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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브 신화(Slavix Mythology)
고대 그리스 인도, 중국 또는 이집트 신화와 달리 슬라브 신화의 직접적인 문헌기록은 없다. 슬라브인들이 862년 성인 키릴루스과 메토디우스가 슬라브 땅에 도착하기 전에 어떤 종류의 문자가 있었는지는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원래 종교적 신념과 전통은 모두 세대를 거쳐 구두로 전달되었을 것이고, 그 전에 슬라브 종교의 희박한 기록은 주로 슬라브 적이 아닌 기독교 선교사들이 기록했다. 기존 슬라브 숭배 관념과 고고학 유물은 발견되었지만 기존의 역사적 기록을 확인하는 것 이외에 는거의 얻을 수 없었다. 오래된 신화적 신념과 이교도 축제의 단편들은 모든 슬라브 민족의 민속 관습, 노래, 이야기 및 민속 이야기에서 오늘날까지 살아 남아있다.
공통 인도 유럽 종교에서 아주 전형적인 우주론 개념인 세계 나무 (World Tree)는 슬라브 신화에도 존재한다. 세계 나무의 신화적 상징은 매우 강했고, 기독교화 이후 수세기 동안 슬라브 민속문화에서 살아 남았다. 세계 나무에는 3단계의 우주가 존재하는데, 왕관으로 대표되는 부분은 하늘, 신들과 천체의 영역을 표현했다. 이들은 종종 뿌리로 대표되는 반대 지역인 지하세계와 결합하여 죽음과 대항하기도 했다.
세계 나무의 축은 수평적, 수직적 세계이다. 신들과 필멸자들의 세계는 바다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고, 바다를 둘러싸고 죽은 이들의 땅을 가로 지르며, 매년 겨울에 새들이 날아 봄에 이곳으로 돌아 왔다. 많은 민속적 개념에서 바다 건너편에서 오는 바다를 가로 지르는 개념은 죽어가는 것과 삶으로 돌아 오는 것과 동일시 된다. 이것은 내세가 물의 몸을 가로 질러 지나간다는 고대 신화의 개념을 확증한다. 또한, 수평축에서 세계는 4 개의 기본 방향 (북쪽, 동쪽, 남쪽, 서쪽)으로 나뉘었다.
슬라브 신화는 기원전 7세기 이래 문학의 대상이었던 그리스어와 달리 언급되지 않았다. 다른 인도 유럽인들처럼, 슬라브 인들은 개발의 하위 단계에서부터 더 높은 종교로 상승했다. 그러나 이것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중세의 러시아 작가들은 고대의 이교도를 비웃는 고대 교회의 아버지들의 전통을 따르기를 더 좋아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대로 묘사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교도의 행동을 수행하는 청중들에게 상응하는 생각과 주문으로 가득했으며, 이교도 풍습에 기꺼이 참여하고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을 피했다. 이런 이유로, 중세 작가들은 주로 슬라브를 비난했다. 그러나 15∼17세기에 역사가들은 민족신화(民族神話)를 경멸하면서 취급을 멈추고 신과 슬라브 숭배에 관한 민족지 및 서면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슬라브인은 천체의 신, 죽음과 생명(마론과 살아), 전쟁과 천국, 식물의 왕국과 다산을 믿었다. 물과 태양뿐만 아니라 수많은 영혼이 신성화되었다. 고대에는 종교 의식과 전통의 표현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이해되었다. 따라서 슬라브 신화가 탄생했으며, 언어는 필수 불가결 한 전통 도구가 되었다.
원래 러시아 과학의 언어 비교와 관련되었던 방법은 슬라브 사람들의 신화적 전설을 연구하기 위해 그것을 적용한 부세예브(Buslayev)에 의해 처음으로 민속으로 옮겨졌다. “사람들은 예전에 시인이었고 개인은 이야기꾼이나 가수로 여겨졌고 고대 슬라브 의례는 전설적인 에페스(Ephesus, 고대 유적도시)가 발전한 시기에 서사를 완전히 지배했다. 동화와 서사시뿐만 아니라 속담, 수수께끼, 간략한 음모, 간판, 맹세와 미신에도 전설이 있다.” 점차적으로, 부세예브의 신화론(神話論)은 차용 이론과 비교 신화의 학교로 발전한다. 그녀의 초점은 신화 창조의 문제였다. 이 이론에 따르면 슬라브 신화는 아리아 족에 의해 창조되었다.
아파나시브(Afanasyev, 1826년∼1871년)에 따른 비교 방법도 있다. 그는 동화와 서사시 이야기가 슬라브 신화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믿었다. 루스(Rus, 사람들)의 영웅적인 서사시는 다른 신화 체계에서 영웅적 신화와 동등할 수 있다. 서사시는 11∼16세기에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에 대해 말하면서 그들의 가장 유명한 서사시 미쿨라 셀랴니노비치(Mikula Selyaninovich), 일리아 무로마츠(Ilya Muromets), 바실리 부라예프(Vasily Buslaev), 볼가(Volga) 등을 들 수 있다. 이는 그들의 역사의 특정 시대와 관련된 인격체 일뿐만 아니라 영웅적인 개척자이자 수호자이기도 하다.
슬라브(Slovo) 민족의 불가리아 창조신화를 보면 창조신은 인간을 만들기 이전에 악마와 함께 세상을 창조했다고 한다. 인간의 존재 이전에 악마가 존재했다는 것은 악(惡)이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앞서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태초에 세상에는 땅도 인간도 없었고 다만 물만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과 악마가 있었다.
어느 날 신이 악마에게 말했다.
함께 땅과 인간을 만들자.”
좋아. 그런데 어디에서 흙을 떠오지?
악마가 물었다.
물 밑에 흙이 있지. 자네가 잠수를 해서 떠오면 좋겠는데. 그런데 물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신의 힘과 내 힘으로!’라고 말해야 해.
내 힘과 신의 힘으로!
그런데 악마는 말의 순서를 바꾸어서 말하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 때문에 물 밑바닥까지 내려갈 수 없었다. 물 밖으로 나온 악마는 고집스럽게 '내 힘과 신의 힘으로'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악마는 신이 일러준 대로 말했다.
신의 힘과 내 힘으로!
악마는 물의 밑바닥으로 내려가 손톱으로 흙을 조금 긁어서 물 밖으로 나왔다. 신이 그 흙을 물 위에 올려놓자 육지로 변했다.
신의 강한 힘에 질투를 느낀 악마는 신이 잠든 사이에 신을 물가로 끌고 가서 익사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육지가 끊임없이 넓어졌기 때문에 악마가 아무리 애를 써도 물가에 다다를 수가 없었다. 결국 악마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신은 천사와 벌꿀, 인간 등을 만들었고 악마는 산양과 이리 등을 만들었다. 그 때 신과 악마는 서로 인간이 살아 있을 때에는 신이 소유하고 죽으면 악마가 소유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이 신화에서 보듯 악마는 인간이 탄생하기 이전부터 존재했으며 신과 함께 세상을 창조했다. 인간은 선한 신에 의해 창조되었지만 죽은 후에는 신과 함께 세상을 공동으로 창조한 악마를 주인으로 섬겨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운명이다. 여기에는 인간의 의지가 개입될 여지가 전혀 없다.
어느 날, 탱그리의 아들 베르보그는 인간세계를 보시고 감탄하셨다. 이렇게 평화로운 세계는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문득 베르보그는 그러한 인간세상을 다스리고 싶어졌고 아버지인 탱그리에게 인간세계를 다스리고 싶다고 청을 넣었다.
전능하시고 하늘을 주관하시는 하늘세계의 탱그리께서는 이러한 베르보그를 대견하게 보시고 하투루에게 인간세상을 다스리도록 허락하셨다. 탱그리께서는 숲의 신 레쉬이, 밭의 신 폴레비크, 물의 신 보자노이 등을 베르보그를 보필하도록 명을 내리셨고 하투루는 지상세계에 내려와 지상의 왕이 되었다.
어느 날 불곰과 백곰이 베르보그를 찾아와 영생을 얻기를 청했고 베르보그는 이들에게 들쭉과 마늘을 주며 21일간 수행하면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하였다. 불곰은 21일간 수행을 잘 마쳤으나 백곰은 7일만에 뛰쳐나가며 영생이 되길 거부하였다.
21일간 수행을 마친 불곰은 영원한 생명의 신이 되었고 산 위에 군림하는 산신 커발루가 되었다.
1천 년 전에 그리핀이 세상에 내려와 통치를 하였고 그 후계자들이 전쟁을 벌였으나 최후의 승자는 아부로카바였다. 아부로카바는 남신이지만 태양의 정기를 이어받아 9쌍둥이를 잉태하니 달이 차서 9쌍둥이가 나온 건 인간이 아니라 알이었다.
알을 낳은 아부로카바는 곧 죽어 이생을 마감했고 9개의 알은 동시에 깨지며 알에서 모두 인간이 나왔다. 9개의 알에서 나온 인간은 곧 성년이 되어 세상을 통치했고 수명이 다하자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였다.
슬라브는 정령과 작은 신들이 가득한 세계다. 숲에는 숲의 정령이, 샘과 호수에는 물의 정령이, 보리밭에는 한낮의 정령이 있으며, 나무와 풀에도 정령들이 붙어있다. 이러한 정령들은 마을을 벗어난 자연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생활 깊숙이까지 섞여 들어와 살아가고 있다. 통나무집에는 통나무집의 정령이 있고, 부뚜막에는 부뚜막의 정령이 있으며, 곡식창고나 목욕탕에도 그 나름의 정령이 붙어 산다. 이러한 신비로운 땅이 슬라브다.
슬라브 신화는 유럽의 신화들 중에서 가장 알려지지 않은 분야인데, 슬라브족들의 신화는 대부분 구전으로만 전했기 때문에 문서로 남아있는 자료가 매우 적다. 그나마 슬라브족과 적대하거나 교류하던 동로마 제국의 문서에 약간 나타나는 자료만 가지고 연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한, 슬라브족들은 기독교에 매우 강하게 동화된 데다가, 20세기 들어서는 공산주의 정권까지 들어서는 바람에 신화를 미신이라고 탄압하여 더욱 희미해지고 말았다. 다행히 공산주의 정권들이 붕괴하고 나서는 신화 연구 학자들이 시골을 돌면서 노인들이 기억하고 있는 옛 신화의 흔적들을 찾아서 수집하고 연구하는데 매우 열심이다.
슬라브 신화의 큰 특징은 세계의 창조를 물에서 본다는 점이다. 즉, 태초에 우주에는 아무것도 없고 오직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바다만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다 속에서 창조신 ‘둠네제울(Dumnezeul)’이 나타나 세계를 창조하려고 하는데, 그를 돕는 부속신도 나타나 함께 세계를 만든다. 그러나 창조신에 비해 부속신은 힘이 약해서 사악하거나 부실한 것들만 창조해낸다. 창조신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부속신을 가엾게 생각해서 그의 창조물들이 세계에 거주하는 것을 용인했다고 한다. 후에 기독교 위경(僞經, Pseudographia)이 슬라브 쪽에 많이 퍼지는데 그 위경에 나타난 기독교적 세계관도 슬라브 신화와 전설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기독교의 도래 이후, 슬라브 신화의 창조신은 기독교의 절대 유일신으로, 부속신은 악마와 동일시되었다. 이 밖에 슬라브 신화의 많은 신들이 기독교의 성인들이나 성모와 동일시되었다. 예를 들면 정령 중 하나인 ‘쿠팔라’를 기리는 쿠팔라 축제가 동슬라브인들에게 있었는데 이 날이 성 요한 축일과 비슷한 날짜라서 러시아에서는 ‘이반 쿠팔라 축일’로 바뀌었다.
슬라브 신화에는 거인 신화도 있다. 그 중에서는 인간이 거인의 후손이라는 종류도 있다. 태초에 인간은 악마와도 대등하게 싸우고, 그 체구가 하늘과 땅에 가득 찰 정도로 거대하며, 신의 식탁에서 보물을 훔쳐낼 정도로 강력했는데 오만함으로 인해 신의 벌을 받아서 지금처럼 작고 왜소한 인간으로 타락했다는 것. 바벨탑신화하고 비슷하다.
슬라브 신화의 특징으로는 숭배되는 신들이 여러 개의 머리가 달린 다두(多頭) 형태라는 것이다. 다른 유럽 신화인 그리스·로마 신화나 북유럽 신화, 켈트 신화와는 약간 이질적이다. 많은 신화학자들은 이런 슬라브 신화의 원인을 인도 신화와 결부시킨다. 인도 신화에서 숭배되는 브라흐마나 아그니(Agni) 등의 신들도 머리가 여러 개인데, 이런 인도 신화가 슬라브 신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는, 슬라브 신화와 브라만교와 힌두교를 통해 이어져온 인도 신화가 같은 계통에서 유래한다고 본다. 중앙아시아에서 발원하여 이란, 인도, 그리고 유럽으로 이동한 아리아족 세력이 가지고 있던 신앙이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변형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현대 러시아어에서 신(神)은 보그(Бог)라고 부르는데, 이 단어는 고대 인도의 언어인 산스크리트어에서 '부(富)'와 '빛(光)'을 뜻하는 말이었다.
아래의 신들이 모든 슬라브 신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서슬라브 신화에서만 나오는 것도 있고 동슬라브 신화에서만 나오는 것도 있으며 남슬라브 신화에서만 나오는 것도 있으나 공통적으로 나오는 신도 있다.
그리고 슬라브 신화가 앞서 언급했듯이 그에 대하여 자신들이 남긴 제대로 된 문자 기록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라서 체계적이지 못 하고 꽤 중구난방인 편이다. 그러므로 아래의 신 분류는, 편의상 이렇게 구분한 것이다. 슬라브 신화에서 ‘최초의 신들’이 누구인가에 대한 개념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 기준이나 여타 요소가 대단히 모호하며 이설이 많으므로 반드시 어떠하다고 믿거나 고집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도록 하자.
북유럽 신화도 그렇지만 러시아에서도 신이교주의자들이 종교형태로 재현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걸 러시아 현지에서는 로드노베리예(Роднове́рие)라고 부르는데 문제는 이것도 간혹 본래 목적을 잊어버린 패륜아들이 관련 심볼(symbol)들을 악용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는 것이다.
요정이나 정령의 이야기로 가장 유명한 나라는 아마도 영국일 것이다. 영국의 요정들은 자신들만의 사회를 가지고 숲 등지에서 살아가며, 민가에서 인간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일은 드물다. 브라우니 등의 요정은 분명히 집안에서 살아가기는 하지만, 그것은 거의 보이지 않는 하인과 같은 역할로, 인간들과 대등하지 못한 입장에 처해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에 비해, 슬라브의 작은 신들은 상당수가 인간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으며, 인간의 집에 기생하는 입장인데도 수호신처럼 숭배되고 있다. 하나의 집에 하나가 아니라 여러 정령이 붙어있음에도 그들은 다 나름대로의 대접을 받고 있다.
최고신이 세계를 창조할 때, 정령들 중 일부가 반란을 일으켰다. 최고신은 그 정령들을 지상으로 내던져 버렸다. 그중 숲이나 물 속에 떨어진 정령들은 반란을 일으켰던 때의 사악한 마음을 그대로 지니고 있지만, 인가에 떨어진 정령들은 인간에게 호의를 품고 선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정령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도모보이’다. 요정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도모보이’ 라는 정령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슬라브의 정령중 가장 유명한 존재인 도모보이는 집이라는 의미의 ‘돔’ 이라는 단어에서 나온 이름을 가졌다. 이미 짐작 했겠지만, 도모보이는 집의 신, 혹은 정령(精靈)이다.
도모보이는 인간의 모습과 비슷하지만 손바닥을 포함한 전신에 하얗고 부드러운 털이 나 있다. 그의 양 손은 털로 뒤덮인 점만 제외하면 인간의 손과 꼭 닮았다. 뿔이 있거나, 꼬리가 달려있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설화도 있다.
그는 변신에 능해 가축이나 건초 묶음 등의 모습을 취하기도 한다. 변신한 그의 모습을 보는 것은 상관없지만, 본 모습을 보는 것은 어렵기도 하거니와 매우 위험하다. 그의 본 모습을 보는 것은 불행이 다가올 징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모보이의 목소리는 별 위험 없이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보통 도모보이의 목소리는 상냥하고 즐겁게 들려오지만, 우울하거나 성급한 말투로 들려오면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길 징조이다. 도모보이는 집주인 가족 중 누군가가 죽게 되었을 때는 울음소리를 내어 알려준다고도 한다.
이러한 도모보이는 매우 존경받는 정령으로, 슬라브 농민들은 그를 정식명칭으로 부르기를 꺼려한다고 한다. 덕택에 그는 ‘할아버지’, ‘집주인’, ‘그것’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리 우고 있다. 도모보이는 조상신의 개념이 변화하여 생겼다고 하니 할아버지라는 호칭으로 불리우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도모보이는 자신이 사는 집에 애착을 가지게 되면 떠나지 않고 그 집을 계속 수호해준다. 그래서 슬라브 농부가 새 통나무집을 지었을 때, 농부의 아내는 새 집에 들어가 살기 전에 빵 한조각을 떼어 난로 밑에 두고 도모보이가 빵에 꾀여 새 집에 들어와 주기를 바란다. 일단 새 집으로 들어온 도모보이는 난로 곁이나 입구 문턱 밑에 살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도마니아’ 혹은 ‘도모비하’ 라고 불리 우는 그의 아내는 지하실에 살며 절대로 인간에게 모습을 드러내거나,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 집을 나서서 뜰로 나가면, ‘드보로보이’ 가 살고 있다. 뜰이라는 의미를 가진 도보르라는 단어에서 나온 이름을 가진 그는 뜰의 정령이다. 그는 가축들을 돌보아주는 일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가축우리 안에 암양의 털 약간과, 무언가 반짝이는 작은 물건, 한조각의 빵을 놓아두며 드보르보이의 비위를 맞춰준다.
드보르보이는 하얀 털을 가진 동물들을 몹시 싫어해서 괴롭힌다. 그러나 하얀 암탉은 전혀 드보르보이를 두려워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암탉들을 수호해주는 신이 있기 때문이라 한다.
이 뜰의 정령은 종종 인간의 여자를 사랑하곤 하여 그에 관한 설화도 많다. 그 중 한 가지 예를 들면, 드보르보이 중 하나가 어느 아가씨를 사랑하게 되어 오랫동안 함께 지냈다. 그는 아가씨의 머리카락을 땋아주고는 그것을 절대 풀지 못하도록 했다. 아가씨가 나이를 먹어 서른다섯이 되었을 때 그녀는 결국 결혼을 하게 되었고, 혼례 전날 처음으로 그 땋은 머리를 풀었다. 다음날 아침, 아가씨는 침대위에 드보르보이에게 목이 졸려 죽어있는 시체로 발견된다.
드보르보이는 도모보이에 비해 격렬한 성품을 가진 탓에, 인간들은 가끔 그를 강제로 진정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는 뜰의 나무 울타리를 갈퀴로 찌르거나, 그가 싫어하는 하얀 동물의 가죽이나 죽은 까치 등을 던지면 된다고 한다.
이제 욕실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여기서의 욕실은 요즘같이 집안에 붙어있는 하얀 타일의 깨끗하고 반짝이는 욕실이 아니다). 발트해 연안의 러시아 지방에는 여러 명이 동시에 들어가 사용할 수 있는 사우나 실을 따로 만들었다. 그 사우나 실을 지키는 것이 ‘반니크’ 라는 정령이다.
세 패의 사람들이 욕실을 사용하고 난 뒤, 네 번째로 욕실에 들어가는 것이 반니크다. 그는 악마나 다른 정령들을 초대해 욕실에 함께 들어간다고 한다.
반니크 역시 드보르보이 만큼이나 성격이 격하다. 사람들이 그에게 나쁘게 대하지 않으면 해를 끼치지 않지만, 그를 위해 목욕물을 남겨두지 않거나 그가 목욕중일 때 귀찮게 한다면 화를 내어 욕실을 버리고 떠나버린다. 뿐만 아니라 반니크가 한창 목욕중일 때 불쑥 들어가거나 한다면 방해꾼의 몸에 펄펄 끓는 물을 끼얹거나 목을 조르기도 한다.
이 욕실의 정령에게는 미래를 예견하는 힘이 있어, 그에게 미래를 물어볼 수 있다고 한다. 미래를 알고자 하는 사람은 욕실 문을 열고서 등을 욕실쪽으로 돌리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면 된다. 반니크가 그의 등에 손바닥을 살짝 대면 그에게는 행복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손톱으로 등을 찌르거나 할퀸다면 불길한 조짐이다.
다음은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다. 곡식창고는 '오빈니크'의 구역이다. 곡식창고의 한 구석에서 살고 있는 오빈니크는 털이 마구 헝크러진 커다란 검은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모습은 고양이지만, 그는 개처럼 짖으며 큰 입을 벌리고 사람처럼 웃기도 한다고 한다. 오빈니크의 눈은 타오르는 숯불처럼 빛나고 있다. 그는 거두어들인 곡물을 지켜주는 정령이지만, 드보르보이나 반니크처럼 성격은 그리 좋다고만은 할 수 없어서, 기분이 상하면 곡식창고에 불을 지르기도 한다.
이외에 여성의 모습을 한 '키키모라' 라는 정령이 있다. 지방에 따라 도모보이의 아내로 불리우기도 하는 키키모라는 수많은 설화에 등장하지만, 정확한 모습은 알려져 있지 않다. 개중 많이 묘사되는 것이 까마귀와 쥐를 합친 것 같은 외모에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린 모습이다. 보통은 닭을 돌보는 일을 하지만, 간혹 근면하고 마음에 드는 주부를 만났을 때는 가사 일체를 거들어 주기도 한다. 주부가 게으르면, 키키모라는 밤에 아이들을 부추겨 어머니를 고통스럽게 만든다고 한다.
대장장이의 수호신인 크루기스, 마굿간을 돌보는 라타이니차, 가축을 수호하는 페세이아스, 도마뱀의 모습을 한 기보이티스, 집안을 관리하며 오븐에서 꺼낸 첫 빵을 받는 마테르가비아, 빵 반죽이 상하지 않도록 지키는 두그나이 등, 슬라브 설화에서의 정령들은 온 집안 구석구석을 지키고 있다.
어느 들판이나 각기 하나씩의 ‘폴레보이(Polevoi)’ 혹은 ‘폴레비크’ 에게 지배되고 있다. 들이라는 의미의 폴레에서 나온 이 이름들은 이들이 들판의 정령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지방에 따라 흰 옷을 입은 사람 형태에서 새카만 육체에 양쪽 색이 다른 눈동자를 가진 모습이나, 머리카락 대신 푸른 풀이 나있는 머리를 가졌거나, 기형적인 난쟁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알려져 있는 폴레비크는 몹시 장난이 심해, 밤길을 가는 나그네를 이리저리 헤메이게 만들곤 한다.
이미 말했듯이, 슬라브에서의 정령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일종의 천사와 같은 존재들이다. 타락한 천사랄까. 특이한 것은 하늘에서 추방된 이들 정령들은, 인간과 가까이 살수록 온화하고 착한 존재가 되며, 인가에서 멀어질수록 사악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즉, 집안을 지키는 도모보이는 가장 온순하며, 정원과 곳간들을 지키는 정령들은 온순하지만 간간히 심술을 부리고, 마을을 벗어나 만나는 숲과 들판과 물의 정령들은 몹시 사악하고 위험한 존재라는 것이다.
바로 이 사악하고 위험한 존재에 속하는 폴레비크(Polevik)는 이유 없이 사람들을 괴롭히길 즐기며, 술주정꾼의 목숨을 끊어버리기도 한다. 이러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정령에게 잘 보여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의 호의를 사기 위해서는 땅에 구멍을 파고 달걀 두 개와 울지 못하게 된 늙은 수탉을 그 안에 넣어두면 된다고 한다. 이렇게 희생물을 바치는 방법은 아무도 보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말이 덧붙여져 있는 것으로 보아, 폴레비크의 힘을 빌어 미운 녀석을 괴롭히려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보게 되지만, 대체로 밭을 수호해 달라는 부탁으로 닭을 바치는 정도였다고 한다.
러시아 북부에서는 폴레니크의 변형인 ‘풀루드니차’라는 이름의 한낮의 정령이 등장한다. 키가 크고 하얀 옷을 걸친 아름다운 아가씨의 모습을 한 풀루드니차는 한낮에 일하는 사람들의 머리를 잡아당기며 괴롭히거나, 어린아이들을 보리밭으로 유인하여 길을 잃고 헤메이게 만든다.
숲이라는 단어 레스에서 온 이름을 가진 레시가 숲 속에 숨어있다. 레시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푸른 피를 가진 탓으로 그 피부는 푸른기가 돈다. 뿐만 아니라 툭 튀어나온 눈과 눈썹, 수염, 머리칼 또한 모두 선명한 녹색이다. 외모와 이름에서 보이듯이 숲을 인격화한 신인 레시는 그림자도 발자국도 없으며, 숲속을 걷던 사람이 누군가 따라오는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보아도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레시가 숲 가운데를 걸을 때 그의 머리는 가장 높은 나무 꼭대기에 닿으며, 숲가를 걸어 작은 관목이나 풀숲을 지날 때는 나뭇잎 아래에도 숨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난쟁이로 변한다는 이야기가 설화에 있다. 이것은 그가 숲 중심에 가까이 있을수록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이 숲의 정령은 민가에서 떨어져 사는 존재인 탓으로 폴레비크만큼 장난이 심해서, 종종 숲을 지나는 나그네나, 사냥꾼 등을 헤메이게 한다. 그의 마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옷을 벗어 뒤집어 입고 오른발에 왼쪽 신을, 왼발에 오른쪽 신을 신어야 한다. 이런 퇴치법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사람이 지쳐버리면 마을로 가는 길을 열어준다. 레시는 폴레비크에 비해 순한 성격을 가져, 장난은 즐기되 사람을 해치는 일은 적다.
레시는 죽어야 할 운명을 가진 여자와 악마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하지만, 그는 불사의 존재다. 그러나 그는 숲을 인격화한 존재이므로 겨울이 다가오면 일시적으로 죽거나 혹은 모습을 감추어야 한다. 가을 무렵이 되면 차츰 다가오는 소멸을 생각하며 레시들은 신경이 곤두서서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숲속을 뛰어다닌다. 이 시기에 그들을 만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몇몇 전설에서는 레시가 가족을 이루며 살아간다고 한다. 레시의 아내는 ‘레샤치하’, 아이들은 ‘레셴키’ 라고 불리 우며, 그들은 숲 깊숙한 곳에서 거주하며 공동으로 나쁜 장난을 친다고 한다.
이들 외에도 숲과 들판에서 사는 정령은 많다. 경작을 담당하는 라브카파팀, 과일을 성장시키는 마르잔나, 들판과 과일을 수호하는 크리코, 체리를 익게 하는 키르니스, 꿀벌의 수호신 조심, 무엇으로나 변신하는 숲의 정령 시크사 등이 그들이다.
물에서 사는 정령들은 이미 설명한 신들보다 매우 잔인하고 심술궂다. 물의 정령은 어느 나라에서나 사람을 물속으로 끌어들여 죽게 하는 존재라는 이미지가 강한 듯하다.
이전까지 이미 보아왔듯이, 슬라브에는 자연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파생된 정령의 이름이 많다. '보디아노이' 역시 그런 존재로, 그의 이름은 물이라는 의미의 ‘보다’라는 단어에서 나온 것이다.
보디아노이의 모습은 다양하게 묘사된다. 지방에 따른 차이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이 물의 정령이 변신 능력을 가졌다는 이유가 크다.
그는 한 설화에서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손발 대신 동물의 다리를 가진채 긴 뿔과 꼬리, 불타는 눈을 가진 존재 - 마치 악마 같은! - 로 나타나는가 하면, 다른 이야기에서는 온몸이 풀과 이끼로 뒤덮인 거인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보디아노이는 커다란 붉은 눈과 굵고 긴 코를 가진 새카만 형체나, 녹색 머리칼과 수염을 기른 노인의 모습, 온몸에 이끼가 낀 흉한 모습의 큰 물고기, 작은 날개를 가지고 물 위를 스치듯 날아가는 나무줄기 등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보디아노이는 폴레니크나 레쉬보다 더 사악하다. 그는 인간을 몹시 싫어하여 방심한 사람을 물로 끌어들인다. 그의 포로가 된 인간은 먹히거나 또는 그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
보디아노이의 거주지는 연못이나 호수, 크고 작은 하천 등이며, 그들이 특히 모이는 곳은 수문이나 물레방아 근처다. 그러나 이것은 보디아노이가 물레방아나 수문을 좋아하기 때문은 아니다. 자연스러운 물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는 이 물의 정령은 인공적으로 물을 막아놓은 물레방아나 수문에서 더 이상 이동하지 못하고 그저 머물러 있게 되어버린 것이다.
기실, 보디아노이는 물레방아나 제방을 인간을 싫어하는 만큼이나 미워해서 곧잘 부수곤 한다. 그런 그를 달래어 물레방아를 지키는 방법은 제물을 바치는 것으로, 큰 동물이나 인간을 물에 던지는 일이 그것이었다. 러시아의 시골에서는 수십 년 전까지 밀가루를 빻는 사람들이 보디아노이의 환심을 사기위해 어두워진 후 혼자 길을 걷는 사람을 물속에 밀어 던지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민간설화가 아직까지도 뿌리 깊게 사람들에게 믿어진다는 것은 감탄할 만하지만, 이건 생각해보면 상당히 무서운 이야기다. 밤에 무심히 길을 가다가 갑자기 달려 나온 누군가에게 떠밀려 강에 빠진다. 그리고 물 위로 머리를 내민 채 서서히 다가오는 묘한 그림자는...! 남성형인 보디아노이 외에 ‘루살카(Rusalka)’라는 이름의 여성형 물의 정령이 있다. 자살이든 사고든 간에 물에 빠져 죽은 젊은 아가씨는 루살카가 된다.
보디아노이와 마찬가지로 루살카 역시 사악하며, 인간에게 해를 끼친다. 보디아노이가 물 밖으로까지 나와 - 그래봐야 거주하고 있는 하천 주위에 지나지 않지만 - 사람을 잡아먹는 능동적인 행동을 하는데 비해서, 루살카는 인간을 유혹하거나 밀어 떨어뜨리는 정도의 덜 적극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루살카는 인간을 죽일 뿐으로, 그 시체를 먹거나 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그녀들의 인간 살해방법은 지방에 따라 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
슬라브 남쪽, 도나우 강 유역 지방의 루살카는 ‘빌라’라는 이름으로 불리 우는 경우가 많다. 남쪽의 루살카들은 젊은 아가씨의 매력적인 용모를 가진 모습으로 나타나, 아름다운 외모와 노래로 나그네를 유혹하여 물로 끌어들인다. 그녀들은 달빛처럼 창백한 피부에 길게 늘어뜨린 머리칼을 하고, 투명한 안개 옷을 입고 있다고 한다. 세이렌(Siren)을 연상시키는 이 모습을 하고 노래에 홀려 다가온 나그네를 유혹하여 고통 없이 죽이는 것이 남쪽의 루살카(Rusalka)들이다.
북부 러시아로 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북쪽의 루살카들은 빗질을 하지 않아 마구 헝크러진 머리에 옷을 입지 않고 있다. 이들은 물에 빠져 죽은 시체 같은 피부를 가졌으며 눈은 사악한 녹색을 발한다고 한다. 북쪽의 루살카는 성격마저도 남쪽의 루살카와 판이하여, 밤늦게 강둑을 걷는 이를 물로 밀어 떨어뜨린 후, 희생자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격렬한 고통을 가한다.
슬라브 전설에서 루살카들은 이중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녀들은 여름이 시작될 무렵까지는 물속에서 살지만, 여름의 일정 기간 동안은 숲속 나무 위에서의 생활을 한다. 슬라브 인들은 녹색 나무는 죽은 이들의 거주지라고 믿었다.
여름이 오기 전, 물이 아직 어둡고 차가울 때에 루살카들은 물 속에 머물 수 있다. 그러나 어두움과 죽음의 정복자인 태양빛이 스며들어 물이 따뜻해지는 시기가 오면, 본디 죽은 아가씨들의 넋인 루살카들은 푸른 나무들에게로 도망치는 것이다. 숲 속에서의 루살카들은 밤이 되면 나무에서 내려와, 달빛을 받으며 숲속의 빈터에서 춤을 추거나 소리를 지른다. 그녀들이 머물며 춤을 춘 자리는 풀이나 곡식이 잘 자란다고 하는, 영국의 페어리 링(Fairy Ring) 이야기를 연상케 하는 이야기도 있다.
루살카들은 사람을 해치는 것 이외에도, 물레방아를 망가뜨리거나 밀을 빻는 절구를 쪼개어 놓거나 어부의 그물을 찢는 장난을 한다. 뭍으로 올라올 수 있는 시기에는 바늘 따위의 소소한 것들을 훔쳐가기도 한다. 루살카들은 향쑥을 싫어하는데, 향쑥 잎을 손안에 쥐고 있으면 그녀들의 장난이나 위협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슬라브의 신화와 전설은 크리스트교의 전파로 인해 한번 무너져 소실되었고, 그 후 남은 이야기들도 게르만 등의 민족들과 접촉하면서 조금씩 변질되었다. 농민이나 사냥꾼 등의 민중들이 주가 되어 믿던 작은 신들의 이야기는 제법 남아있지만, 도시나 성채에 살던 시민들은 그들이 믿던 신을 거의 대부분 잃어버렸다.
슬라브 신화는 두 계층에 의해 서로 나뉘어서 믿어졌다. 지배계층의 신앙과 민중의 신앙, 두 가지였다. 지배계층들이 믿는 신은 큰 신으로 전쟁이나 명예, 사냥의 신 등이었다. 그보다 작은 신들, 위에서 이야기해온 디이 미노레스들은 민중들의 것이었다. 둘로 나뉘어진 이 신들을 살펴보면 확실히 차이가 보일 것이다. 주위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환경이나 자연에 대한 두려움을 신격화 한 것이 작은 신들인데 비해, 큰 신들은 좀 더 관장하고 있는 분야가 넓으며 포괄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아쉬운 점은 이러한 큰 신들에 대한 자료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지배자 계층이 하나둘씩 개종하기 시작하면서 믿어지고 있던 신들의 우상은 파괴되고 신들의 이야기는 잊혀져갔다.
지배계층과 민중의 신앙이 워낙에 구분되어있던 탓으로, 지배계층이 자신들의 신화를 포기했을 때 더 이상 그 신화는 지켜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슬라브의 농민들이 크리스트교를 믿으면서도 자신들의 토속신앙을 지켜, 작은 신들의 이야기를 물려 내려왔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러시아쪽의 문화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접하기 힘들었던 것이므로, 이번 슬라브 신화의 자료도 생각 외로 찾기 힘들어 상당히 부실한 글이 된 듯하다. 환타지와 신화의 중간쯤 되는 역할을 하는 러시아 기사의 모험담을 그린 빌리나(Bylina) 같은 서사시도 전해 내려온다.
슬라브인들은 중(中)·동(東) 유럽의 광대한 삼림·호소(湖沼)·하천·대초원을 무대로, 6세기경부터 민족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자연의 창조력과 파괴력과의 대립을 바탕으로 한 자연조건의 영향을 받음으로써, 숲이나 하천 등 온갖 자연을 지배하는 신(神)들이 자연히 숭배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자연숭배 사상으로 광명의 신 베르보그, 어둠의 신 체르노보그, 지고신(至高神)으로서의 태양(다주보그)과 불(스바로그)이라는 두 아들을 가진 천공(天空)의 신 스비에로그를 비롯하여 가정의 신 다마보이, 뜰의 신 도보로보이, 곳간의 신 오베니크, 숲의 신 레쉬이, 밭의 신 폴레비크, 물의 신 보자노이, 루살카, 구파라, 봄의 신 야리로 등 이외에 이민족(異民族)과의 접촉으로 갖가지 신화가 탄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