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덕영/영화 '건국전쟁' 감독)
내가 <건국전쟁2> '인간 이승만'을 만들려는 이유
몇 달 전 일이다. 나라를 위해서 밤낮으로 기도하는 한 단체의 초청을 받아 강연을 했다. 나 자신이 신앙심이 깊은 사람은 아니지만, 늘 나라를 위해서 진정으로 애쓰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그날도 그랬다.
강연이 끝나자 몇몇 분들이 앞으로 다가와 기념 사진을 요청했다. 그분들과 그렇게 사진을 찍고 있는데, 먼 발치에서 머뭇거리며 내가 있는 쪽을 향해 시선을 떼지 못하는 60대 정도의 나이 든 부부가 있었다.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 일을 오래 하다 보면 느는 게 눈치다. 뭔가 사연이 있는 눈치였다. 아니나 다를까, 사진 촬영이 끝난 틈을 타서 그 여성 분이 다가와 말했다.
"감독님, 꼭 보여 드릴게 있습니다."
그녀는 스마트폰에 사진 앨범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들 속에서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잠시 후 수많은 사진들 속에서 한 장의 흑백 사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1913년 경 하와이에서 생활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젊은 시절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서 이승만은 오른쪽 손에 뭔가를 쥐고 있었고 뒤에는 교민들로 보이는 남성들이 서 있었다. 그냥 평범해 보이는 낡은 사진 한 장이었다. 뭐가 특이하다는 걸까?
"여기 잘 보세요. 가슴에 달려 있는 것을..."
그녀는 엄지와 검지를 스마트폰 액정 화면에 대고 사진을 확대했다. 그러자 이승만의 왼쪽 가슴에 뭔가 밝게 빛나는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십자가에요..."
여기 또 한 장 사진이 있어요. 그녀는 다른 사진을 보여줬다. 하와이에서 절친했던 박용만과 찍은 사진이었다. 사실 꽤 유명해서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도 친숙한 사진이었다.
"여기도 잘 보세요. 가슴에 뭐가 달려 있는지..."
그녀는 손가락으로 화면 속 가슴께를 확대했다. 그러자 앞에서 봤던 이미지와 똑같은 게 눈에 들어왔다. 역시 이번에도 십자가였다. 그날 그녀는 내게 청년 이승만이 늘 가슴에 십자가를 붙이고 다녔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기념 사진을 같이 찍고 싶다는 사람들이 이어져서 그날 그녀와 나눈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아쉽게도 그때는 그녀의 전화번호조차 받지 못했다. 이승만의 가슴에 달려 있던 십자가는 그래서 늘 이후에 마음속으로 자꾸 떠오르는 이미지였다.
그리고 오늘 아침 낯선 분으로부터 메시지를 하나 받았다. 바로 그 여성분이었다. 어떻게 알고 나의 연락처를 찾은 것이다. 아마도 영화 <건국전쟁>의 흥행이 그녀에게 더 큰 자극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감독님, 다음 작품 제작하실 때 꼭 참고하세요. 청년 이승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는 소중한 단서입니다."
사실 그때도 호기심이 있었다. 그는 왜 그렇게 열심히 십자가를 가슴에 달고 다녔을까? 그가 성직자였다면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 이승만은 목사도 아니었다. 게다가 천주교 신부들이 묵주에 연결해서 달고 다니는 십자가와도 조금은 다른 느낌이다.
'십자가가 없는 하와이한인교회'
문득 작년 여름 하와이 취재를 갔을 때가 떠올랐다. 취재를 떠나기 전 한 선배는 나에게 하와이 한인중앙교회 건물을 잘 살펴보라고 일러줬다. 건물이 광화문을 쏙 빼닮았기 때문이었다. 교회 건물까지 조국의 광화문 모양을 그대로 옮겨오려고 했던 청년 이승만이었다. 무너지는 조선의 마지막 시간, 왕정을 반대해서 한성감옥에 들어가 옥고까지 치른 그가 조선 왕조의 상징인 광화문을 하와이 땅에 옮겨왔다는 사실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1910년도에 십자가를 가슴에 달고 다닐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1918년 이승만이 하와이에서 세웠던 한인중앙교회 건물 위에는 십자가가 없다. 오늘날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모두 건물 꼭대기에 십자가를 세우는 것과 다른 구조다. 도심 속에서 붉게 빛나는 십자가들과도 어딘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가 일상 붙이고 다녔던 십자가와 교회 건물에 존재하지 않는 십자가. 이 두 가지는 마치 추리소설처럼 나를 1910년대로 이끌고 갔다.
도대체 '청년 이승만'은 어떤 존재였을까?
무수히 많은 오욕을 이겨내고 70여 년 만에 이승만이 부활하고 있다. 영화 <건국전쟁>이 바뀌놓은 이승만의 위상이며,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의 눈물이 이룩한 기적 같은 일이다. 대한민국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에 이미 세상을 떠난 이승만이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이승만'이란 존재가 갖고 있는 힘이다. 그는 죽어서도 나라를 구하고 있다.
그에게 십자가는 곧 무너진 조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모습처럼 십자가를 지고 마지막 인간의 모습으로 신음했던 예수의 모습을 마음에 담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늘 왼쪽, 심장이 뛰는 가슴에 십자가를 붙이고 다녔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라를 잃어버린 식민지 백성들에게 조국은 곧 그들을 가장 빛나게 만들어줄 빛이 되는 곳, 광화문이 아니었을까? 기독교의 정신으로 밝은 세상, 희망찬 나라를 만들자는 뜻은 아니었을까?
숱한 물음들이 발 밑에 떨어진다. 이미 세상에 없는 그이기에 직접 물을 수도 없다. 신학자도 아닌 내가 감히 그와 교회의 신성에 대해 논할 자격도 없다. 다만 그저 늦게나마 '이승만'이란 존재를 발견한 한 인간으로서의 호기심을 참을 수 없다는 점은 밝히고 싶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그의 마음에 접근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하와이에서 발견했던 그가 가장 사랑했던 성경 말씀 속에 간직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라디아서 5장 1절)
나라 잃은 조선의 백성들을 사랑했던 이승만, 그에게 모든 한국인은 자유를 누려야 할 하나님의 자녀들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 할 숭고한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그걸 몸으로 실천했다. 나는 그가 정말 순수했던 애국자였다고 믿는다. 그를 욕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세상에 많지만, 그들이 부디 '인간 이승만'의 본래 모습을 바라보길 바란다. 그러면 대한민국만을 사랑했던 한 노인의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영화 <건국전쟁2>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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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영 페북 글(24.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