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6일 연중 23주간 월요일
<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6-11
6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7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8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하고 이르셨다.
그가 일어나 서자 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10 그러고 나서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는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그렇게 하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11 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
아무 것도 아닌 세상의 일에 마음을 쓰고 살았던 어리석은 삶
아주 오래된 농담으로 건네는 이야기 하나는 어떤 바보 같은 사람이 아주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 선물은 잘 훈련된 말(馬)이었는데 '“알렐루야”하면 달리고, “아멘”하면 서는 말이었답니다. 그래서 그 말을 선물한 사람은 “이 말은 ‘이랴’ 하면 달리지 않고 알렐루야 해야 달린다고, 또 ‘워’하면 서지 않고, ‘아멘’ 해야지만 선다.”고 열 번도 더 반복해서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건성으로 듣고 금방 모든 것을 잊어버렸는데 말이 무척 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말에 올라타자마자 신이 나서 “알렐루야”를 연신 외치자 말(馬)은 그 말을 듣고 말굽을 박차고 앞으로 내달렸습니다. 그는 어쩌다 보니 절벽이 코앞에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급해서 “워~워”를 외쳐댔지만 말은 멈추지 않게 되자 다급해서 무작정 기도를 했습니다. “하느님 저 좀 살려주세요. 아멘.” ‘아멘’ 소리를 들은 말은 절벽 바로 앞에서 섰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더욱 신이 났습니다. 그래서 다시 ‘알렐루야’를 외쳤습니다. 어느새 말은 달리기 시작해서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쳤습니다. 그 사람은 절벽에 매달린 소나무 뿌리를 겨우 붙잡고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있을 때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밧줄을 던졌습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힘을 다해 끌어올리는 밧줄에 매달려 끌려 올라가면서 그는 생각했습니다. ‘지금 내가 이 줄을 놓아버리면 저들은 뒤로 넘어질 것이다. 아~ 생각만 해도 재미있다.’ 그래서 그는 밧줄을 놓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끌어올리느라고 힘을 주던 동네 사람들은 그가 예상한 대로 뒤로 모두 넘어졌고, 그는 아주 깊은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 쳐 떨어졌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아무 것도 아닌 일에 마음을 빼앗겨 귀중한 생명을 버리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일에 기분과 마음 상해서 부부 싸움을 하고, 그래서 감정이 상해져서 더 큰 싸움으로 치닫고, 급기야 이혼까지 하기도 합니다. 신혼부부가 여행을 가서 식사를 양식으로 할 것인지, 한식으로 할 것인지를 가지고 싸우다가 그날로 이혼한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아무 것도 아닌 일 가지고 마음이 상해서 성당에 나오지 않고,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고 매일 사표를 쓰고, 사목회에서 싸움하고, 감정이 상해진 사람들을 봅니다. 정치가들이 아주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트집을 잡고 아주 큰일을 잊어버리고 국민들을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들을 자주 봅니다. 그들은 바로 귀중한 자신의 생명이나 다른 사람의 생명을 소홀하게 생각하고, 사소한 시비를 하여 트집을 잡는 바리사이들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그 분을 따르려는 사람들이 많으면 자신들의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예수님을 찾아서 사람들이 모여들면 자신들의 가르침이 잘못된 것임을 만천하에 낱낱이 밝혀질 뿐만 아니라 율법의 해석과 판단이 자신들의 고유 업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고발하고 잘못한다고 만천하에 알리고, 자신들의 정통성을 인정받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트집을 잡을 것이 그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의 율법에 올가미를 씌워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에게 오히려 적반하장(賊反荷杖)격으로 대어드는 것입니다. 도둑이 집주인과 경찰에게 대어들어 매를 때리려고 드는 형국을 그들은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나무라지만 우리도 그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농담에서 말한 바보처럼 우리도 매순간 아주 귀중한 자신의 생명을 헌신짝 버리듯이 버리고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마음을 빼앗겨 몰두하고, 참된 진리의 길을 외면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도박에 빠지고, 일시적인 재미에 빠져서 영원한 생명을 일시적인 생명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좋은 일을 하고, 목숨을 구하는 일을 하여야 합니다. 안식일뿐만 아니라 항상 그 일에 생명을 다해야 합니다. 주님은 오른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른 손은 전에 묵상한 적이 있는 바와 같이 존우사상(尊右思想)에서 가르치는 것과 같이 하느님의 일이며, 하느님의 편이며,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오른 손이 오그라들었다는 것은 하느님의 일을 하지 않고 있으며, 하느님의 사명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너는 하느님의 일을 하여라.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그 일을 열심히 하여야 한단다.’
또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아무 것도 아닌 세상의 일보다는 하느님의 일에 더 마음을 쓰고, 더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단다. 그래서 나는 지금 너희에게 말한다. 손을 뻗어서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사랑을 실천하여서 이 세상에서 나의 삶을 증언하고, 너희의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선조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살았던 삶을 살아야 한단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딸들아!”
<과거의 모든 시대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를 선포하는 일을 완수하려고 나는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 1,24―2,3
형제 여러분,
24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25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당신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완수하라고 나에게 주신 직무에 따라,
나는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26 그 말씀은 과거의 모든 시대와 세대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입니다.
그런데 그 신비가 이제는 하느님의 성도들에게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27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 나타난 이 신비가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지
성도들에게 알려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 신비는 여러분 가운데에 계신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는 영광의 희망이십니다.
28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굳건히 서 있게 하려고,
우리는 지혜를 다하여 모든 사람을 타이르고 모든 사람을 가르칩니다.
29 이를 위하여 나는 내 안에서 힘차게 작용하는 그리스도의 기운을 받아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2,1 사실 여러분과 라오디케이아에 있는 이들, 그리고 내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한 모든 이들을 위하여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여러분이 알기 바랍니다.
2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여러분과 그들이 마음에 용기를 얻고 사랑으로 결속되어, 풍부하고 온전한 깨달음을 모두 얻고
하느님의 신비 곧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갖추게 하려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이 숨겨져 있습니다.
축일9월 6일 성 즈카르야 (Zachary)
신분 : 구약인물, 예언자
활동 연도 : +6세기BC
같은 이름 : 자카리아, 자카리아스, 자카리야, 재커리, 즈가리아, 즈가리야
구약성서의 열두 소예언서에 하나인 즈카르야서는 자카리아(Zacharias, 또는 즈카르야)라는 한 예언자의 이름으로 전해진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 넘긴 이야기를 하면서, ‘은전 서른 닢’과 관련된 예레미야(Jeremias) 예언자의 말이 실현되었다고 밝혔다(마태 27,9-10). 그런데 이 표현은 즈카르야서 11장 12-13절에 나온다. 이로써 즈카르야서 전반부와 11장을 중심으로 한 후반부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 확연해졌다. 즉 이사야(Isaias) 예언서와 마찬가지로 즈카르야 예언서 역시 한 사람의 동일한 작품으로 볼 수 없다.
예언자 자카리아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는 즈카르야서 제1부(1-8장)에 의하면 예언자 자카리아는 “이또의 손자이며 베레기야의 아들”(1,1. 7)로 전해진다. 그는 예언자 하까이(Haggai)와 동시대 인물로서, 기원전 520년 8월 또는 9월부터(1,1) 518년 11월까지(7,1) 활동했다. 하깨가 종교적인 이상(理想)을 불러일으키는 데 헌신했다면(하깨 1,14), 자카리아는 성실성에 대한 호소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약속을 통해서 이 이상을 실현시키는데 최선을 다한 예언자로 받아들일 수 있다. 성전의 역할을 그처럼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나 단식문제에 대한 답변 장면(7,1-3; 8,18-19), ‘거룩한 땅’과 성성(聖性)에 대한 깊은 관심(2,16; 5,1-4. 5-11) 등으로 미루어 자카리아의 신분이 사제였음이 거의 확실하며(느헤 12,16 참조), 또한 옛 예언자들의 정신적 유산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1,3-6; 7,4-14; 8,16-17).
오늘 축일을 맞은 즈카르야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