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 가는 날, 수업 시작 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다 보니 새 학교로 가는 골목길에는 우리 모자밖에 없었다.
새 학교, 새 친구들에 대한 기대로 내 발걸음은 평소보다 훨씬 더 가벼웠지만, 자꾸 뒤처지는 어머니의 발걸음은 어머니의 표정만큼이나 무거워 보였다.
가세 기울어 식구들 정답게 살던 집을 팔고 전셋집을 전전하던 시절, 큰 도로 건너편에 있는 동네로 이사를 했는데, 그 당시 막 시행되었던 초등학교 학군제로 인하여 나는 그만 전학을 가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당시는 중학교도 시험을 쳐서 진학하던 시절이라, 어머니는 형과 누나들이 다녔던 그 전통 있는 초등학교에 나를 계속 다니게 하고 싶어 하셨지만, 일부 처세에 밝은 어머니들처럼 주소만 옮겨두는 요령도, 국가에서 시행하는 제도를 거스를 힘도 어머니에겐 없었다.
"부모가 가진 것이 없어서......"
한숨과 함께 탄식처럼 나오다 마는 어머니의 그 말은 고스란히 어머니 가슴에 박히는 옹이가 되었겠지만,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새 학교, 새 친구들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가득 부풀기만 했었다.
마구간과 초가집이 있던 좁은 골목길을 돌아 나오자 수도산 등성에 위치한 새 학교로 올라가는 계단길이 나타났다.
"엄마~ 좀 빨리 온나~"
어릴 때부터 계단을 좋아했었다. 몇 칸만 올라가도 어려서 볼 수 없던 저 멀리가 다 내다보이는 것이 마치 내 키가 쑥쑥 자란 것처럼 느껴지던 그 신기함과 뿌듯함. 얼른 어머니 앞서 몇 칸을 뛰어올라 신난 얼굴로 뒤를 돌아보는데 어두운 표정의 어머니가 멈추어 서서 핸드백을 열고 계셨다.
"얼른 오라카이~"
또 몇 계단을 깡충거리며 뛰어올라 뒤를 돌아보았다. 계단 아래 멋진 한옥의 더 멋진 정원이 내려다 보였다. 어머니는 핸드백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그제야 한 계단을 오르셨다.
"엄마~ 얼른 일로 와 봐라. 저 집 정원 참 멋있데이. 꼭 옛날 우리 집 정원 같다."
더 올라가려고 돌아서는데, 어머니가 다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눈에 걸렸다.
'엄마가 와 울지......?'
"나는 앞으로 맨 날 이 길로만 학교 다닐 거다."
또 깡충거리며 뛰어올라 어머니를 돌아보며 큰소리로 말했다.
"와? 이 길이 그래 좋나?"
"응. 난 계단 길이 좋다. 내가 쑥쑥 커서 거인이 되는 것 같잖아."
여전히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고 계셨지만 그 얼굴에 조금 웃음기가 도는 것도 같았다.
"새 학교에 가도 기죽지 말고 잘 다녀야 된데이.."
어머닌 눈물을 훔치는 중에 몇 번을 그렇게 말씀하셨고, 나는 어깨를 쫙 펴고 날렵하게 계단을 오르내리며 얼른 올라오라고 어머니를 재촉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계단을 다 올라 길 따라 조금 더 걸으니 벽돌담 대신 석재 기둥에 철조망을 얼기설기 엮어놓은 담 너머 산등성이에 한 동밖에 없는 새 학교 교사가 보였다.
미국으로 오기 전, 가끔 고향 대구에 들러 시간이 남으면 그 계단을 찾았는데, 주변 경관은 많이 바뀌었지만 그 계단은 시멘트를 몇 겹 더 덮어쓴 모습으로 다행히 남아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며 보던 경관도 당연히 예전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지만, 그 계단에는 여전히 손수건으로 눈물 훔치며 몇 계단 뒤쳐져 따라오던 어머니가 계셨다.
한국 방문 기회가 생기면 어머니를 만나러 가보아야 할 곳 중 하나에 그 계단이 있다.
첫댓글 그 당시 어머님의 심정이 제 가슴에 와 닿아 먹먹해진 마음으로 글 잘 읽고 갑니다. ^^~
그날 저는 새 학교로 전학간다고 들떠있었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고서야 어머니 그 마음이 짚어졌습니다.
어머니의 추억이 서린 곳 중에 하나가 학교 가는 길
계단이군요. 그리운 시절, 그리운 얼굴들이
가끔씩 떠오름은 어쩔 수 없는 세월의 탓이기도
그래도 옛 생각하면 그 시간 마음은 평안한 것 같습니다.
건필 유지하세요.
곳곳에 계시지만 유독 더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있는 모습들이 있어요. 그 계단도 그런 곳이랍니다.
운전하며 혼자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생각나는 추억들이 자꾸 더 늘어납니다. ㅎㅎ
커가는 아들의 맘과
자식을 키우는 엄마의 맘이 그렇기도 하겠네요.
상류를 흐르는 급한 골짜기 물만이 아니라
하류를 흐르는 넘실거리는 강물도
추억이 되어 흐를 테지요.
그 시절, 어머니의 맘이
님의 글을 통하여 보입니다.
건필 하셔요.
그 시절 대부분의 어머니 사랑이
그렇게 소리없이 참 깊었었어요.
그래서 그 사랑 제대로 알기에는
참 많은 시간이 흘러가야 했고요.
높고 크게 보였던 계단이 그곳에서 오래도록 기다리고 있을것 같군요
어머니의 기억과 함께~
고향 제 본가의 큰길 맞은편에 오래된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어버지께서 매일 계단을 통해 출근 하시던 모습이
글 읽는중에 겹쳐서 떠오르네요~
이미 떠나신 분들이지만
그분들은 늘 우리 곁에 그렇게
머물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고향을 찾으면 여러가지 추억 장소를 찾아 나서겠군요.
의연한 아들의 모습에 어머니는 얼마나 마음 든든하였을까요?
막내를 많이 사랑해주셨지요.
고향에 가면 가보아야 할 곳이
참 많습니다.
이제 옛 모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겠지만...
수도산 ??? 대구 대봉동 산 모퉁이 있는산 ??? 어릴때 나도 수도산 언저리에서 뛰어 놀았는데 , 수도산 이름만 들어도 반갑네요 ㆍ수도산에 있던 하얀 2층집이 요즘 카페 , 미술관으로 변신해서 요즘 대구 핫플레이스로 유명세 ㆍ
처가집이 그부근이라 대구가면 커피맛도 좋고, 옛날 그시절도 회상하고 자주 간답니다. ㆍ
바로 그 산 맞습니다.
가까이 건들바위가 있는...
그 삼거리에 제가 살았습니다.
수도산에 있던 그 작은 절은
지금도 그곳에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