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이야기-상록수 인생, 밤하늘의 트럼펫
가입자가 원하는 음악이나 다양한 소리를 통화연결음으로 바꿔 들려주는 통신부가서비스이다. 유무선통신사별로 컬러링, 링투유, 필링, 링고 등의 브랜드로 서비스 되는데, 이중 최초로 서비스되어 널리 알려진 ‘컬러링’으로 통칭된다.//
핸드폰 컬러링에 대한 Daum백과의 설명이 그렇다.
나도 핸드폰 컬러링으로 음악 한 곡을 담아놓고 있다.
안치환이 부른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그 노래다.
무턱대고 그 노래로 컬러링을 한 것이 아니다.
나름의 명분이 있다.
이제는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 매지도, 또 그 슬픔에 굴하거나 비켜서지 않으며, 어느 결에 반짝이는 꽃눈을 닫고 우렁우렁 잎들을 키우고, 그래서 짙푸른 숲이 되고 산이 되어 메아리로 남는, 그런 사랑을 주위 모두와 나누며 살겠다는 생각이 곧 그 명분이다.
내 그러니 다른 사람들도 그의 컬러링으로 그 명분을 짚어낸다.
내 중학교 동기동창으로 특별히 나와 가까이 지내는 황원현 친구의 컬러링은 톰존스(Tom Jones)의 ‘The Green Green Grass of Home’을 우리말로 번안해서 조영남이 부른 ‘고향의 푸른 잔디’라는 노래가 핸드폰 컬러링이다.
문경 호계가 고향인 그 친구의 고향사랑이 읽힌다.
경북 영천이 고향인 어느 친구는 우리나라 국가를 핸드폰 컬러링으로 담아 놓고 있다.
평소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그의 성향이 그 컬러링에 담겨 있는 것이다.
저 지난주 토요일인 2019년 1월 19일 오후 4시쯤의 일이다.
이날은 우리 중학교 동기동창 친구들 몇과 어울려, 경산 임당역 구내에 상설 버스킹 공연무대를 만들어놓고 색소폰 연주를 하고 있는 김종태 우리 중학교 동기동창 친구가 100회 공연을 앞두고 있다고 해서, 그 축하와 격려의 의미로 미리 그 연주현장을 찾아갔던 날이다.
그래서 그 친구의 연주와 노래도 듣고, 우리들 노래도 좀 부르는 등, 두어 시간 가까이 의미 있는 어울림의 시간을 가졌었다.
그리고 김종태 친구와는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다.
이왕 거기까지 온 김에 대구의 ‘김광석 거리’도 한 번 들러보자는 아내의 의견이 있어서였다.
그러나 끝내 그 거리에 발자국의 흔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좁은 골목길에 주차가 만만치 않아서였다.
좀 멀리 떨어진 곳에 공영주차장이 있기는 했으나, 그 이르는 길에 이미 대기하는 차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오랜 시간 기다리면서까지 그 거리를 꼭 들러야 할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차를 몰아 그 길을 지나치면서, 대충 눈요기만 하는 것으로 그 거리를 들른 셈치고,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그때가 오후 4시쯤이었다.
이제는 가까운 대구에서 달려온 채돈식 친구가 안내하는 대로, 저녁을 같이 할 자리로 찾아갈 일정만 남아 있었다.
그 친구가 가자고 하는 대로 차를 몰아가던 중에, 귀에 익은 음악이 내 귓전에 얹히고 있었다.
‘밤하늘의 트럼펫’이라고 하는 트럼펫 연주곡이었다.
곡의 분위기가 호젓해서 20대 내 젊은 시절에 즐겨 들었던 곡이다.
얼마나 그 곡을 좋아했던지, 비록 트럼펫을 불지는 못하지만, 입술로 트럼펫 소리를 흉내 내서 그 곡을 연주하고는 했었다.
이랬었다.
빰빠 밤 빰빠 빠바바바 빠바바바 밤 빰 빰 빰 빰빠바바밤 바바바밤
어디에서 그 음악이 들리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곧 그 궁금증이 풀렸다.
함께 차에 타고 있던 역시 같은 중학교 동기동창인 채돈식 친구가 전화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친구의 컬러링이 바로 ‘밤하늘의 트럼펫’ 그 곡이었던 것이다.
부인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둘은 우리가 찾아가는 ‘불로 숯불 막창’이라는 음식점이 아직 오후 영업시간이 안 됐다고 문을 열지 않았다면서 걱정하는 내용의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 몇 차례 그 곡을 더 들어야 했다.
부인이 그 음식점으로 직접 달려가서 억지로 문을 열고 오후 영업을 시작하게 하는 그 과정을 중계방송 하듯 전화를 걸어주셨기 때문이었다.
정말 고맙게도, 우리는 그 덕분에 대구에서 소문난 별미의 막창구이 맛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고향땅 문경 점촌으로 향한 것은 오후 7시 반쯤이었다.
이미 주위는 캄캄한 밤이 되어 있었다.
그 밤의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에, 문득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밤하늘의 트럼펫’이라는 곡을 핸드폰 컬러링으로 담아놓은 채돈식 친구의 명분에 대한 생각이었다.
빤히 짚어졌다.
삶이 고단했던 젊은 시절이 있었겠다싶었다.
20대 내 젊은 시절에도, 별들이 총총한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그 곡을 떠올렸었고, 입술 트럼펫으로 그 곡을 연주하면서 지친 내 삶을 스스로 위로받았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극복의 삶이 있었기에, 이날 저녁 밥값에 술값에 막창값까지 푹 덮어써준 채돈식 친구였던 것이다.
아무래도 내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했다.
그래서 문자메시지 한 통을 띄워 보냈다.
그 내용이다.
‘참 감사 해. 부인께도 내 마음 꼭 전하시게.’
득달같이 답이 왔다.
이랬다.
‘고마운 모습으로 간직하고, 다시 볼 날을 기다리네.’
첫댓글 핵교 다닐땐 돈시기 돈짜도 몰라써~내는,....
그 돈식이가 본보기 의리가 대단 하네!^^근디??난 지금도 진서이,재워이,가 보고시퍼!~^^
서로 얼골 봐뿌리만 왠갖 잡념이 다~사고라 져뿌리!^^왜?? 우리 동기칭구니까!^^
근디?? 그놈의 임당스토리 길기도 길다!~찌져묵고 데쳐묵고 뽁까묵고 삶아묵고....말라서 즙까지 빼무끼가??^^
색소폰으로 부는 밤하늘의 트럼벧 그 것도
되는구나.
역시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게
틀림없다.
잘 불었네. 참 좋았다
특히 돈식이 친구와 그 부인의 웃음이
백만불 짜리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