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file/cafe/99EF4B405C4A2AF311)
오리아나에 대한 평가는 1993년 중국 북경의 사회과학원에서 연설을 한 뒤 청중의 질문을 받을 때 한 대학생이 한 말에 집약되어 있다. 연설회에 참석한 그 학생은 당국의 질문 금지 요청을 거절하고 유창한 이탈리아어로 얘기했다.
“저는 질문을 하기 위해 일어선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탈리아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당신의 모든 기사와 책을 다 읽었기 때문에 대답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저는 다만 감사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 여기 왔고, 당신의 지명을 받고 일어섰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기사와 책을 통해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가르쳐주었습니다. 바로 용기와 자유입니다. 제발 오래 사십시오. 우리에게는 상굿도 당신이 필요합니다.”
오리아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상대방에게 이 말을 들려주었다. 유명인들 가운데는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 너무 많다. 장 자크 루소는 교육적인 글을 많이 썼지만 자식들을 다 버렸고, 헤르만 헤세는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을 많이 썼지만 부인들은 모두 학대하다가 쫓아냈다. 민주평화당 국害의원 이용주는 음주운전은 살인행위라며 음주운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정작 저는 음주운전을 하다 딱 걸렸다. 그래놓고도 반성은커녕 국민들을 향해 각성하라고 코미디를 했는가 하면, 마누라는 한술 더 떠 워낙 검소한 사람이라 대리운전비를 아끼려고 직접 운전을 했다며 파렴치한 남편을 두둔했다. 주택을 16채나 소유한 부부의 코미디극이 국민들의 허패를 뒤집어놓고 있다. 이것이 좌파들의 실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902C395C4A2C8612)
오리아나 안에는 여러 가지 모습이 공존하고 있다. 그녀는 언제나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독재에 저항하고 전장을 누볐다. 파시즘과 공산주의에는 격렬하게 반대했으며, 어떤 독재자의 협박에도 결코 굴하지 않았다. 기자로서는 분명 ‘전설의 여기자’였다. 어릴 때부터 익혀온 독서습관으로 인해 매우 지적이고 사색적이었으며, 예술적 지식과 소양을 지니고 있었다. 책을 쓸 때는 몇 년씩 한집에 틀어박혀 하루 열두 시간씩 집필에 몰두했다. 책을 쓰다가 집필실을 빠져나온 것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위독할 때와 미국이 리비아를 공격하여 카다피 대통령을 잔인하게 학살했을 때뿐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위독할 때는 몇 달 동안 꼼짝도 않고 침실에 붙어 앉아 임종 때까지 온 정성을 기울여 간호했으며, 리비아 피격 때는 전장으로 달려가 총알이 빗발치는 가운데서도 파괴와 학살 현장을 생생하게 보도했다.
그러나 명성을 얻은 이후로는 변덕과 내적 갈등이 심해졌다. 특히 책이 인기를 끌자 왕성한 취재활동으로 훌륭한 기사를 써야겠다는 욕구와 꼼짝 않고 들어앉아 훌륭한 책을 써야겠다는 욕구가 상충하여 조절하기 힘든 고통까지 불러일으켰다. 취재활동을 하다가 조용한 시간이 오면 어푼 집필을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에 초조해졌고, 집필할 때는 빨리 일을 끝내고 취재에 나서야겠다는 생각에 좀이 쑤셨다. 어릴 때는 매우 차분하고 정적인 성격이었지만, 13세부터 14세까지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면서 성격이 적극적이고 모험심이 충만하게 바뀌어버린 것이다. 기자나 작가로서는 분명 전설적 인물이었지만 인간적으로는 여러 가지 흠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93DA3D5C4A2D6404)
오리아나는 폐암에 걸려 몇 차례 수술 끝에 결국 그 합병증으로 죽었다. 13세 때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면서 배운 담배가 빠르게 늘어 폐암선고를 받기 전까지 매일 두 갑 이상 피워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1991년 쿠웨이트 취재 중에 들이마신 원유 그을음이 폐암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쿠웨이트를 점령하고 있던 후세인은 미군에 쫓겨 후퇴하면서 모든 유정을 파괴하라고 명령했고, 이라크군이 635개의 유정을 파괴하여 매일 3백만 배럴의 원유가 불타오르면서 대기를 오염시켰다. 마침 미군 지프에 동승하여 전장을 취재 중이던 오리아나는 속절없이 검댕을 시커멓게 뒤집어쓴 채 매연을 들이마셨는데, 그녀는 이때 미군들에게 자신이 언젠가는 폐암에 걸릴 것이라고 예언했었다. 그러면서도 담배는 끊지 않았다. 흡연자는 다들 자신의 의지가 약한 점은 인정하지 않고 비겁한 핑계를 둘러대기 마련이다.
수술로 폐 한 쪽을 들어낸 뒤에도 오리아나는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했다. 1993년 3월, 「전설의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를 쓴 산토 L. 아리코가 뉴욕에 있는 오리아나의 자택에서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도 그녀는 한창 새 책을 집필하고 있었다. 상굿도 제목을 붙이지 않은 이차대전 전후의 이탈리아 파시즘에 관한 내용이었다. 오리아나는 이탈리아人 친구인 아리코에게 새 책의 내용 일부를 들려주었는데, 독일군들이 레지스탕스를 도운 한 마을 주민들을 모두 처형하려 하자 젊은 경찰관이 나서서 자신을 대신 죽여달라고 애원하는 경험담이었다. 실제로 그 경찰관은 오리아나와 마을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처형되었고, 마을사람들은 그 영웅적인 젊은이 덕분에 모두 목숨을 구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81EF3C5C4A2E4612)
아리코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오리아나는 자신이 곧 죽게 될 것이라며 삶에 강한 집착을 보였는데, 실제로는 그로부터 13년이나 더 생존했다. 그러나 무심한 아리코는 오리아나가 그 마지막 책을 출간했는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전설의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를 끝내버렸다. 같은 이탈리아人이면서도 오리아나의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한 인터뷰 태도에 어지간히 넌더리가 났던 듯 이야기를 풀어가는 내내 험담을 슬쩌ㅗㄱ슬쩍 흘렸다. 오리아나가 무지막지한 욕설을 섞어가며 자신에게 화를 내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해놓기도 했다. 사실 ‘전설의 여기자’라는 수식어에 매혹되어 오리아나 팔라치가 직접 쓴 자서전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를 한꺼번에 샀는데, 이 책을 절반쯤 읽었을 때 공연한 짓을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그러나 이왕 산 책, 다른 책부터 먼저 읽고 시간이 되면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도 소개하겠다.
2018. 11. 7. 16:23
산토 L. 아리코 지음 「전설의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 소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