 사냥감에게 몸을 지켜줬으니 고맙다고 해야지."
그들의 등에는 핏빛 깃발이 달린 깃대와 황금빛 장창이 엇갈리게 교차된 채 매달려 있었다.
헌데 분명 그들은 자신을 모과쌍왕이라고 칭했던가.
- 모과쌍왕(矛戈雙王).
각각 한 자루 단근철모(斷筋鐵矛)와 쇄루과(碎淚戈)를 들고 중원의 북쪽 변방을 휩쓸어 버렸던 창술의 대가들.
금면새(金面璽) 단근철모 북평산(北平山)과 쇄루과 남패(南佩)라는 명호를 가진 이들은 창(槍)으로 맺어진 의형제였다.
의형제가 되면서부터 시작한 살인 청부업이 그후 이십 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실패한 적이 없어 어느덧 중원오대살수 중의 하나로 부상한 살인자들이 바로 이들이었던 것이다.
모과쌍왕은 천천히 자천릉에게 다가오며 사악한 괴소를 터뜨렸다.
"크흐흣! 고맙다, 꼬마야. 네몸을 곱게 지켜 우리의 사냥을 도와줘서."
"그래. 더욱이 요즘같은 불경기에 우리에게 황금을 오백 냥 씩이나 보태주다니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구나."
허나 이때 자천릉은 추호도 두려워 하는 빛이 없이 천천히 모과쌍왕을 향해 무관심한 눈길을 던지고 있었다.
"그래, 그래. 나도 고마워. 몇 달 전 팔일오할아범에게 인육요리를 배웠었는데 복습을 못해 잊어버리고 말 지경이었거든. 마침 그대들의 살코기는 무척 팽팽하고 싱싱한 것 같으니."
모과쌍왕의 눈빛에 퍼뜩 잔혹한 살기가 스쳐가며 그들의 손이 각각 등 뒤의 창을 쥐어갔다.
"크ㅋ! 꼬마는 너무 빨리 죽는다고 우리에게 투정을 부리고 있구나."
"괜찮다. 투정하지 말거라, 아가야. 그래도 하루를 사는 하루살이나 칠 주야를 사는 매미보다는 낫지 않느냐."
헌데 이때 허공에서 돌연 수십 종의 음성이 하나로 합쳐진 듯 괴이한 음성이 터져나오지 않는가.
"그렇군. 모과쌍왕, 너희들은 하루살이나 매미보다 못한 존재인데 그놈들보다 너무 오래 연명해 온 경향이 있어. 이만 가라!"
"이, 이 음성은?"
"창, 창천칠연!"
모과쌍왕의 입에서 다급성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꽈직!
통나무집의 천정이 그대로 박살남과 동시에 일곱 개의 연이 모과쌍왕의 몸통에 내리꽂혔다.
"컥!"
"캐애액!."
모과쌍왕은 졸지의 참변에 반항 한 번 못한 채 처참하게 으스러져 버렸다. 헌데 넘어져 있던 연들이 돌연 벌떡벌떡 일어서는 것이 아닌가? 놀랍게도 연에는 일곱 명의 괴한들이 매달려 있었다. 아니 연을 등 뒤에 묶고 있다고 해야 옳으리라.
- 창천칠연.
그렇다. 창천을 나는 일곱 마리의 보라매라 일컫는 그들이 나타난 것이다. 사형제간으로 조직된 본격적인 청부살인의 정통 대가들이며 스스로의 몸을 허공에 띄워 표적의 동향을 추적하는 비연추적술의 일인자들.
"훗! 릉아의 솜씨가 벌써 이렇게 유명해졌나? 재료도 없는데 릉아의 요리를 먹어 보겠다고 하늘에서까지 손님이 다 내려오니."
자천릉이 덤덤한 표정으로 모닥불을 향해 눈길을 돌려버리자 칠 인의 괴한들 중 가장 깡마르고 강팍한 인상의 사내가 연줄을 풀며 싱긋이 웃었다.
"후후. 꼬마야 두려워하지 말거라. 이 아저씨는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란다. 단지 이 아저씨는 꼬마가 빌려 갔던 나의 물건만 도로 찾으면 되니까 말이다."
허나 자천릉은 들은 척도 않고 다시 뭔가를 만들 채비를 하고 있었다.
"흠! 됐다. 어서 다오, 나의 물건을."
"뭘 말야?"
"네가 지고 있는 보퉁이와 너의 목."
사내가 온화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자 자천릉은 시큰둥하게 코웃음을 터뜨렸다.
"쳇! 어지간히 보채는군. 배가 고파도 좀 참으란 말야. 곧 천하최고의 요리를 시식하게 해줄 테니까."
이때 영롱한 방울소리가 허공에서 울려 퍼졌다.
"아가야, 요리를 할 때 구 인분을 더 만들도록 하거라."
"우리는 지금껏 여덟 개의 관을 비운 채 추위를 참으며 기다리고 있었느리라. 아가와 저 일곱 마리 병아리들이 순순히 들어와 누워 줄 때까지."
통나무집 밖에서 지극히 부드러우면서도 음산한 몇 줄기 음성이 느닷없이 터져나왔다.
"헉! 적곽(赤廓)의 홍포구독(紅布九 )이!"
"제, 제길! 우리는 뭔가 잘못 청부를 받았다! 홍포구독같은 자들이 이 꼬마를 노리다니, 허면 이 꼬마가 그토록 거물이었단 말인가!"
창천칠연의 안색이 일순 허옇게 질려 갔다. 예의 부드러운 음성이 다시 실내를 음산하게 울렸다.
"병아리들이 지나치게 삐약거리고 있군. 더욱이 그 꼬마는 본곽의 살인대상이라고 이미 경고를 했을 텐데 말이야."
자천릉은 음성이 들려 온 쪽으로 시선을 돌리다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경고? 쳇! 아까 본 그 혈관들이 이정표인 줄만 알았더니 저자들이 잘난체 하느라 세워 둔 표식이었군."
자천릉의 시선이 꽂힌 통나무집 앞의 설원 위에는 섬뜩한 빛을 뿌리던 아홉 개의 관들이 어느새 뚜껑이 젖혀져 있고 관의 빛깔과 똑같은 혈포를 걸친 아홉 구의 시체가 그 속에 우뚝 서 있지 않은가.
- 적곽과 홍포구독.
육천마을 중 시망상천이 천민들로 이루어진 시신의 마을이라면 천하에는 무인들로 구성된 또 하나의 귀역이 존재하니,
천하인 들에게 피와 죽음의 대명사처럼 인식되어 있는 가장 공포스런 살인자들의 집단이 바로 적곽이었다.
아홉 개의 핏빛 관으로 표식을 삼는 이 홍포구독이라는 인물들이야말로 그 적곽에서도 가장 잔혹하고 무서운 인물들로 황금 일백만 냥 정도로는 불러낼 꿈조차 꾸지 못하는 살인청부업계의 서열 일, 이 위를 다투는 거목들이었다.
이때 통나무집의 부서진 틈 사이로 바깥을 쏘아보던 자천릉의 시선이 마침 안쪽을 바라보던 홍포구독 중의 한 인물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순간 자천릉의 두 눈에 파란 불꽃이 작렬하였다.
"핏! 잘난 체 할 만한 놈들이긴 하군."
찰나적으로 자천릉의 뇌리에는 한 줄기 예리한 판단이 섬전처럼 스쳐가고 있었다.
'까마귀 할아범은 말했지. 적의 힘이 나보다 강할 때 피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고 마니까 말야.'
자천릉의 입가에 냉소가 스쳐갔다.
'그렇다면, 살인백율 제 팔십팔율, 기습이다.'
순간, 팽! 하는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자천릉의 입에 물려있던 바람개비가 섬전처럼 쏘아져 나갔다.
"헉! 호, 홍익... 크악!"
처절한 비명이 터졌다. 홍포구독중 한 명이 악마의 장난감 홍익청차에 의해 허리가 잘려 나가 버렸다.
자천릉의 신형은 그 짧은 빈틈을 이용하여 벼락같이 통나무집 밖으로 퉁겨지며 허공을 선회하는 홍익청자를 받아 물고는 곧장 산허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와 함께 자천릉의 싸늘한 음성이 중인들의 가슴에 얼음조각처럼 내리꽂히고 있었다.
"내가 분명히 말했지! 나를 건드리면 무서운 일이 생긴다고, 그 무서운 일은 바로 죽음이다!"
"제, 제기랄! 쫓아라!"
"저런! 편안히 누워 쉴 관(棺)을 팽개치고 눈 속에 드러누우려 하다니 안될 말이지. 멈추거라!"
창천칠연과 홍포구독, 아니 이제 홍포팔독이된 그들의 신형도 자천릉을 쫓아 번개처럼 허공을 갈랐다.
이때 자천릉의 신형은 능선이 꺼져 골짜기로 변한 곳에 걸쳐져 있는 거대한 화강암 석교에 이르고 있었다. 눈 덮인 석교 너머로는 폭설을 머리에 인 울울창창한 죽림이 펼쳐져 있었다.
헌데 자천릉이 곧장 다리 위로 달려가고 몇몇 추적자들의 신형이 다리 앞까지 쇄도해 가는 순간 돌연 뒤에서 누군가의 다급한 음성이 터져나왔다.
"안돼! 멈춰라! 그 다리는 대곤륜의 관문, 천지금교(天地禁橋)다! 그 다리를 건너지마라!"
"헉! 천, 천지금교!"
"젠장할! 큰일날 뻔했군. 이 다리가 영원한 중원의 성역 십팔만사천백와마루의 동쪽 경계가 시작되는 생사천교였을 줄이야!"
추적자들의 몸에 벼락을 맞은 듯 전율이 일어나며 그들의 신형은 정확히 다리 앞에서 멈추어지고 말았다.
첫댓글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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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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