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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인도 신화(Indian mythology, 印度神話)
∎ 악마 라바나와의 한판승
라마와 시타의 행복은 악마 라바나 때문에 깨져버린다. 어느 날 혼자 있는 시타에게 수도승이 찾아와 시주를 부탁한다. 이 수도승은 사실 악마 라바나가 변장한 것이었다. 결국 시타는 본색을 드러낸 라바나에게 잡혀 끌려가고 만다. 시타는 랑카로 끌려가는 길 중간 중간에 자신이 지니고 있던 장신구로 표시를 해놓고 부디 라마가 자신을 구하러 오기를 간절하게 기도했다.
한편 시타가 못된 악마 라바나에게 납치된 것을 알고 라마는 동생 락슈만과 함께 시타를 찾아 나선다. 라마는 원숭이 왕 수그리바가 왕권을 회복하는 데 결정적 도움을 주고 그 부하들의 도움을 받아 시타의 행방을 알아낸다.
수그리바의 부하 중 가장 발 빠르고 머리 좋은 하누만이 라마를 도와주기 위해 따라 나선다. 랑카로 가기 위해서는 바다를 건너야 하는데 배가 없어 건널 수가 없었다. 라마는 바다에게 두 쪽으로 갈라져 길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바다는 움푹 패인 곳을 채우는 게 자신의 의무(다르마)라며 거절했다. 이때 하누만이 이끄는 원숭이 부대가 순식간에 다리를 만들어 무사히 바다를 건너 갈 수 있었다.
한편, 라바나의 궁전에 볼모로 잡혀있던 시타는 온갖 회유와 협박을 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라마에 대한 일편단심으로 끝까지 라바나의 유혹을 물리쳤다. 마침내 라마와 락슈만, 원숭이 하누만 부대가 쳐들어왔고 치열하고 무시무시한 전투 끝에 라마는 라바나를 무찌르고 아내 시타를 구했다.
2002년 10월 미국 나사(NASA)에서 찍은 위성사진에는 인도와 스리랑카 사이 포크 해협을 잇는 지역에 수중 구조물이 포착되었다. 역사학자 중 몇 몇은 그것이 고대 인도《라마야나(Ramayana)》에 등장하는 라마의 다리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라마가 아내 시타를 찾아 바다를 건너 갈 때 원숭이 부족이 다리를 놓아 주었다는 신화에 근거한 주장이다.
그러나 연구 결과 이것은 인공 구조물이 아닌 오랜 세월 조수와 퇴적에 의해 자연적으로 생긴 사주(沙州)였고 인도 정부는 운하 건설을 위해 구조물을 없앨 생각이었다.
구조물을 없앤다는 발표는 인도 전역에 폭풍을 몰고 왔다. 극우 힌두교 정치인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시위를 벌이고 발표한 총리에게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결국 인도 정부는 의견을 발표한지 하루 만에 철회하고 책임자를 처벌했다. 인도는 신화가 지배하는 나라이고, 그들에게 신화는 과거가 아닌 영원한 현재라는 사실을 증명한 사건이었다.
나는 라마(Rama)의 아내인 걸... 절대 라바나(Ravana)의 유혹에 흔들리는 일은 없을 거야.
이렇게 중얼거리며 라바나의 협박에서 자신을 지켰던 시타는 남편이 라바나를 무찌르자 기쁜 마음으로 뛰어나갔다. 그러나 라마는 시타를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당신은 당신의 길을 가시오. 나는 단지 나와 내 가족의 명예를 위해 라바나와 싸운 것뿐이오. 당신이 순결을 지켰든 그렇지 못했든 한 번 악마에게 납치되었던 당신을 다시 사랑하기는 힘들 것 같소.
라마의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은 그의 동생 락슈만과 원숭이 대장 하누만이 잘 알고 있었다. 라바나의 계략으로 시타가 죽은 줄 알았을 때 라마는 슬픔으로 쓰러질 뻔했다. 그러나 시타가 악마에게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과 가족들의 명예를 지켜야만 했던 라마는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라마의 말을 들은 시타는 충격에 휩싸였다. 자신을 그토록 사랑하던 남편의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시타는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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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더럽혀지지 않고 순결하다면 불의 신 아그니(Agni)가 나를 보호해 줄 것입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시타는 머리카락 한 올 타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 아그니가 손수 시타를 라마에게 데려다 주며 그녀는 한순간도 흔들리지 않은 용감한 아내라고 말해 주었다. 라마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시타를 안아주었다.
라마는 시타와 락슈만과 함께 아요다로 돌아왔다. 그리고 형이 오기를 학수고대하던 바라타로부터 마침내 왕관을 돌려받았다. 백성들은 라마의 왕위계승을 환영했지만 악마에게 끌려갔던 왕비 시타에게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사람들의 수근거림에 못 견딘 라마는 다시 시타를 내쫓기로 했다. 시타는 숲속으로 내쫓겨 거기서 혼자 아들 쌍둥이를 낳아 길렀다.
그로부터 12년 후, 시타는 왕궁에서 열리는 희생제사에 쌍둥이 아들을 데려간다. 그 자리에서 또다시 불길에 뛰어들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 보이라고 소리치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지친 듯 이렇게 말했다.
맹세코 나는 평생을 다해 라마 한 사람만을 사랑했으며, 순결을 더럽히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말이 진실이라면 내 어머니시여 저를 그만 데려가 주세요.
시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갑자기 땅이 흔들리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땅의 여신이 나타나 두 팔을 벌려 시타를 안았다. 눈 깜짝할 새에 시타와 땅의 여신이 땅속으로 사라지고 땅은 다시 감쪽같이 닫혔다. 자신의 순결을 의심받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홀로 이겨낸 시타는 마침내 평안을 찾은 것이다.
비슈누의 여덟 번째 아바타인 크리슈나는 열 가지 화신 중 가장 잘 알려져 있다. 크리슈나는 때로는 장난꾸러기 소년으로, 때로는 사랑스러운 연인으로, 때로는 용감하게 싸우는 전사로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다재다능한 신이기도 하다.
비슈누가 자기의 머리에서 검은 머리카락과 흰 머리카락 2개를 뽑아 마투라(Mathura)에 사는 야바다족의 바수데바와 데바키의 태속에 넣었고 얼마 후에 크리슈나(Krishna)가 태어났다. 마투라를 지배하는 왕 칸사(Kansa)는 데바키의 동생이다. 칸사는 누이 데바키가 낳은 아들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크리슈나를 죽이려고 했다. 그 사실을 눈치 챈 데바키가 크리슈나를 목동 난다의 딸과 바꿔치기 했다.
가까스로 살아남아 난다의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크리슈나는 장난꾸러기였지만 크고 작은 기적을 행하기도 했다. 한번은 크리슈나가 인드라 신을 숭배하는 브라즈 지역 사람들에게 인드라 신을 숭배하는 일보다 언덕을 돌보는 일이 더 급하다고 설교했다. 그 말을 듣고 인드라 신이 화가 나서 브라즈 지역에 거센 빗줄기를 쏟아지게 했다. 그러자 크리슈나가 손가락으로 언덕을 가볍게 들어 올려 사람들이 비를 피할 수 있게 해주었다.
훌륭하게 자라 청년이 된 크리슈나는 부모가 있는 마투라로 돌아가 간교하고 사악한 외삼촌 칸사를 죽인 후 야바다족의 왕이 된다. 크리슈나의 가장 큰 업적은 인도 대서사시인 《마하바라타(Mahabharata)》에 자세히 나와 있다. 기원전 10세기경 바라타족 내부에서 친족 간에 전쟁이 벌어졌다.
사촌지간인 판다바와 카우바라 집안이 서로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인 것이다. 그들과 사촌지간인 크리슈나는 어느 편도 들 수 없어서 고민한 끝에 자신은 판다바 집안의 전차를 끌고, 자신의 군대는 카우라바 진영을 지원하도록 했다. 치열한 18일간의 전투를 끝내고 나니 크리슈나와 다섯 왕자만 남았다.
크리슈나는 다시 자신의 땅인 마투라로 돌아가 통치를 한다. 그러나 왕위를 비워두었던 것이 화근이 되었을까. 야바다족 지배 세력 간에 큰 다툼이 생겼고 그 와중에 그의 형과 아들이 살해되었다.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숲속을 배회하던 크리슈나는 그를 사슴으로 오인한 사냥꾼의 화살에 뒤꿈치를 맞고 죽었다.
외삼촌인 칸사의 견제를 받아 목동 난다의 손에서 커야 했던 크리슈나는 피리를 잘 불고 장난도 잘 쳐서 목동의 아내나 딸들에게 매우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크리슈나의 마음은 오직 한 사람에게 가 있었는데 그녀는 유부녀 라다였다. 원래 자신의 마음을 감추는 데 서툰 크리슈나는 라다를 향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크리슈나가 라다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소문나기 시작하자 곤란한 쪽은 라다였다.
당신 때문에 내 명예에 금이 가게 생겼어요. 제발 다른 사람들이 나를 두고 뒤에서 수군거리지 않도록 해주세요!
매몰찬 라다의 말에 상처를 입은 크리슈나는 집으로 돌아와 앓기 시작했다. 어떤 약도 어떤 의사도 그를 일어나게 하지 못했다. 어느 날 한 떠돌이 의사가 말했다.
백 개의 구멍이 뚫린 물병으로 야무나 강물을 길어와 마시게 하면 낫습니다. 단, 순결하고 정숙한 여인만이 그 물을 한 방울도 새지 않게 길어 올 수 있을 겁니다.
마을 여자들은 서로 자신이 해보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도착하기도 전에 물이 모두 새버려 한 방울도 남지 않은 걸 보고 여인들은 모두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다. 이제 남은 여인은 라다 한 사람. 그러나 라다는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크리슈나와의 일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수근거리는데, 그녀로서는 되도록 새로운 일에 엮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의사가 말했다.
당신은 뭐가 제일 두렵소?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게 그렇게 두렵소? 당신의 순결과 정직은 신만이 아실 것이요.
의사의 간곡한 권유에 못 이겨 라다는 물병을 들고 야무나 강으로 갔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라다가 물이 가득 담긴 물병을 들고 크리슈나의 집으로 가는 동안 물은 단 한 방울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백 개의 구멍을 막아놓은 것 같았다. 마침내 물을 마신 크리슈나는 씻은 듯이 병이 나았고 그 이후로 라다를 비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후 라다와 크리슈나는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연인이 되었다. 크리슈나가 자신의 고향인 마투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어 이별하게 되었을 때 차마 라다 곁을 떠나지 못하는 크리슈나 앞에 신들이 나타나서 말했다.
크리슈나, 이승에서의 네 임무는 마투라의 잔인한 악마 왕 칸사를 죽이는 일이다. 지금 라다를 떠나 임무를 무사히 끝내면 백년 후에는 라다와 재회할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슈나는 라다에게 진귀한 보석과 향료로 치장 해주고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었다. 그리고 마투라로 가서 마침내 칸사를 죽이고 마투라의 새로운 왕이 되어 통치했다. 그러나 백 년이 지난 후에도 그들이 만난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안타까운 두 사람의 사연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대명사로 지금도 많은 문학 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파괴의 신 시바(Shiva)는 좀 변덕스러운 데가 있었다. 조용하면서도 활동적이고 파괴적이면서도 창조적이며, 금욕적인가 하면 왕성한 생식력을 자랑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파괴는 곧 재창조, 재생과 등을 맞대고 있기 때문이다. 자비롭고 부드러운 비슈누와는 달리 생김새나 행동도 거칠고 괴팍스러웠다. 늘 화장터 주위를 오가며 넝마를 주워 입고 이상한 춤을 추기 일쑤고, 신들과 교류하기보다는 도깨비나 귀신들과 친하게 지내서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도무지 결혼에는 관심이 없고 질펀하게 춤을 추며 놀다가도 혼자 히말라야 산 속에 들어가서 몇 날 며칠 고행을 계속하기도 했다.
파괴의 신 시바가 이렇게 세상사에 뜻이 없으니 브라흐마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파괴가 이루어져야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지는데 도통 결혼에는 뜻이 없는 시바 때문에 우주 질서가 흐트러질 위기까지 생긴 것이다. 생각다 못한 브라흐마는 샥티(Shakti) 여신에게 닥샤(Daksha)왕의 막내딸로 태어나 시바와 결혼해 달라고 간청했다. 샥티 여신은 즉시 닥샤의 막내딸 샤티(Sati)로 태어났다.
세월이 흘러 아름다운 처녀로 자란 샤티가 어느 날 산책을 나갔다가 한 남자와 마주쳤다. 누더기를 걸쳤지만 귀티 나는 얼굴에 멋진 춤을 추는 그 사람을 보고 샤티는 그만 한눈에 반했다. 그는 바로 시바였다.
시바, 당신을 보는 순간 우리는 보이지 않는 어떤 끈으로 연결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부디 저를 아내로 삼아 당신 곁에 두세요.
시바는 샤티의 갑작스런 고백에 깜짝 놀랐지만 그 역시 샤티를 보고 금방 사랑에 빠졌다.
당신은 정말 순수하고 아름다운 눈빛을 가졌군요. 만약 당신이 내가 사는 방식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당신과 결혼하겠소.
물론 나는 당신의 지금 그대로를 사랑해요. 당신의 걸인 같은 생활도, 당신의 도깨비 친구들도, 당신의 우스꽝스러운 차림새도 나의 사랑을 막지는 못해요.
둘은 천생연분이라고 느끼고 곧바로 결혼했다. 결혼은 굴레라고 외치던 시바가 드디어 가정을 이루니 브라흐마와 비슈누를 비롯한 신들은 한시름 놓았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이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샤티의 아버지이자 브라흐마의 아들인 닥샤왕이다.
원래 닥샤왕에게는 50명이 넘는 딸이 있었다. 그 중 가장 막내인 샤티는 예쁘고 총명해서 닥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막내딸이 변덕스럽고 더럽고 무시무시한 시바와 결혼을 하겠다니 닥샤는 결사반대였다.
닥샤는 그들이 결혼한 후에도 사위인 시바를 미워했다. 짐승 가죽 하나 달랑 걸치고 미치광이처럼 춤추고 돌아다니며 도깨비나 귀신들과 어울려 동냥하는 것을 즐기는 시바가 못마땅했다. 시바는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샤티는 달랐다. 아버지가 자신의 남편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이 늘 가슴 아팠다.
어느 날, 왕궁에서 커다란 희생제 행사가 열렸다. 그것은 모든 신들이 한 자리에 모이고, 각종 신성한 제물들이 통째로 하늘에 바쳐지는 어마어마하게 큰 행사였다. 닥샤왕은 신들에게 초청장을 보내 행사에 참여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단 한 명의 신, 시바에게는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다. 신으로서의 권위나 진지함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시바 신을 다른 신들 앞에 소개하는 것이 참으로 부끄러웠던 것이다. 샤티는 아버지가 남편을 일부러 초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속상했다. 뭔가 착오가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 샤티는 당장 왕궁으로 달려갔다.
아버지, 이처럼 큰 제의 행사에 위대한 신인 시바를 빼놓다니 어떻게 그러실 수 있으시죠?
그러자 닥샤왕은 비웃으며 말했다.
누가 시바를 위대한 신이라고 한단 말이냐? 샤티야, 네가 내 반대를 무시하고 결혼한 시바는 독설가에다 미치광이다. 내가 어떻게 그를 초대해서 여기 모인 많은 고귀한 신들을 모독할 수 있겠느냐?
자신을 그토록 사랑하던 아버지가 자신의 남편에게 그런 심한 말을 하다니... 샤티는 충격과 슬픔을 참을 수 없어 타오르는 제단의 불길에 그만 자신의 몸을 던져버렸다.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일이었다.
카일라스 산에서 명상에 잠겨있던 시바에게 닥샤의 궁전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이 마치 그림을 보듯 펼쳐졌다. 사랑하는 자신의 아내 샤티가 죽은 것을 알고, 시바의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시바의 이마에 있는 제3의 눈에서 불이 번쩍 뿜어졌다. 그 불은 금방 불기둥이 되어 닥샤의 왕궁에 퍼부어졌다.
갑자기 왕궁에 날벼락이 내리면서 무시무시한 괴성이 들렸다. 시바는 왕궁의 기둥과 제물들을 산산조각 내고 보이는 대로 불을 질러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었다. 닥샤왕의 머리를 잘라서 멀리 던져버렸다. 그리고 염소 머리를 잘라서 닥샤에게 붙여주었다. 이때부터 닥샤는 염소 얼굴을 하고 평생 살아야 했다.
시바는 샤티의 불타버린 시신을 어깨에 짊어지고 몇 날 며칠을 슬프게 울며 돌아다녔다. 마침내 샤티가 가루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지자 히말라야 산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 바깥 세계를 완전히 잊은 채 깊은 명상에 잠겼다. 1820년대 말까지 인도에서는 왕이 죽으면 왕비도 불길에 몸을 던져 따라 죽는 순장 제도가 있었는데, 이것은 바로 샤티의 분신에서 유래된 것이었다. 1829년 인도는 이것을 법으로 금지했다.
샤티가 죽고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봄날이었다. 파르바티(Parvati)라는 한 처녀가 봄꽃이 만발한 히말라야 산을 돌아다니다가 깊은 명상에 빠져있는 시바를 발견했다. 파르바티는 매일 아침 신선한 과일과 맑은 물을 가져다 시바 옆에 두고 갔다. 하지만 시바는 깊은 명상에 빠져서 그녀의 모든 행동에 무심하기만 했다.
사실 파르바티는 히말라야 산신의 딸로 샤티의 환생이었다. 그 무렵 천상의 세계에는 악마가 쳐들어와 신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언제쯤 악마들이 물러갈지 묻는 신들에게 브라흐마는 이렇게 예언했다.
파르바티와 시바가 결혼해서 그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나면 그 아이가 악마를 물리쳐 줄 것이다.
그러니 신들은 어떡하든 시바를 파르바티와 결혼시켜야 했다. 어느 날, 파르바티가 과일을 갖다 두고 물러나다가 시바의 발을 밟았다. 명상에 잠겨 있던 시바가 눈을 떠 파르바티를 바라보았다. 사랑의 신 카마(Kama)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화살을 날렸다. 그 화살에 맞는 순간, 눈앞에 있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아뿔싸! 너무 서두른 나머지 화살이 빗나갔고 시바가 이를 눈치 채고 말았다. 화가 난 시바는 제3의 눈에서 불을 쏘아 카마를 재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는 히말라야 더 깊은 골짜기로 숨어버렸다.
파르바티는 히말라야 골짜기를 뒤지며 시바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작정하고 숨은 시바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파르바티는 오직 시바만이 자신의 남편이 될 것이고, 그와 결혼하기 위해 혹독한 고행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파르바티는 깊은 산 속 조용한 곳을 찾아 오랜 단식과 명상으로 고행했다.
겨울에는 혹독한 추위가, 여름에는 타는 듯한 태양이 그녀를 괴롭혔지만 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수도자들은 고행을 하는 동안에는 목숨을 연명할 정도의 물과 과일만으로 살아가고 그나마 겨울에는 마른 나뭇잎으로 연명해야 한다. 하지만 파르바티는 마른 나뭇잎조차도 먹지 않았다. 어느 날 한 젊은 성자가 찾아와서 파르바티 곁에 있던 친구에게 물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대체 뭣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오?
파르바티는 시바와 결혼하고 싶어 해요.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고행하고 있답니다.
시바라고? 그 미치광이 신 말이오? 아니, 저 정도 신부감이라면 능력 있고 잘생긴 남자들이 줄을 설 텐데 뭣 때문에 그런 신을 바라는 거요?
그 말을 들은 파르바티는 눈을 파르르 떨며 성자에게 말했다.
어떻게 당신 같은 사람이 시바 신의 숭고함과 영적 능력을 알 수가 있겠어요? 당신이 어떤 말을 해도 상관없어요. 내 마음은 오직 시바 신을 향해 있으니까요.
파르바티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젊은 성자가 시바 신으로 변했다. 시바는 놀라서 꼼짝도 하지 못하는 파르바티를 꼭 안아주었다. 마침내 시바와 파르바티가 결혼하자 잿더미로 변했던 사랑의 신 카마가 환생했다. 두 사람 아이에서 태어난 아들 중 둘째 아들인 카르티케야(Kartikeya)가 브라흐마의 예언대로 악마를 물리치고 신들에게 평화를 찾아주었다.
오랜 수행으로 비범한 능력을 가진 한 성자가 인드라 신에게 하늘의 꽃으로 만든 화환을 바쳤다. 그러나 인드라는 고마워하지도 않고 그것을 자신의 코끼리에게 걸어주었다. 그것을 본 성자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모든 신들을 저주했다.
성자의 저주 때문에 신들의 힘이 점점 약해져 갔고 이 틈을 이용해 악마들이 쳐들어왔다. 악마들을 이길 수 없게 된 신들은 브라흐마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자 브라흐마는 비슈누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라고 조언한다. 비슈누가 자신을 찾아 온 신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서 우유의 바다를 휘저어 거기서 나온 불로불사의 생명수를 마시도록 하라. 그것을 마신자는 누구든지 결코 죽지 않고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마시면 죽지 않고 전지전능한 힘을 얻게 되는 불로불사의 생명수는 암리타(Amrita) 혹은 아므리따(amṛta)라고 불린다. 비슈누 신이 말한 우유의 바다를 휘젓기 위해서는 아주 큰 막대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신들은 히말라야 최고봉인 만다라 산을 뽑아다가 거꾸로 들고 막대기처럼 사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신들의 힘만으로는 부족해 악마들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생명수를 똑같이 나누어주기로 약속하자 악마들은 신나서 돕겠다고 나섰다.
인드라는 자신이 타고 다니는 독수리 가루다(Garuda)에게 만다라 산을 옮겨오라고 했다. 커다란 뱀 아난타로 만다라 산을 묶은 후에 신과 악마가 힘을 합쳐 우유의 바다를 휘휘 저었다. 그러다 그만 바다에 구멍이 나고 말았다. 모든 것이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만다라 산까지도 빨려 들어가게 생겼다. 그때 비슈누 신이 거북이로 변신해 바다 밑의 구멍을 막고 만다라 산을 받쳐 주었다. 이 거북이가 비슈누의 두 번째 아바타인 쿠르마다.
우유의 바다를 휘휘 저은 지 천 년쯤 지나니까 걸쭉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맨 처음 흘러나온 것은 단 한 방울로도 신들과 악마들, 인간들을 멸망시킬 수 있는 독약이었다. 이 독약을 어찌할지 몰라 고민하는데, 비슈누가 시바에게 독약을 마셔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시바가 기꺼이 그 독약을 마셨다. 하지만 시바도 그것을 삼키면 죽기 때문에 목에 머금기만 했다. 시바의 목은 독 때문에 늘 시퍼렇다고 한다.
계속 바다를 휘젓자 아름다운 암소, 천상의 흰 말, 흰 코끼리, 보석, 요정, 술의 신 바루니 등이 차례로 나왔다. 그 뒤를 이어 부와 행운의 여신 락슈미(Laksmi)가 나타났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녀가 나타나자 신과 악마 모두가 그녀를 차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비슈누에게 가서 그의 아내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드디어 불로불사의 생명수 암리타(Amrita)가 나왔다. 바로 이때, 똑같이 나누어갖자는 약속을 저버리고 악마들이 암리타를 가로채 도망쳐 버렸다. 그러자 비슈누가 이번에는 아름다운 여인 모히니(Mohini)로 변신해서 악마들을 유혹하기 시작했다.
모히니에게 혼을 쏙 빼앗긴 악마들은 순순히 생명수를 내놓았다. 모히니는 신들과 악마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차례차례 그것을 나누어 주겠다고 했다. 어리석은 악마들은 그녀에게 푹 빠져 자신들이 속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곧 그녀가 자신들에게도 생명수를 나누어 주겠거니 하고 맨 끝으로 가서 섰다.
그때 악마들 중의 하나인 라후(Rahu)가 앞으로 와서 신들 사이에 슬쩍 끼어들었다. 그가 막 자기 차례가 되어 암리타를 마시려 할 때 태양의 신 수리야(Surya)와 달의 신 소마(Soma)가 재빨리 비슈누 신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비슈누는 자신의 무기인 원반으로 라후가 생명수를 채 삼키기 전에 그의 목을 베어 버렸다. 라후는 생명수를 삼키지는 않았지만 입으로 마셨기 때문에 얼굴 부분은 죽지 않았다.
라후는 비슈누에게 고자질한 해와 달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해와 달을 삼켜 버리려고 계속 쫓아다녔다. 그러나 해를 삼키자 너무 뜨거워서 얼른 뱉어버렸다. 달을 삼키자 너무 차가워서 곧 뱉어버렸다. 오늘날 우리가 일식(日蝕), 월식(月蝕)이라고 부르는 것이 이렇게 해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
악마들이 모히니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신들이 암리타를 모두 마셔버린 후였다. 영원한 생명을 얻은 신들은 악마에게 이길 수 있었고, 악마들은 암리타를 한 방울도 얻을 수 없었다. 우유의 바다에서 연꽃 위에 앉은 락슈미가 나타났을 때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천상의 코끼리는 강가의 신성한 물을 그녀에게 뿌려주었고 인드라 신이 락슈미를 찬양하는 브라흐마 찬가를 노래했다. 락슈미는 그 노래에 크게 감동했다.
누구든지 나에게 이 브라흐마 찬가를 노래해 준다면 나는 그 사람을 저버리지 않겠다.
그래서 지금도 부유하게 되고 싶은 사람들은 매일 브라흐마 찬가를 부르며 락슈미에게 기도한다.
행운과 번영, 풍요의 여신. 인도 여성들은 락슈미를 이상적인 여인상으로 생각하며, 불교에서는 길상천(吉祥天)이라고 부른다. 락슈미는 비슈누가 여러 화신으로 변할 때마다 자신도 화신으로 변해서 따라다닌다. 주로 두 마리의 코끼리가 그녀의 머리 위에 성수를 부어주는 자세로 묘사된다.
모성애의 상징 샥티 여신 브라흐마가 남성성을 대표하는 신이라면 샥티는 여성성, 모성을 상징하는 우주의 근원적 힘이다. 옛날 어떤 곳에 싸야라는 상인이 살았는데 그에게는 일곱 명의 아들과 일곱 명의 며느리가 있었다. 싸야와 그의 아내는 신앙심이 매우 깊어 정기적으로 샥티 여신에게 감사의 제를 올리곤 했다.
어느 날 싸야와 그의 아내는 며느리 일곱을 모두 불러 정갈하게 목욕하고 제의에 쓰일 맛있는 음식들을 잔뜩 만들었다. 그 음식들을 제단에 올리고 막내며느리에게 제단을 잘 지키라고 시켰다. 마침 이 며느리는 임신 중이었는데, 제단의 음식이 어찌나 맛있어 보이는지 그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다. 결국 그녀는 제단 음식들을 골고루 조금씩 맛보았다.
시어머니가 돌아와서 보니 어찌된 일인지 음식들이 조금씩 줄어든 것이었다. 며느리에게 그 연유를 물으니 며느리는 잠깐 한눈을 판 사이 고양이가 음식을 먹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얼마 후 며느리가 아기를 낳았는데, 이 아기가 잠깐 사이에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 아기를 잃은 며느리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끝내 아기를 찾을 수 없었다.
다시 두 번째 아기를 낳았는데 이 아기도 또 사라져 버렸다. 세 번째 아이를 낳은 후에도 역시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여섯 명의 아기를 차례대로 잃었다. 이제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된 며느리는 숲속에서 혼자 몰래 아기를 낳았다. 그러나 젖을 먹이다가 깜빡 조는 사이에 누군가 순식간에 아기를 뺏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만치 검은 고양이가 아기를 물고 가는 것이 보였다.
고양이는 아기를 물어다가 샥티 여신의 발밑에 놓았다. 그리고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십 수 년 전 샥티 여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날 막내며느리가 자신에게 누명을 씌우는 것을 엿듣고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아기를 훔쳐갔다는 것이다. 샥티 여신은 막내며느리를 불러 타일렀다.
나에게 바치는 제물을 먼저 맛보고 고양이에게 그 죄를 덮어씌우다니, 너는 정말 신앙심이 없구나. 하지만 나는 너를 용서할 것이다. 여기 일곱 명의 아들들이 있으니 데려가라. 내가 너희를 돌보는 한 다시는 이런 재앙이 없을 것이다.
마누의 아들인 프리야바라타 왕 역시 샥티 여신의 은총을 입어 자식을 구한다. 프리야바라타와 그의 아내는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아기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아기는 12년 동안이나 엄마의 뱃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마침내 아이가 태어나기는 했지만 손발이 차고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슬피 우는 프리야바라타와 아내 앞에 금빛 마차를 탄 샥티 여신이 나타났다. 그러더니 아기의 이마에 손을 살짝 갖다 댔다. 그러자 죽은 줄 알았던 아기가 방긋 미소를 짓는 것이 아닌가! 샥티 여신은 살아난 아기를 안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프리야바라타와 아내는 아기를 돌려달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샥티는 자신을 위해 주기적으로 의식을 치르겠다는 약속을 하면 아기를 돌려주겠다고 했다. 프리야바라타가 약속하자 샥티는 아기를 돌려주었다. 그로부터 인도에서는 매월 둘째 주 여섯 번째 밤에 샥티 여신에게 제의를 올리는 전통이 생겼다. 지금도 샥티 여신에게 자식을 갖게 해달라거나 자녀들의 건강과 성공을 기원하는 부모들의 기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샥티 여신은 여러 모습으로 환생해 시바 신과 결혼한다. 그 중에서 파르바티는 여성적이면서도 독립적인 양면성을 지닌 여신이다. 한 성자가 정성을 다해 희생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나타난 악마 바나가 제단에 놓인 희생제물을 보고 군침을 흘렸다. 그런 바나에게 성자는 여인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저주를 퍼부었다. 단지 쳐다보았을 뿐인데 혹독한 저주에 걸린 바나는 몹시 억울해하며 성자에게 저주를 풀어달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성자는 여인이 아닌 처녀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고쳐주었다.
바나는 마음이 가벼워지자 오히려 그 전보다 더 못된 짓을 많이 하고 다녔다. 사실 모든 여인들은 소녀에서 처녀가 되기 전에 대부분 결혼을 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처녀가 있다 하더라도 자신을 죽일 만큼 힘이 세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 모습을 본 신들은 당장 시바에게 달려가 바나를 혼내달라고 간청했다. 시바는 아내인 파르바티에게 말했다.
그 정도 일이라면 내가 나설 필요도 없이 당신이 해결할 수 있잖소. 당신이 처녀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서 바나를 혼내주시오. 당신은 충분히 그럴 힘이 있소.
파르바티는 즉시 아름다운 처녀 칸야로 태어나 바나에게 갔다. 바나는 칸야에게 반해서 그녀를 쫓아다녔다. 들은 척도 안하고 애를 태우는 칸야를 납치할 생각까지 했다. 그 계획을 알아차린 칸야는 이때다 하고 바나와 싸움을 시작했고 마침내 바나를 죽였다.
악마 바나를 무찌른 칸야는 원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싶었다. 시바 역시 당연히 칸야와 다시 결혼해서 아내를 되찾고 싶었다. 그러나 신들의 생각은 달랐다. 바나는 사라졌지만 다른 무수한 악마들이 시도 때도 없이 쳐들어와 못 살게 굴고 자신들의 아내를 납치하거나 희롱하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그러므로 칸야가 계속 처녀 신으로 남아서 자신들을 지켜주었으면 했다. 시바가 결혼 준비를 해달라고 하자 꾀 많은 성자 나라다가 시바에게 말했다.
전생의 인연인 칸야를 다시 부인으로 맞이하게 되니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그런데 시바시여, 원래 결혼에는 결혼 선물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계십니까?
그래? 그런 말은 금시초문인데? 왜 나에게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을까?
아마도 절차나 의식에 얽매이는 걸 싫어하시니 아무도 그런 말씀을 드리지 않은 모양이군요. 결혼 선물은 신랑과 신부를 완전하게 이어주는 중요한 것이랍니다.
그래, 어떤 선물이 필요한데?
그것은 부자나 가난한 이나 나이 많은 이나 나이 적은이나 신분이 높은 이나 낮은 이나 똑같답니다. 바로 구멍 없는 코코넛과 섬유질 없는 망고와 잎맥 없는 나뭇잎 이 세 가지 입니다.
흥, 말도 안 되는 소리. 구멍 없는 코코넛이나 섬유질 없는 망고가 어디 있다는 거냐? 게다가 잎맥 없는 나뭇잎이라니!
시바시여, 당신은 불가능이 없는 분이시고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당신이라면 꼭 그 선물을 구하실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이것은 시바가 칸야와 결혼을 못하게 만들기 위한 구실이었다. 신들의 부탁을 받은 나라다가 잔꾀를 내서 시바의 결혼을 방해한 것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시바는 몇 날 며칠 고민하며 세 가지 선물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리고 마침내 세 가지 선물을 구해왔다. 할 말이 없어진 나라다는 결혼 날짜를 이틀 뒤 자정으로 잡았다.
시바와 칸야는 빨리 그 시간이 오기를 학수고대했다. 마침내 자정이 되어 시바와 칸야가 결혼식을 거행하려는 순간, 어디선가 새벽을 알리는 수탉 울음소리가 들렸다. 시바와 친구들은 자신들이 결혼식에 늦어 버린 것으로 알고 그냥 돌아갔다. 하지만 그것 역시 나라다의 잔꾀였다. 곱게 단장을 하고 결혼식을 손꼽아 기다리던 칸야는 신랑을 맞이하지 못한 채 처녀로 남았으며, 깊은 슬픔에 빠져 그때부터 명상과 고행에만 전념하게 되었다.
깔리는 샥티의 화신 중 두르가와 쌍벽을 이루는 거칠고 무시무시한 여신이다. 검은 피부에 네 개의 팔을 가지고 있고 쑥 내민 혀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진다. 악마의 머리와 손목을 꿰어 만든 목걸이를 하고 있다.
어느 날 깔리는 악마를 크게 무찌르고 승리에 취해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런데 춤의 황홀경에 빠진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었다. 신들이 제발 멈추라고 아우성이었지만 깔리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신들이 너무 괴로워하자 보다 못한 시바가 조용히 그녀의 발밑에 누웠다. 한참 정신없이 춤추던 깔리는 자신이 밟고 있는 게 남편 시바라는 걸 알고 혀를 쏙 내밀었다. 그녀가 혀를 쏙 빼문 모습으로 알려진 것은 바로 이런 신화에서 유래한 것이다.
∎ 코끼리 머리를 한 가네샤(Ganesha)
시바와 파르바티 사이에 태어난 가네샤(Ganesha)는 코끼리 머리를 하고 있는 신이다. 그러나 가네샤가 태어날 때부터 코끼리 머리였던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전해 내려오는 몇 가지 재미있는 신화가 있다. 어느 날 히말라야에서 수행을 하던 시바가 오래간만에 집에 돌아왔다.
부인! 내가 돌아왔소!
호기있게 문을 열고 들어오니 아니 이게 웬일? 아내인 파르바티 옆에 웬 젊은 남자가 붙어있는 게 아닌가! 성질 급한 시바는 앞뒤 상황을 알아보기도 전에 그 남자의 머리통부터 날려버렸다. 그러자 파르바티가 달려나와 어떻게 당신 아들도 못 알아본단 말이에요!하며 울부짖었다.
시바가 홧김에 머리통을 날려버린 그 남자는 훌쩍 커버린 자신의 장남이었던 것이다. 결국 가네샤는 떨어진 머리통을 찾지 못하여 코끼리 머리를 달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탄생 신화도 있다. 시바가 며칠 집을 비웠을 때 파르바티는 자기 몸의 일부분으로 남자 아이를 하나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아들아, 엄마가 느긋하게 목욕을 좀 하고 싶으니 누가 오는지 망 좀 봐줄래?
그녀의 착한 아들은 기꺼이 그러겠다고 했다. 그런데 사냥을 갔던 시바가 예정보다 일찍 돌아왔다. 시바가 방으로 들어가려하자 아들이 못 들어가게 막았다.
아니, 내 아내 방에 내가 들어간다는데 뭐가 문제냐.
그래도 어머니가 저에게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셨어요.
네 이놈, 내가 아무나냐? 그러는 넌 대체 누구냐?
화가 난 시바는 가네샤의 목을 쳤다. 마침 목욕을 마치고 나오던 파르바티가 그 장면을 보고 말았다. 길길이 날뛰는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시바는 지나가는 코끼리의 머리를 가네샤의 머리 대신 붙여 주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신화에서는 아내를 사랑하는 시바의 마음을 알 수 있다.
파르바티는 무척이나 아이를 갖고 싶어 했다. 그런데 시바는 못 들은 척했다. 파르바티가 상심해 있자 아이 대신 붉은 천을 잘라 인형을 만들어 주었다. 순식간에 인형은 살아있는 아이로 변해 파르바티에게 안겼다. 시바가 기뻐하는 아내에게 말했다.
이 아이는 당신의 사랑으로 태어난 아이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죽음의 별을 타고 났기에 오래 살지 못한다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북쪽으로 향해 있던 아이의 목이 떨어져 죽었다. 슬퍼하는 파르바티를 위해 시바는 북쪽으로 향한 다른 머리를 찾아 아들 어깨 위에 올려주었다. 그러자 아이는 아름다운 소년의 형상으로 변했다.
가네샤는 코끼리 머리에 볼록 튀어나온 배를 가진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엄니를 하나만 가지고 있다. 어느 날 시바가 낮잠을 자는데 비슈누의 여섯 번째 화신인 파라수라마가 시바를 찾아왔다.
가네샤가 아버지의 낮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파라수라마를 막아서자 파라수라마는 도끼를 휘둘렀다. 그러자 가네샤는 자신의 엄니로 파라수라마를 공격했다. 그 과정에서 엄니 한 개가 부러져 버렸다고 하니 가네샤는 어머니를 위해 머리를, 아버지를 위해 엄니를 아낌없이 내던진 효자 아들이었던 모양이다.
아버지 수르야의 저주를 받아 최초의 인간이 된 마누가 홍수 신화의 주인공인 마누와 같은 인물인지는 불확실하다. 대체로 우주가 파괴되었다가 다시 창조되는 각 마하유마다 창조를 이어가는 최초의 인간 마누가 있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따라서 인도 신화에는 적어도 둘 이상의 마누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엄밀히 말해 마누는 신이 아니다. 그러나 홍수 신화의 주역으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인물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창조되기 직전, 마지막으로 파괴되었던 시대의 마누는 홍수로부터 세상 만물의 씨앗을 지킨 위대한 사람으로 전해진다.
어느 날 마누가 강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그를 부르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니 강물 속에 작은 물고기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게 아닌가!
마누, 여기는 큰 물고기가 너무 많아요. 제발 나를 이 물에서 좀 데려가 주실래요?
마누는 물고기를 두 손으로 건져 집으로 데려왔다. 이 물고기는 비슈누의 첫 번째 아바타인 마트스야였다. 마트스야는 집으로 오자 며칠 새 무럭무럭 자라서 금세 욕조가 비좁아졌다. 마누는 이 물고기가 보통 물고기가 아닌 걸 알고 바다에 놓아주기로 했다. 마누가 바다로 가서 물고기를 놓아주려는 순간 물고기가 이렇게 말했다.
착한 사람 마누야, 나는 비슈누이고 네가 구해준 물고기는 바로 나의 화신이다. 네가 나를 구해준 것처럼 나도 너를 구해주마.
비슈누는 머지않아 홍수가 나서 온 세상이 물에 잠기게 될 테니 큰 배를 만들어 대비하라고 일러주었다. 마누는 비슈누 신이 알려준 대로 당장 커다란 배를 만들어 그 안에 모든 것들의 씨앗을 골고루 넣었다. 그리고 때를 기다렸다.
마침내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세상은 물바다가 되었다. 마누를 실은 방주는 폭풍우 속에서 표류했다. 마누가 비슈누 신께 기도를 올리자 어디선가 마트스야(Matsya)가 나타났다. 마트스야는 이제 산만큼 커져 있었다. 마누가 마트스야의 머리에 난 뿔에 밧줄을 걸자 마트스야는 배를 끌고 헤엄치기 시작했다.
한참을 헤엄치고 있는데 어디선가 하야그리바라는 악마가 나타났다. 하야그리바는 신들의 가르침인 베다를 모두 훔쳐 달아나는 중이었다. 하야그리바가 배를 부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물고기 마트스야를 공격해왔다. 화가 난 마트스야는 하야그리바의 배를 갈라 베다 경전을 꺼내 브라흐마 신에게 넘겨주었다.
마침내 방주는 히말라야 산 정상에 닿았다. 비가 그치고 세상이 마르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나야 했다. 다시 태양이 빛나고 산과 들이 드러나자 마누는 희생제를 준비했다. 그러자 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나타나서 마누에게 온갖 것들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선물로 주었다. 마누는 방주에 실었던 씨앗들을 꺼내 심었고 온갖 짐승과 남자와 여자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결혼해서 자손을 낳아 역사를 이어나갔다.
원숭이 신 하누만(Hanuman)은 하위 신이지만 기도를 잘 들어주기 때문에 서민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최고이다. 하누만은 신 중에서 가장 지위가 낮은 하위 신이면서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다른 신들을 위해 아낌없이 봉사하는 착한 심성을 가졌다. 하누만의 어머니는 원숭이 족장의 딸 안자니인데, 아버지는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다. 파괴의 신 시바라는 설도 있고 바람의 신 바유라는 설, 원숭이 족장인 케사리라는 설 등 다양하다. 바람의 신 바유의 아들이기 때문에 몸을 자유자재로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있고, 그런 재주 때문에 라마의 아내 시타를 구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도 한다.
그 중에서 가장 일반적인 설은 하누만이 시바의 아들이라는 설이다. 불사불로의 생명수인 암리타를 빼앗으려는 악마들을 유혹하기 위해 모히니가 나타났을 때 시바가 그녀를 보고 그만 사정하고 말았다. 성자들과 예언자들이 시바의 귀중한 정액을 원숭이 족장의 딸 안자니의 자궁에 심었고, 거기서 하누만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하누만은 불교 신화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서유기의 주인공인 손오공이 바로 하누만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누만은 시타가 잡혀 있는 랑카로 날아가 시타에게 라마가 곧 구하러 올 것이라고 전해준다. 꼬리를 늘려 꼬리 끝에 불을 붙인 후 라바나 왕의 정원을 모두 태우고 라마에게로 돌아간다. 라마 군대가 바다를 건널 때는 히말라야에서 커다란 바위와 돌들을 날라다 다리를 놓아주기도 했다.
아주 오랜 옛날, 태양 왕조의 사가르 왕이 희생제의에 쓸 말을 들판에 풀어놓고 6천 명의 아들들에게 지키라고 했다. 그런데 심술꾸러기 인드라가 그 말을 훔쳐 지하 세계인 빠딸라로 데려갔다. 그곳은 성자 까삘라가 명상을 하는 곳 근처였다. 말을 찾아 나선 아들들은 까삘라가 말 도둑이라고 생각해서 공격했다. 누명을 쓰고 화가 난 까삘라는 아들들을 모두 재로 만들어 버렸다.
사가르 왕은 아들들이 돌아오지 않자 손자인 안슈만을 보냈다. 까삘라에게 사건의 전말을 들은 안슈만은 자신의 가족들의 무례함을 사과하고, 부디 노여움을 풀라고 달랬다. 다시 기분이 좋아진 까삘라는 천상의 강물이 땅 위로 흘러내려와 그 물로 정화 의식을 행하면 재가 된 가족들이 모두 구원받을 수 있을 거라고 방법을 알려주었다.
왕이 된 안슈만은 이제나 저제나 조상들의 저주를 풀어줄 방법을 고심했다. 그러다 아들 딜리파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딜리파 역시 가문의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며 고행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 태어날 아들이 천상의 강물을 흘러내리게 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너무나 기뻐 아들이 태어나기만을 고대하던 딜리파는 막상 아들을 보자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들 바기라트는 고개도 제대로 못 가누는 장애인이었던 것이다.
제 몸 하나도 추스르지 못하는 애가 무슨 일을 한단 말이냐!
어느 날, 바기라트가 나무 밑에 앉아 있는데 성자가 지나갔다. 바기라트는 불편한 몸으로 최선을 다해 성자에게 경의를 표했지만 성자에게는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을 비웃는 듯이 보였다. 바기라트가 원래 자신의 몸이 불구여서 그렇다고 설명하자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던 성자는 말했다.
그 말이 진짜라면 너는 건강하고 멋진 젊은이로 바뀔 것이고, 그 말이 나를 놀리기 위한 거짓이라면 너는 더 흉한 모습으로 바뀔 것이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기라트(Bhagirathi)는 건강하고 멋진 젊은이로 바뀌었다. 바기라트는 아버지 딜리파에게 달려가 자신의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딜리파는 기뻐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 이제 신의 예언이 이루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성자 덕분에 멋진 남자로 변한 바기라트는 신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 왕위를 버리고 히말라야로 떠났다. 그리고 강가 여신에게 부디 땅으로 흘러 내려와 달라고 기도했다. 강가는 비슈누의 밭 밀에서 샘솟아 하늘을 은하수처럼 흐르다가 시바의 머리카락을 타고 내려오는 갠지스 강의 여신이다. 하늘에서만 지내며 하늘만 적셔주던 강가는 오만하게 말했다.
내가 하늘에서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걸 감당할 수 있을까? 아마 땅이 갈라지고 부스러질 걸.
그 얘기를 듣고 바기라트는 이번에는 시바에게 기도했다.
강가 여신의 센 물줄기를 이겨낼 수 있는 신은 오직 시바 당신뿐입니다. 강물을 머리로 받아 주면 물줄기가 가늘게 흩어질 테니 부디 그렇게 좀 해주세요.
시바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약속한 날이 되자 강가 여신은 자신의 물줄기를 쏟아냈다. 과연 쏟아지는 물줄기는 어마어마하게 힘이 셌지만 시바는 그 물줄기를 자신의 머리로 고스란히 받아냈다. 강가는 자신의 센 물줄기를 잘도 받아내는 시바가 좀 얄미웠다. 시바가 어디까지 견디는지 궁금해져서 더 세게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러자 시바는 그녀가 더 이상 장난치지 못하도록 물줄기를 자신의 머리채 안에 가두어 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조바심이 난 것은 바기라트였다. 신의 예언을 이룰 수 있는 길이 코앞까지 왔는데 시바가 물줄기를 가두어 버린 것이다. 시바신에게 제발 가두어둔 강가 여신을 풀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했다.
시바는 못이기는 체하고 강가를 가두었던 머리채를 풀었다. 그러자 다시 강가 여신의 물줄기는 세차게 흘러내렸다. 바기라트가 고동을 불며 걸을 때마다 강가의 물줄기가 뒤를 이었고, 재로 변했던 식구들이 하나 둘씩 다시 살아났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강가 여신에게 꽃과 과일을 바치고 강물에 몸을 담그며 정화 의식을 행하기 시작했다. 인도인들은 갠지스 강이 죄를 씻어내고 죽은 자를 무사히 저승으로 돌려보낸다고도 믿는다.
갠지스 강가에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만 묵는 호텔이 있다. 구원의 집이라는 뜻의 무크티바완이 그것. 인도인들은 갠지스 강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거기 뿌려지면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해 임종을 앞둔 사람들이 이곳을 많이 찾는다. 12개의 방에 최소한의 숙박시설만 갖추고 기도를 해줄 성직자 4명이 서비스의 전부다. 매달 30∼70명 정도가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는데, 예약 손님이 넘쳐 2주가 지나도 임종을 맞이하지 못하면 방을 내주어야 한다.
악마를 흔히 아수라라고 부르는데, 라바나는 아수라의 전형적인 모델이다. 라바나(Rabana)는 랑카(Lanca)에 살며 시타를 납치했다가 죽임을 당하는데, 그 전에는 히란야카시푸, 그 후에는 시수파라 등의 화신으로 등장한다.
악마의 첫 번째 화신인 히란야카시푸는 신들을 몰아낸 후 왕의 자리에 올라 신들의 나라를 지배했다. 그러나 자신의 아들 프라할다가 비슈누 신을 숭배하자 아들을 죽이려고 했다. 독사들이 우글거리는 굴에 아들을 넣었지만 신들의 보호를 받은 프라할다는 멀쩡하게 살아 나왔다. 또 벼랑 위에서 밀어 바다에 빠뜨렸지만 역시 다치지 않았다. 화가 난 히란야카시푸가 비슈누에게 도전장을 내자 비슈누는 반은 사자, 반은 인간인 나라싱하(Narasimha) 화신으로 나타나 히란야카시푸를 죽였다.
아수라의 두 번째 화신은 앞에서 언급한 라마의 적라바나 왕이었다. 악마의 화신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유명하다. 원숭이 군대를 데리고 쳐들어온 라마에게 죽임을 당한 후 세 번째 화신 시수파라 악마왕으로 나타난다. 왕의 아들인 시수파라는 세 개의 눈과 네 개의 팔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 모습을 보고 근심에 싸인 부모에게 신성한 목소리가 들렸다.
시수파라는 죽기 전까지 많은 부와 행운을 갖게 될 것이다. 아기를 죽이게 될 사람이 와서 그 무릎에 앉히면 세 번째 눈과 두 개의 팔이 사라질 것이다.
어느 날 왕궁에 온 젊은 왕자 크리슈나가 시수파라를 무릎에 앉혔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시수파라의 세 번째 눈과 필요 없는 두 개의 팔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시수파라의 부모는 가슴이 철렁했다. 아들을 정상으로 만든 사람이 그 애를 죽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릎을 끓고 아들을 죽이지 말아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몇 년 후 한 제의에서 만난 시수파라와 크리슈나는 크게 싸우다가 결국 크리슈나의 번쩍이는 원반에 시수파라의 몸이 두 동강 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