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교민사회의 최대 화제는 단연 ‘사회보험법’이다. 알다시피 오는 10월 15일부터 중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취업자 - 바로 우리 같은 주재원이나 현지 채용 직원들도 중국의 사회보험에 의무(혹은 강제)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며칠사이 월급쟁이들 서넛만 모이면 사회보험을 술안주 삼아 씹고 뜯고 야단이다. 그러나 단단한 오해가 두 가지 있다.
먼저, 외국인을 자국의 사회보험 시스템에 흡수하는 것은 세계적 보편 추세라는 점이다. 중국만 유독 그런 것이 아니다. 한국에 취업하는 외국인들도 우리나라 사회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을 해야 한다. 미국, 일본, EU(유럽연합) 국가들이 그렇고, 캐나다와 몽골, 우즈베키스탄, 중동의 이란까지 그렇게 한다. 그런데 마치 중국만 요상한 정책을 만들어낸 양 떠들어대면 스스로 무식을 드러내 보이는 꼴이다.
다음으로, 중국 정부에서 하루아침에 도깨비처럼 뚝딱 이러한 정책을 급조(急造)해낸 것이 아니라는 점 또한 알아두어야 한다. 물론 중국 정부가 어떠한 정책을 시행할 때 사전에 의견수렴 과정을 충분히 거치지 않고 밀실에서 준비작업을 진행하다가 갑작스레 공표하거나, ‘믿고 따르라’는 식으로 무조건 밀어붙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번 사회보험법의 경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3년 전부터 심의가 이루어져있고, 외국인도 사회보험에 가입시킬 것이라는 입장 또한 이미 10년 전부터 밝혀왔다. 그러자 화들짝 놀라 한국과 중국이 사회보장협정 잠정조치를 체결한 것도 2003년의 일이다. ‘준비할 기간도 주지 않고 무작정 밀어부친다’는 투정은 이번 사안에는 그리 들어맞지 않는다.
◆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외국인 사회보험 의무 가입
물론 이번에 실시되는 외국인 사회보험 의무가입 정책에는 여러모로 문제가 많다. 중국 진출 20년이 되어가는 어느 기업인이 “완전히 날강도 같은 법”이라고 분개할 만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누릴 수도 없는 보험혜택을 대상으로 보험료를 가져가겠다는 대목이 여러군데 눈에 띈다.
예를 들어보자. 한국은 ‘4대 보험’이라고 하는데, 중국은 ‘5대 보험’이라고 하여 ▲양로보험(국민연금), ▲의료보험, ▲실업보험, ▲공상보험(산재보험), ▲생육보험(출산보험) 등 5가지 보험이 있고, 앞으로는 외국인도 여기에 가입하여야 한다. 의료보험이나 산재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일단 그렇다고 치자. 우리가 중국에 양로보험에 들어야할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이곳 중국에서 노후를 보낼 것도 아닌데 말이다.
최근 발표된 임시 시행령에 보면 15년 이상 중국에 체류하여 양로보험료를 납부한 외국인 취업자에게 연금 혜택을 준다고 하는데, 중국에 15년 넘도록 체류할 외국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 중간에 귀국하면 그동안 납입한 보험료를 돌려준다고도 하는데, 그것도 일부만 돌려주는 것이고, 중국이 무언가 환급(還給)하겠다는 것을 받아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중국에서 기업을 해본 사람은 뼈저리게 느껴보았을 것이다. 그러하니 ‘양로보험료 돌려준다’는 말이 씨알도 먹히지 않는 것이다.
실업보험도 그렇다. 실업보험이란 직장을 잃게 되었을 때 재취업을 준비하는 기간동안 실업급여를 받는 복지혜택의 유용함 때문에 대체로 가입하는 것인데, 알다시피 중국의 주재원이나 현지 채용 직원에게 ‘실업 = 귀국’으로 통한다. 취업증이 곧장 말소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외국인의 실업에 대해 중국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보장해주겠다는 것인가? 앞으로 실업보험에 가입하면, 중국 정부에서 나의 재취업을 보장해주기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생육보험을 외국인에게 적용하겠다는 취지 또한 허점이 많다. 중국에서 생육보험이란 임신과 출산, 육아에 필요한 경제적인 보상과 의료혜택을 주겠다는 좋은 제도인데, 알다시피 ‘1가정 1자녀’ 원칙을 내세우고 있는 중국은 이러한 방침에 따르는 가정에게만 생육보험의 혜택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둘째, 셋째 자녀를 낳는 외국인 취업자들에게는? 이에 대해서도 명확한 답이 없다.
물론 모든 법이 태어나면서부터 완벽한 경우는 흔치 않지만, 중국의 외국인 사회보험 의무 가입 방침은 이처럼 구멍이 곳곳에 숭숭숭 뚫려 있다. 한국의 사회보험 분야에 정통한 어떤 분은 중국의 보험 전산화가 전혀 이루어있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들어 “중국이 과연 이 정책을 실행할 수 있을런지 의심이 된다”까지 말한다. 비단 그런 문제가 아니라도 완전한 정착에 적지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외자기업들의 반발을 무릅쓰면서 지역별로 실시세칙을 마련하는 일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제기랄, 중국에서 사업해먹기 갈수록 힘드네!”
그런데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필자가 새삼 느끼는 문제는 중국에서 사업하는 일부 한국 기업인들이 정보와 변화에 상당히 둔감하다는 것이다. 무엇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가 막상 일이 터지면 “이게 뭐야!”하면서 목소리만 높인다. 앞서 소개한 대로 이번 사회보험 관련 정책도 길게는 10여년 전부터 예고되어 왔고, 아무리 짧아도 올해 초부터는 세부내용이 각종 기관과 경제단체, 언론보도를 통해 여러차례 구체적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인양 분개하는 사람들을 보면 기가 막히기도 하고 애처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누군가의 시선에는 중국이 막 나가는 것 같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중국의 정책변화에 일관성과 예측가능성이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중국의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중국의 여러 사회 시스템에는 대부분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정책이나 현상이 있다면, 그것이 도대체 왜 그러는지 고민해보고 나름대로 연구하면서 중국을 이해하고 배워나가는 것 또한 중국과 더불어 살아가는 슬기로운 방편이다. 중국 정부가 최근 몇 년간 시행하고 있는 여러 정책과 법령의 연결고리와 공통분모를 살펴보고, 나아가 중국 정치 - 정확하게는 중국공산당 - 에 관심을 갖게 되면 중국의 먼 미래까지 내다보이게 된다.
갈수록 중국에서 기업하기 어려워진다는 분들이 많다. 2007년부터 외자(外資)기업에 대해서도 토지사용세를 징수하기 시작했다. 과세금액도 종전의 3배로 상향조정했다. 2008년에는 법인세 우대 혜택을 축소했다. 중국으로 끌어들일 때는 ‘토지 무료! 세금 무료!’하면서 달콤한 사탕발림으로 유혹하더니, 나중에야 ‘보따리 내놔!’하는 식이다. ‘오랄 때는 언제고……’하면서 억울해하고 분통해하는 기업인들의 입장이 이해가 되지만, ‘세상에 공짜란 없는 거야, 속은 사람이 잘못이지’라고 지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그리 비뚤어지지만은 않았다. 2010년부터는 외자기업에 대해서도 도시유지건설세와 교육부가세를 징수하기 시작했다.
어디 그뿐인가. 2008년에는 <노동계약법>을 내놓아 ‘과연 중국에서 계속 사업을 하여야 하는 걸까’ 고민하는 기업인이 대폭 늘어나게 만들더니, 급기야 올해에는 <사회보장법>을 통해 그렇잖아도 세계경제의 불황 속에 휘청거리는 기업들에게 완전히 결정타를 날리는 중이다. 임가공제조무역을 주된 수입원으로 했던 기업들에게는 환경규제까지 들어밀며 존립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 때문에 산동(山東)성에 있는 우리 기업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오죽 힘들었으면 야반도주를 하는 기업인이 줄을 이어 한중간에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됐으랴.
설상가상으로 환율은 치솟고, 구인난도 심해지고, 그렇다고 어디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노동자들의 권리의식은 높아만 가고, 증치세 환급율과 환급 대상을 대폭 줄이지를 않나, 수책(手冊 ; 원자재 수출입 장부) 관리를 엄격하게 하더니 갑작스레 상당한 보증금을 납부하라고 지시하질 않나…… 기업하는 입장에서는 이래저래 죽을 맛이다. 게다가 중국 정부는 올해부터 앞으로 5년간 최저임금을 해마다 13%씩 올리겠단다. 그리하여 5년 후에는 최저임금을 현재 평균임금의 45%수준까지 맞춰내겠단다. 직원들의 임금을 올려주면 기업의 사회보험료 부담도 동반하여 올라간다. 도대체 뭘 어쩌라는 말인지, 요새 어안이 벙벙해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 배우려는 의지가 없다면, 망해도 싸다!
이 모든 것이 외자기업에게만 가혹한 것이 아니라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최근 중국 정부의 외자기업에 대한 일련의 움직임은 중국의 개혁개방이후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실시했던 여러 가지 파격적 우대정책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외자기업에 대한 우대조건을 끌어내려 토종기업과 똑같이 형평성을 맞춘 것이다.
이것을 ‘동등한 경쟁’이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토종기업들은 중국 정부의 여러 가지 보조금 혜택을 받는다. 지난해 중국 정부가 발표한 중국의 7대 신흥전략산업에 투입되는 지원금만 향후 5년간 자그마치 10조위안, 우리돈으로 1800조에 달한다. 대한민국 1년치 예산을 뛰어넘는 돈을 매년 신흥산업 육성자금으로만 쏟아붓겠다는 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내외자 기업의 차별 사례는 이보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토종기업은 형편이 어려워지면 엄청난 저금리의 혜택을 누리며 친인척이 간부로 있는 중국 은행의 대출금을 자기 돈처럼 척척 끌어 쓸 수 있지만, 외자기업이 중국 은행에서 돈 빌리는 일은 언감생심 꿈도 못꾼다. 각종 인허가를 받아내는 것도 외자기업이 토종기업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은, 중국에서 기업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처절하게 경험하는 대목이다. 이것이 과연 ‘공정’이고 ‘평등’이란 말인가!
자, 이렇게 말하니 아무리 둔감한 사람이라도 하나의 큰 흐름이 보일 것이다. 조금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중국에서 외자기업은 이제 다 나가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쓸만한 기업만 남고’ 필요 없는 기업들은 나가라는 말이다. 돈 많고 튼튼한 기업, 중국이 앞으로 성장동력으로 삼으려는 사업분야의 ‘폼나는’ 기업들만 남고, 돈 안되는 기업, 부실한 기업, 노사분규나 환경오염만 일으키는 기업, 전망없는 기업은 알아서 나가라는 말이다. 그래서 중국이라는 터키탕 안에 온도를 바짝 바짝 올리는 중이다. 뜨거우면 알아서 나가라고!
외국기업 떠나간 빈 자리에 자기(중국) 기업을 키우겠다는 말이고, 이제는 막무가내식 성장보다는 질적인 성장을 추구하겠다는 말이다. 좀 먹고 살만해졌으니 ‘우아하게!’ 말이다. 나아가 성장보다는 분배에도 관심을 돌리겠다는 말이고, 생산과 함께 소비를 촉진하겠다는 말이다. 그동안 힘겹게 달려온 인민들을 위로하는 의미도 있고, 공산당에 대한 정치적인 지지를 확보하는 차원도 있을 것이며,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위상에 걸맞는 품위를 세워나가려는 의지도 담겨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흐름이 어느날 뚝딱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10년 전부터 후진타오(胡锦涛) 주석이 늘상 해오던 ‘조화사회’라는 그 말, 그것이 바로 이거였구나 하면서 무릎을 탁 칠 사람이 있을 것이다. 조화(和谐) = 화합 = 평등, 지금 그것을 왜 그렇게 강조하는지 대충 이해가 될 것이다. 중국의 고속철도를 개통하면서, 많고 많은 이름을 놔두고 왜 하필 ‘허씨에(和谐)호’라고 하였는지, 그 선택이 허투루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아무렇게나 제멋대로 굴러간다고 오해해왔던 사람들은 요즘 뒤통수를 얻어맞는 기분일 것이다. 무에 ‘뒤치기’란 말인가. 이미 10년 동안 ‘앞으로는 그렇게 할 거야, 꼭 그렇게 할 거야’라며 ‘조화’를 외쳐왔는데 그것을 새겨듣지 않고 변화를 준비하지 않았던 자신이 잘못인 것이다.
요즘 신문을 보면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구성과 관련한 기사들이 슬슬 쏟아져나오고 있는데, 이런 것도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 ‘관심없는 이야기’, ‘어려운 이야기’로만 흘려버려서는 안된다. 분명히 당신들과 상관있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성장(成長)파가 주도권을 잡게 될지, 분배(分配)파가 대세를 역전할지, 공청단과 상하이방은 어떻게 안배가 될지…… 이런 것들이 중국 정치의 큰 흐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상당한’ 변수로는 작용할 수 있다. 주요 지도자들의 성향과 태도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중국 정치의 향방에 줄곧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군가는 중국 정치가 비(非)민주적이고 투명성이 떨어진다고 탓하지만, 사실 중국 정치처럼 예측가능성이 높은 나라도 드물다. 집권당이 바뀌면 수많은 국책사업을 손바닥 뒤집듯 엎어버리는 한국보다 오히려 중국이 안정적이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각종 조약과 협정, 숱한 민생법안이 동네 양아치 싸움만도 못한 국회 정쟁에 밀려 서랍 속에 수년째 잠들어있는 한국보다는 그래도 언제 어떤 법이 어떻게 통과될지 그 윤곽이 뚜렷한 중국 전인대가 오히려 효율적이다. 이러한 것들은 중국 사람들 스스로 자화자찬하는 이야기이고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의 해석이라 할 수도 있지만, 한국인으로서 왠지 얼굴이 붉어지는 대목도 있다.
중국을 이해하고 예측하려면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야 한다. 현상과 현상, 사건과 사건을 빠짐없이 살펴보고, 정치의 향방에 눈과 귀를 기울여야 한다. 부단히 정보를 습득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함에도 대사관이나 연구기관, 각종 경제단체에서 진행하는 설명회나 세미나에 참석하는 기업인들의 숫자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올 따름이다. 주위를 살펴보면 안내책자, 이메일 서비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의 루트가 널려있는데 그것을 활용할 줄을 모른다. 그리고는 나중에 ‘대사관은 대체 뭐하는 거야’하는 식의 푸념이나 늘어놓는다. 자업자득이다. 콩 심은데 팥 나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